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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광호? 향숙이? 아니! 그의 이름은 박노식
[김은성의 연극데이트] 배우 박노식

김은성_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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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정인겸
  • 꽃을 사랑해 원예가가 되고 싶었던 사팔뜨기 소년의 40년 삶은 그야말로 스펙터클했다. 공장 작업반장에서 극단 막내로, 리어카 잡화상에서 <살인의 추억>의 백광호로, 갑자기 뜬 놈에서 다시 공사판 일꾼으로, 이제는 일 년에 네 편, 평생 백 편의 연극에 출연하고 싶다는 영원한 소년, 박노식을 만났다.
  • 오랜만에 돌아온 무대, 평생 백 편은 하고 싶다.



연극<햄릿6>
  • 요즘 어떻게 지내는가?
    <햄릿6> 출연 후에 지금은 제작비 2, 3천(만원) 들어가는 저예산 단편영화 촬영 중이다. 만화작가로 등장한다. 주인공이다. 인터뷰 후에 내일 찍을 장면을 위한 팀 미팅을 하러 간다.

    <유령소나타>와 <햄릿6>얼마 만에 연극 출연이었나?
    2년 만이다.<유령소나타>는 내가 몸담고 있는 극단 골목길 작품이었고,<햄릿6>는 꼭 한번 작업하고 싶었던 기국서 선생님을 만났는데 너무 좋았다. 기국서, 60이 넘었는데 청년이다. 우리보다 더 열정적인 청년이다. 반성 많이 했다. 나뿐만 아니라 출연진 모두가 그랬다. 알게 모르게 배우들이 더 에너지를 모으게 됐다.

    오랜만에 무대에 서니까 어땠나?
    떨렸다. 좋았다. 그간 너무 하고 싶었다. 늘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불러주는 팀이 없더라. 내년에는 연극 네 편 하는 게 목표다. 앞으로 100 작품 하고 싶다. 그게 꿈이다.

    왜 불러주는 팀이 없었을까?
    글쎄… 연극에서는 잘 못 놀았다. 내속에 갇혀있었다. 이제 좀 풀려 난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원래 내가 내성적인 편인데 영화 <살인의 추억> 끝나고 갑자기 유명해졌다. 급작스럽게 환경도 바뀌고 생활도 바뀌고… 마냥 즐겁기도 했지만 혼란스러웠다. 무대가 무서워지고, 길거리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워지더라. 그것 땜에 상당히 어려웠다. 공황장애 비슷한 게 오더라. 이명증에도 시달렸다. 무대에 서면 조명 돌아가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리는 거다. 조금이라도 시끄러운 곳에 가면 어지러웠다. 지금은 없어졌다. 박근형 선배님을 만나고 골목길 단원이 되면서 많이 좋아졌다.

    골목길의 무엇이 박노식을 힘나게 하던가?
    박근형 선배님을 처음 본 순간,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구나 싶었다. 굉장히 새로운 사람이었다. 뭐, 특별할 건 없는데…. 겸손하고 그냥 잘 놀고 서민적이고 아저씨 같고 마냥 좋아지더라. <살인의 추억>끝나고 박해일이랑 같이 골목길에 놀러갔는데, 단원 하라고 하시더라. 고마웠고, 그것만으로 힘이 나더라.

    사팔뜨기 꽃밭


    고향은 어디인가?
    전라남도 강진에서 태어났다. 엄청 개구쟁이였다. 서리 잘하기로 유명했다. 이렇게 조그만 애가 그때는 얼마나 더 작았겠는가? 바짝 엎드리면 보이지도 않지 뭐. (웃음) 자두, 딸기, 수박, 참외, 엄청 쓸어갔다. 악명이 높았다. 서리가 아니라 약탈 수준이었다. 학교에는 별로 재미를 못 붙였다. 공부를 좋아하지 않았다. 조용한 시골마을에 교회가 하나 있었다. 주일날에는 맛있는 거 먹으러 교회 가서 놀았다.

    교회에서 연극과 처음 만났을 것 같은데?
    맞다. 초등학교 다니면서 여름 성경학교, 문학의 밤, 크리스마스 행사를 통해서 연극을 처음 했다. 작가, 연출, 주연을 도맡아 했는데 남들 앞에 서는 게 재밌더라. 중2 때, 사춘기를 겪으며 사람들 앞에 서는 게 싫어지면서 교회를 안 다녔는데 이후에도 교회에서 연락이 계속 온 거다. 연극해달라고. (웃음) 연극하면 박수쳐주는 그 느낌이 좋았다.

    연극에 대한 첫 기억이 좋게 남아있는 것 같다. 중고교 시절에도 연극과의 인연을 이어갔는가?
    아니다. 꽃과 함께 자랐다. 실업계 생명과학고등학교에 다녔다. 뭐, 예전에는 농고라고 불렀지. 원예를 전공했다. 꽃을 전문적으로 키우는 과였는데 여름의 국화전시회가 특히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친구들이랑 우리나라 지도를 꽃으로 만들었었다. 항상 꽃과 살았다. 당시에 나는 커서 꽃을 키우는 원예가가 되고 싶었다. 그때 나는 눈이 사시였다. 다른 꿈은 전혀 꿀 수 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사팔뜨기였다.

    전혀 몰랐던 사실이다. 성장사가 순탄치 않았을 것 같은데?
    성격이 원만했겠나? 반항적이었지. 사람들을 피하게 되고, 놀리는 친구들과 싸우게 되고…. 정학, 가출, 서울로 무작정 상경, 다시 귀가… 큰 사건 사고가 이어졌지. (웃음) 내가 꽃을 안 키웠으면 더욱 이상해졌을 거다. 아주 나쁜 놈이 됐을 지도 모른다. 꽃을 키우면서도…. 내가 지금은 이렇게 가난하고 못났지만… 나는 원양어선의 선장이 되고 싶어, 나는 넓은 바다를 가지고 싶어, 그리고 나는… 연기자가 되고 싶어…. 그런 꿈이 있었다. 그렇지만 일단 꽃을 키우는 원예가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 바로 꽃 농사를 시작했는가?
    꽃 농사를 하려고 해도 돈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졸업하자마자 바로 경기도 부천으로 상경했다. 자전거 대리점에서 수리공으로 6개월 일하다가 꽤 큰 공장에 취직해 돈을 벌었다. 공장 기숙사에 지내면서 오전 여덟시부터 새벽 두시까지 특근을 자청해서 열심히 일했다. 그렇게 2, 3년을 보냈다.

    그 정도면 꽃을 재배할 수 있는 돈은 벌었을 것 같은데, 고향으로 내려갔는가?
    아니다. 기적이 일어났다. 하루는 운동을 하다가 팔을 다쳐서 정형외과에 갔는데 의사가 "당신은 팔이 문제가 아니고 눈이 문제다" 하는 거다. 나는 "눈을 못 고친다고 알고 있다. 평생 못 고치는 거라고 어려서부터 알고 살았다."고 답했는데, 의사가 "아니다, 다시 가봐라" 하면서 명함 한 장을 주는 거다. 서울 큰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았는데 "고칠 수 있다!" 고 하는 게 아닌가? 대신 각서를 쓰라고 하더라. 수술을 하려면 전신마취를 해야 하는데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위험하다. 그래도 하겠느냐? 고민하고 말 것도 없었다. 수술을 받았다.

    수술을 마친 후, 거울을 처음 봤을 때 기분이 어땠는가?
    말로는 표현하지 못한다. 그 감동을. 말로 어떻게 설명해?!
배우 정인겸
  • 꽃보다 배우!


    거울을 보니, 고향의 꽃보다 더 간절한 꿈이 되살아나던가?
    맞다. 한 극단의 배우모집 광고를 보고 바로 전화했다. 그렇게 해서 부천에 있는 극단 믈뫼에 들어가게 됐다. 공장 일이 끝나면 바로 극단 소극장으로 갔다. 허름한 지하극장에서 이불 한 채, 전기밥솥 하나 놓고 살았다. 자다가 눈을 뜨면 쥐가 왔다 갔다 하는 곳이었지만 스물넷의 극단 막내인 나는 정말 행복했다.

    극단 믈뫼에서 대학로로는 어떻게 오게 된 건가?
    극단 생활을 하던 중 영화오디션을 보게 됐다. 일본에서 개봉한 한일합작 영화 <사랑의 묵시록>이라는 작품이었다. 처음에는 엑스트라로 참여했는데 전라도 사투리를 잘 한다는 이유로 우연찮게 긴 독백이 있는 배역을 맡게 된 거다. '만물'이라는 인물이었는데 얼마나 기쁘고 벅차던지…. 정말 좋았다. (박노식은 지그시 눈을 감고 만물의 독백을 생생하게 읊어갔다.) 그런데 당시 촬영장에서 윤주상 선생님을 뵙게 되었다. "선생님, 저 앞으로 연기를 했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선생님 말씀이 "대학로에 가라, 대학로에서 5년만 버텨라."
  • 그래서 대학로로 갔는가?
    그렇다. 극단 성좌에 들어갔다. 성좌에 8년을 있었다. 출연작은… 딱 한 작품 밖에 출연을 못했지만, 끝까지 참을 수 있는 오기를 길러준 극단이다. (한동안 침묵하던 박노식은 흐느끼기 시작했다. 오래도록 어깨를 들썩였다.)

    괜찮은가?
  • (눈물의 의미를 잘은 모르겠지만 박노식이 걸어온 지난 시간에 대한 감동을 느꼈다. 나도 코끝이 시큰해졌다.)
    부끄럽다. 미안하다. 밤에 포스터 붙이러 다녔던 기억이 났다. 부천 공장에 출퇴근 해가며 정신없이 극단생활을 했던 8년…. 청춘을 그렇게 보냈다. 극단을 나오고 보니 서른이 되어 있었다.

    서른 즈음의 박노식은 어떻게 살았는가?
    대학로에서 밤에 리어카 노점상을 했다. 반지, 라이터, 핸드백, 인형 등을 팔았다. 대학로 밤거리의 수많은 리어카들이 날이 밝으면 다 어디로 사라지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청아소극장 근처에 있는 야구연습장 주차장 밑 지하창고에 가면 볼 수 있을 거다. (웃음) 밤에 나오는 노점상 리어카들은 다 거기에 보관되어 있다. 아직 내 것도 있으려나 모르겠다. (웃음) 밤에는 그렇게 장사를 하고 낮에는 수많은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그러다가 2002년에 <살인의 추억>을 만나게 된 거다. 벌써 10년이 됐다.

    백광호가 남긴 명암

  • <살인의 추억>에서 박노식이 연기한 백광호는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백광호 역할 최종 오디션이 기억난다. 동대문에서 직접 추리닝과 검정고무신을 사서 현장 오디션을 보러 갔다. 그 독특한 말투도 그때 준비했던 거다. 운이 좋았는지, 인연이 되려고 그랬는지 오디션을 잘 통과했다. 나는 정말 그렇게 많이 나오는 배역인 줄도 몰랐다. 촬영 내내 촬영장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그래서 작품이 잘 나왔던 것 같다. 아직까지 그런 팀을 만나지 못했다.

    당시 정말 대단했다. 지금으로 치면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의 스타였다. 무명배우에서 한순간에 주목받는 스타가 됐는데?
    와! 붕 날랐다! 와, 해냈다! 싶더라. 이제 내가 하고 싶은 역할 많이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정말 기뻤다. 작품 제안도 많이 들어오더라. 연락 한 번 없던 선후배들에게 전화도 많이 오고, 행복했다. 그런데… 엄청나게 힘든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던 거다.

    뭐가 힘들었는가?
    사람. 내가 떠봐서 안다. 갑자기 뜨면 겉멋이 조금 들어가긴 하더라. 나 같은 촌놈이 오죽했겠는가? 그런데 정말 바빠지기도 하더라. 여러 사람을 많이 만나게 되고, 정신없는 시간들이 흘러가고…. 그런데 그걸 건방져졌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아지더라. 내 속사정을 잘 모르면서 연극하던 주위동료들이 욕하고 수군거리고. "아 저 새끼 저거 떴다고 건방져졌다" "저 새끼 떴다고 선글라스 쓰고 다니네." 사실 나는 눈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에 쓰고 다니는 거였는데. 괴로웠다.

    당시에 돈은 좀 벌었는가?
    사실 돈도 많이 못 벌었다. 캐스팅 제안도 많았지만 예정된 영화도 계속 엎어지고 <살인의 추억> 이후로 일이 계속 꼬였다. 당시 출연료로 버는 내 평균 연봉이 얼마인 줄 아는가? 3백(만원)정도다. 그 수입에는 아직 변화가 없다.

    공사장과 놀이터


    성공과 영광 뒤에 그런 상처가 있었는지 몰랐다. 지금은 극복이 좀 됐는가?
    노가다를 뛰면서 다시 나의 안정을 찾았다. 남양주 마석에 있는 고속도로 공사현장이었다. 동료 일꾼들이 "영화배우가 여기 와서 이러고 있냐?" 놀리기도 했지만 마음이 편하더라. 그 이후로도 직업소개소를 통해서 노동을 많이 했다. 목포에 가서 두 달 일하고 왔고, 올해 6월까지 꾸준히 했다. 일하면서, 땀을 흘리면서 사람들에게 지치고 상처받았던 마음이 치유되는 것을 느꼈다. 그런 시간을 보내고 <유령소나타>와 <햄릿6>의 무대로 돌아온 거다.

    내년 계획은 어떻게 잡았나?
    촬영 중인 단편영화가 끝나면 장편 상업영화 <명량 회오리바다>에 출연한다. 최민식 선배가 이순신 장군으로 출연하는데 나도 장군으로 출연한다.
배우 정인겸
  • 연극계획은?
    아직 없다. 홍보하고 있다. 저 좀 써달라고.

    꼭 한번 만나고 싶은 연출가가 있다면?
    극단 작은신화 식구들, 차이무 식구들과도 만나고 싶다. 여러 연출가들과 만나고 싶다.

    눈 여겨 보게 되는 배우가 있다면?
    골목길 후배인 김주완과 김주헌. 정말 열심히 한다. 너무 사랑스러운 친구들이다. 치열하게 한다.

    박노식에게 연기란?
    내 삶. 그거다. 연기를 하기 위해서… 나는 다른 일로 돈을 벌고 산다.

    박노식에게 연극이란?
    놀이터. 내가 살아있는 놀이터.
  • 박노식 (배우)
    주요 작품
    연극
    <햄릿6:삼양동 국화 옆에서><유령소나타><빈 방 있습니까>
    <선착장에서> <소심한 가족><스페이스치킨 오페라><내 심장을 쏴라>
    <침팬지 인간보고서>외 다수
    영화
    <경혼유희><물고기><최종병기 활><째째한 로맨스>
    <죽어도 해피엔딩><나는 행복합니다><작은 연못><역전의 명수>
    <박하사탕><괴물><살인의 추억>외 다수

태그 박노식, 햄릿6, 유령소나타, 극단골목길, 살인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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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성

김은성 극작가
극단 달나라동백꽃 대표
주요작품 <로풍찬유랑극장><뻘><목란언니><연변엄마><순우삼촌><시동라사>외 다수
본지 편집위원.
웹진 14호   2012-12-20   덧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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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송
좋은 사람들, 따듯한 글 늘 잘 보고 있습니다

2012-12-20댓글쓰기 댓글삭제

구독자
인터뷰 잘 읽고 갑니다. 앞으로도 좋은 인터뷰 많이 해주세요.

2012-12-21댓글쓰기 댓글삭제

임선숙
글 잘 읽고 갑니다.^^

2012-12-21댓글쓰기 댓글삭제

미리미리
내년에 네편의 연극에서 만나기를 기대합니다. *^^*

2012-12-21댓글쓰기 댓글삭제

하나하나
감동적이네요 좋은 날들이 이어지길 바랍니다

2013-01-13댓글쓰기 댓글삭제


2015-07-29댓글쓰기 댓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