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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보헤미안의 아직 끝나지 않은 모노로그
[김은성의 연극데이트] 배우 정인겸

김은성_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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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정인겸
  • 최근 성북구 성북동 3-53 3층 옥탑방으로 이사한 정인겸이 마흔다섯까지 모은 전 재산은 달랑 200만원. 말더듬이 청년에서 화술에 달관한 배우가 되기까지 세상사 흐름은 멀리 등 뒤에 두고 오로지 무대만을 바라보며 걸어온 그의 가난하지만 풍요로운 삶과 연극을 돌아봤다.
  • 옥탑방 보헤미안

    <더 포토> 공연이 끝난 후에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서 성북동으로 이사를 했다. 이런저런 새 살림을 마련하면서 집들이도 하면서 보냈다. 공연 막바지부터 다리가 아파 고생을 했는데 더 심해졌다. 몸이 아프니 우선 몸을 좀 다스리자는 생각으로 술도 끊었다.

    다리는 왜? 올해 일정에 무리가 있었던 것 아닌가?
    다리는 원래 좀 좋지 않다. 일정은 한가했다. 올해는 몇 편 출연하지도 못했다. <복사꽃 지면 송화 날리고>와 <더 포토>가 전부다.

    <더 포토> 는 어떤 경험이었나?
    <복사꽃 지면 송화 날리고>에서 아들 역할을 맡았었다. 그 인물은 나랑 너무 비슷한 인물이었다. 내면으로 내면으로 파고 들어가 어떤 침묵에 휩싸여있는 그런 인물이었다. 그래서 힘들고 답답하더라. <더 포토> 대본을 처음 봤는데 마음껏 수다를 떨 수 있겠더라. 실컷 수다를 떨 수 있어 좋았고 배우들의 유대관계가 좋았던 것도 힘이 됐다. 나의 삶을 객관화 시켜서 관객과 만나는 과정도 재미있더라. 나 자신을 오랜만에 찬찬히 되돌아 볼 수 있게 된 시간이었다. 그동안 나는 주로 고통스런 역할과 인연이 많았다. 자살 한다거나 실연의 아픔에서 허덕이거나 하는 그런 인물. <더 포토>에서는 무대에서 가벼운 이야기를 하는 인물로 무대에 서 있는 경험을 했는데 나도 편했고, 관객들도 편한 것 같더라. 새로운 즐거움이었다.
배우 정인겸
배우 정인겸
  • 대체 얼마나 근사한 집으로 이사를 했기에 인터뷰를 집에서 하자고 했는가?
    너무 마음에 든다. 옥탑 같지 않은 옥탑이다. 평수도 14평이나 된다. 지대가 높아 전망이 정말 좋다. 360도 어디를 둘러봐도 장관이다. 특히 야경이 그만이다. 인터뷰를 집에서 했으면 당신도 경치에 반했을 것이다.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서 얻었다고 했는데 전셋집을 마련한 것인가?
    아니다. 1000에 25. 월세다. 집이 전망은 좋은데 겨울에는 좀 추울 것 같다. 괜찮다. 추위에 강하다. 원래 겨울에는 방에서도 코트입고 실내화 신고 버틴다.

    없는 돈은 어디서 어떻게 끌어 모았는가?
    700만원을 은행 대출로 빌렸다. 대출을 처음 해봤는데 쉽지가 않더라. 이런저런 서류만 6개가 필요하더라.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빌렸다. 100만원은 여기저기서 도움을 받았다. 내 돈은 딱 200만원 있었다. 2년 계약 했는데 마음에 들어서 기왕이면 한 4년 살려고 한다.

    40대 중반을 넘긴 사내가 고작 200만원 있었는가? 왜 그렇게 가난한가?
    대학로 연극판 배우들이 다 그렇다. 전 세계 연극배우들 역시 다 가난하다. 젊었을 때는 틈틈이 노동으로 돈을 벌며 지냈다. 지방의 대형 건설공사 현장에서 몇 달간 보냈던 적도 있었다. 이제는 아르바이트를 구하기도 쉽지 않은 나이가 됐다. (웃음) 가난 내가 멍청했던 거다. 한창 때 후배들은 영화 쪽도 잘 알아보고 살길들을 잘 모색해 나가더라.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7년 전까지 컴맹이었다. 세상의 흐름과는 거리가 멀었다. 내 삶은 단순했다. 연극, 알바, 노동…… 돈 생기면 집세 내고 연극하고, 그냥 그렇게 살았다.
배우 정인겸
배우 정인겸
  • 말더듬이, 코뿔소를 만나다

    정인겸은 늘 고독해 보인다. 어렸을 때도 외톨이였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68년에 옥수동에서 태어난 서울 토박이다. 아버지가 공장을 하셨는데 75년 석유파동 여파로 공장이 문을 닫게 됐다. 집이 무척 어려워졌다. 그때부터 경기도 일대를 떠돌게 되었다. 전학을 너무 자주 다니는 바람에 수학은 초등학교 때부터 접었다. 전학 기간이 보통 보름 정도 걸렸는데 도무지 진도를 쫓아갈 수 없었던 거다. 수학은 못했지만 영어는 잘했다. 중학교 때 형이 숨겨둔 『플레이보이』를 발견한 후 영영사전을 보면서 독해를 스스로 터득했다. (웃음) 고1때 모의고사를 봤는데 만점을 맞았다. 음 그런데 나는 어려서부터 말을 심하게 더듬었다. 어린 정인겸은 말더듬이였다.

    정인겸 하면 빼어난 화술로 알려진 배우 아닌가?
    말을 이렇게 잘하는 배우가 말을 더듬었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스물다섯에 극복하기까지 말더듬은 인생의 가장 큰 숙제였다.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전학을 간 학교에서 좋지 않은 경험을 하고 다시는 말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는데 진짜 안하게 되더니 결국 말더듬이가 되더라. 20대 초반에 연극반 생활을 하면서도 계속 스태프만 했다. 내 안의 언어를 밖으로 날려 보내는 것, 나의 가장 큰 벽이었다.

    어떻게 극복 했는가?
    대학시절 연극반 극장에서 숙식을 했다. 밤이 되면 최형인 선생의 명서『백세개의 모노로그』를 들고 연습을 했다. 혼자 해보면 잘 되는데 친구들 앞에서는 어렵더라. 본질 적인 성과는 없었다. 탈출하려고 하면 할수록 힘들더라. 그때 그 코뿔소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영영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코뿔소?
    군 제대 후 휴학기간에 서울대공원 동물원에서 일했다. 아프리카 관의 아르바이트생이었는데 코뿔소 관을 담당했다. 내가 하는 일은 코뿔소 똥 치우고 물 갈아주고 그런 일이었다. 당시 굉장히 비싼 몸값의 희귀 코뿔소가 서울대공원에 들어와 주목을 받고 있었다. 흰 코뿔소였다. 그런데 이 친구가 낯선 공간에 와서 전혀 적응을 못하고 있었다. 하루에 서너 걸음이나 걸었을까? 병든 강아지 마냥 영 기운을 내지 못하더라. 3월말쯤 추운 날로 기억하고 있다. 관람시간이 모두 끝나고 퇴근 준비하고 있는데 선배가 나와 보라 소리를 지르더라. 흰 코뿔소가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장갑차처럼 앞을 향해 달리고 있더라. 그걸 본거다.

    코뿔소 뛰는 모습에서 무엇을 봤는가?

    코뿔소 관은 초등학교 운동장만큼 큰데 평상시에는 서너 걸음 걸을까 말까 하던 친구가 그 운동장을 휘저으며 미친 듯이 뛰더라. 그 모습을 보고 대공원을 내려오는데 글쎄 뭐랄까 알 수 없는 에너지에 휩싸이더라. 분명 평지를 걷고 있었는데 공중으로 올라가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불쑥 웃음이 터져 나오더라. 지난 15년, 나를 가로 막고 있던 나의 벽은 내 안에 있는 나를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뛰는 코뿔소를 보며 나는 나를 보게 된 거다. 너무나 쉬운 거다! 그냥 뛰어버리면 되는 거다!

    그날 이후 말더듬을 극복했는가?
    그렇다. 마음의 변화가 생기고 나니 호흡이 컨트롤 되는 것을 느꼈다. 어떤 상황에서도 서두르지 않게 되었다. 내가 원할 때 내가 원하는 호흡을 가지게 되더라.
  • 배우 정인겸
  • 연극과 보낸 청춘

    연극과의 인연은 언제부터?
    고교시절, 연극에는 관심이 없었다. 백일장에 나가면 꼭 상을 받아서 글을 써볼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수학을 못했지만 성적은 꽤 좋았다. 학력고사 보는 날 감기약을 먹은 게 탈이 나 시험을 망쳤다. 어쩌다 보니 철학과를 택해 대학에 들어갔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꼴인가 막연하게 궁금하기도 했다. 1학년 때였다. 87년 6월 항쟁 직후였다. 운동권 형들과 노는 게 조금 지겨울 무렵에 연극반 극장에 우연히 놀러갔다. 객석 뒤에서 빈둥거리고 있는데 얼굴도 모르는 연극반 선배가 불러 일을 시키더라. 영문도 모르고 무대를 보수하고 있는데 "야, 라면 먹고 해" 하더라. 그때야 "야, 근데 너는 누구냐?" 물었다. 라면 먹다가 연극반에 들어가게 됐다. (웃음)

    연극반에서는 어떤 시간을 보냈는가?
    저학년 때는 스태프, 주로 조명 일을 많이 했다. 군대 다녀와 선배가 된 후로는 배우로 무대에 서고 싶었다. 연극반에서 숙식을 하면서 연습을 많이 했다. 코뿔소 사건 이후에 말에 대한 부담이 덜어지면서 점점 연극에 대한 애정이 깊어졌다. <보이첵>을 연출했고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는 로미오로 무대에 섰다. 함께 한 연극반 친구들을 잊을 수가 없다. 사람들과의 소통에 늘 힘들어하던 내가 그들을 만나면서 정말 많이 변했다. 나를 기다려주던 친구들, 모두 함께 어울려 놀던 그 친구들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특히 종대라고 지금은 약국 하는 친구가 있는데 음악에 정통한 친구였다. 좋은 음악을 항상 CD로 구워주던 친구였는데 지금까지 구워주고 있다. (웃음)

    대학로 무대에는 어떻게 입성했는가?
    94년, 4학년 1학기 때 극단 연우무대 입단 오디션을 보고 단원이 됐다. 동기가 신덕호, 2년 선배가 유연수, 3년 선배가 김뢰하다. 입단 전부터 연우무대 공연을 좋아했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 구나> <4월 9일> <최선생> 등의 작품이 기억에 남는다. 극단에 들어가서 많이 깨지면서 배웠다. 나의 화술이 연우무대의 화술과는 많이 달랐다. 공부를 많이 했다.

    어떤 작품들에 출연했는가?
    김학선 작 박상현 연출의 <난 새에게 커피를 주었다> 등에 출연한 후 교통사고를 당했다. 다리뼈가 여섯 조각이 났다. 건널목을 잘 건너고 있는데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던 버스에 치였다. 운이 좋아 살았다. 버스기사의 노모가 병실에 찾아와 눈물로 선처를 호소하더라. 아들이 운전 중에 소변이 너무 급해서 실수를 했다고 실소가 나오더라. 그냥 봐줬다. 4개월간 누워있다 퇴원 후에 76극단 기국서 연출의 <관객모독>에 출연했고 김광림 작/연출의 <날 보러 와요>에 김형사로 출연했다.

    연우무대에서는 언제까지 활동했는가?
    입단 6년 만에 나왔다. 98년에 장소현 작, 최용훈 연출의 <김치국씨 환장하다>를 총기획 했다. 공연이 대박이 나 기분이 좋았지만 극단 사정상 기획 일을 하다 보니 뭔가 마음이 허전하더라. 한편 "우리극단이 최고다"라는 암묵적인 분위기가 극단 내부에 있었는데 조금씩 '연우가 다는 아닐거다' 라는 생각도 들더라. 조금씩 연우무대 밖의 다른 연극성에 목마르기도 했다. 그래서 나오게 됐는데 이후에도 종종 작업을 함께 했다.
배우 정인겸
배우 정인겸
  • 화술? 내 몸에 맞는 말!

    연우무대를 떠난 후에는 어떤 연극들과 만났는가?
    김철리 선생을 만나게 됐다. 그 분이 한참 언어에 천착하고 계실 때였는데 서너 작품 함께 했다. 무대 위에서 자연스러운 말투를 쓰는 것이 대세가 되기 시작할 때였는데 그게 전부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에 공감했었다. 번역극의 언어도 아니고 안방극의 언어도 아닌, 뭔가 다른 연극의 언어가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실험을 많이 했다. 재밌게 잘 만났다.

    언어와 화술에 대해서 애정이 많은 배우로 알려져 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99년에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Royal Shakespeare Company 의 보이스 디렉터인 시실리 베리Cicely Berry 선생이 한국에 오신 적이 있었다. 그분이 지도하는 발성 워크숍에 참여했는데 잊지 못할 공부가 됐다. "너의 소리를 근육으로 생각해라, 공기가 아니라 살아있는 근육으로 만들어라"는 말씀을 잊을 수가 없다. 이후로 '어떻게 하면 화술을 정복할 수 있을까'가 나의 연극적 고민이자 과제가 되었다.

    화술에 대한 고민과 노력은 어떤 작업으로 연결 되었는가?
    오태영 작, 김영환 연출의 작품 <호텔 피닉스에서 잠들고 싶다>가 떠오른다. 대사의 80퍼센트가 나 혼자 하는 말이었다. 그 작품하면서 많이 배웠다. 김영환 연출가, 돌아가신 지 2-3년 됐는데 기억에 많이 남는 존경스러운 분이다. 50대 기성 연출가답지 않게 계속 배우를 기다려주셨다. 3,4년간 쌓아둔 화술에 대한 테크닉을 다 모아서 보여줬다고 생각될 만큼 만족스러운 작업이었다. 그동안 여러 워크숍을 거치면서 다양한 화술을 쌓아온 여러 선생님들을 만나면서 자신감이 넘쳤었다. 그런데 (웃음) 당시에는 정말 잘 했다고 생각했었는데 몇 년이 지나고 나니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더라. 내가 테크닉으로만 가고 있다는 게 창피했다. 채웠다면 버릴 줄도 알아야 하는 거다.

    지금의 정인겸에게 좋은 화술은 무엇인가?
    관객들에게 정확히 들리게 할 수 있고, 말에 자기 개성을 담을 수 있고, 자기 호흡을 스스로 조절만 할 수 있다면 그 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정답이 없다고 생각한다. 말은 자기 몸과 친해야 한다. 자기 몸과 가까워야 한다. <더 포토>를 함께한 후배 박지환을 보면서 많이 느꼈다. 자기 마음대로 막하는 그를 보면서 그의 개성이 훌륭하게 느껴졌다. '맞아, 말은 저렇게 하면 되는 거야.'
  • 배우 정인겸
  • 단 하나의 유일한 선물

    극단 이루 단원으로 알고 있는데?
    2006년으로 기억한다. 손기호 대표가 연우무대 1년 후배인데 극단을 창단한다고 하더라. 선배가 한명 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받고 입단하게 됐다.
    그간 주로 낭독공연에 참여했고 <복사꽃 지면 송화날리고>에 출연한 게 본격적인 첫 작업이었다. 고선웅 작/연출의 <인어도시> 처럼 오히려 다른 팀에서 작업을 많이 해오고 있다.
배우 정인겸
  • 차기작으로 준비하고 있는 작품은?
    없다. 있었으면 좋겠다. (웃음) 요즘에 좀 힘들다. 나름 최선을 다해 연극을 해왔는데 캐스팅 제안도 잘 안 들어온다. 우울증에 빠져 지내는 시간도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견딘다.

    어떤 역할을 해보고 싶은가?
    젊었을 때야, <갈매기>의 뜨레쁠레프도 해보고 싶었고 햄릿도 해보고 싶었지. (웃음) 나이가 조금 더 들면 <리처드3세> <오셀로>의 이아고에도 도전하고 싶다. 햄릿의 꿈은 아직도 버리지 않았다. 잘할 자신 있는데 (웃음)
    이상한 사람들, 오타쿠, 편집증적인 사람들, 자기 자신의 자학을 가지고 노는 사람들, 변태, 일반적이지 않은 인물들을 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다. 자신의 욕망과 현실이 괴리된 그런 역할, 안과 밖이 분리된 인물들

    어떤 배우로 남고 싶은가?

    훗날 후배들에게 "좀 특이했지만 그런 배우도 있었구나" 하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결혼 생각은 없는가?

    하고 싶다. 그런데 연애를 해본 지가 10년이 넘으니까, 이제 연애도 잘 안 된다. 마흔이 넘으니 여자들이 남자로 안 본다. 아저씨로 본다. 아, 연애보다도 부모님께 효도 한번 하고 싶은 게 더 급한 소망이다.

    가장 행복할 때가 언제인가?
    밤에 문득 깨어나 옥상에 앉아서 담배 하나 피우면서 야경을 내려다 볼 때 '아, 내가 살고 있구나' 느낀다.

    정인겸에게 연극은 무엇인가?

    간단하다. 태어나 지금까지 "너 잘 한다"는 소리를 듣게 해준 유일한 선물.
    연극은
    연극을 사랑한다.


  • 배우 정인겸
  • 정인겸 (배우)
    중앙대학교 철학과 졸업
    1994~1999년 연우무대에서 배우로 활동
    그 후 지금까지 대학로에서 배우로 활동 중

    주요 작품
    - 연극 <인어도시><복사꽃지면송화날리고><맹목><날보러와요>
    - 연극 <칠수와만수><관객모독><일출><손님><보이첵>
    - 연극 <슬픔의노래><유리동물원><문중록><살색안개>
    - 연극 <호텔 피닉스에서 잠들고 싶다><사랑해줘 제발>

    - 영화 <집행><처음 만난 사람들>

태그 정인겸, 극단이루, 더포토, 복사꽃지면송화날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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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성

김은성 극작가
극단 달나라동백꽃 대표
주요작품 <로풍찬유랑극장><뻘><목란언니><연변엄마><순우삼촌><시동라사>외 다수
본지 편집위원.
웹진 12호   2012-11-15   덧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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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가까이
코뿔소 이야기를 읽는데 울컥한 것이...코끝이 찡해오네요. 잘 읽었습니다.

2012-11-15댓글쓰기 댓글삭제

BR
흰코뿔소라니!!!! 정인겸의 리처드 3세.....보고 싶어지네요!

2012-11-15댓글쓰기 댓글삭제

sora
정인겸 배우님, 인간적인 매력이 느껴지네요. 다음 작품 기대할게요.

2012-11-15댓글쓰기 댓글삭제

기쁨의샘
무대위에서 정인겸 배우님을 자주 보고싶습니다 . 언제나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마다 잘되시기를 빕니다.

2012-11-16댓글쓰기 댓글삭제

성북동 박
성북동에 살아요. 다음 작품에 찾아가고 싶네요. 그 옥탑방에 놀러가고 싶기도 하구요.

2012-11-17댓글쓰기 댓글삭제

권수연
연극만을 바라보고 사랑하는 그 열정이 정말 존경스럽스럽니다 그리고 꼭 공연보러가고싶어요^^

2012-11-18댓글쓰기 댓글삭제

권성현
멋져요..... 좋은 글 감사함니다! 그리고 상남자로 연애하시기를!

2012-11-19댓글쓰기 댓글삭제

삼월이
문학집배원에 가서 문장배달 보시면 정인겸님의 낭송하시는 목소리를 감상하실수 있답니다^^건강하셔요 정인겸님!!

2012-12-17댓글쓰기 댓글삭제

creamblue
인터뷰가 이렇게 가슴을 벅차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 신기하네요..지금까지는 몰랐던 분인데, 다음 연극 꼭 보러 갈게요! 그리구 제가 지금까지 본 남자 중에 제일 멋지세요! 누구라도 사랑에 빠질거에요! 다음 작품에서 꼭 보고 싶습니다!

2012-12-17댓글쓰기 댓글삭제


2012-12-22댓글쓰기 댓글삭제

테디b
아랫분도 저랑 비슷하게 느끼셨네요....농담에서 보고 연기 좋았는데.....물탱크정류장 보고싶어졌어요 !!

2013-06-28댓글쓰기 댓글삭제

변여사
내일 친구랑 '살'이라는 연극을 보러 남산예술센터에 가는데요, 지난번에 본 '물탱크정류장'의 박사님 역할을 하신 정인겸 배우님이 생각나서 기사 보러왔습니다. :) 다들 정말 연기력이 끝내주셨지만 특히 정인겸 배우님이 자꾸 몇달이 지나도 기억이 나더라구요...연극 보면서 '어떻게 정확하고 깔끔하게 대사를 빨리 할수있지?' 라며 놀랬었던 기억이 납니다^^

2013-11-30댓글쓰기 댓글삭제

^^
암살에서 인상깊은 연기 잘 봤습니다

2015-08-24댓글쓰기 댓글삭제

암살씬스틸러
영화 암살에서 인상깊어서 찾아보다 이글을 읽게 됐네요.
다리를 저는게 연기가 아니었다니.. 말더듬을 극복한 이야기는 찡하네요.
앞으로 영화에서 자주뵐수 있기를 바랍니다.

2015-08-27댓글쓰기 댓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