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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관을 쓴 히끼꼬모리, 두 얼굴의 페르소나
[김은성의 연극데이트] 배우 박완규

김은성_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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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다섯에 대학로 무대에서 처음 맡았던 역은 '거지'였다.

대사라곤 "하나만" 딱 한 마디뿐이던 <불티나>의 무명 거지는 10년 후 <뉴욕 안티고네>에서 말 많은 폴란드 노숙자로 환생해 원 없이 한풀이를 한다. 거지로 출발, 노숙자로 방점을 찍은 그는 스리슬쩍 말레이시아의 일본인 히끼꼬모리로 변신한다. <잠 못드는 밤은 없다>며 풍선껌만 자근자근 씹어대는가 싶더니 쥐도 새도 모르게 대권찬탈에 성공, <안티고네>와의 침을 뿜는 설전을 거치며 권력투쟁의 화신으로 거듭난다. 연극계는 그의 열정적인 둔갑을 주목했고 관객들은 그의 새로운 가면에 환호했다. 왕관을 쓴 히끼꼬모리, 박완규를 만나보자.

  • 백수광부 징계 1호

    -인터뷰 약속시간에 30분이나 늦게 나왔다
    미안. 그래도 미리 연락했잖은가? 예전에 비하면 많이 사람 된 거다. (헤헤)
    마임니스트 고재경 형님이랑 삼선교 아래 성북천에서 아침까지 마셨다.
    감기 때문에 일주일째 참고 있었는데 어제 제대로 걸렸다.
    네시 연습만 생각하고 한시에 인터뷰가 잡혀 있는지 깜박 놓치고 있었다.
    (전화가 걸려오자 통화를 하고 웃더니) 어제 술을 재경이 형이 산다고 해서 마셨는데 형님 체크카드에 문제가 생겨 1차, 2차, 편의점까지 모두 내가 샀다. 형님이 기어코 영수증을 받아 가시더니 그 돈을 입금했다는 전화다. 9만 40원. (미소)
    같이 마신 극단 후배 상용이는 지금도 뻗어있다. 그 녀석 별명이 광어다, 광어. (낄낄낄)
    술 마신 다음 날이면 수족관 바닥에 누워있는 광어처럼 방바닥에 붙어서 꼼짝을 안한다.
    녀석을 보고 있으면 옛날 내 생각 많이 난다. 잘 챙겨주고 싶다.

    -옛날에는 어땠는데?
    이십대에는 술을 대책 없이 많이 마셨다. 어릴 때부터 골목대장, 학생회장, 그러니까 항상 앞장서서 거느리고 다녔던 스타일인데 연극을 시작하면서 스트레스가 심했다. 극단 막내생활도 성격이랑 안 맞지, 선배들보다 연기도 훨씬 못하지, 그래도 나름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싸가지 없다고 계속 혼나지, 재미없고 힘들었다. 그래서 술만 주구장창 마셨다. 그러다가 그 일이 터진 거다.

    -어떤 징계를 받았나?
    이성열 극단대표님이 그러시더라. "1년 동안 대학로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마. 불이 나도 오지 말고 홍수가 나도 오지 마" (크크) 지난 일이니까 웃으며 얘기한다. 아무튼 그 사건 이후로 정신을 차린 거 같다. 지금은 지각하는 거 굉장히 조심한다. (헤헤)
병사이야기
병사이야기
  • 왕과 놀던 소년, 거지가 되다.

    -이미지나 해왔던 역할이나 서울내기는 아닌 것 같다. 고향은 어디인가?
    논산훈련소가 있는 연무대다. 농부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우리집 뒷산이 후백제 견훤의 왕릉이다. 내 놀이터였다. 눈 오면 미끄럼 타고 놀았다.
    어려서부터 왕이랑 같이 논거지. (히히)
    고향은 내가 연극을 하면서 목이 마를 때마다 두고두고 퍼먹는 우물 같은 곳으로 남아있다.
    그야말로 시골생활을 겪으면서 자랐다. 참외서리, 막걸리 받아오기, 막걸리 받아오는 길에 홀짝거리다가 취했던 경험, 넓디넓은 논 한복판에서 참새 쫓는다고 소리 지르던 일...... 그런 유년의 기억들이 어떤 역할을 맡았을 때 정서적으로 큰 도움이 된다.
    중학교부터 대학까지는 대전에서 보냈다. 시골에서 유년기를 보냈고 대도시에서 사춘기를 지나 성장한 셈이다. 이 과정에서 겪은 문화적 충격이랄까? 그 경험 역시 폭넓은 인물을 만들어 가는데 큰 보탬이 된다.

    -연극과의 인연은 언제부터?
    공익근무를 마치자마자 2000년 말에 서울로 무작정 올라왔다.
    띵까띵까 놀다가 2001년 2월에 극단 백수광부에 들어갔다.
    연극은 성당 다니면서 성극을 통해 처음 경험했었다. 그러다가 대학 다닐 때 영어 동아리 활동을 했다. 동아리 페스티벌에서 영어연극으로 <미녀와 야수>를 했는데 가면을 쓰고 야수역할을 했다. 마지막에 가면 벗는 장면이 있는데 관객들이 "다시 가면 써" 하는 거다. (피식)
    연극?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렇게 오래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백수광부도 그냥 놀러 들어간 거였다. 처음에는 재미없었다. 왜? 내가 너무 못하니까.
    정말 잘 해보고 싶다는 오기로 지금까지 버틴 거 같다.

    -데뷔작과 그 이후의 활동은?
    김태웅 작·연출의 <불티나>였다. 대사가 딱 "하나만" 한 마디만 있는 거지역할이었다.
    그리고 십년 가까이 주로 양아치, 잡범, 사기꾼 뭐 이런 캐릭터들만 줄곧 했다.
    스스로 만족스러운 연기는 그오바츠키 작, 이성열 연출의 <뉴욕 안티고네>에서 처음 펼쳤다고 생각한다. 세장짜리 긴 대사가 있는 폴란드 출신의 노숙자 역할을 맡았었다. 벼룩처럼 살아가는 인생을 연기하면서 처음으로 자신감을 맛볼 수 있었다. 그 작품은 꼭 한번 다시 해보고 싶다. 이해성 작·연출의 <고래>도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존경하던 선배들이 잘했다고 인정해주기 시작한 작품이다. 박근형 연출가가 같이 놀자고 불러주더라. 그래서 <잠 못드는 밤은 없다>를 하게 된 거고 그게 끝나자마자 김승철 연출의 <안티고네>도 하게 됐던 거다. 한 달 사이에 히끼꼬모리와 왕을 오가는 재밌는 경험이었다. 극과 극을 넘나들 수 있었기에 배우로서 굉장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 소문만 바람둥이

    -서른여섯 연극하는 남자로서의 삶, 어떤가? 먹고 살만은 한가?
    흠... 가난하지만 혼자 먹고 살기에는 괜찮다.
    집에다 돈을 드리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집에서 돈을 받아쓰지는 않는다. 다행이다.
    헤프게 살지 않으니까 버틸 수 있다.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 형 집에서 얹혀살았다. 형수가 임신을 해서 쫓겨났는데 (크크) 그때 전세자금으로 지원받은 돈이 1600이었다. 그 무렵 극단에서 징계를 먹었다. 쉬면서 카페에서 열심히 일했다. 타로점을 봐주고 마술까지 배워 보여줬다. 손님들이 늘어나니 사장이 월급을 후하게 주더라. 그때 돈을 좀 모았다. 일 년 만에 전세 4000으로 옮겼다. 그때가 10년 전인데 (흐흐) 지금은 거기서 200까먹고 3800에 월세 10만원씩 내고 산다. (큭큭)

    -애인은 있는가?
    없어. (정색하며) 대학로에 바람둥이로 이상하게 소문이 났는데, 미치겠어.
    이유를 모르겠어. 단지 아는 사람이 많을 뿐인데.
    후배들이 "선배님, 여자 좀 소개시켜 주세요." 그래. 그러면 내가 이러지 "여자 많은 거, 그거 다 니들 같은 애들이야."
    사실 진지한 만남을 내가 좀 꺼린다. 왜냐? 귀찮다.

    -귀찮다? 외롭지 않은가?
    외롭지! 근데 겁난다.
    마음에 드는 여자가 생겨도 혼자 마음에 두다 마는 적이 많다.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못한다. 그냥 귀찮다는 생각이 든다.
    친구들은 정말 좋아하는 여자를 아직 못 만나서 그런다고도 하더라.
    결혼할 마음도 지금은 없다.
    정서적인 외로움? 연극하면서 다 치유된다.
    (인터뷰 중에 우연히 그의 선배가 어여쁜 여친과 함께 옆 테이블에 앉자, 내내 틈을 엿보던 그는 선배에게 나직하게 말했다. "형, 나도 여자친구 좀 해줘." 나는 보았다. 그의 큰 눈이 부러움으로 촉촉하게 빛나는 것을.)
  • 라이벌은 오현경

    -작년에 주요 연극상의 신인연기상을 휩쓸었다. 어떤가?
    상은 지나간 상일뿐이다.
    지금은 연기를 더 잘하고 싶은데 좋은 작품, 좋은 역할에 대한 갈망이 충족되지 않는다.
    재작년, 작년에 작품을 정말 많이 했다. <봄날>, <안티고네>, <잠 못드는 밤은 없다>
    내가 이야기 하고 싶은, 내 스스로 좋은 작품이라고 판단한 작품들에 출연을 해서 좋았다.
    그 이후에 더 재밌게 더 새롭게 할 수 있는 작품을 못 만났다.
    작년 후반부터 올해는 계속 했던 공연들의 앵콜공연이었다. 아쉽다.

    -어떤 작품, 어떤 역할과 만나고 싶은가?
    쎈 거! 쎈 작품!
    오이디푸스를 해보고 싶다. 그 인물을 틀어버리고 싶다. 오이디푸스를 개새끼로 만들고 싶다. 나는 오이디푸스가 우유부단한 쓰레기 같은 인물로 느껴진다. 오이디푸스를 그냥 우리 인간군상으로 보여주고 싶다. 오이디푸스는 아무 것도 못하고 어떡하지? 생각만 하는 인물이다. 사실 우리가 그냥 그러고 사는 거 아닌가? 고뇌하지만 답을 못 내리는 삶. 고민만 하지 행동은 못하고 술 먹고 떠들기만 하는 우리들 모습과 비슷하지 않은가?
    오이디푸스를 우유부단하고 찌질한 인물로 만들고 싶다. 그는 절대 멋있는 인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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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은 연출가는?
그동안 거의 이성열, 박근형 두 분 하고만 해왔다고 보면 된다.
한태숙 선생님을 꼭 한번 만나고 싶다. 김광보, 성기웅 연출도 만나고 싶다.
아니다. 사실 모든 연출가를 한번 씩 만나고 싶다.
박근형 연출님과는 계속 만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나는 나를 좀 편하게 놔주는 연출이 좋은데 그래서 박근형이랑 잘 맞는다.
박근형은 너무 놔둔다 싶을 정도로 놔준다. 공연이 내일인데 대본이 안 나오는 경우도 있으니까. 작품 할 때 한 마디도 없었다. 터치를 안 한다. 그러니까 내가 혼자 대본을 보며 고민하는 시간이 많아진다. 이 인물은 뭐지? 하는 생각을 계속 하게 되면서 그 인물이랑 친해지게 된다. 그게 무대 위에서 굉장한 힘이 된다.
"여기서 이렇게 해!" 하는 연출보다는 그렇게 그냥 놔두는 연출이 좋다.
내 스타일은 그렇다.

-라이벌 배우는 누구?
오현경! (하하하) 이호재! (하하하) 농담이 아니다.
그들처럼 되고 싶다. 끊임없이 다음 작품을 고를 수 있는 배우로 남고 싶다.
그러려면 담배를 끊어야 하는데. 술도 줄여야 하는데.
오현경 선생님이 얼마 전에 <봄날> 하시면서 그러시더라.
"너, 술 먹지 마! 내가 아는 사람들 다 너처럼 술 먹다 죽었어!"

-차기작은?
6월 1일부터 10일까지 아르코대극장에서 공연되는 <과부들> 연습 중이다.
9월에는 설치극장 정미소에서 이강백 작, 구태환 연출 <북어대가리>에 출연한다.
<과부들>은 <추적>, <죽음과 소녀>로 잘 알려진 아리엘 도르프만의 명작으로 국내초연이다.
작품이 너무 좋으니까 이성열 연출가가 별로 할 게 없어서 스트레스가 많은 거 같다. (히히히) 27명이 출연하는 대작이다. 기대해도 좋다. 나는 숨기고 싶은 과거의 잘못을 덮고자 하는 인물을 연습하고 있다. 뭔가 많이 보여주고 싶은데 연출이 자꾸 힘을 죽이라고 해서 어제는 갑자기 재미가 없어지더라. 그래서 들입다 술을 퍼마신 거다.
이제 연습할 시간이다. 슬슬 술이 깬다. 다시 힘이 난다.

 

  • 공연 포스터
  • 박완규 (배우 / 극단 백수광부 소속)
    주 요 작 품 l <잠 못 드는 밤은 없다><안티고네><봄날><보이체크>
    <침입><아침드라마><고래>
    <갈매기><뉴욕 안티고네> 外
    주요수상경력 l 제47회 동아연극상 유인촌 신인연기상
    2010 제 15회 히서연극상 기대되는 연극인상
    2010 제 3회 대한민국연극대상 신인상

 

태그 박완규, 안티고네, 극단 백수광부, 히끼꼬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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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성

김은성 극작가
극단 달나라동백꽃 대표
주요작품 <로풍찬유랑극장><뻘><목란언니><연변엄마><순우삼촌><시동라사>외 다수
본지 편집위원.
창간준비 3호   2012-05-17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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