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인

top

연극인

검색하기

연극은 질문이다
서울변방연극제 예술감독 임인자

김지현_연극칼럼니스트

목록보기

  • 링크
  • 프린트
  • 페이스북
  • 트위터

    연극은 질문이다

    이제 연극이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서울변방연극제에 참여하기 시작했을 땐 배우였다고 들었다.

    예술감독으로만 보신 분들은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일 거라고 여기실 수도 있는데, 그렇기도 하지만 몸으로 감각하면서 생각하는 편이다. 연기를 했을 때도 드라마에 익숙하다기보다 주어진 환경을 읽고 그걸 표현하는 데 익숙한 배우였다. 그래서 열린 공간에서 하는 공연에 주로 참여했고, 학교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양한 공간을 선택해서 연기하는 작업이 많았다.

    임인자

    다시 연기를 하고 싶진 않나?

    하고 싶지만, 연기는 많은 공력을 필요로 하고 굉장한 정확도를 요한다. 배우는 화술이라든지 많은 것이 숙련되어야 하는데, 그러기엔 내공도 부족하고 무대 울렁증도 있다. 말도 잘 못하고 외우는 건 정말 못한다. 대사 암기력이 좋은 배우들 참 대단한 것 같다.

    말을 잘 못한다고 했지만, 현장의 목소리를 내는 자리에 가면 꼭 있었다. 어릴 때 반장 많이 해봤나? (웃음)

    반장? 안 해봤다. (웃음) 굉장히 조용한 편이었다. 아! 그런데 교지는 만들어봤다. 1학년 때 교지에서 어떤 글을 봤는데,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뭔가 자극이 됐다. 그래서 글 쓰고 그것을 어딘가에 담아내는 데 관심이 있었다. 교지를 열심히 만들어서 졸업할 때 공로상도 받았는데, 친구들이 다들 놀라워했다. 너무 조용히 내가 교지를 만들었다는 걸 아무도 몰랐기 때문에. (웃음)


    고등학교 때 친구들의 무용 공연을 보고 감동받아서 울기까지 했다던데, 그때부터 무용이나 연극을 전공하지 않고 교대에 간 이유는 뭔가?

    집이 가난해서 대가족이 한방에서 살아야 했다. 그래서 고등학교 땐 혼자 시내, 금남로에 있던 독서실에 나와 살면서 공부를 했다. 지금 그 자리에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세워지고 있다. (웃음)

    고시원 말하는 건가?

    고시원이 아니라 말 그대로 독서실이었다. 책상 밑에서 자면서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그런데 독서실이 시내에 있다 보니 거리를 오가면서 시나 그림, 사진을 많이 봤다. 5월이 되면 금남로가 꽉 찬다. 그때만 해도 5.18을 완벽하게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광주에 대한 편견이 많던 시기다. 그래서 시민들은 여전이 정부에 대항하고 있었고, 그런 상황들을 문화적으로 풀어낸 모습을 많이 목격하면서 늘 세상에 의문이 있었다.

    사람들이 모이는 5월의 광장, 사람들이 건물에 빽빽하게 차 있고, 나무나 분수대에 올라가는 모습이 내겐 익숙하다. 그것이 가진 힘에 대해 많이 생각해왔다. 나이로 따지면 X세대니까 운동권과는 거리가 있지만, 그런 문화적 토양에서 자랐다는 게 공연하는 데 자연스럽게 영향을 미친다. 극장 안에서 하는 엔터테인먼트한 연극보단 세상을 향해 말하고 다른 감각으로 일상을 바라보는 작업이 좋다. 그래서 민족극연구회 같은 곳에도 자연스럽게 흘러들어갔는데, 포스트모더니즘 광풍이 불던 때라 민족극은 하나도 공부하지 못했다. (웃음) 어쨌든 늘 다른 감각으로 연극하는 게 중요했고, 그게 변방연극제를 계속 해올 수 있는 동력 같다.

    임인자

    예술감독으로서 어느덧 5년차다.
    어떤 변화가 있었나?


    변방연극제를 통해 극장이란 제도를 벗어나 삶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것, 그리고 공간을 재발견하고 재맥락화하는 것, 그 안의 역사를 끄집어내는 작업을 많이 해왔다. 이제 다른 단계로 가야할 때인 것 같은데, 작품 속 다양한 인물을 만나면서 사람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다. 연극은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이야기 아닌가?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에서야 연극이 그런 거란 걸 알게 된다.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전에는 드라마틱한 이야기나 이론에서 말하는 연극이 주는 연민이나 공포를 거부해왔다. 그런데 실제 사건의 인물들을 만나다 보니 그들이 가진 비극성이 허구가 아니란 걸 깨달았다. 그러니까 연극이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다 가짜 같아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연극이 가진 현실이 어디인기 계속 찾아다녔다. 거리로 나온 것도 리서치를 해온 것도 다 그런 이유다. 그런데 이제는 연극의 인물들이 진짜라는 걸 알게 되니 연극이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작은 공동체 속에 있다는 게 좋았다

    대학을 바꿀 정도로 연극이 좋았나?

    교대 입학식 때 총장이 인사말을 하시는데, 4년간 다른 대학생들처럼 캠퍼스의 낭만은 즐길 수 없겠지만, 공부를 열심히 하면 모든 사람이 여러분을 우러러보게 될 거라고 하셨다. 여러 가지 뜻이 들어있을 수 있다. 그런데 그땐 선생님이 우러름을 받는 직업을 아닐 거라는 생각에 반발심이 컸다. 마치 직업학교에 온 느낌이었다. 그래도 조용하게는 지냈지만, 결국 학교를 옮긴 건 캠퍼스의 낭만도 꿈꾸었기 때문이었을까? (웃음) 선생님에 대한 정의를 깊게 고민하고 갔다면 달랐을 텐데 집안 사정 때문에 간 거라 그 말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지금도 선생님이 되겠다는 생각은 별로 없다. 가끔 장사를 해야겠단 생각은 해봤다.

    연극을 하게 된 건, 교대 다닐 때 동아리에 들어갔는데, 작품의 인과관계를 분석하는 게 재밌었다. 그 일이 왜 생겼는지, 무엇이 만들었는지 분석하는 게 좋았다. 그러면서 막연하지만, 글 쓰는 일, 뭔가 분석하고 평론하는 일을 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연극은 실제로 하게 되면 여러 사람이랑 같이 땀 흘리고 밥 먹고 그렇게 되는데, 그때 작은 공동체 속에 있다는 게 좋았다. 그래서 뭐든 해봐야 할 것 같았다. 잘 할 수 있는 건 공부니까 공부로 갈 수 있는 학교를 찾아 간 거다. 그때 연출 전공은 시험만 보고 들어갈 수 있었다. 연기로 시험 봤으면 떨어졌을 거다. (웃음)

    임인자


    그런데 왜 대학에서 연극을 배우려고 했나? 현장에 바로 나오는 방법도 있었을 텐데.

    지역에 있으니까 방법을 찾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모든 사회가 제도화되어 있었고, 그 안에서 대학은 꼭 가야 한다는 생각을 그냥 받아들일 때였다. 지금 같았으면 다른 선택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땐 연극에 대한 정보를 아는 것도 너무 어려웠다. 대학로의 존재도 대학에 입학하고 난 후에 알았다. (웃음) 입학하자마자 혜화역 4번 출구 앞에서 처음으로 전단 뿌리던 날을 잊을 수 없다. 공연 제목도 생각 안 나는데 선배들이 하라니까 그냥 한 건데 그게 참 재밌었다.

    연극을 어떻게 배웠나?

    연극은 그전에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많은 걸 이야기하고 있었다. 환경연극이나 해체하는 작업에 관심이 갔고, 소극장연극사라든지 동양연극이 재밌었다. 그땐 내가 좀 아카데믹했다. (웃음) 문화상호주의를 배우다 보니 서구연극에 동양연극에서 차용된 요소가 많다는 걸 알게 되면서 번역극엔 흥미가 떨어졌다. 또 동양연극도 여러 나라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독립적으로 발전한 것을 알게 되면서 특정한 것을 추앙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주체적인 시각으로 연극을 볼 것인지 고민할 수 있었다. 고전극보다는 아무래도 실험극에 관심이 많았는데, 사회적인 질문들이 연극의 형식적 변화를 이끌었던 시대도 눈길을 끌었다.

    무대가 때론 고립된 섬처럼 있기도 하지만, 여전히 사회와 많은 영향을 주고받는다. 25시간 릴레이 1인 시위를 기획하게 된 건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청와대로 향했던 24시간에서 영향을 받았다. 그런데 25시간 릴레이 1인 시위를 시작한 오늘 광화문광장에 유가족들이 철야농성을 시작했다. 물론 어떤 연관관계가 보일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사회적 응답으로서 연극이 얼마든지 계속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연극이 사회를 추동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 다닐 때 연극에 대한 가장 큰 질문은 연극사가 일본의 신극으로부터 왔다는 것이었다. 사실주의 연극 대부분이 신극으로부터 비롯되었을 텐데 가감 없이 드라마, 이야기에만 빠져 볼 것인가 고민이었다. 그래서 형식과 내용이 연관에 관점을 가졌다. 자연스럽게 변방연극제는 1회 때부터 모든 공연을 다 봤다. 매체 실험도 있었고, 사회적 목소리도 있고, 자신의 이야기를 끄집어낸 작품도 있었다. 이념적으로는 사실 잘 모르겠다. 지금은 좀 더 사회적 시선으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예술로서의 최전방은 새로운 형식을 추구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이끌어내야 하는데, 그러려면 굉장한 내공이 필요하다.

    가끔은 연극에 투신한 사람처럼 보인다.

    임인자

    사실, 내가 좀 아프다. 오랫동안 많이 아팠다. 그러면서 사회에서 배제된 느낌을 갖고 있었다. 무언가를 욕망하기 때문에 배제된다는 느낌을 갖는 게 아니라 인간 사회와 같이 있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가진 거다. 몸이 아프기 때문일 거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의 생각을 100% 알 순 없지만, 같이 살아가고 싶은데 서로 손 내미는 것도 어렵고 어렵게 손을 내밀어도 잡아주는 사람이 없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그래서 그런 분들과 친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동생은 다쳐서 장애가 있다. 그게 숨겨야 하거나 나쁜 것은 아니니까 온 가족이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왔다. 그런데 세상으로 나오면 우리는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은데 경계가 지어지는 것들이 있으니까 연극으로 그런 부분을 이야기하게 된다. 아무래도 세상은 여러 사람이 어울려 사는 곳이니까. 그런데 누군가는 세상에 맞추어진 질서라든지 아름다움과 전혀 다른 조건 속에 살아갈 수 있다. 그들을 위한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사회의 수많은 선입관을 깨고 싶다. 물 흐르듯 그것을 할 수 있는 건 예술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연극이란 무엇인가?

    연극이란? 연극이란? 연극이란? 질문이다. 연극은, 연극을 통해 누군가에게 물어볼 수도 있지만, 내게도 물어본다. 시라든지 소설이라든지 음악이라든지 다양한 매체가 있는데, 연극은 특히 모든 감각을 활용해 생각하게 한다. 또 몸으로도 생각하게 한다. 나를 총체적으로 사용하게끔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생각만 하고 실천을 안 하는 게 불가능하다. 생각과 실천이 동시에 이뤄질 수 있게 하는 것이 연극의 매력이다. 그래서 연극이 좋다. 연극은 질문이고, 그 질문을 다양한 방식과 감각으로 할 수 있기 때문에 좋다. 변방연극제란 이름으로 전시도 하지만 연극도 하면서. 그래서 연극제라고 주장한다. 하나의 감각만 사용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학자들이 들으면 뭔 소리냐고 할 수 있겠지만. (웃음)


    [사진 : 임진원 limjinwon@gmail.com]

  • 임인자
  • 임인자 (서울변방연극제 예술감독)

    월간 <한국연극> 편집위원, 한국거리예술센터 운영위원을 맡고 있으며, 아시아예술극장 창작 레지던시 '도시횡단프로젝트 광주' 프로젝트 예술감독(2013)을 역임했다. 비주얼씨어터컴퍼니 꽃, 강화정, 정금형, 그린피그(윤한솔), 크리에이티브 바키(이경성) 등의 아티스트와 함께 작업했다. '변방'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예술의 언어로 말하고자 새로운 장소성 그리고 동시대의 사회적 이슈와 새로운 무대언어 창작을 목표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태그 연극데이트, 임인자, 김지현

목록보기

김지현

김지현 연극칼럼니스트
연극학을 전공하고 월간 한국연극 기자로 활동했다.
diario2046@naver.com
제48호   2014-07-17   덧글 2
댓글쓰기
덧글쓰기

허무한것인생
훌륭한 분을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4-07-18댓글쓰기 댓글삭제

될대로되라지
우리에게 질문을 던져주는 글이네요.^^

2014-07-24댓글쓰기 댓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