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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소녀가 괴물과 맞장 뜨는 법
[김은성의 연극데이트] 배우 이지하

김은성_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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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지하
  • 그녀의 말과 목소리는 유려했다. 즉 거침없이 미끈하고 아름다웠다. 유쾌, 상쾌, 통쾌, 명쾌, 청쾌한 달변이 은쟁반에 옥구슬 구르는 소리로 듣는 귀를 배부르게 적셨다. 똑 부러지는듯하면서도 말꼬리를 연약하게 흐리는가 하면, 에누리 반 푼 없을 것 같다가도 느닷없는 웃음소리로 인터뷰 내내 인터뷰어를 자신의 관객으로 압도해버린 이 여배우는 소녀인가? 괴물인가? 천생 배우로 태어난, 이지하의 모노드라마로 당신을 초대한다.

    다락방에서 난쏘공을 읽던 아이

    [연극in] 인터뷰 기사를 본 적 있는가?
    아직 못 봤다.

    우리 인터뷰의 특성상 질문의 초점이 연극에 관한 전문적인 내용보다는 인터뷰이의 라이프스토리에 맞춰질 것이다.
    지나간 거 이야기 해봤자 다시 돌아오지도 않는데 뭐, 호호호.

    어디에서 태어났는가?
    부산에서 나고 자랐다. 부산 동래에 있는 유서 깊은 향교 옆에서 자랐다. 대학 졸업 후 서울에서 자리 잡기 전까지 줄곧 부산에서 살았다.

    어떤 어린이였나?
    완전 내성적인 아이였다. 생일이 9월인데도 일곱 살 때 학교에 들어갔다. 발육이 엄청 늦어서 전교에서 가장 작았다.

    왜 그렇게 일찍 입학하게 되었나? 혹시 신동?
    글쎄… 그런 말은 못 들어봤다. 음… 그런데 문제없이 잘 다녔던 것 보면… 영특하지 않았을까? (웃음) 부모님 나이가 많은 편이셨는데 늦은 결혼에 늦게 아이들을 낳다보니 첫째부터 빨리빨리 학교에 보내자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내성적인 아기가 된 이유는?
    글쎄… 산책하기 좋아하고, 혼자 놀기 좋아하는 아이였는데… 돌아보면 정신적으로 가장 풍부했던 시기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동래초등학교라고 부산에서는 아주 유명한 사립학교를 다녔다. 초딩 때 이미 대학등록금을 내고 다녔다.

    집이 잘 살았나보다.
    부모님 교육열이 높으셨다. 하긴 그때만 해도 아버지 사업이 잘 되어서 좀 살기도 했다. 그런데 학교친구들은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동양고무 딸, 삼립식품 아들… 대부분이 부산에서 알아주는 집 아이들이었다. 나는 우리집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줄 알았다.

    산책을 하는 초딩은 그 대목에서 탄생되었던 것인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 사업이 힘들어지면서 서서히 집이 어려워지기는 했지만 뭐 딱 그 이유만은 아닌 것 같다. 어려서부터 책을 많이 봤다. 책을 읽는 일을 좋아했다. 다락방에서 애들이 읽기에 조금 안 어울리는 책도 많이 보고… 좀 조숙했다.

    다락방에는 어떤 책들이 있었나?
    「채털리 부인의 사랑」, 호호호. 전신누드 삽화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조선왕조실록」도 읽었고, 「자기 앞의 생」은 정말 좋았고,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하 난쏘공)이 강렬하게 남아있다.

    세상에… 난쏘공은 몇 살 때 읽은 건가?
    열한 살 때였다. 시대와 사회를 알고 읽었겠나? 이야기와 인물이 주는 감동에 막연하게 젖었던 것 같다. 신기한 일이 있었는데 2008년에 교보문고에서 '난쏘공 출간 30주년 기념 낭독회'가 열렸을 때 우연히 낭송자로 참여하게 됐다. 작가님께 사연을 말씀드렸더니 좋아하시더라.

    자주색 니트와 독서실 동창생, 배우를 발굴하다

    연극과는 어떻게 만나게 되었나?
    이야기가 좀 길다. 드라마틱한 사연이 있다. 중학교 1학년 4월경으로 기억한다. 월요일에 등교를 하는데 교문이 다가올수록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동복에서 춘추복으로 바뀌는 교복 교체시기를 착각해서 나 혼자 외투를 벗고 학교에 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거다. 아침조례가 열리는 운동장에 전교생이 시커먼 동복을 입고 있는데 나 혼자 하얀 세일러복을 입고 서 있었다. 그것도 맨 앞줄에서. 민망하고 창피하고… 몸이 아파오기 시작하더니 결국 쓰러졌다. 호호호.

    끝인가? 뭐, 교장선생님 훈화말씀 중에 앞으로 불려나가서 노래라도 부르다가 쓰러졌다면 더 근사한 이야기가 될텐데. 그건 그렇고 그 이야기가 연극과는 무슨 상관?
    아직 안 끝났다. 좀 더 들어봐라. 그날 첫 수업이 지리수업이었나? 윤리수업이었나? 선생님이 자주색 앙고라 니트를 입고 오셨다.

    자주색 앙고라 니트? 기억력이 대단하다.
    아, 따뜻했다. 무슨 과목의 어떻게 생긴 선생님이었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그 따스한 자주색 니트는 생생하다. 그 속에 파묻혀 숨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디로든 숨고 싶었거든. 선생님이 부르르 떨고 있는 나에게 벗어주셨던 거다. 벗어서 덮어주셨던 거다. 선생님이 씩 웃으시면서 "사는 건 괜찮아?" 하시더라.

    아, 멋있는 선생님이다. 그러면 혹시 그 선생님이 연극과 관련이 있던 분? 혹시 극작가를 겸하고 있으셨을 수도 있고….
    아니다. 쉬는 시간에 옷을 돌려드리려고 교무실에 갔더니 공연 초대권을 주셨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윤복희, 추송웅, 유인촌, 이런 분들이 대거 출연하던 뮤지컬 공연이었다. 휴일에 버스를 타고 4,50분 달려서 부산시민회관에 갔다. 태어나 처음으로 혼자서 먼 길을 찾아가본 경험을 하게 된 거다. 차창 밖의 풍경과 길들의 변화, 극장의 웅장한 느낌, 극장 밖과 안의 미세한 소리와 온도의 차이, 객석에 앉았을 때의 미묘한 떨림, 갑자기 조명이 켜지며 나를 향해 달려들던 음악과 노래!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충격이었다.

    그 충격 이후에 어떤 변화가 생겼나?
    공부 안하고 참고서 값 삥땅쳐서 연극 보러 다녔지, 뭐. (웃음) 무조건 많이 봤다. 온갖 연극들을 정말 많이 봤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만 본 연극만 한 200편은 된다.

    여고시절에는 당연히 연극반 활동을 했을 것 같은데?
    아니다. 학교에 연극반도 없었을 뿐더러, 연극을 내가 할일이라고 생각할 엄두를 내지 못할 때였다. 당시 여느 고3들처럼 부모님과 선생님이 정해준 대로 입시를 준비하던 그런 학생이었다. 독서실에서 중학교 동창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예정대로 회계학과 원서를 썼을 것이다.

    독서실에서 어떤 역적모의가 있었나?
    중학교 때 교과서에 실린 희곡 <빌헬름 텔>을 분단별로 장면발표 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내 연기를 봤던 친구를 독서실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거다. 원서를 쓸 시간이 다가오고 있던 때였는데 친구가 갑자기 하는 말이

    “너, 연극영화과 안 가냐?”
    “진짜? 내 주제에 무슨”
    “아니야, 너 그때 연기 진짜 잘했어.”
    “근데 연영과가 부산에는 없잖아? 부모님이 서울로는 못 가게 해. 여자 혼자 위험하다고”
    “뭔 소리야? 부산에도 있어!”

    순간, 나도 갑자기 연극영화과에 가도 될 것 같은 느낌이 밀려오더라.

    거사는 어떻게 실행했나?
    몰래 입학원서를 사서 원서마감 몇 시간 전에 담임선생님을 찾아갔다. 선생님 반응이 “여가 뭐하는 데고? 지하야, 니가 여그가서 뭐할라꼬?” 별 수 있나, 원서마감 넘기게 생겼는데 도장 찍어야지 뭐. (웃음)

    작전의 결과는?
    성공했다. 시험을 봤는데 붙어버렸다. 다른 반 애들까지 구경을 왔더라. “뭐 저런 애가 연극영화과를 붙었냐?” 당시만 해도 엄청 예쁜 아이라든가, 엄청 끼가 많은 애라든가, 아무튼 학군에서 날리는 꾼들이 가던 학과였으니까. 전국에 몇 개 있지도 않았을 때 아닌가?
  • 배우 이지하
  • 당돌한 꼬마각시, 무대에 서다

    연극영화과 생활은 어땠나?
    완전 실망스러웠다. 아, 여기 괜히 들어왔구나.

    뭐가 그리 실망스러웠는가?
    내가 배우고 싶은 걸 하나도 안 가르쳐 주는 거다. 예술학교에 들어가면 뮤지컬 <페임> 같은 데에서 나오는 것처럼 피터지게 무엇인가를 향해서 돌진을 하는 동료들과 열정과 땀이 넘치는 그런 에너지들과 만나게 될 줄 알았지. (웃음)

    그런데?
    웬걸? 실기수업은 있지도 않고, 분위기는 딱딱하고, 선후배 규율은 심하고, 제도와 틀은 강하게 압박하고… 너무 싫었던 것 같다. 흠… 그럼에도 착실히 공부하면서 열심히 다녔다. 대학도 아웃사이더처럼 다녔다. 누구보다 성실하게, 되도록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좋았던 기억은 없는가?
    2학년 때 학교에서 허락하지 않은 워크숍 공연을 만든 적이 있었다. 선생님들을 설득해서 2학년 여름방학에 <버지니아 그레이의 초상>을 공연했었다. 포스터, 무대, 의상… 공연의 모든 것을 친구들과 뭉쳐서 만들어갔던 기억이 남아있다.

    졸업 후에도 계속 연극을 할 계획이었나?
    물론이다. 잠시 유학을 갈까 고민도 했지만 한국어를 잘 쓰는 한국배우가 되려면 얼른 현장에 뛰어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 무렵 연희단거리패의 공연이 흥미로웠다. 사실 너무 이상했다. 그동안 내가 봐왔던 연극이랑 많이 다르더라. 아, 이렇게도 연극이 되는구나, 아, 이것도 연극이구나! 무대의 에너지가 새로웠다. 섬뜩하고, 공포스럽고, 그러면서도 재밌었다. <시민K> <히바쿠샤> 공연에 나오는 배우들의 광기어린 눈빛이 강렬했다.

    그래서 연희단거리패를 찾아갔는가?
    대학교 4학년 봄에 졸업공연을 마치고 가마골소극장을 찾아갔다. 연희단거리패에서 아마추어 연극인을 위한 워크숍을 열고 있었다. 워크숍 끝나는 날에 이윤택 선생님이 "우리 극단에 들어올 마음 없나?" 하시더라.

    무엇이 이윤택의 마음에 들었을까?
    나중에 들었는데 조그만 여자애가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고 하시더라. 단원들에게는 "야, 어디서 당돌한 애 하나 들어왔어" 웃으셨다더라. 선생님 제안을 받고 처음엔 튕겼다. (웃음) 고민을 좀 하다가 4학년 여름방학에 입단하게 됐다.

    당시 연희단거리패라면 훗날 이름을 빛낼 쟁쟁한 청춘들이 모여 있을 때 아닌가?
    이해제, 오달수, 박수영, 이해성, 남미정, 김혜민… 이런 선배들이 있었다. 이윤택 연출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에 둘째딸로 출연하면서 본격적으로 극단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에는 온통 <바보각시>와 함께 하는 시간을 보냈다. <바보각시>는 이윤택 연출이 오달수 선배를 바보, 나를 각시로 정해놓고 만든 작품이었다. 좋은 작업이었고 재밌게 했다. 그렇게 각시 역할을 하면서 2년을 보냈다. 그러다가 서울 산울림소극장에서의 공연을 끝으로 극단을 나오게 됐다. 스물넷의 마지막 날로 기억한다.

    어린나이에 주목받는 작품의 주인공을 하다가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됐을까?
    “저는 저를 버리고 연극을 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호호호.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건방진 말을 하고 나왔다. 어려서 그런 거지, 어려서. 내가 가진 아웃사이더 성향과 극단의 분위기가 딱 맞아떨어지지는 않았다. 조금 겉도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연극을 하고 있는 건 이윤택을 만나서 <바보각시>를 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은 늘 가지고 있다.

    극단을 나온 후의 행보는?
    일단 연극을 관뒀다. 연극에 함몰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을 모르고 어떻게 연극을 해? 세상경험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 배우 이지하
  • 노가다부터 경리까지, 다시 무대로

    어떤 세상을 경험했는가?
    부산 온천장 맥도날드에서 3개월 매니저 수습생활을 하다가 못 견디고 달랑 10만원 들고 서울로 올라왔다. 연희단거리패에서 만났던 김혜민 언니의 집에 한 달 정도 얹혀살기도 하면서, 여기저기 전전 하면서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아, 밤마다 오늘은 어디 가서 잘까 고민하던 시절이었다. 직장을 구하면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어떤 일을 했나?
    많이도 했다. 이벤트 회사, 제빵회사, 노가다부터 경리까지. 스물여덟까지 4,5년 직장생활을 했다. 결혼도 그때 했다.

    남편은 어떻게 만났나?
    뭐 이런 거 까지 이야기해야 하나? 호호호. 그냥 넘어가자.

    음... 그럼 무대로는 언제 돌아왔는가?
    연희단거리패 멤버였던 김광보 연출이 <종로고양이>라는 작품을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에서 앵콜공연을 한 적이 있었다. 몇 번 거절하다가 응하게 됐는데 그게 복귀무대였다. 최광일, 윤상화 배우와 함께 출연했다. 오랜만에 연극하니까 기분이 좋더라. 극장에 항상 아침 일찍 나왔다. 몸도 풀고, 아무튼 이것저것 하면서 혼자서 놀고 있으면 앞으로도 연극을 계속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런데 참, 진짜 재미난 우연도 있지. 하루는 이상한 사람이 극장에 들어와서 사이즈를 재겠다는 거야. “아, 그러세요? 근데 누구세요?”

    자주색 니트 선생님과 독서실 중학교 동창에 이어 이지하 인생의 물길을 연극으로 틀어주는 뜻밖의 인물이 혜화동1번지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는 누군가?
    “여기서 다음공연 연출할 사람입니다.” 나는 그를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그는 나를 잘 알고 있더라. 내가 산울림소극장에서 <바보각시>에 출연하고 있던 시절에 그 극장의 극장장을 맡고 있던 이성열 연출가였다. 나중에 연락이 왔더라. 극단을 만드는데 함께 하지 않겠냐고. 이번에도 처음에는 조금 튕기다가…. (웃음)

    백수광부 창단 멤버로 들어가게 된 건가?
    아니다. 창단 1,2년 후쯤부터 함께했다. 백수광부 초기에 <굿모닝 체홉>등 체홉 시리즈를 발표할 때부터 참여했다. 극단이 자리를 잡아가던 시절이었다. 10여명의 단원들과 정말 열심히 연극을 만들어갔다. 다양한 스타일,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많이 했다. <키스> <대대손손> <고래가 사는 어항> <눈 속을 걸어서> <벚나무 동산>….

    연기에 대한 만족감이랄까? 성취감은 어땠나?
    이런저런 여러 작품에 끊임없이 출연했지만 10년 전의 <바보각시>가 계속 따라다니더라. 그걸 좀 넘어서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린벤치>와 <억울한 여자>를 거치면서 <바보각시> 꼬리표를 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간 가장 기억에 남아있는 역할을 꼽자면?
    <벚나무 동산>의 바랴를 꼽고 싶다. 그 인물에게 애착을 많이 느꼈다. 작품을 연출한 故윤영선 선생님이 연습 초창기에 각 인물들에 대한 본인의 단상을 종이에 써오셔서 배우들에게 읽어보라고 하신 적이 있었다. ‘바랴, 그녀의 언 손, 그녀는 모두가 장갑을 끼고 돌아오는 길에 장갑을 끼고 오지 않았다.’ 그걸 듣고 있는데 너무 눈물이 나서 다 못 읽었던… 그때 감정을 잊을 수 없다.

    죽지 않는 괴물을 향해

    최근 몇 년 동안 정말 바쁜 배우 중 한사람 이었는데?
    1년에 여섯 작품에 출연한 적도 있다.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쉼 없이 공연 했던 해도 있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작품을 해오다가 한계도 느끼고, 피폐함도 느끼고. 그래서 재작년에는 1년을 그냥 쉬기도 했었다. 작년과 올해에는 <버자이너 모노로그> <숲속의 잠자는 옥희> <과부들> <그 집 여자>에 출연했었다.

    <그 집 여자> 반응이 좋았다. 박해선 연출과 콤비란 소문이 있는데, 잘 맞는가?
    <억울한 여자> 이후 두 번째니까, 아직 콤비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다. (웃음) 해선이랑은 솜털 하나까지 디테일하게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다. 연출이 집요하게 붙잡아 가는 면이 나와 잘 맞는다.

    지금 출연중인 <이제는 애처가>는 어떤가?
    재밌게 하고 있다. 근래 몇 작품, 힘을 너무 많이 쓰는 역만 하다가 새로운 호흡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더블캐스트라 쉬는 날에는 이렇게 인터뷰도 하고, 조금 전에는 마트에 가서 장도 봤다. 그런데 저녁이 다가오니 슬슬 내일 무대가 걱정되기 시작한다. 집에 가서 대본을 봐야겠다.

    다음에 출연할 작품은?
    가을에 명동예술극장에서 올라가는 이성열 연출의 <바냐 아저씨>에 출연한다. 소냐를 맡았다. 이 나이에 소냐를? 욕먹을까 무지 걱정된다. 하지만 욕심도 난다. 소냐를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아니겠는가? 젊었을 때 니나도, 줄리엣도 못해봤는데, 소냐라도 해야지. (웃음)

    지금까지 만났던 연출가들 중에 누구랑 제일 잘 맞던가?
    그런 거 없다. 누구를 만나도 이런 건 맞고 저런 건 안 맞더라. 배우는 상황과 사람에 맞추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만나지 않은 연출가 중에 작업을 해보고 싶은 연출가는?
    그런 것도 없다. 음… 새롭고 신선한, 우리의 뒤통수를 탕! 치는 젊은 작가와 연출가가 많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좋아하는 배우는?
    매릴 스트립. 호호호.

    겪어봤던 배우들 중에 꼽자면?

    예수정 선배님, 여러 가지로 귀감이 되는 배우다. 배우로서 평가를 떠나서 나도 그렇게 담담하고 고요한 기운을 갖고 싶다.
배우 이지하
  • 배우로서 어떤 목표가 있나?
    있는데… 잘 안 될 것 같다. ‘천재보다 어려운 건 거장’이라는 말을 믿는다. 거장이 될 수 있을까? 어떤 괴물이 호수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너무 놀라서 죽어버렸다는 우화가 있다. 배우는 자신의 실체를 완벽하게 직시하게 되는 순간에 놓일 때가 많다. 고통스러운 순간이다. 어릴 때는 의심하지 않았는데, 자신감이 넘쳤는데…. 근래에 매번 한계에 봉착하게 되면서 내 능력치를 벗어난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겠구나, 인식하게 되었다. 오래하려면, 멀리보고 가려면 배우로서 부족한 나를 내가 스스로 인정하고 인내하고 참아내고, 내가 나를 좀 동정해 주고 응원해줘야 한다는 것을 요즘에야 조금 느끼고 있다.

    연극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글쎄, 놀이? 같이 재밌으라고 하는 거 아닌가? 보는 사람도 같이 재밌자고 하는 것 아닌가? 약간의 위로, 심심풀이 땅콩? 연극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글쎄… 호호호. 하지만! 연극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단 한명이 살아남아도 그 역시 거울을 앞에 가져다 놓고서라도 기어이 연극을 할 겁니다.
  • 배우 이지하
  • 이지하 (배우)
    2009 제 4회 골든티켓어워즈 연극 여자배우상
    2008 제 44회 동아연극상 시상식 여자연기상
    2005 서울연극제 신인연기상
    <그 집 여자><숲 속의 잠자는 옥희><과부들>
    <버자이너 모놀로그><과학하는 마음-숲의 심연>
    <휘가로의 결혼><연애희곡><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억울한 여자><바냐아저씨><결혼><락희맨쇼>
    <민들레 바람 되어><침향><왕국식당의 최후>
    <오레스테스 시련><그린벤치>

태그 다락방 소녀, 배우 이지하, 이제는 애처가, 백수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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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성

김은성 극작가
극단 달나라동백꽃 대표
주요작품 <로풍찬유랑극장><뻘><목란언니><연변엄마><순우삼촌><시동라사>외 다수
본지 편집위원.
웹진 21호   2013-04-04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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