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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극은[괄호]다
[김은성의 연극데이트] 연출가 김철승

김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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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연 중에 수시로 무대에 올라 배우에게 귓속말을 하는 연출가가 있다. 그에게 물었다. 당신의 연극은 연극 같기도 하고 연극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가 되물었다. 내 연극은 차남의 연극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이후로 장남이 결혼해서 애 낳고 잘 살고 있으니 다른 연극을 하는 차남이 있는 것도 당연한 것 아닌가? 극연구소 마찰의 김철승 대표를 만났다.

    연출가 김철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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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가 김철승
  • 영원한 침대, 불면에 대한 연구

    어제 <영원한 침대> 공연이 끝났다. 소감이 어떤가?
    LIG 문화재단의 레지던스 작가로서 마지막 작품이어서 어떤 부담도 있었지만 딱히 총체적 결과물을 내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다. 2년 동안 고민을 많이 해왔고 이번에도 이런저런 실험을 해봤다. 그중 하나가 경험이 많지 않은 젊은 배우들과 함께 일을 하는 것이었는데 염려했던 것보다 배우들이 잘해줘서 좋았다. 굉장히 만족스런 연구가 되어서 기쁘다.

    무엇에 대한 연구였나?
    불면에 대한 연구라고 할 수 있을까?
    내 연극은 조금 독특하다. 나는 배우들과 함께 완성한 파편화된 텍스트와 복잡한 플롯들을 매회 즉흥적으로 재편집해서 공연하는 방식을 통해 그 순간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상황과 감정을 포착해 내는 작업을 하고 있는 연출가다.
    이번 작업은 일상에서 쉽게 겪게 되는 불면을 소재로 영원성을 얘기하고 싶었다. 불면의 해답인 잠에 들 수 있는 마지막 순간, 갑자기 선택을 망설이게 되는 네 명의 배우들의 감정변화와 몸부림을 세밀하게 그려내고자 했다. 잠으로 상징화된 영원이라는 것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면 과연 당신은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인가? 이 질문을 가지고 관객과 만났다.

    불면, 잠, 영원성, 다소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어떻게 무대화 했나?
    베개, 의자, 코트, 세 개의 오브제를 두고 매 회 다른 오브제로 무대를 출발시켰다.
    의자는 기다림, 너를 기다리는 것. 코트는 정체성, 내 소리와 내 냄새를 숨겨놓고 있는 것. 베게는 물리적으로 잠을 자기 위한 최소단위... 공연을 계속 하면서 배우들이 의미를 만들어 가더라.

    이번 작품의 발상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침대, 불면, 잠...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것만을 매우 명확하게 드러내고 싶지는 않았다. 불면을 겪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은데, 불면... 잠만이 아니라 어떤 상태에 대한 불면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했다. 회사생활의 불면, 부모님 관계와의 불면 등등... 잠의 불면뿐만이 아니라 어떤 불면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게 완벽한 잠이라고 생각했다.
    완벽한 잠을 못자는 이유가 결국은 사람, 관계의 문제일 텐데... 우리는 영원한 침대 앞에 섰을 때 과연 그렇게 원하던 잠을 선택할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

    피아노와 기타의 즉흥연주가 좋았다는 평이 많은데?
    작곡가 이상욱, 기타리스트 유현욱. 둘 다 극연구소 마찰과 공연을 해봤던 친구들이다. 공연을 준비하면서 이번에는 음악이 그냥 음악이 아니라 캐릭터로 공연에 들어가면 좋겠다는데 공감을 했다. 덕분에 무대가 풍성하게 채워졌다.
  • 연출가 김철승


    차남의 귓속말

    극연구소 마찰의 연극은 주로 신체즉흥극이라 불린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거 마음에 안 든다. 그게 아닌데... 그럼 내가 하는 게 뭔가?
    즉흥을 하긴 하는데... 온전히 즉흥극이라고 하기도 그렇고, 온전히 신체적이라는 극이라고 하기에도 그렇고... 그나마 가장 가까운 말이 즉흥과 신체라서 신체즉흥극이라 쓰기는 하는데. (웃음)

    공연을 보고 있을 때 이 게 연극 같기도 하고 연극이 아닌 거 같기도 할 때가 있다.
    그렇게 보이려고 의도하는 작업은 아닌지?

    그냥 나는 한 순간에 허벅지를 딱 치는 순간이 분명히 있는데, 그것이 예상하지 않는 순간에 많이 나오더라. 바로 그걸 연극으로 해보고 싶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이후로 드라마를 보고 감정을 느끼고 그 드라마틱함에 눈물을 흘리는 연극들... 물론 좋다, 재밌다. 그러나, 그런데 뭐 딴 게 있지 않을까? 뭐라 정의를 내리기는 참 힘들지만 내가 하고 싶은 연극을 하다 보니 이런 연극을 하고 있는 거다. 이를테면 차남의 여유다. 장남이 결혼해서 애 낳고 잘 살고 있으니 차남은 딴 걸 해보자. 그런 거다.

    그 차남의 연극이라, 결국은 어떤 연극을 의미하는가?
    내러티브를 설정을 하고 가는 게 아니라 관객들이 스스로의 내러티브를 만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니까 관객들이 스스로 내러티브를 만드는 연극을 의미할 것이다. 연극을 하는 우리는 오늘은 이렇게 가고 내일은 저렇게 가더라도 관객들은 알아서 내러티브를 만들어 간다. 나는 그게 재밌었다. 이것저것 하다가 결국 그걸 찾게 된 거다.

    김철승 연극의 여러 독특함 중에서도 가장 큰 특징은 공연 중에 연출가가 무대에 직접 올라간다는 점이다. 무대에 올라가 배우들에게 귓속말을 하는 이유는 뭔가?
    음... 연극을 하면서 정말 짜릿짜릿하고 좋은 순간들이 많다. 물론 공연의 짜릿한 맛이 있다. 구질구질하게 연습을 하다가 공연으로 올라가면 그것도 멋있고 좋다. 그러나 나는 연습 할 때 좋은 순간들과 더 많이 만났다. 언젠가 연습 중에 배우에게 귓속말로 디렉션을 준 적이 있었는데 그 순간이 너무 소중하게 다가왔다. 연극이라는 게 공연으로 올라가면 포장 단계를 거치는데 그 포장 단계라는 게 불량품도 그냥 괜찮은 걸로 만드는 단계까지 포함이 되어 있더라. 그래서 그 단계를 안 거쳐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됐었다. 일본 부토 워크숍과 피나 바우쉬 움직임 워크숍을 거치면서 그냥 자연스럽게 내가 무대에 올라갔었는데 계속 하다 보니 지금까지 이렇게 오게 됐다.

    배우들에게 주로 어떤 귓속말을 하는가?
    “너 오늘 왜이래?” “너 오늘 처졌어.”는 절대 못 한다. (웃음)
    어제 공연에서 기억나는 말은 “물 마실래?” “대답 하지 마. 우리 안을까?” “춤출래?”

    연출가 김철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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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가 김철승
  • 미국에서 만난 의자 세 개

    연극과는 언제 처음 만났나?
    초등학교 4학년 학예회 때 <이수일과 심순애>에서 변사를 했다.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 ‘눈물 젖은 두만강’ 노래를 틀어놓고 “아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떠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로는 연극에 별 관심이 없었다. 책 읽고 혼자 상상하는 걸 좋아했다. 그러다보니 철학과에 들어가게 됐다.

    연극과 다시 만난 건 언제?
    대학 1학년 때 철학과 행사를 하는데 선배들이 연극을 한번 해보라고 하더라. 윤정선 작가의 <혹시 꽃이>라는 작품을 갑작스럽게 연출하게 됐다. 달랑 조명 네 대 가지고 했는데 너무 재밌었다. 이후에 밀란 쿤데라의 소설 <이별>을 각색해서 연극으로 만들기도 했었고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를 각색해서 연출하기도 했다. 졸업을 앞두고 내가 회사를 잘 다닐 놈은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더라. 나는 뭐하고 살까? 28년 동안 살아온 삶을 쭉 돌아보게 됐다.

    연극을 하며 살기로 방향을 잡은 건가?
    그렇다. 연극을 하긴 할 건데 딱 지금 밖에는 못하는 게 뭐가 있을까? 일단 여기를 벗어나보자, 다른 곳으로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유럽으로 가볼까? 여기저기 리서치를 하다가 결국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됐다.

    미국 어디로 갔는가?
    미국 UCLA에 개강 전날 도착했다. 반년 동안은 말을 못 알아들었다. 도무지 숙제가 뭔지 알 길이 없었다. 언어도 못하고 연극경험도 없는 놈인데... 분위기가 살벌하더라. 숙제가 뭔지 가르쳐주지도 않고. (웃음) 우리나라 선후배 개념은 전혀 없는데 그네들도 어떤 서열이 존재하더라.

    어떤 서열이었나?
    실력. 무조건 실력이었다. 한번은 교수님이 대놓고 이야기를 해주시더라. 사람들이 너에게 몰려오게 해야 한다.

    몰려오게 만들었나?
    김아정 교수님이 영어로 번역한 오태석 선생님의 <태>를 만나게 됐던 게 행운이었다. 북 치고 장구 치고, 소리하는 분 모셔 와서 공연을 잘 마쳤다. 학교 학생들에게 스캔들을 일으켰다. 공연이 끝난 후에는 1년 넘게 말 한마디 걸어오지 않던 학생들이 먼저 인사를 해오더라. 조금 씁쓸하기도 했다.

    졸업은 잘 했나?
    그렇다. 졸업 후에는 미국, 폴란드, 프랑스 출신의 친구들과 연극 보여 줄 테니 의자 세 개만 줘, 라는 의미로 ‘Three Chairs’라는 극단을 만들어 공연을 올렸다. 직접 쓰고 연출한 우리말로 하면 <왜 이런 촌극이?>라는 작품인데 셰익스피어의 <리어왕>과 베케트의 <엔드게임>을 섞어서 만든 연극이었다.

    의자 세 개의 극단은 언제까지 계속 되었나?
    졸업 후 7년을 함께 했다. 문득 이제 다른 곳으로 떠나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Three Chairs’ 친구들에게 “우리 극단을 없애지 말자. 언젠가 다시 만나자.”고 하고, 어디로 갈까? 폴란드로 갈까?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곳으로 바로 갈 수는 없는 상황이었고 어쩌다보니 한국으로 들어오게 됐다. 이런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다시 돌아왔을 때 한국에는 정말 아무 것도 없었다. 2008년 9월이었다.

    다시 어디로 떠나지 않고 한국에 머문 이유는?
    은사님께 인사를 드리러 갔더니 그러시더라. “이제 너도 나이가 든다. 어디로 가도 좋지만, 너의 베이스캠프를 정해야 한다. 베이스캠프를 지금은 일단 한국으로 해라.” 그 말씀에 수긍이 가더라.

    적응은 잘 됐나?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10년 만에 돌아온 한국은 많이 낯설었다. 이방인 같은 느낌이었다. 사실 지금도 그렇다. 그 기분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연출가 김철승


    • 마찰, 끊임없는 실험의 힘

      한국으로 돌아온 직후의 활동은?
      오태석 선생님을 찾아가 뵀다. 이런저런 말씀을 드렸더니 나를 가만 보시더니만 목화 단원들과 함께 워크숍을 해보라고 하셔서 깜짝 놀랐다. 보들레르의 산문시 <각자 자신의 쉬메르를>을 가지고 움직임 워크숍을 했었다. 재밌는 경험이었다.
      이후에는 ‘논도어:Non-Door’ 라는 팀을 결성해 서울역 구청사에서 공연을 올렸다. <나는 내가 없던 시간에 대해 무지하다>라는 작품이었다. 극연구소 마찰 탄생의 발판이 된 작업이었다.

      극연구소의 이름을 마찰이라 붙인 이유는?
      음... ‘나는 이제 허공에 뜬 형이상학에서 내려와 맨발로 거친 땅을 걷고 싶다. 마찰을 느끼며 거친 땅을 걷고 싶다.’ 어딘가에서 그런 문장을 본적이 있는데... 좋았다. 그래서 마찰이라고 붙였다. 제목대로 된다고 극단에 마찰이 엄청 많다. (웃음)

      단원들을 소개하자면? 아, 연구원이라고 해야 하나?
      단원이라고 규정하기에는 어색하지만 작품이 있으면 모이는 친구들이 있다. 유은지라는 친구가 아홉 작품을 함께 했고 허정도, 안병식, 황인수, 김신록 이런 친구들과 여러 번 만났다.

      그동안 마찰의 작품들을 돌아보면?
      마찰이 생기고 난 후 카뮈의 「이방인」을 각색한 <태양이 너무 밝았기 때문에>를 시작으로 이상과 금홍, 변동림 세 인물의 관계를 그린 <곶나들이>를 통의동 보안여관에서 발표했다. 이후에는 하이네 뮐러의 <햄릿머신>과 <우리 이제 뭐해요> 등의 작품을 올렸었다.

      지난 2년간은 LIG 문화재단의 레지던스 아티스트로 활동했는데?
      <거짓말> <초대/침입> <너의 외로움은 늘 작다> <엄마가 사라졌다>를 꾸준히 발표할 수 있었다. 이번에 졸업작품(?)으로 <영원한 침대>를 올렸다. LIG 아트홀은 그동안 정말로 좋은 실험실이었다. 늘 생각만 있고 손가락으로 삐죽삐죽 거리던 과학자한테 성능 좋은 비커와 연구실을 주셨다. LIG 문화재단에 감사드린다.

      둥지가 없어졌는데 앞으로는 연극 살림을 어떻게 꾸려갈 것인가?
      다시 가난해진 거다. (웃음) 앞으로 어떻게 할지 성실하게 생각을 하고 있다. 공연과 관객... 여러 가지로 고민 중인 지점이 있다. 관객과 만나는 작업이 조금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예를 들어 세 달을 연습하고, 한 달을 공연하게 된다고 했을 때, 차라리 3주를 연습하고 나머지 연습기간을 관객들에게 오픈을 해서 연습을 관객들이 보게 하는 것은 어떨까. 뭐, 이런 생각도 하고 있다. 그 형태가 가능한 프로젝트를 모색하고 있다. 한편, 물리적인 둥지도 찾고 있는데, 커다란 창고 같은 걸 찾고 있는데 마땅한 장소를 찾기가 쉽지 않다.

      구상중인 차기작은?
      그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가장 소중한 시간은 지금이 아닐 때라는 말. 지금 만나는 사람, 지금 살고 있는 집,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를 다시 보는 작업이랄까? 그동안 과거를 돌아보는 이야기를 많이 해왔었는데 얼마 전부터 지금을 담아내는 작업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연출가 김철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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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가 김철승
  • 아직은 수줍은 말 걸기가 좋다

    연극하면서 언제 가장 행복한가?
    같이 일하는 배우나 관객들이 내가 모르던 것을 먼저 알아채 줬을 때. 그래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천재성이 너무 고마울 때.

    연극하면서 힘든 점이 있다면?
    변명 같기도 한데... 나는 시스템에 들어있지 않다. 이를테면 주류 연극계의 시스템. 시스템에 들어있지 않다는 것이 물리적인 외로움을 줄 때가 있다. 그래서 못하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김철승에게 연극은 무엇인가?
    뭐지? 연극을 처음 시작할 때는 신앙 같았다. 연극에 대해 나보다 경건하지 못하는 친구들을 보면 화를 냈었다. 약간 그런 구도자 같은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문인지 알고 계속 두드렸는데 벽이었다. 그래도 계속 두드렸는데...
    연극? 사람들과의 마찰인가? 무대 위에 올라가서 귓속말을 하고... 공연이 끝나면 공연영상을 매번 보는데, 나처럼 우유부단하고 얼굴 잘 빨개지는 사람이 이런 일을 어떻게 하게 됐지? 그런 생각도 들고... 말 걸기? 그래, 내게 연극은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말 걸기 인 것 같다. 김철승의 연극이라. 쌈빡한 카피문장을 뽑아볼까?
    “내 연극은 괄호다!” 아, 이건 너무 냄새나는 말인데... 그래, 연극을 보고 난 사람들이 괄호 안을 채워 넣는 것 아닐까? 연극? 나는 아직 접을 이유를 못 찾았다. 그래서 한다.
  • 연출가 김철승
  • 김철승 (연출가)

    극 연구소 마찰 예술감독
    대표작품 <나는 내가 없던 시간에 대해 무지하다.><거짓말 >
    <너의 외로움은 늘 작다><엄마가 사라졌다>
    <영원한 침대> 외 다수

태그 김철승, 극연구소 마찰, 영원한 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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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성 극작가
극단 달나라동백꽃 대표
주요작품 <로풍찬유랑극장><뻘><목란언니><연변엄마><순우삼촌><시동라사>외 다수
본지 편집위원.
제37호   2013-12-05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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