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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벅뚜벅 자기 길을 가는 선배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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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 대학로를 벗어나 슈퍼문이 한눈에 들어오는 성북동 언덕배기 카페에서 배우 문형주를 만났다. 18년차 전업 배우인 그녀는 인터뷰를 마칠 즈음, 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지는 안 물어보느냐며 도리어 인터뷰어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미 어떤 수식어도 필요 없는 배우인 것 같은데, 여전히 어떤 배우가 될 것인지 고민하는 그녀는 이런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뚜벅뚜벅 자기 길을 가는 선배”

재밌나? 그라믄 됐다

극단 유시어터 1기 단원으로 연극을 시작했다고 들었다. 당시 몇 살이었나?

1995년이니까 스물한 살이었다.

원래 독문학을 전공했다던데.

어릴 때 한국무용을 오래 했는데, 돈도 많이 들고 하고 싶은 게 많아서 그냥 공부를 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대학에 가 보니 재미없고 다 뻔하게 느껴졌다. 졸업하면 승무원이나 회사원이 되겠지 싶었다. 그러다 극회에서 공연하는 <자전거>라는 작품을 우연히 보게 됐는데, 보는 내내 눈물이 났다. 왠지 모르게 그랬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게 이거구나 싶어서 극단 오디션을 본 거다.

그렇게 갑자기? 어떻게 붙었나?

배우 문형주

대학 때 풍물반에 있었다. 흥을 유지하고 있던 거지. (웃음) 『백세개의 모노로그』라는 책이 있는 것도 모르던 때라 대본을 직접 써서 연기했다. 에너지는 충만한데 연기의 연 자도 모르는 게 어디 드라마에나 나올 것 같은 대사를 하고 있으니 얼마나 웃겼겠나. 흥을 보고 뽑아주셨겠지. (웃음) 대학원 가기 전까지 9년을 있었다.

9년차 배우 생활 중 대학원에 간 이유는?

물론 극단에서 난다 긴다 하는 선배들을 관찰하면서 배운 것도 많았다. 운이 좋아 대선배의 더블이나 언더스터디를 많이 했는데, 객관적으로 보면 그분들을 흉내 내기만 했던 것 같다. 전공자들을 보면 접근하는 방법이 달랐다. 그래서 대학원에 간 거다. 동기가 10명이었는데 그중 절반이 서른 살 동갑내기였다. 이종무, 양동탁 등등. 걔들이랑 대학교 1학년 때보다도 더 애처럼 놀았다. 삶에 활력을 주고, 내가 누구인지 또 무엇을 원하는지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외부 공연이 금지되어 있었으니 올곧게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10년이 지났는데, 대학원 생활이 이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는 자양분이 된 것 같다.


전공자가 된 후 연기가 달라졌나?

그전에도 연기가 재미는 있었는데, 힘든 걸 만났을 때 방법을 모르니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적었다. 연기에는 분명 방법이 있는 것 같다. 물론 연기는 배웠다고 해서, 아니면 배워야만 잘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배우면 못해도 알고 하는 거다. 알고 하는 것과 모르고 하는 건 다르지 않나. 지금도 다 안다고 할 순 없지만. (웃음)

연기는 삶의 경험과 인문학적 지식, 그리고 부모님께 물려받은 기질 같은 것이 버무려져서 나온다. 그게 매력이고 그래서 인성을 순화시켜주는 좋은 작업인 것 같다. 다른 사람의 삶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올바른 게 무엇인지 알게 되고, 좋은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배우라는 직업은 사람을 만드는 것 같다.

부모님께 물려받은 자질은 어떤 건가?

아버지가 뒤늦게 말씀하셨다. 고등학교 때 연극반을 하셨다고. (웃음) 어릴 때부터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반대하신 적이 없다. 반대하셔도 결국 할 거라는 걸 아셨던가? (웃음) 떨어져 산 지 6~7년 됐는데, 공연 첫날엔 꼭 전화를 주신다. “오늘 첫 공연이지? 잘해라.” 그리고 가끔은 이러신다. “재밌나? 그라믄 됐다.” 그럴 때면 뭉클해진다. 감사하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하다. 아버지 얘기만 해서 어머니가 서운해 하실 것 같은데, 부모님은 다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내게 힘을 주는 분들이다.

공연 때마다 느끼는 건데, 목소리가 참 매력적이다. 성우를 해볼 생각은 없었나?

배우 문형주

20대 후반에 심신이 지쳐서 성우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5년 정도 그런 일로 먹고 살기도 했다. 그런데 목소리는 결국 몸의 소리이고, 몸의 소리는 결국 그 사람의 정신이 내는 소리다. 다큐멘터리 내레이션이나 CF 더빙은 에너지를 과하게 쓰지 않고 감정의 정수를 뽑아내는데 도움이 되었던 작업이었지만, 그것은 기술일 뿐 결국 목소리나 그 사람의 독특한 말투, 인상 등은 그 사람의 정신을 반영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가급적 긍정적이고 밝은 생각을 많이 하려고 노력한다.

배우는 무대에 서면 숨을 데가 없다

아버지의 질문처럼, 연극이 재미있나?

재미있다. 연극을 하면서 어떤 작가의 글, 이야기를 만나고 또 그 안의 인물을 만나고, 같이 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게 재미있는 것 같다. 그걸 최근에 알았다. 30대 중반이 돼서야. 그전엔 잘해야 한다는 마음에 연극이 넘어야 할 산이나 무거운 짐처럼 느껴졌다. 욕심이 많았던 거다. 이젠 좀 헐렁해졌다.



여유가 생겼다고 해야 하나? 그런 시기는 어떻게 해야 맞을 수 있나?

여유? 만드는 사람이 즐거워야 한다. 만드는 과정을 힘들어하고 개인적인 욕심을 앞세우다 보면 다 티가 난다. 배우는 무대에 서면 숨을 데가 없지 않나. 아무리 멋진 대사를 하고 있어도 배우 개인이 드러나는 것 같다. 작은 음성이나 몸짓, 표정만으로도 다 알 수 있다. 그래서 공연장 가면 ‘저 배우, 같이 하고 싶다’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누군지 궁금하다. 어떤 배우와 같이 하고 싶나?

연기 잘하는 배우가 좋다고 하면 너무 포괄적이고 추상적인가? 개인의 매력이 있는 사람이 좋다. 좋은 가치관과 에너지가 발산되는 사람! 사람이 참 중요한 것 같다. 잠깐 나와도 좋은 느낌을 주지 않나. 주로 남자다. 이름은 말하지 않겠다. 데이트 신청 들어 올까봐. (웃음)

지금 공연 중인 <칼리큘라>에선 어떤 사람들을 만났나? 우선 최진아 연출과는 첫 작품인 것 같은데.

최진아 연출과는 이번이 처음이다. 남자 역에 왜 나를 캐스팅했냐고 물어봤는데, 그냥 내가 떠올랐다고 하더라. 대본을 읽어 보니 남자가 하는 것보다 흥미로울 것 같았다. 그냥 싸움이 아니라 이상주의자와 현실주의자 간 이념의 싸움이니까. 지난 18년 동안 연극하면서 오며가며 인사만 하고 지나치거나 데면데면했던 사람들도 많은데, 이 작품을 통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친해져서 참 좋다.

배우 문형주

18년 동안 해왔던 작품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항상 미친 듯이 하니까 가장 최근에 했던 작품이 기억에 남는다. <칼리큘라> 직전에는 <수인의 몸 이야기>라는 작품을 했는데, 원인 모를 통증에 시달리는 40대 여자가 자기 병을 스스로 알아가는 내용이었다. 마흔이 되어서 한국에 사는 또래 여자를 연기하다 보니 내 삶도 되돌아보게 되고, 번역극보다 마음에 와 닿는 게 많았다.

하반기에 또 다른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던데. 올해는 예년보다 작품이 많은 것 같다.

8월부터 세 작품을 연속으로 하게 됐다. 이렇게 많은 경우가 없었다. 보통 반기별로 한 작품씩 했으니까. 많은 작품을 하기보단 흥미로운 작품, 내가 생각하기에 좋은 작품을 하는 편이다. 마흔이라 나름대로 세리머니를 하고 싶었는데, 감사하게도 좋은 작품들을 하게 됐다. 8월에 했던 <수인의 몸 이야기>, 지금 하고 있는 <칼리큘라>, 그리고 11월에 하는 <맘모스 해동>까지 공교롭게도 다 여성 연출가의 작품이다. 다음엔 좋은 남자 연출가한테 연락이 왔으면 좋겠다. (웃음)

<맘모스 해동>은 어떤 작품인가?

한 사람의 얼어있던 꿈이 녹아가는 과정이 담긴 작품인데, 이미경 작가와 10년 전 대학원에서 낭독공연을 같이 했던 인연이 있다. 그런데 문삼화 연출은 그 사실을 모르고 날 캐스팅했다고 하더라. 재미있다. 작품을 같이 하는 건 특별한 인연이 있어야 하는 일 같다.

연극은 말을 건네고 생각을 던진다

18년간의 배우 생활을 돌아봤을 때, 연극 환경은 어떻게 달라졌나?

배우 문형주

얼마 전 여성극작가전에 참여했을 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18년 전과 달라진 걸 모르겠더라. 21살 때 <파우스트>라는 작품으로 50만원을 받았었다. 그런데 나는 이제 스물한 살의 배우도 아니고, 연기를 하면서 보낸 시간들이 있는데, 그런 것에 대한 대우가 그때와 다르지 않아서 깜짝 놀랐다. 개런티에 대한 불만이 아니라 여전히 열악할 수밖에 없는 연극 환경이 무슨 일인지 싶다.

국립극장이나 예술의전당 같은 데서는, 삶을 유지할 수 있는 만큼의 돈은 줬던 것 같은데 말이다. 내가 스물한 살 때, 서른 살 때 우러러봤던 선배들이 지금 어디 가셨나 생각해보면 이런 환경이 싫거나 여기서 생활할 수 없어 내몰린 게 아닌가 싶다. 좋은 배우들이 연기 활동을 계속할 수 있도록 연극 환경이 좀 나아졌으면 좋겠다. 지원금도 공연 한번 올리고 말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고 레퍼토리화할 수 있도록 더 바뀌어야 할 것 같다. 이런 데 책임감을 느끼는 나이가 되었는데, 아직 어떻게 해야 할지 잘은 모르겠지만, 좀 더 발전적인 생각을 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어떤 배우가 되고 싶으냐는 질문은 안 하나? 6~7년 전에 인터뷰할 땐 그런 걸 유심히 물어보던데.


6~7년 전 대답은 무엇이었나?

관객이 보러 왔을 때 믿음이 가는 편안한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지금 그렇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그러려고 하지만, 좋은 선배가 되고 싶다. 뚜벅뚜벅 자기 길을 가는 선배. 무대에 오래 남고 싶다. 연극, 재미있지 않나? 제한된 공간에서 배우라는 사람들이 땀 흘리는 모습을 직접 보고, 그들의 메소드가 작은 울림이 되는 그런 게 요즘 어디 있나. 연극은 말을 건네고 생각을 던진다.

문형주라는 배우에게 좋은 선배는 어떤 분이었나?

좋은 선배보다는 좋은 스승이 한 분 떠오른다. 학교에 들어가서 오순택 선생님을 만났다. 3년간 수업을 들었는데, 그분이 가르쳐준 미국식 영화 연기나 연극 연기도 좋았지만, 연기 철학, 인성이나 품격, 사람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고 가르침을 받았다.

배우 문형주에게 연극이란 무엇인가?

연극은, 나를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해주는 것? (웃음)

연기는?

연기는, 연기 같은 것? 몸을 불살랐지만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 (웃음)
이종무가 들으면 비웃을 것 같다. (웃음)

[사진 : 임진원 limjinwon@gmail.com]

배우 문형주

문형주 (배우)
주요작품
연극 <수인의 몸 이야기>, <당통의 죽음>, <부활>, <꿈속의 꿈>, <난 집에 있었지 그리고 비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지> 외 다수

태그 배우 문형주, 뚜벅뚜벅 자기 길을 가는 선배가 되고 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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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김지현 연극칼럼니스트
연극학을 전공하고 월간 한국연극 기자로 활동했다.
diario2046@naver.com
제52호   2014-09-18   덧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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슉슈르르..
멋진 배우 문형주! 늘 지켜보며 응원할께요~♥

2014-09-18댓글쓰기 댓글삭제

수진
이미 "믿음이 가는 편안한 배우"십니다! 늘 웅원합니다!

2014-09-19댓글쓰기 댓글삭제

해운대
오랫동안 한길을 걷는 모습 멋지십니다..항상 응원합니다!!*****

2014-09-25댓글쓰기 댓글삭제

짱짱맨!!
칼리큘라에서 젤로 멋졌던 케레아 형주언니!! 언니의 작품 늘 기다려집니다 화이팅이에요^^*♥

2014-09-25댓글쓰기 댓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