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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뭉하게 빛나는 칼, 칼집 속의 이윤재
[김은성의 연극데이트] 배우 이윤재

김은성_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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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윤재
  • 그동안 만났던 어떤 인터뷰이들 보다 진지하고 신중하게 말을 이어가는 40대 초반의 연극배우는 침을 꼴까닥 삼켰다. 긴장하고 있었다. 인터뷰 중에 슬쩍 노트를 꺼내 미리 작성해 온 예상 답변을 살피기도 했다. 인터뷰하자는 전화를 받고 “나를 인터뷰 한다고?” 월간 [한국연극]을 20년이 넘게 탐독해온 연극청년은 연습실을 나서며 동료들에게 “나, 인터뷰 한다. 나도 드디어 인터뷰라는 걸 한다.”고 자랑했단다. 의뭉스러우면서도 강단 있었던 이윤재의 침 넘어가는 독백을 들어보자.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드러내야 하는 고민

    요즘 <칼집 속에 아버지> 연습 중인데 어떤가?
    공연이 4월 26일 시작된다. 재미있다. 재미있는데 쉽지는 않다.

    작품 소개를 부탁한다.
    고연옥 작가와 강량원 연출이 만났다는 것부터 흥미롭다. 강량원 연출님은 지금까지 만났던 어떤 연출보다도 친절한 분이다. 상대방의 의견을 잘 들으려고 하시는 것이 좋다. 대본의 첫인상은 어른들을 위한 우화, 동화라는 느낌이 들었었다. 고연옥 작가님의 말솜씨가 잘 드러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 자체가 힘이 있는 대본이다. 작가님이 말을 유려하게 잘 쓰신 것 같다. 내용적으로는 이 시대에 필요한 영웅의 이야기?

    출연진이 화려하다. 한창 때의 레알 마드리드 같다고나 할까? 배우들의 호흡이나 앙상블은 어떤가?
    어느 한분 모난 분이 없다. 분위기도 좋다. 음…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자기 것을 잠시 비우고, 내려놓으면 더 좋을 텐데… 느끼는 순간이 있다.

    작품에 대한 기대가 크다. 기대해도 좋은가?
    굉장히 묘하고 기이하고 독특하고 특이한 질감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처음 대본을 보고 기대했던 바도 바로 거기에 있다. 많이 본 것 같은데 조금 다른 작품? 잘 나오면 이전에 없던 새로운 작품이 나올 것이다.

    어떤 인물을 맡았는가?
    목사로 등장한다. ‘검은등’이라는 거대한 세력을 가진 인물이 장악하고 있는 마을에 ‘갈매’라는 무사가 들어오게 되면서 사건이 시작되는데 마을 사람들은 검은등을 몰아내고, 갈매를 새로운 지도자로 모시려고 하지만 결국 마을 사람들이 갈매를 죽게 한다. 목사는 마을 사람들의 일원이다.

    목사라는 인물과 만나면서 배우로서 어떤 매력을 느끼고 있는가?
    사실 별로 안 나와서…. (웃음) 많이 나오진 않지만 중요한 인물이다. 가식적인 인물인데… 표현하거나 드러내서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어쨌든 그 인물을 드러내야 하는데… 요즘 그걸 공부하고 있는 것 같다. 작품이 일반적인 리얼리즘이 아닌데… 그렇다고 해서 표현하거나 설명하면 또 안 되고. 그 지점에서 헤매고 있는 것 같다.


    동성로의 연극마니아

    언제 어디서 태어났나?
    72년에 포항에서 태어났다. 고1때 대구로 전학을 가기 전까지 계속 포항에서 살았다.

    유년시절은 어떻게 보냈나?
    정말, 정말로 평범한 아이였다. 사건사고 없이 자랐다. 하지 말라는 것 안하고 하라는 것만 하면서.

    학창시절은 어땠나?
    적당한 사춘기를 거쳤고, 적당히 공부했고, 적당히 놀았다. 적당히 내성적이었고, 너무 내성적이어서 문제가 됐던 적도 없는, 그냥 어디에 있든 티가 안 나는 아이.

    지금 배우를 하고 있는 것과 뭔가 연결이 되는 대목은 없나?
    음… 형, 누나들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난다. 어렸을 때 형, 누나들이 다 성인이었는데 형은 음악을 굉장히 좋아했었고, 큰누나는 연극, 영화, 문학에 관심이 깊었고, 작은누나는 미술을 전공했다. 형과 누나를 보면서 나도 막연하게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던 것 같다. 하루는 누나를 따라서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을 보러갔었다. 거기 나온 노래들이 실린 음반을 구해서 반복해서 듣고 따라 불렀던 기억이 있는데 아마 중3이나 고1 때였었을 것이다. 그즈음연극 <품바>를 보러갔던 기억도 있다.

    재밌었나?
    공연장에 가는 일이 좋아지게 된 것 같다. 본격적으로 연극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대구로 전학을 간 이후다. 고등학생 때 연극을 많이 보러 다녔다. 돈이 좀 생기면 무조건 연극을 보러가거나 LP를 샀다.

    기억나는 공연이 있다면?
    아무래도 그때는 어렸을 때라 화려한 작품을 좋아했다. <캣츠> 같은 뮤지컬이 기억에 남아있다.

    장차 연극을 해야겠다는 마음은 그때 생긴 것인가?

    아니다. 막연하게 건축과에 들어갈 생각이 있었는데 입학시험에 떨어지고 재수를 시작했다. 재수하던 시절에 대학에 들어가면 연극반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은 있었다. 지금도 월간 [한국연극]을 매달 사보는데 언젠가 살펴보니 92년 것부터 있더라. 대구 동성로 제일서적에 조그마한 연극코너가 있었는데 그때 연극관련 책을 많이 봤다. 대구 중앙도서관에 가서 옛날 [한국연극]을 쭈욱 읽었던 기억도 난다.

    연극마니아였다고 보면 되겠나?
    그렇다. 연극영화과에 들어갈 마음을 먹거나, 적극적인 행동으로는 못 옮겼지만 공연을 보러 다니면서 대학에 들어가면 연극반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대구에서 연극반이 좋다는 몇 개의 대학들 중에서도 영남대가 좋다는 말을 듣고 그 학교로 입학을 준비했다.
  • 배우 이윤재

  • ‘객석과무대’ 그리고 ‘천마극단’

    연극반이 좋은 학교로의 입성은 성공했나?
    그렇다. 그런데 합격자 신분이 되니 마음이 조금 들떴었는지 연극반이 아닌 극단을 찾아가게 됐다. 92년 겨울이었다. ‘객석과무대 극단 워크숍 단원 모집’ 이라는 전단을 보고 연극에 대해서 뭘 가르쳐주나 보다 하고 찾아갔던 거다.

    어땠나? 재밌는 일을 말하려는 눈치가 보인다.
    모 건물 5층이라고 해서 갔는데 밑에서 올려다보니 아무리 봐도 4층 건물인데… 아무튼 올라가봤지. 태어나 처음으로 옥탑이라는 것을 봤다. 어떤 분이 부스스 일어나 세수를 하면서 “저기 앉아요!” 하더라. 그분이 바로 훗날 인기배우가 된 극단 차이무의 이성민 선배님이었다.

    재밌는 인연이다. 극단 생활은 어땠나?
    학교생활과 병행을 할 수 없어 6개월 지내고 나왔는데 공연도 한편 하고 나왔다. 대표이자 연출이셨던 이강일 선생님의 창작극이었다. 이성민 선배가 주인공이었고 손성호 선배님도 출연하셨다. 전국연극제 나가는 출품작이었다. 나의 첫 데뷔작이었다. 첫 대사도 기억난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이후에 이성민 선배님과의 인연은 어땠나?
    대구에 있을 때는 가끔 인사도 드리고 했었는데 대학로에서는 인사드리기도 뭐하고 해서 연락을 못 드렸었다. 최근에 만나 뵌 적이 있었다. “제가 20년 전에 그 이윤재입니다.” 했더니 정말 반가워하시더라. 술을 안 드시는 분이라 식사를 한 끼니 했다.

    입학 후 연극반에는 들어갔는가?
    오디션을 보고 들어갔다. 그냥 연극반이 아니라 열혈 연극반이었다. 이름도 극회나, 극예술연구회가 아니라 극단이었다. 이름하야 천마극단. 선배들이 동아리 마인드가 아니라 기성연극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다. 밖에서 극단생활을 하고 있다는 말을 했더니 “연극을 할 거면 거기서 하던지 여기서 하던지 결정해” 하더라. 그래서 객석과무대를 나와 천마극단에 입단하게 된 거다.

    천마극단, 심상치 않은 느낌을 준다. 어땠나?
    지금 돌아봐도 굉장히 열심히 했다. 태어나 뭔가 처음으로 정말 열심히 했던 게 바로 연극반 활동이었다. 작품을 굉장히 열심히 했다. 1년에 대여섯 작품을 올렸으니까. 아, 선배들이 엄하고 무섭기도 했지만 워낙 끈끈한 정들로 뭉쳐있는 연극반이었다. 지금도 계속 연극을 하는 선후배들이 많이 있다. 주로 대구에서 활동 중인데, 대학로에는 배우 김동찬과 윤미영, 작/연출가 추민주가 천마극단 출신이다.

    연극한다는 게 재미는 있던가?
    이번만 하고 말아야지 할 정도로 늘 작품을 할 때마다 힘들었다. 그때까지도 성격이 뭔가 즐기거나 이런 성격은 아니라서 무대에 서는 게 참 떨리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끝나면 다시 무대에 서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내 성격상 평소에 잘 드러내지 못하는데 한편 은근히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귀걸이를 하고 다니는 것도 그런 심리 때문일 것이다. 그런 심리가 무대에 서고 싶은 마음을 만들었을 거다.

  • 춤추는 난쟁이, 배우에 전념하기로

    졸업 후에는 어떤 행보를 이어갔나?
    아, 졸업을 못했다. 3학년 2학기 겨울방학 때 서울예대에 연극과 시험을 보고 98학번으로 입학을 하게 됐다. 이전 전공이 산림자원학 이었는데 졸업할 때가 다가오니까 연극을 계속할까? 진로에 대해서 고민이 많았다. 결국 서울로 연극공부를 하러 가게 된 거다.

    의뭉스럽다가도 일을 벌일 때는 과감하게 저지르는 면도 있는 것 같다. 집안 반응은 어땠나?
    아버지에게 말씀을 드렸더니… 두 시간 동안 무릎 꿇고 있었다. 누나들이 말을 잘해줘서... 우여곡절 끝에 서울에 갈 수 있었다.

    갑작스런 서울생활, 어떻게 시작했나?
    우선 자취방을 구해야 했다. 학교가 있는 명동에서 4호선을 타고 오가며 집을 물색하다가 사당동에 천만 원짜리 전세방을 얻어서 살게 됐다. 아, 그 집 바퀴벌레 진짜 많았다. (웃음)

    어렵게 들어간 연극학교에서의 생활은?
    서울예대라는 곳이 대구에서 생각할 때는 연극계의 서울대라는 느낌이 들게 했던 곳인데 막상 들어가 보니 연극을 하는 사람들보다는 연예인 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재밌었다. (웃음) 동기들 중에 진지한 친구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는데 고창석, 박종태, 정의욱, 윤현길… 이런 친구들과 열심히 연극공부를 했다. 잘 다녔다. 처음으로 장학금도 받아보고, 공부가 재미있었다.

    어떤 선생님이 기억에 남는가?
    임도완, 유홍영 두 분 선생님을 만난 것이 참 좋았다. 당시 마흔 정도 되셨던 젊고 패기 있는 선생님들의 기운을 받을 수 있었다. 그분들한테 받은 영향이 아직도 연기 베이스가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졸업 후에는 어떻게 연극을 했나?
    함께 졸업한 친구들끼리 팀을 만들었다. '춤추는 난쟁이'라는 팀이었다. 사전적으로는 난장이가 맞을 텐데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소설 <춤추는 난쟁이>를 공연으로 올리면서 제목을 팀 이름으로 하게 된 거다.

    춤추는 난쟁이는 어떤 활동을 했는가?
    2000년부터 5년간 활동했다. 내 전세금이랑 고창석 형 전세금을 합쳐서 홍은동에 연습실을 만들어 거기서 먹고 자면서 생활했다. 고창석, 이정은 배우 커플은 신혼생활을 거기서 시작했다. 연습실에 방을 하나 만들어서. 젊은 패기로 더 늙기 전에 사고 한번 치자는 기운으로 시작했다. 춘천마임축제를 비롯해 과천, 남양주 등에서 열리던 축제에 공연을 올리며 돌아다녔다. <라일락 향기 가득 안고> <웅녀 이야기> 등의 작품이 기억난다. 팀원들이 임도완, 유홍영 선생에게 영향을 받아 주로 신체극을 했었다. 아크로바틱, 마임…. 우리는 그것이 연극의 한부분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어느 순간 마임 작업만 하는 극단이라는 뭔가 안팎으로 협소해진 느낌을 받게 되더라. 조금씩 제자리를 맴돌면서 기획력도 한계에 부딪히고 지지부진한 시기가 오더라. “이제는 각자의 자리를 찾아가야 할 때인 것 같다.” 해산을 했다.

    해산 이후에는 어떤 과정을 겪었나?
    이미 30대 중반의 나이가 되어 있더라. 기존 연극판에 어떻게 들어가야 할지 길도 잘 보이지 않고…. 극장을 만드는 일에 참여도 했었는데 그 이야기는 길게는 하고 싶지는 않고…. 춤추는 난쟁이 대표와 극장 만드는 일에 참여했던 경험을 거치면서 ‘그런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구나. 나는 배우에 전념을 해야 겠구나’ 지혜를 얻게 됐다. 그 무렵에 결혼도 하게 됐다. 학교 동기와 연애 5년 만에 결혼했다. 아내도 배우다. 극단 코끼리만보 소속의 윤현길. 너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나는 정말 아내를 잘 얻었다. 결혼하고 나서 심리적으로 굉장히 안정이 됐다. 잘 살아야겠다는 책임감과 절실함도 생겼다.
  • 배우 이윤재

  • 오디션의 연속, 성기웅을 만나다

    배우에 전념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힌 후 어떤 작품과 만났나?
    대학로에 나와서 “나 이제 배우 할래, 나 연극 할래, 나 할 수 있는 작품 좀 소개 시켜줘, 오디션 볼래” 하고 다녔는데 연결이 된 적이 거의 없었다. 초조했다. 그러던 중, 2008년이었다.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스즈키 타다시 연출의 <엘렉트라> 오디션을 봤다. 아내와 함께 동시에 출연할 수 있게 됐는데, 둘 다 힘들 때였기에 함께 하게 돼서 너무 좋았던 기억이 난다.

    이후에도 계속 오디션을 보러 다녔나?
    그렇다. 계속 오디션을 거쳐서 출연하게 되었다. 2008년 타다 준노스케 연출의 <로미오와 줄리엣>, 2009년 <밑바닥에서> <사천가>, 2011년 <백년, 바람의 동료들> <살> <보이체크>, 좋은 작업이 보이면 늘 오디션을 봤다. 다른 배우들에 비해서 오디션에 대해 적극적인 편이다. 불러주는 사람이 없었던 이유도 있다. (웃음)

    오디션을 거치지 않고 불러준 최초의 연출은 누구인가?
    성기웅이다. 2010년 <소설가 구보씨의 1일>을 같이 하자고 연락을 해왔다. 고마웠다. 공연을 마친 후에는 극단을 함께 하자고 해서 제12언어 연극스튜디오에 들어가게 됐다.

    이후에는 오디션 없이 극단 작품에 출연하게 되어 마음이 편했겠다.
    그렇다고 봐야지. (웃음) <단편소설 입체 낭독극장 – 1F/B1> <과학하는 마음 - 숲의 심연> <재/생> 등에 출연했다.

    극단은 이윤재에게 어떤 의미인가?
    그래도 식구만한 게 없다. 극단에서 내가 나이가 제일 많은데… 잘 못 챙기지만 단지 그냥 마음 의지하자는 차원이 아니라, 정말로 연극은 사람이 같이 하는 작업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끔 만든다. 새로운 식구가 하나 더 있는 게 참 좋다.


    할아버지 배우가 되고 싶다
배우 이윤재
  • 지금까지 출연했던 작품들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다면?
    당연한 거겠지만 모두다 의미 있고 정말 중요한 작품들이라 고르기가 힘들다.

    그래도 딱 하나만 고르라면?
    두 개 고르면 안 되나? <로미오와 줄리엣> <소설가 구보씨의 1일>. <로미오와 줄리엣>을 같이 했던 사람들은 5년 전임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식구처럼 만나고 있다. 한 달 연습을 하는 동안 마법에 걸린 것처럼 행복했었다. 낯선 일본의 연출가와 작업에 목마른 젊은 배우들이 정말 애착을 가지고 만났던 작업이었다. <소설가 구보씨의 1일>은 나의 이름을 알려준 공연이니까. (웃음)

    만났던 연출가 중에 기억에 남는 분이 있다면?
    한명을 고르기가 정말 애매하다. 모두가 너무 소중하다. 아, 안 소중한 사람도 몇 명 있다. (웃음) 흐흐, 운이 좋았다. 만나는 연출가마다 잘 만났다. 특히 김동현 연출가가 <그을린 사랑>에서 니하드 라는 인물을 주셨을 때는 정말 좋더라. 내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 맞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 인물을 주셔서 정말 고마웠다.

    앞으로 만나고 싶은 배우는?
    너무 많다. 답변하기가 힘들다.

    만나고 싶은 연출가는?
    무조건 만나고 싶은 선배 연출가들이 정말 많다. 나는 나이가 들어도 젊은 연출가들이 쉽게 다가오는 배우가 되고 싶다.

    배우로서 어떤 목표를 갖고 있는가?
    인터뷰를 한다고 해서 미리 생각을 해봤다. (웃음) 어떤 해외공연을 본적이 있다. 어떤 할머니 배우가 히피처럼 하고 나왔는데 거지, 괴물, 집시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 역을 할 수 있는 할아버지 배우가 되고 싶다. 지금 완성된 배우 느낌보다는 다음이 더 기대가 되는, 궁금한 배우가 되면 좋겠다. 나이가 더 들어서도. 할 수 있으면 7,80까지 하고 싶은데, 저 노배우가 다음에는 어떤 역할을 할까? 기대하게 하는 배우.

    배우로서 극복하고 싶은 한계가 있다면?
    노래? (웃음) 내 스스로는 음치라고 생각 안하는데... 고음이 안 올라간다고 하더라. (웃음)

    배우로서 본인의 장점을 꼽자면?
    <백년, 바람의 동료들> 할 때였는데, 연출님이 집중력이 좋다고 하더라. 오랫동안 마임을 해왔기 때문에 신체를 잘 쓰기는 하는 것 같다. 앞으로도 몸 관리를 더 잘해서 저 할아버지가 몸을 저렇게 쓴단 말이야? 그 말을 듣고 싶다.

    이윤재에게 연극은 뭔가?
    그럴듯한 말은 생각이 안 나고, 연극은 계속 나를 점검해준다. 나를 잘 살게 해준다. 나를 계속 깨어있게끔 해주는 거다. 연극하면서 가끔 어떤 좋은 순간이 왔을 때 아내와 이런 이야기를 한다. “야, 우리 연극하기 잘했다.”
  • 배우 이윤재
  • 이윤재 (배우)

    주요작품
    <과학하는 마음-숲의 심연>, <보이체크>,
    <백년, 바람의 동료들>, <살>, <사천가>,
    <소설가 구보씨의 1일>, <밑바닥에서>,
    <엘렉트라>, <로미오와 줄리엣>, 마임
    <흔적>, <우울> 외 다수 출연

태그 이윤재, 제12언어 연극스튜디오, 소설가 구보씨의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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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성

김은성 극작가
극단 달나라동백꽃 대표
주요작품 <로풍찬유랑극장><뻘><목란언니><연변엄마><순우삼촌><시동라사>외 다수
본지 편집위원.
웹진 22호   2013-04-18   덧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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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원
소설가구보씨의1일 정말 정말 재미있게 봤어요. 배우님 나오시면 공연 올라갈 때 마다 계속 볼거에요~~~

2013-04-19댓글쓰기 댓글삭제

숑숑
인터뷰 고맙습니다!

2013-04-19댓글쓰기 댓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