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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곡면 밤길을 비추는 산수유자리
[김은성의 연극데이트] 연출가 류주연

김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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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화 『유리가면』으로 연극과 처음 만난 초등학생은 세계문학전집 사이에서 발견한 셰익스피어를 들고 또래들과 리딩 소꿉놀이를 하며 무대를 향한 꿈을 키운다. 번번이 빗나가는 연극과의 인연, 그러나 10년 넘게 이어진 뜨거운 짝사랑은 경남 창녕군 길곡면에서 마침내 붉은 열매로 결실을 맺는다. 이후 <기묘여행>을 출발로 최근의 <니나>까지, 작지만 뜨겁고 매운 연출의 맛을 옹골지게 보여주고 있는 극단 산수유의 류주연 대표를 만나보자.

    연출가 류주연


    연출가의 요리론

    봄부터 가을까지 연이어 공연을 올려왔는데, 요즘은 어떻게 지내는가?
    모처럼 쉬고 있다.

    어떻게 쉬고 있는가?
    글쎄…… 따지고 보니 쉬고 있는 것도 아니다. 요즘 극단 후배들이 워크숍 공연과 개판연극제라고 올해 2년째를 맞이하는 저예산 연극제 참여 작품을 연습 중인데, 극단 대표니까 이런 저런 참견하러 다닌다.
    (웃음)

    그래도 모처럼 공연과 연습에서 해방되어 있는 시간일 텐데 본인만의 충전법이 있다면?
    특별한 것은 없고, 독서와 요리? 그동안 아껴뒀던 책을 본다. 작업 중에는 손에 안 잡히던 책들을 선물처럼 만난다. 책상에 쌓여있던 책들을 읽을 수 있을 때 기분이 좋다. 요리는 오래된 취미다.

    요즘에 보는 책은?
    『피로사회』로 잘 알려진 한국 출신의 독일 철학가 한병철이 쓴 『시간의 향기』를 읽고 있다. 『피로사회』와 『시간의 향기』 모두 추천하고 싶다.

    가장 자신 있는 요리는?
    닭갈비.

    닭갈비를 집에서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맛이 궁금하다.
    맛은…… 글쎄, 나는 담백하게 맛있는데 너무 싱겁다고들 하더라. (웃음) 요즘은 닭살을 마트에서 파는데 전에는 팔지 않았다. 생닭을 사서 뼈에서 살을 바르는 작업이 만만치 않았었다. 뼈에서 살을 바르고 있을 때 아무 생각 없이 그 일에 집중하게 되는 그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아무 생각 없이 무엇에 빠져드는 순간을 좋아한다. 결혼하기 전에는 그런 이유로 춤과 수영을 즐겼다. 춤을 출 때와 물속에 있을 때 잘 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요즘 나에게는 요리가 그런 시간을 준다. 요리는 연출 작업에 있어 위로의 호흡을 준다.

    요리가 연출가를 어떻게 위로해 주는지 궁금하다.
    요리는 연극처럼 시작과 끝이 딱 정해져 있다. 먹으면서 그 맛으로 보상이 된다. 노력을 기울인 만큼 결과가 정확히 드러나는 단순노동이다. 구두닦이, 바느질 등과 비슷한 일인 것이다. 연출하면서 애쓴 노력과 에너지만큼 작업 결과물에 대한 만족도가 낮은 편이라 시작과 끝이 확실하고 그 보상이 정확한 요리는 연출 작업이 남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데 좋은 기운을 준다.

    연출가 류주연


    선인장에서 별자리까지

    올해 연출한 작품을 돌아보면?
    5월에 <주머니 속 선인장>을 설치극장 정미소에서 올렸고, 7월에는 아르코소극장에서 <동물 없는 연극>을 재공연 했고, 10월에는 선돌극장에서 <니나>로 관객과 만났다.

    <주머니 속 선인장>을 돌아보자면?
    연출적으로 아쉬움이 남는 작업이었다. 연습과정이 쉽지 않았다. 걱정했던 것 보다는 결과가 썩 나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조금 마음고생을 했던 작업이었다. 연극을 정면으로 다루는 작품이라 연극하는 사람인 나의 모습이 현재진행형으로 겹쳐지면서 스스로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하게 됐던 작업이었다. 극중에 배우들 앞에서 연출이 미안하다고 막 우는 장면이 있는데 실제로 그런 일이 생기기도 했었다. (웃음)

    <동물 없는 연극>은 재공연이었는데?
    그래서였는지 굉장히 편하게 했다. 배우들하고의 소통에서도 작년에 어려웠던 부분들이 올해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재공연의 긍정적인 요소가 작용된 것이 다행이었다. 서로서로 소통이 편하게 되면서 재밌게 만들었다.

    <니나>와는 어떻게 만났나?
    작가 미셸 비나베르Michel Vinaver, 프랑스 작가는 사회비판적인 글을 많이 쓰는 작가로 알려져 있는데 정작 그는 “사실 나는 사회를 그냥 보는 거다. 선동하기 보다는 말을 쓰려고 한다. 말이 중요하다.” 라고 말하는 작가인데 작품을 분석하다 보니 그의 말처럼 사회비판을 목적으로만 쓴 작품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정말 말을 재미있게 구사하는 작가다. 그는 또 “내가 선동을 한다? 그런 개념이 아니라 연극이라는 것은 균열을 내는 것이다. 넋 놓고 살아가는 사람, 사회에 대해 균열을 내는 것이다.” 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그의 생각에 적극적으로 동감을 했다. 선동이 최종적인 목표가 되어서는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선동은 관객들의 마음에 균열을 주는 작품이 아닐까! 그런 믿음으로 작업에 임했다.

    결과는 만족스러웠나?
    극단 백수광부의 삐딱한 사회극 시리즈로 올라간 작품인데, 아직 사회극적인 부분이 미진하다는 평도 들었지만…… 글쎄, 다시 공연을 할 기회가 생기면 부족한 면을 채울 수 있을까? 뭔가 조금 더 나아지기는 할 것 같다.

    차기작으로는 어떤 작품들을 준비하고 있는가?
    내년 2월에 있을 한일교류 낭독공연에서 한 작품을 맡게 됐는데 아직 작품은 미정이다. 5월에는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콘스텔레이션>constellation, 별자리이라는 작품을 올릴 예정이다. 그 이후에는 가을에 극단 정기공연을 준비하는 일정이 될 것이다. 그 사이에 <니나> 재공연이 올라 갈 수도 있겠다.

    <콘스텔레이션>은 어떤 작품인가?
    영국의 젊은 작가가 쓴 2인극으로 평행이론에 대한 작품인데 아름답다. 천문학자와 양봉업자의 사랑이야기다. 굉장히 연극적이면서도 새로운 형식의 희곡이다. 최광일, 주인영 배우를 캐스팅 한 상태다.
연출가 류주연
  • 연출가 류주연


    기어코 만든 연극과의 인연

    연극과는 언제 어떻게 처음 만났나?
    만화책 『유리가면』으로 처음 만났다. (웃음) 초등학교 6학년 올라가는 겨울방학 때 태어나 처음 읽은 만화책이 『유리가면』이었다. 그때까지 연극을 본 적은 없었고 집 책장 속에 있던 세계명작전집 중에서 셰익스피어 희곡을 본 적은 있었다. 친구들이 놀러오면 배역을 정하고 리딩을 하며 놀았던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땐가? 학예회에서 연출 겸 배우를 했던 기억도 어렴풋하게 남아있다.

    연극을 하겠다는 마음은 언제 생겼나?
    글쎄…… 조금 신기하다. 특별한 경험도 없었고, 연극과의 인연은 계속 빗나가기만 했는데도 중학생 때부터 커서 연극을 하겠다는 마음을 줄곧 가지고 있었다. 숭의여중을 다녔는데 여고에는 있는 연극반이 여중에는 없었다. 여고에 올라가면 연극반에 들어가야지 마음을 굳게 먹고 있었는데 연극반이 없는 학교로 진학하게 됐다. 대학가면 연극반 들어가야지 했었는데 어쩌다보니 탈(춤)반에 들어가게 됐다. 대학 졸업 후에 연극전공으로 대학원 시험을 봤지만 모두 떨어졌다. 그렇게 연극과는 인연이 없었다.

    그래도 연극을 하겠다는 마음을 놓지 않았나?
    그렇다. 연극에 대한 아득한 꿈이 있었다. 처음에는 연기자가 되고 싶었다. 지금 돌아보면 참 바보 같은 생각인데 배우는 예뻐야 되는 줄 알고 배우보다는 연출을 해야 한다고 마음을 먹었다.

    연극과의 인연은 어떻게 만들었나?
    서점에 가서 월간 [한국연극]을 샀다. (웃음) 내가 연극과 접근 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서점에 있는 연극 책들이었다. [한국연극]에 실린 ‘김동수 액터스쿨’ 광고를 보고 그곳에 들어가게 됐다. 몇 달간 교육을 받은 후 졸업공연 때 이현화 작가의 <0.917>에 출연하게 됐다. <0.917>은 꼬마 애한테 쩔쩔매며 농락당하는 어른에 대한 이야기인데 당시 시대상을 꼬집는 아주 멋진 우화다. 그 작품에서 일곱 살짜리 꼬마 역할로 출연 했었다. 40대 어른은 이진순 선배가 했었고. 백수광부 이성열 대표가 당시 초빙연출로 왔었다.

    극단 백수광부와의 인연은 그때 시작된 건가?
    그렇다. 얼마 후에 이성열 선배가 백수광부를 만들었는데 그때 창단멤버로 함께하게 됐다. 창단공연 <햄버거에 대한 명상>에 배우로 출연했다. 그 이후로 3년은 계속 배우를 했다. 내가 연출에 대한 꿈이 있음을 극단에서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배우 겸 조연출을 많이 했다.

    그 3년 동안에 출연한 작품들은?
    <굿모닝 체홉> <판도라의 상자> <파티> 등이 생각난다. <판도라의 상자>를 했을 때 칭찬도 많이 받았다. (웃음) 내가 모르는 사람인데 나를 알아보는 사람(관객)을 만나는 경험도 새로웠고…… 재밌었다. 나, 연기 좀 하는데, 누가 캐스팅 안하나? (웃음)

    배우에 대한 미련은 없었나?
    왜 없었겠나? 하지만 아직 가보지 않은, 가보고 싶은 길에 대한 욕심이 더 강했다. 연출을 하고 싶었다. 그 즈음 이성열 대표에게 “너, 배우를 하려면 더 열심히 닦아야 하고, 연출을 하려고 해도 더 배워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선택의 시간이 다가왔던 것이다. 연출을 하고 싶었다.

    연출 공부는 어떻게 했나?
    공연예술아카데미에 연출전공으로 들어갔다. 스물아홉에 연극 공부를 제대로 하게 된 것이다. 연출 수업을 혹독하게 받았다. 섬세하고 감성이 풍부한 동기 배우들 때문에. (웃음) 연출을 힘들게 하기는 하지만 나는 그런 배우들이 좋다. 그 예민한 섬세함이 결국은 무대에서 매력으로 전환된다. 나는 미세한 떨림이 있는 작품들을 좋아하는데 그런 배우의 섬세한 일상이, 그 감수성이 그런 작품의 인물을 만났을 때 빛을 발하더라. 대표적인 친구가 동기인 배우 김선영이다.

    그 시절, 가장 크게 배운 게 있다면?
    중학생 때부터 10년 넘게 짝사랑했던 연극인데…… 막상 연극에 뛰어든 후, 그 애정이 3년 만에 딱 깨지더라. 내가 맨 처음 연극판에 뛰어들 때 있었던 이유, 그게 없어졌다. 돈이 없어도 행복하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곳이라고 믿었는데 생각과는 달랐다. 공연예술아카데미에서 그런 상처받은 마음을 다시 회복할 수 있었다.

    무엇이 회복할 수 있는 힘을 주던가?
    다시 연극에 대한 신성함을 갖게 됐다. 예수정, 강신일, 한상철, 이런 선생님들 덕이 컸다. 그들을 보면서 무엇을 하고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행복함을 느낄 수 있구나.

    졸업 이후에 대학로에는 어떻게 복귀했나?
    백수광부에 돌아와서 워크숍 공연의 기회를 얻었다. 까뮈의 <오해>를 올렸는데 완전히 망했다. (웃음) 6개월간의 슬럼프 이후에 재정비를 했다. 데뷔는 정보소극장에서 백수광부 정기공연 <쓰러질 때까지>로 했다.

    연출가 류주연
연출가 류주연
  • 길곡면에서 맺은 산수유

    류주연이라는 이름을 각인시킨 작품은 <경남 창녕군 길곡면>이다. 그 작품과는 어떻게 만났나?
    나 역시 진정한 데뷔작품은 <경남 창녕군 길곡면>이라 생각하고 있다. 원작 희곡 <오버외스터라이히>를 읽고 음미하는 시간이 길었다. 이전에도 공연이 두세 번 됐던 적이 있는 작품이었는데 나는 조금 다르게 공연을 해보고 싶었다. 번역하셨던 이정준 선생님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번안하는 게 좋을 거라는 그분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됐다. 희곡에도 ‘사투리를 쓰라’는 작가의 주문이 있었던 터라 지역적인 특성을 살려 우리이야기로 번안을 하게 됐다.

    작품의 어떤 점이 동시대 관객들의 호응을 얻어낼 수 있었을까?
    자본주의, 돈에 대한 공감이다. 원작이 자본이 가지고 있는 모순성이 현실적으로 드러나던 시기의 독일사회를 그리고 있는데 그 지점이 지금 우리사회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오늘날 우리가 부유해지기 위해서, 돈을 위해서 맞바꿔야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게 바로 ‘인간다운 삶’이다. 뭔가 더 풍부해졌는데, 풍족하지만, 인간의 기본적인 행복감은 사라지고 있는 시대 아닌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고가는 소통이 주는 행복이 있는데 이제 그 행복이 돈을 계산하는 수지타산 앞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가 관객들의 공감을 얻어냈을 것이다.

    출세작 이후, 연출행보가 거침없이 이어졌는데?
    <기묘여행> <마지막 여행> <양철지붕> <878미터의 봄> 등을 연출했다. 돌아보니 역시 <878미터의 봄>이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연출을 소극장에서만 해봤던 게 한계였다. 실패 덕분에 많이 배웠다. 그 전까지는 내용에 집착했었는데 형식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하는구나. 그릇을 잘 알아야 한다. 그릇을 잘 알아야, 내용을 훼손하지 않을 수 있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연출을 10년 넘게 하고 있는데 할 때마다 새삼 새롭게 느낀다.

    극단 산수유는 언제 만들었나?
    2009년에 창단했다. 처음에는 두세 명으로 시작했는데 신기하게도 지금까지 잘 왔다. 처음부터 함께 했던 신용진, 나랑 동갑인데 연극은 훨씬 선배인 이현경, 스물다섯 먹은 막내 홍현택까지…… 단원이 벌써 열일곱 명이나 되었다.

    극단은 어떤 의미인가?
    한마디로 정의를 내리기가 힘들다. 음…… 독고다이로 잘 나가는 프리랜서는 극단 활동을 안 한다. 무엇인가 부족한 사람들이 모여 극단 활동을 같이 한다. 으쌰, 으쌰!

    연출가 류주연


    부조리, 연극을 하게 만드는 힘

    좋아하는 배우는?
    김선영. 지성과 감성을 겸비한 배우다. 분석력과 뜨거운 마음이 조화롭게 잘 이뤄진 배우다. 그런 남자배우로는 최광일 선배.

    좋아하는 작가는?
    프리드리히 뒤렌마트Friedrich Dürenmatt, 스위스 극작가. 아주 심각한 이야기를 아주 유쾌하게 묘사할 수 있는 그 경쾌함이 좋다.

    닮고픈 연출가가 있는가?
    열정으로는 이성열 연출. 연극을 바라보는 열정, 연극판을 읽어내는 열정, 연극판에 좋은 기류를 만들어내려는 열정이 존경스럽다. 감성으로 따지면 김동현 연출이 좋다. 인간적인 따뜻함. 작품 하나하나를 사랑하는 모습이 좋다.

    연극하면서 가장 행복할 때는?
    내가 생각한 것과 배우의 생각이 일치했을 때, 그 공감이 이루어졌을 때, 어떤 배우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데 나의 해석이 바로 그 것일 때. 그 때 굉장한 쾌감이 있다.

    류주연에게 연극은 뭔가?
    까뮈가 인간은 부조리하기 때문에 예술을 한다고 했다. 모든 사람은 예술을 하고 싶어 한다. 인간이기 때문에. 나도 인간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부조리함이 나에게 예술을 하게 만들고 있을 것이다. 나는 한명의 부조리한 인간으로서 연극을 하며 산다. 연극의 틀 안에서, 나는 그 안에서 살고 있다.
  • 연출가 류주연
  • 류주연 (연출가)

    수상경력 2011년 제47회 동아연극상 신인연출상 수상
    주요작품 <니나> <주머니 속 선인장> <양철지붕>

    <동물 없는 연극> <878미터의 봄>
    <마지막 여행> <기묘여행>
    <경남 창녕군 길곡면> 외 다수

태그 연출가 류주연, 극단 산수유, 경남 창녕군 길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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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성

김은성 극작가
극단 달나라동백꽃 대표
주요작품 <로풍찬유랑극장><뻘><목란언니><연변엄마><순우삼촌><시동라사>외 다수
본지 편집위원.
웹진 35호   2013-11-07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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