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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 쓰는 노동자가 되고 싶다
[김은성의 연극데이트] 작가 한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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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한현주

  • <소년이 그랬다>에 썼던 대사처럼 ‘왜 이렇게 하루가 길지?’ 삶의 허무에 빠져 우울과 권태에 시달리던 고3 여학생은 클래식 방송의 작가가 되어 그 누구의 터치도 받지 않고 라디오 부스 안에 박혀 조용히 살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97년 가을, 희곡을 쓰고 싶어 하는 선배를 따라간 국립극장에서 무대와 객석사이를 오가며 펼쳐지던 연극의 현장성에 압도된 운동권 여대생 현주는 연극 보는 재미에 서서히 빠져드는데……. 개다리소반에 삼찬이라도 좋으니 연극으로 밥 먹고 사는 게 희망이라는 <878미터의 봄>의 한현주 작가를 만나보자.
작가 한현주
  • 말의 아름다움, 청소년극의 가능성

    요즘 어떻게 지내는가?
    지난 8일에 청소년 창극 <내 이름은 오동구>가 개막했다.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를 창극대본으로 각색했다. 여자가 되고 싶은 남학생의 이야기다. 성전환수술을 받기 위해 모은 돈을 아버지가 사고 쳐서 다 날리고 씨름대회에 나가 상금으로 수술비를 마련하려고 한다는 기본 스토리는 영화와 비슷하다. 국립창극단 제작, 남인우 연출로 무대에 올랐다.

    창극 대본작업은 어땠나?
    젊은 창극단원들과 함께 준비하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아직도 창극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냐고 물으면 확신은 서지 않지만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창극에는 ‘도창’이라는 흥미로운 요소가 있다.

    도창?
    음…… 뮤지컬에서는 캐릭터가 자신의 감정이나 이야기를 주로 노래로 푸는 경우가 많다. 창극에서의 도창은 캐릭터를 설명해 줄 수도 있고, 공간을 설명해 주는 역할도 한다. 도창자가 “우리의 동구, 학교로 가보자” 하면 공간이 학교로 확 바뀌는 식이다. 도창자가 그리스 비극의 코러스장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관객들 반응은 어떤가?
    청소년 창극이니 단체로 오는 학생관객도 많고 학부모와 같이 오는 친구들도 많다. 내용적으로는 성 정체성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것이 어린 관객들 각자에게는 자신의 문제로 공유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를테면 ‘나는 하고 싶은 게 뭔가?’ 같은 고민이 많은 나이인데 그런 고민의 지점과 동구의 고민, 성장이 만나고 있는 것 같다.

    창극에 대한 반응은 어떤가?
    생각보다 재밌어 한다. 우리 소리에 대해 새롭게 재밌어 하더라.

    <소년이 그랬다> <레슬링 시즌> 등 근래 청소년극 대본작업을 많이 했는데?
    <소년이 그랬다>를 처음 각색했을 때 느낀 게 있었는데, 뭐랄까...... 직접적인 느낌이랄까? 그 또래의 친구들과 직접적으로 만나는 느낌이 들었다. 근데 사실 청소년극이라고 해서 다른 작업할 때와 다를 게 없다. 더 쉽게 써야 한다는 마음으로 써도 안 되는 거고. 청소년극은 공연 시간이 길면 안 된다. 1시간 조금 넘는 정도로 맞춰야 하는데 그러다보니 간략하고 밀도 있게 써야 한다. 작가로서 좋은 훈련이 된다. <소년이 그랬다> 작업 할 때 학생들의 일상으로 이루어지는 첫 장면을 써서 학생들에게 보여준 적이 있었는데 그 친구들이 한마디 하더라. “우리 이렇게 길게 이야기 안 해요” 좌절했었다. (웃음)

    청소년극의 의미와 가능성, 어떻게 보는가?
    그들과 만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게 있는데 요즘 학생들이 비속어 많이 쓰고 이런 걸 떠나서 아예 우리말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더라. 말과 언어가 주는 가치, 말의 아름다움, 이런 것을 전달하는데 연극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 한현주
작가 한현주
  • 라디오부스에 숨고 싶던 소녀, 무대를 보다

    언제 어디서 태어났나?
    78년에 경북 경산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때까지 그곳에서 자랐다.

    어떻게 자랐나?
    공기놀이를 좋아하던 촌아이였다. 진짜 돌을 가지고 손이 새까맣게 쓸릴 정도로 공기놀이를 했다. 문학소녀도 아니었고 밖에서 뛰어다니면서 노는 거 좋아했다. 엄마가 항상 바빴고 언니와 오빠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조금 외로웠던 기억도 난다.

    중고등학생 때는 어땠나?
    글쎄, 중학교 때 가치관을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다면 아마 속물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잘난 척도 많이 했고 잘나고 싶은 욕망, 폼 나게 살고 싶은 욕망이 강했다. (웃음)

    공부를 잘했나?
    잘했다. 6년 동안을 똑같은 여학교 건물에서 꾹 참고 지냈는데 고3때 억눌려 있던 게 터진 거지.

    어떻게 터졌나?
    그때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신 것에 영향을 크게 받았다. 사는 게 허무해지면서 우울과 권태가 오더라.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더라. <소년이 그랬다>에 썼던 대사처럼 ‘왜 이렇게 하루가 길지?’ 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 무렵 작가가 되고 싶은 마음과 만나게 된 건가?
    글을 쓰는 거? 고2때 백일장을 나가 장원을 하긴 했지만 시나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라디오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는데 그 누구의 터치도 받지 않고 라디오 부스 안에 박혀서 조용히 살고 싶었다.

    즐겨 듣던 라디오방송이?
    클래식 채널을 많이 들었다. 말이 별로 없어서 좋았다. 말없이 음악을 틀어주는 방송. 클래식 방송의 작가가 되고픈 마음에 문창과를 택해 대학에 갔다. 그런데 입학 후 선배가 그러더라. 그런 클래식 방송에는 작가가 따로 없단다. (웃음)

    문창과는 어땠나?
    시도 쓰고 소설도 써보는데 등단을 위해 목숨 걸고 쓰던 친구들에 비해서 열정도 없었다. 아직 희곡이라는 장르에는 관심도 없었을 때였다.

    대학생활을 주로 뭐하면서 보냈나?
    운동권이었다.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선배들이 모인 문학동아리에 들어가 활동을 했다. 민중문학계열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사회과학 서적들도 보면서 선후배들과 토론도 많이 하고, 작품발표회, 합평회를 하고 집단 창작시도 쓰고, 데모도 좀 하러 다니고……. 근데 이런 거까지 물어보는 인터뷰는 처음 본다. 나도 인터뷰어 진짜 많이 해봤는데.

    아, 그랬나?
    학교 다닐 때 잡지 쪽에 진출한 선배들이 던져주는 인터뷰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다. 10년 전 쯤, 별의별 잡지의 인터뷰어로 온갖 사람들을 다 만나고 다녔다. 한 때 보험신문에서 전국의 보험왕들을 만나고 다닌 적도 있었다. 그들의 인생역정 정말 재밌었다. 치과에서 내는 사보에 건치 예술가로 뽑힌 박정자 선생님 인터뷰를 한 적도 있었다.

    재밌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인터뷰는?
    첫 번째 인터뷰였던 건축가 승효상 선생님. 벌벌벌 떨어서 선생님이 내 긴장을 풀어주려고 오히려 애써주셨다. 지금 생각해도 고맙고 떨린다.

    연극에 대한 관심은 언제부터 갖게 됐나?
    희곡을 쓰고 싶어 하는 동아리 선배를 따라서 공연을 보러갔던 게 시작이었다. 97년 가을이었을 것이다. 국립극장에 내한공연을 온 루마니아 국립극단의 <페드라>를 보러갔다. 미이라 분장을 한 배우가 객석 사이를 계속 오고 가고 있는 모습이 충격적이었다. 무대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걸 느꼈던 거다. 대학로에 가면 국내 창작극을 볼 수 있다고 해서 그때부터 공연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창작자와 수용자가 무대와 객석을 통해 직접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현장성이 놀랍더라. 박근형 연출의 작품을 좋아하게 되면서 더더욱 연극 보는 즐거움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박근형의 작품은 뭐가 좋던가?
    박해일이 나온 <청춘예찬>을 봤는데 보고 있을 때는 잘 몰랐다. 뜨겁고 거칠다는 느낌 정도 였는데…… 그런데 자꾸 생각이 나더라. 생각이 나니 또 보고 싶고.

    그러면서 희곡을 쓰고 싶은 마음이 생겨난 건가?
    그렇다. 희곡창작실습 시간의 습작을 시작으로 희곡을 쓰기 시작했다.
    연우무대에서 운영하는 창작워크숍에 참여해서 희곡공부를 하다가 연극원 극작과를 알게 되어 연극원 전문사에 들어가게 됐다.


    작가 한현주
작가 한현주
  • 코끼리만보와의 만남

    연극원에서의 시간은 어땠나?
    친구들과 만나는 게 즐거웠다. 지금 작가,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김덕수, 동이향, 손원정 등과 자주 어울렸다. 그런데 희곡쓰기 시간은 사실 너무 괴로웠다. 밥도 안 넘어가고 술도 안 넘어가고.

    희곡쓰기 시간은 왜 그렇게 괴로웠을까?
    일대일 수업이 가진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는 것 같다. 선생님과 한번 소통이 막힌다고 생각되면 정말 숨이 턱턱 막혔다. 이해받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 때 정말 슬프더라. 몸이 원래 마른 체질이라서 체중 변동이 별로 없는데 4,5킬로그램이 빠졌다. 정말 해골처럼 변했다. (웃음)

    그 기간, 어떤 작품을 썼나?
    졸업 작품으로 남긴 <가문비>라는 작품이다.
    작년에 공연한 <878미터의 봄>도 그때 썼던 <가문비>에서 비롯된 작품이다.

    졸업 이후에는 어떻게 지냈나?
    매우 힘든 시간을 보냈다. 경제적으로도 그렇지만 내 정체성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과 불안.
    작품이 무대에 올라갈 기회는 오지 않고…… 외롭기도 외로웠던 것 같다. 2년 정도 그렇게 보냈다. 마침 일산으로 이사를 가서 친하게 지내던 이들과도 떨어져 있던 터라 더욱 그랬다.

    데뷔작은?
    2009년에 <그 샘에 고인 말>이다. 그 전에 <착한사람 조양규>를 보러갔다가 김동현 연출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 인연으로 재공연 할 때 공동구성 작업에 참여하게 됐고 <그 샘에 고인 말>도 김동현 연출의 극단 코끼리만보의 작품으로 무대에 올리게 된 거다. 그 과정에서 이연규, 염혜란 같은 좋은 배우들을 만나게 됐고 극단 코끼리만보에도 들어가게 됐다.

    데뷔작을 올린 소감은 어땠나?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내가 쓴 공연이 무대에 올라가면 민망하다. 부끄러움은 아닌데, 음…… 설렘? 아니 민망함이다.

    극단 코끼리만보 분위기는 어떤가?
    단원들이 워낙 조용한 분들이라 극단도 조용하다. (웃음) 이연규, 백익남, 성여진, 이미지, 모두들 조용하고 착한 분들로 알려져 있지 않은가? (웃음) 그런데 신입단원들이 좀 들어왔다. 요즘은 새로운 활기가 넘친다.

    극단에서 준비하고 있는 작품은?
    <말들의 무덤>이라고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을 모티브로 해서 죽음과 죽음을 기억하는 방식을, 우리가 어떻게 기억하는가를 관객과 나누고 싶은 작품을 준비 중이다. 가장 중요한 모티브는 민간인 학살 증언록이다. 공연 참가자들이 증언 기록들을 리서치하고 그것을 발표하고, 몸으로 표현해 보기도 하고, 일종의 공동창작 방식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 작가 한현주


    연극? 글 써서 짓는 밥

    <그 샘에 고인 말> 이후에는 어떤 작품을 발표했나?
    김한내 연출과 <우릴 봤을까?>, 류주연 연출과 <878미터 봄>을 무대에 올렸다.

    작품이 작가가 의도한 대로 성에 차게 나왔나?
    <우릴 봤을까?>는 김한내 연출도 데뷔작이어서 되게 열심히 만들었고, 연출의 개성과도 잘 만나졌던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좋은 작업으로 남아있다. <878미터의 봄>은 제작이 조금 급하게 진행되면서 조급한 상황과 마음에서 연출과 서로 조심스러워 하다가 소통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앞으로 만나고 싶은 연출가 있다면?
    작가는 잘 맞는 연출을 만나는 게 쉽지는 않다. 어떻게 연출을 만나야 할까도 고민이 된다. 작업을 해보고 싶은 연출가는 김낙형, 이성열, 박해성이다.

    작품에 초대하고 싶은 배우가 있다면?
    극단 작은신화의 정선철. 즉물성이 생생한 배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함께 출연하고 있는 배우에 대한 생각과 배려도 뛰어난 배우다. 똑똑하고 너무 분석적인 배우들보다 나는 그런 배우들에게 매력을 느낀다.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면?
    연극공부 처음 했을 때는 희곡의 그 빛나는 문학성 때문에 최인훈 선생님! 그리고 체홉. 그 작가의 작품 세계를 다 이해했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말할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할 수밖에 없는 작가가 체홉이다.

    구상중인 차기작은?
    치매노인의 이야기다. 이미 중증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치매 초기 진단을 받은 할머니가 관찰하는 이야기다. 자신이 견뎌내야 할 것에 대해서 준비하는 할머니의 이야기다.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가?
    정갈한 작품을 쓰는 작가.

    한현주에게 연극은 뭔가?
    연극? 희망으로는 밥이 됐으면 좋겠다. 나는 글 쓰는 노동자가 됐으면 좋겠다. 그 밥이 풍성한 밥이 아니라 개다리소반에 삼찬이라도 됐으면 좋겠다. 건실하게 계속 쓰고 싶다. 스스로의 속물성을 계속 자각하고 성찰하게 만들어주는 것. 나에겐 그것이 연극이다.
  • 작가 한현주
  • 한현주 (극작가)
    주요작품
    작 <그 샘에 고인 말> <우릴 봤을까?> <878미터의 봄>
    각색 <소년이 그랬다> <레슬링 시즌>
    공동구성 <착한 사람, 조양규>
    공동극본 <내 이름은 오동구>
    수상 제1회 벽산희곡상 <878미터의 봄>
    CJ영페스티벌 연극부문 최우수작품상 <우릴 봤을까?>

태그 한현주, 코끼리만보, 소년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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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성

김은성 극작가
극단 달나라동백꽃 대표
주요작품 <로풍찬유랑극장><뻘><목란언니><연변엄마><순우삼촌><시동라사>외 다수
본지 편집위원.
웹진 26호   2013-06-20   덧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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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남수
김은성 작가님.염혜란,이연규 배우를 인터뷰해주세요

2013-06-22댓글쓰기 댓글삭제

김은성
네, 요청 감사합니다. 편집회의 때 긍정적으로 반영되었습니다^^

2013-06-28댓글쓰기 댓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