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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숲에서 노는 낙락장송
[김은성의 연극데이트] 연출가 김낙형

김은성_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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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가 김낙형
  • 극단 죽죽竹竹 대표 김낙형은 대나무를 닮았다. 마른 몸에 큰 키, 광대뼈와 까치머리가 어느 뒷동산에 뜬금없이 혼자 서 있는 대나무를 연상하게 한다. 낙락장송落落長松 처럼 깊고 외로운 연극적 고민과 대나무군락 같은 연극 동네의 어울림을 오가며 자신만의 연극 언어를 만들어가는 대학로 죽죽竹竹장수의 행보를 돌아봤다.


    시적 언어와 사실적 무대 사이의 농담

    <농담> 마지막 공연을 앞두고 있는데, 어떤가?
    연습과정에서 공연까지 쉬운 작업은 아니었다. 솔직히 힘들었다. 다행히 마무리는 잘 되어가는 것 같아서, 별 탈 없이 끝나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배우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소기의 목표를 잘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웃음) 일단 잘 끝났으니까.

    소기의 목표는 무엇이었나?
    보는 동안 관객들이 알찬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작품이 어렵더라도, 기존의 많은 공연들처럼 관객에게 다이렉트로 알아듣게 하지는 못하더라도 관객들이 신문을 보는 느낌으로 공연과 만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 생각 저 생각 하면서 보더라도 신문을 덮을 때는 그래도 뭔가 얻어가게 되는…….

    관객들이 어려워하는 것 같다. 동의하는가? 이유를 뭐라 생각하는가?
    희곡부터 기존 연극의 질서와 문법에 비해서 새롭다보니 어렵게 느껴지는 점이 있는 것 같다. 원래 창작초연이라는 게 쉽지 않다. 창작자 입장에서는 새로움을 부딪혀보는 과정이 의미가 있지만 관객들은 분명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인정한다. 만드는 우리끼리야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한계가 있었던 거고…… 어쨌든 이런 현상이 오리라는 것을 예측했었다. 남산예술센터 상주작가의 작품이었기에 관객의 호흡에 맞추는 것보다는 작가의 언어와 시도를 응원해주려고 애썼다.

    작가의 언어와 시도에 어떤 미덕이 있다고 봤나?
    그동안 요즘 창작희곡들이 너무 가볍다고 생각했던 점이 있었다. 그래도 이 희곡은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 아닌가, 언어도 정성들여서 쓴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반면에 대사가 시적이긴 한데 연극으로 쌓아지면서 시적이어야 하는데 ‘투견판’이라는 사실성과 시적인 언어가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 점이 있었다.

    이번 공연의 의미를 자평해 보자면?
    지난겨울 정치의 소용돌이가 끝난 마당에 개판으로 쌓여오는 자본주의 실상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런 점에서 주제적으로 의미가 있는 공연을 했다고 본다. 연극적으로 보면 정서가 좀 덜 드러나고 상황이 좀 덜 보이더라도 산문적인 느낌을 보여주는 무대도 나름 만족한다. 특히 몇 장면에서 인물들이 이 공간의 망에 묶여서 사회적 의미로 확장되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 부분이 좋았다.

    준비 중인 다음 작품은?
    가을에 국립극장 ‘젊은 연출가전’을 준비하고 있다. 제목은 <밤의 연극>. 직접 쓰고 연출한다.

    간략한 소개를 부탁한다.
    한 사내가 그냥 메트로폴리탄이라고 할 수 있는 대도시를 배회하는 이야기인데 아직은 뭐라 설명하기 어렵다. 지금 이 삶이 실재하는 것인지, 환상인지, 그게 내 요즘 화두다. 우리는 너무 행위(doing)로만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의 존재(being)는 어디에 있는지, 그 사람의 삶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은 전부 행위(doing)니까.


    깡촌에서 크다

    언제 어디서 태어났나?
    70년에 구미에서 태어나 열 살 때 합천으로 이사를 했다.

    재밌다. 박정희 정권 때 박정희 고향에서 태어나 전두환이 권좌에 오를 때 전두환의 고향으로 이사를 갔는데?
    그때는 그런 거 알았겠나? (웃음) 명륜동에서 살았던 적이 있었는데 그 동네 살던 노무현도 대통령이 되더라. (웃음)

    구미의 기억은 어떻게 남아있나?
    구미는 늘 공터 같은 느낌으로 남아있다. 한참 개발이 되고 있는 아직은 빈 땅의 이미지. 철조망이 있고 잔풀들도 많고……. 그리고 기다림, 부모님이 공단 쪽으로 일하러 가시면 기다리던 풍경……. 그래서 일까, 나는 공터를 좋아한다. 지금도 가끔 도심 외곽의 그런 곳에 가서 혼자 앉아 있다 오기도 한다.

    합천에서는 얼마나 살았나?
    10년을 살았다. 합천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는데 그곳을 생각하면 사람들, 사람들이 떠오른다. 함께 놀던 친구들, 노는 게 너무 좋았다.

    주로 뭐하고 놀았나?
    영화잡지 [스크린] 같은 거 많이 보고, 집에서 담근 농주 같은 거 나눠 마시고, 농번기 때는 학교에 안가고 친구집에 일 도우러 다니고. 일 보다는 놀러가는 거지 뭐. (웃음)

    연극이나 예술방면에 대한 관심은 없었나?
    3년 동안 미술반에서 그림을 그렸다. 수채화, 풍경화 그리는 것을 막연하게 좋아했다. 선생님들한테는 “너는 육군사관학교 가야 된다.”는 말을 자주 들었지만 특별한 장래희망은 없었던 것 같다. 대학입학원서는 전국에 딱 한곳뿐이던 관광경영학과를 지원했는데 그냥 놀러 다니는, 그런 삶에 대한 바람이 있었나 싶다. 그런데 1지망에서 떨어지고, 2지망으로 넣었던 무역학과에 붙었다.

    연출가 김낙형

  • 연극반에서 키운 배우의 꿈

    합천에서 서울로 오게 된 건가?
    그렇다. 촌놈이 친구 하나 없는 서울 왔는데 심심하고 쓸쓸했었나 보다. 대자보를 보고 무작정 연극반을 찾아갔다. 시골 깡촌에서 연극을 볼 기회가 있었겠나? 영화도 천막극장에서 보는 수준이었는데, 그냥 뭐 재밌는 거 없나 하고 가본거지. 찾아갔는데 연습 중에 워낙 바쁜 상황이더라. “너, 물 떠와.” 시키더니 연습 끝나고 “근데 너, 누구야?” 그렇게 연극반에 들어가게 된 거다.

    연극반 생활은 어땠나?
    배우를 잘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생겼던 것 같다. 서클룸에서 먹고 자면서 살았다. 수업 안 들어가고 책 읽고, 글도 좀 쓰면서 연습도 하고. (웃음) 사투리 때문에 선배들에게 혼도 많이 났다.

    주로 배우로 활동했나?
    그렇다. 열 작품 했다면 여덟 작품 정도 단역만 하다가 연극반 인원이 줄면서 자연스럽게 주역을 하게 됐다. (웃음) <아일랜드>에서 윈스턴, <오장군의 발톱>에서 오장군, <매장된 아이>에서는 다지 역할을 했었다.

    연극반 하면서 장차 연극인이 되겠다고 마음먹게 된 건가?
    꼭 그런 것도 아닌데 졸업할 때가 다가오면서 다른 친구들은 취직준비도 하면서 점차 사회로 나갈 정신을 차려 가는데 정신 못 차리고 있었던 거지 뭐. (웃음) 지금도 힘들다, 힘들다 하지만 사실 그때 학교 다닐 때만큼 가난했던 적도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도 어떻게 그렇게 정신 못 차리고 연극할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대학로 데뷔는 어떻게 했나?
    지금은 국선도 관장을 하고 있는 연극반 친구가 신문기사를 가지고 왔더라. 한국연극연출가협회에서 <한여름밤의 꿈>을 심재찬, 기국서, 김철리, 주요철 네 명의 연출가가 네 팀을 꾸려서 올린다는, 배우모집을 한다는 기사였다. 기사를 보고 공연에 참여하면 좋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을 때 그 친구와 함께 문예회관 대극장에 공연을 보러 갔는데 친구가 기국서 선생님을 알아보고 인사를 하더라. 그 인연을 계기로 얼떨결에 기국서 선생님 팀에 들어가게 됐다.


    76에서 놀다
연출가 김낙형
  • 기국서와의 인연이 그렇게 시작 된 건가?
    그렇다. 93년으로 기억한다. 당시 기국서 선생님이 <한여름밤의 꿈> 공연에 앞서 극단 76의 신작 <작란>이라는 작품을 준비하고 계셨다. 그런데 공연 2주 전에 <작란>을 연습 중이던 배우 한 분이 다리를 다치는 일이 생겼다. 그 분의 대타로 내가 투입됐다. 그렇게 데뷔를 하게 됐다.

    극단 76과의 만남, 어땠나?
    그때 내 나이 스물넷이었다. 얼마나 젊었겠나? 그런데 연습실에 처음 갔는데 오광록 선배, 전수환 형이 나를 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꾸벅 인사를 하더라. (웃음) 엄청 늙어보였다고 하더라. 얼굴 때문에 놀림 많이 받았다. 아, 76단의 새로운 연극을 목격하면서 충격을 많이 받았다. 대사로 되어 있지 않고 시어처럼 되어 있는 텍스트, 주어진 상황을 촘촘하게 만들어가는 배우들의 힘을 마주하며 연극의 새로운 표현방식에 대해 깨우치게 되었다. 너무 좋았다.

    76단 단원이 된 건가?
    학교는 자연스럽게 그만 뒀고 어느 순간 단원이 되어 있더라. 당시에는 76단이 난파된 유람선(?) 같은 분위기였다. 그러니까 한창 때의 활동기를 지나서 뭔가 다른 길을 모색하던 분위기였던 것 같다. 정말 재밌게 놀러 다녔다. 세상을 보는 예리한 눈을 가진 괴짜 선배들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다. 공연을 많이 올리지는 않았지만 그들과 밤새 연극에 대해 이야기 했던 시간들을 잊을 수가 없다. 돌아보니 시간이 금세 후다닥 지나갔던 시절이었음을 느낀다. 오광록, 박근형, 기주봉, 이봉규, 김미준, 김은희 등등의 이름이 떠오른다. 당시 극단 연출부였던 근형이 형이 나 생긴 거 가지고 엄청 놀리기도 했지만 주민등록증 잡혀가면서 술도 많이 사줬다. 시 쓰는 거 좋아하던 광록이 형, 좋은 실험을 이어가던 기국서 선생님의 기운……. 그 좋은 무리들 속에 운 좋게 합류하게 된 것에 지금도 감사한다.


    배우에서 작,연출가로

    당시에는 배우였는데 언제부터 작가, 연출가로 전업하게 된 건가?
    배우를 하다가 다친 적이 있었다. 공황증세로 1년을 고생했다. 98년에 <지피족> 재공연을 하던 중이었다. 5분에서 7분 정도? 정신없이 긴 대사를 쏟아내는 장면이 있었는데 딱 숨이 차오르더라. 무대에서 쓰러진 거다. 기획 일과 배우를 같이 할 때였다. 스트레스도 많았고 술도 많이 마셨던 때였고.

    그 이후로 배우를 앞으로는 못하겠구나 생각하게 된 건가?
    그렇다. 극단에서도 배우보다는 조연출 등 여러 일손을 많이 필요로 했었고, 배우를 하기에 세상을 보는 자의식이 많이 생겨나면서 무대에 서기가 점점 어렵게 느껴지더라.

    작가로 데뷔는 언제 했나?
    아프고 나서 <훼미리 바게뜨>라는 작품을 썼다. 운 좋게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을 받게 되고 서울연극제에도 참가하게 됐다. 원래 소극장에서 하기로 되었는데 극장 사정상 대극장으로 옮겨지게 되면서 공연이 좋게는 안 나왔던 것 같다.

    연출가로 데뷔작은?
    혜화동1번지 동인을 하면서 올렸던 2001년 작품 <별이 쏟아지다>를 데뷔작으로 꼽고 싶다. 그 전에도 작게는 몇 편 연출을 한 적이 있지만.

    혜화동1번지 동인이었나?
    3기 동인이다. 박장렬, 송형종, 오유경, 양정웅, 이해제와 같은 기수다. 혜화동1번지, 재밌었다. 우리끼리 엠티도 많이 가고, 머리 맞대고 이것저것 해보자고 이야기도 많이 하고, 자기 작품 하면서도 행정적인 회의도 많이 하고. 2001년에 동인이 되어 5년 동안 <나의 교실> <바람아래 빠빠빠> <능동적 팽창>등의 작품을 작,연출 하고 2005년 <지상의 모든 밤들>을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바통을 넘겨줬다.


    대학로의 죽죽竹竹장수

    극단 죽죽竹竹의 대표다. 죽죽은 언제 창단했나?
    음… 76단 활동은 혜화동1번지 동인 활동을 시작하게 되면서 못하게 됐고, 원래는 76단에 남아 기국서 선생님 기운을 이어 받아서 극단을 꾸려갔어야 했는데 지금도 미안한 마음이 남아있다. 극단 죽죽竹竹은 혜화동1번지 시절에 팀을 꾸리면서 시작됐다. 2003년에 정식으로 극단이 출범한 건 2003년이다.

    극단이름을 왜 ‘죽죽’竹竹이라 지었는가?
    어린 시절 합천에서 들었던 장수이름이다. 삼국유사에도 나오는 용감하게 싸우다 죽은 죽죽장수. 그 지역 민간신앙에서는 수호신으로 여겨졌다. 연극적인 느낌으로는 대나무가 독창성도 있으면서 동시에 앙상블의 힘도 가지고 있는 점이 좋았다. 대나무는 군집생활을 하지 않는가.? 낙락장송이 아니라 함께 어울려 지낸다. 극단 작업으로 외국에 나갈 일이 있을 때 한자로 죽죽을 써서 나가면 동양권 연극의 느낌을 확실히 줄 수 있겠다는 계산도 있었다.

    아, 죽죽에서 만든 <멕베드>로 카이로국제실험연극제에서 대상을 받은 걸로 아는데, 죽죽竹竹의 이미지도 한 몫 한 것인가?
    글쎄? 그런가? (웃음) 가서 상을 받아왔지만 지금 기억나는 건 그냥 잘 놀다 왔다는 것뿐이다. (웃음) 공연을 마치고 공항으로 향하는 길에 연락이 왔더라. 너희들이 대상이라고. 상장과 트로피도 나중에 국제우편으로 받았다. 폐막식과 리셉션에도 참여하면서 공연 홍보도 좀 하고 했어야 했는데……. 당시에는 그런 일에 관심이 없었다. 좀 쑥스럽기도 하고. 뭐, 크게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고.

    공연에 대한 현지 반응은 어땠나?
    100년 된 극장에서 작품을 올렸는데 그래서 그런지 극장에서 못하게 하는 게 많더라. 불도 못쓰게 하고 물도 못쓰게 하고 못 하나 못 박게 하더라. 우리 작품은 불, 물을 다 써야 했는데, 세트 세우려면 당연히 못도 써야 했고. 못하게 하는 걸 무엇으로 대체해볼까? 고민도 하고 고생을 했는데 그런 점을 심사위원들이 높이 사줬다고 들었다.

    그동안 극단 죽죽에서의 활동을 돌아보면?
    <지상의 모든 밤들> <멕베드> <토란극> 등으로 관객과 만나왔다. 극단 외 연출 작업으로는 <기름고래의 실종> <농담>을 했었고. 속초, 춘천에서 <나무물고기> 태백에서 <명품인생 백만근>도 올렸었다.

    연출가 김낙형

  • 다시 맨땅에서 시작


    그동안 김낙형이 추구해왔던 연극은 어떤 연극이며 앞으로는 어떤 연극을 하려고 하는가?
    연극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것 같다. TV텔레비전이나 다른 매체에서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연극이 할 수 있는 이야기와 표현을 고민했었고, 고민하고 있다. 드라마는 TV텔레비전이나 영화가 더 그럴싸하게 만들지 않은가? 연극의 정치학에 관심이 많다. ‘그냥 감상 하십시오’가 아니라 관객을 생각하게 만드는, 관객과 대화 하고 있는 느낌을 갖게 하는 그런 연극?

    저 연출가 참 잘한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연출가가 있다면?
    특별하게 없다. 작품을 보면서 아, 이 작품 좋다, 하는 작품은 있는데……. 존경하는 선생님들은 몇 분 있다.

    어떤 선생님들인가?
    오태석과 기국서. 오태석 선생님의 <템페스트> 보면서 깜짝 놀랐다. 장면과 장면이 대사와 배우 행위로 쓱쓱 넘어가는 게 그게 한국인의 정신구조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단지 그림만 한국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러니까 한국적 미학의 구현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문화인류학적으로 한국인의 정신구조에 접근한 연극이라는 느낌, 새로운 경험이었다.

    탐나는 배우가 있는가?
    작품에 따라서 달라진다. 정해놓은 배우는 없다. 일단 나의 행보, 나의 실험이 어떤 방식으로 갈지 몰라서 어떤 배우와 만나게 될지 나도 잘 모른다.

    김낙형에게 연극은 뭔가?
    가장 가치 있는 것을 향해 달려가는 도전.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아, 무슨 표현을 써야 할이지 잘 모르겠다. 한 평생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나는 극장도 좋아하고 연극이 지닌 정신세계도 좋다. 다른 것은 재미가 없다. 내가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것. 한 편 할 때마다 느끼는데 할 때마다 맨땅에서 시작하는 느낌이다. 경험이 이렇게 도움이 안 되는 장르도 없을 거다. 작가와 연출, 그렇지 않나?

    경험이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그 경험을 깨기 위해 바동바동 거릴 때가 많다.
    맞다. 어렵다.
    그래서 연극이 가장 재밌다.
  • 연출가 김낙형
  • 김낙형 (연출가)

    주요작품
    연극 <생사계>,
    <민들레 바람되어>, <토란-극>,
    <멕베스>,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
    <지상의 모든밤들>, <적의 화장법>,<바람아래 빠빠빠>,
    <능동적 팽창>, <별이 쏟아지다>,<나의 교실>,
    <그 여인숙>외 다수 협력연출 <에쿠우스>, <햄릿6: 삼양동 국화 옆에서>

    수상경력
    2010년 제1회 연강예술상 공연부문
    2008년 대한민국 연극대상 작품상
    2006년 올해의 예술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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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성

김은성 극작가
극단 달나라동백꽃 대표
주요작품 <로풍찬유랑극장><뻘><목란언니><연변엄마><순우삼촌><시동라사>외 다수
본지 편집위원.
웹진 23호   2013-05-02   덧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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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둥절
잘읽었습니다. 좋은 인터뷰 항상 잘 읽고있습니다!

2013-05-03댓글쓰기 댓글삭제

메인기획
헐~ 오랜만이군...끝까지 봤네 이런공간에서 만나니 기분좋네.엣날생각도나고...

2013-05-03댓글쓰기 댓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