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유명한 영죽무대?
그렇다. 연극반에 들어가서 처음 음향오퍼로 참여한 작품이 <보이체크>였는데, 지금은 배우가 된 정인겸 형이 연출을 했었고, 지금은 연출가가 된 고선웅 형이 배우를 했었다. 아, 선웅이 형이 연기한 보이체크 정말 좋았다.
2학년 때 <무용수>라는 작품에는 배우로 출연했는데 정말 지독한 연출을 만났다. 그가 지금 우리 극단 고래 대표 이해성이다.
연극에 미쳐 살던 형들을 만난 것도 사건이었지만, 극장이 참 좋았다. 극장에 앉아있는 걸 좋아했다. 오래된 철제지붕의 대학극장을 잊지 못한다.
비오는 날 지붕에서 들려오던 빗소리, 낡은 피아노가 놓여있던 그 극장이 그리울 때가 많다. 지금은 헐리고 없다. 그 자리에 중앙대 아트센터가 생겼다.
군대 다녀와 선배급이 되어서 작품을 쓰고 연출했는데, <무지개>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으로 대학연극제에서 대상을 받았다. 큰 격려가 됐었다.
-비교적 순탄한 출발이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아니다. 부모님 반대도 심했다. 나 스스로도 연극에 올인 하겠다는 확신은 없었다.
내 능력으로는 조금 힘들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런 고민이 있을 때 연극반 동문으로 대학로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던 조광화 선배가 "너 반만 생겨도, 너 반만 연기를 잘해도 나는 연기를 하겠다."고 하시더라.
그 한마디에서 큰 용기를 얻었던 것 같다.
광화 선배는 기억을 못하신다. (흐흐)
이후에 연극원 전문사 과정에 연기전공으로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배우 수업을 쌓았다.
-대학로 데뷔작과 이후의 행보는 어땠나?
극단 여백의 <살아간다는 것>의 주인공으로 대학로 무대에 처음 섰다.
학교에서의의 공부와 경험을 가지고 잘난 척 하다가 엄청 깨졌다.
그리고 극단 백수광부에 들어가 활동하면서 내가 모르는 게 정말 많다는 걸 깨달았다.
연기는 연습하고 익혀서 리플레이하는 게 아니라, 매순간 살아있어야 하는구나.
그것이 진실한 연기라는 것을 알게 된 거다.
극단을 나온 이후에는 이영석, 성기웅 연출 등 또래의 동생뻘 되는 친구들과 몇 작품을 재밌게 했었다. 그러다가 작년 <살>공연 이후 이해성 형이 극단을 만든다고 해서 같이 하게 됐다. 형이 혼자서 극단을 꾸려나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 옆에서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