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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앞세우지 않는 만남도 있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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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화가는 무엇을 그리든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화폭 어딘가에 이름이 쓰여 있지 않아도 누구의 그림인지 첫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이 연출가의 연극도 그렇다. 배우들의 움직임을 보는 순간 ‘강량원’이라는 이름 석 자를 떠올리게 한다. 뚝심 있게 자기만의 방식을 고수하는, 그러기 위해 늘 연구하는 극단 동의 연출가 강량원을 만났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데까지

<테레즈 라캥>이나 <내가 누워 죽어 있을 때>처럼 소설을 무대화하는 작업이 종종 있었는데, 이번처럼 동시대 작가의 소설로 작업했던 적은 없는 것 같다. <투명인간>은 어떤 계기로 택하게 되었나?

손홍규 작가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 사람이지 않나. 그의 소설에서 연극적인 면을 많이 느꼈다. 작가들이 갖는 동시대 의식이나 생각을 엿보면서 그것들을 어떻게 무대로 가져올지, 연극하는 재료로 사용할 수 있을지 생각하던 찰나에 「투명인간」이 잡혔다. 2010년 이상문학상을 받았을 때 읽었는데, 그때부터 꽤 뇌리에 남아있던 작품이다.

소설을 읽고 온 관객들과 그렇지 않은 관객들의 평이 좀 나뉘었을 것 같다. <투명인간>에 대한 인상적인 리뷰가 있었다면?

연출가 강량원

호평은 아니었는데, 연극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의도 속에서 이렇게 공연했을 거야' 하고 꼼꼼하게 기록하신 분이 계셨다. 그런데 마지막에 정말 이해가 안 됐다고, 어려웠다고 적으셨더라.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열심히 생각하셨는데도 그렇게 느끼신 건, 언어화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가 연극을 하는 건 이해할 수 없는 감각이나 현상들, 몸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는 걸 무대에 올리는 것이지 않나. 그분은 정말 몸으로 전체를 느끼신 것 같은데, 그럼에도 이해하지 못했다고 고민하시는구나 싶어서 인상적이었다.

<투명인간>에 대한 반응은 극단적으로 나뉜다. 어떤 관객들은 굉장히 좋다고 하시고, 또 어떤 관객들은 도무지 모르겠다고 하신다. 그리고 너무 불친절하다고, 왜 너희들끼리 하느냐고 하시는 분들도 계셨다.

왜 너희들끼리 하느냐고 말하는 관객들을 설득하고 싶은가?

솔직히 말하면, 그 말은 쉽게 설명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여겨진다. 설명을 한다는 건 주로 언어를 통한 일인데, 말을 앞세우지 않는 만남도 있지 않던가. 우리는 그런 관계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이번에 너무 많이 갔다는 의견도 많이 들었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지점까지 가보고 싶었다. 우리가 원하는 지점은 ‘우리가 할 수 있는 데까지’였다. 그 이후는 아직 능력이 안 되거나 아직 못 찾았거나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작업이 꽤 만족스러웠다.

개인적으로는 극단 동의 연극, 강량원 연출의 연극이 친절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렇지만, 작품을 더 잘 이해하고 싶어 하는 관객들에게 한 말씀 전한다면?

연출가 강량원

며칠 전 ‘관객과의 대화’를 했는데, 왜 이렇게 힘드냐는 질문이 많이 나왔다. 그때 이런 생각을 해봤다. 우리가 새로운 운동을 시작하면 안 쓰던 근육을 써야 해서 얼마간은 불편하고 힘들지 않나. 그런데 사실 몸의 모든 근육을 써보는 것이 삶에는 정말 좋은 일이지 않은가. 연극도 근육처럼 다양하다. 그래서 어떤 연극은 평소 잘 쓰던 감각으로 편안하고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는 한편, 안 써본 감각으로 불편하고 낯설게 받아들여야 하는 연극도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후자라고 해서 이해하지 못한 건 아닐 수도 있다. 새로운 경험은 분명 관객의 삶이랄까 인생에 풍부한 재료가 되었을 거다. 그러니 좀 낯선 것들에 대해서도 자주 접근해주신다면 어떨까 한다. 연극은 정말로 이야기가 아니고 몸이라서, 어쩌면 지금 만나게 되는 빛깔이나 시간이나 육체성이나 이런 어떤 것들이라서, 그것들은 마음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용의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매우 다른 것이다.









러시아 연극과는 좀 다를 수 있다

<투명인간> 프로그램 북에 극단 동의 작품을 본 관객들은 ‘배우의 특별한, 때로는 이상한 움직임을 기억한다’고 썼던데, 이 작품 역시 그럴 것 같다. 그 배경에는 아무래도 러시아 유학이 자리하고 있을 텐데, 왜 그곳에 갔나?

대학 때 연극반을 했다. 졸업 후에도 연극을 하고 싶어서 같이했던 동료들이랑 단체를 만들어서 나갔는데, 그때 비로소 알게 되었다. 연극반에서만 하던 사람들이니까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그래서 대학원에 갔는데, 실천이 아니라 이론 중심이었다. 학부로 갔어야 한다는 걸 또 깨달을 즈음 학교가 러시아 대학과 자매결연을 맺어서 가게 됐다. 기초적인 훈련을 안 받았던 사람에게는 정말 좋은 기회였다.

동 단원들도 그곳에서 만났다던데.

러시아는 스타니슬랍스키의 고향이지 않나. 스타니슬랍스키는 얼마나 많은 연극인들의 우상인가. 연기를 공부하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그 중 몇몇이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을 배워서 어떻게 적용할 건지 얘기해보자는 취지로 모였다. 너는 이걸 도대체 뭐라고 생각하느냐, 우리는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 이야기하면서 연극을 만들었다. 그러다 99년 한국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극단 활동을 하게 되었다.

러시아 유학이 연출가로서 성장하고 활동하는 데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 가능성도 있고 한계도 있을 텐데.

러시아에서 공부한 것은, 일단 명확하게 배우의 행동을 기초로 연극 전체를 바라보게 했다. 또 배우의 행동을 기초로 연극의 구조를 만들도록 했다. 그게 가장 큰 영향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만약 관객들이 내 연극을 스타니슬랍스키 류의 연극과 다르게 느낀다면, 그건 배우의 행동을 기초로 만들지만, 그 기초의 조각들은 결국 희곡을 목표로 한다는 데 있기 때문일 거다. 그래서 러시아 연극과는 좀 다를 수 있다.

러시아에서 공부할 때, 인물이나 스토리를 중심에 둔 연극의 지향점에 대해 끊임없이 저항했다. 그래서 선생님들과 자주 싸우기도 했지만, 그러면서 훨씬 많은 것을 배웠다. 학교에선 스타니슬랍스키를 텍스트 중심의 해석적인 사람으로 이해한 것 같았다. 그에 대해 많은 질문을 가졌고, 나는 배우 예술을 중심으로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을 이해했다. 그게 작업하는 데 굉장히 큰 토대가 되었지만, 또 그로부터 벗어나려고 애쓰기도 했다. 연극이 문학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하는 수많은 이야기들 사이에서, 그럼에도 계속해서 문학적인 해석을 하고 있지 않나.

연출가 강량원

무대 위에서 이루어지는 어떤 것들이

러시아 연극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결국 지금 활동하는 무대는 한국이다. 2007년부터 극단 동 안에 월요연구실을 만들고 행동의 근원이라고 해야 하나? 행동을 이끄는 주체에 대해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그에 따른 다양한 시도들을 해온 것도 그렇기 때문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한국 연극계에서 하고자 하는 일이나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

연극에서는 어떤 사람이 어떤 의도를 갖고 어떤 문제에 대응해서 어떤 선택을 해나가는 것을 ‘행동’이라고 하지 않나. 그 행동이 본질일까? 어느 순간 한 인간이 의지적으로 선택하는 그 일을 보여주는 게 재미없어졌다. 왜냐하면 내가 이 세상에서 선택해서 사는 것 같지 않은데 그럴 수 없을 것 같은데 싶었기 때문이다. 선택해서 사는 게 어쩌면 연기나 연극에 있어서 근본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면 행동이 아닌 다른 단위는 무엇이냐. 러시아에서 연극의 모든 것은 행동이다. 배우의 행동으로 모든 걸 만들어간다. 그런데 이제는 어쩌면 다른 것일 텐데 그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나가는 중이다. 그렇다면, 우리 연극 속에서 내 자리는 어디일까 생각한다. 스토리가 될 수 없는 것, 말로 할 수 없는 것, 몸이나 이미지나 빛이나 소리나 이런 걸 모아야 할 수 있는 것, 그것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어떤 지점을 만약 연극의 육체라고 한다면 그걸 만들고 싶다.

함께하는 사람들이 참 중요한 일인 것 같다.

그렇다. 좋은 배우들과 디자이너들, 스태프들을 만났다. 우리의 모든 것이 일회적으로 만나서 할 수 있는 일 같진 않다. 꽤 오랫동안 생각을 나누고 함께 세상을 보아야 한다. 같이 상의하고 노력해야 하는 일 같다.

그렇게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15년 동안 극단을, 혹은 작업을 함께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

동은 연구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공연을 해오면서 우리 단원들뿐만 아니라 우리 연극에 참여하는 많은 분들과 도대체 무엇이 우리를 다음 공연으로 가게 하는가 생각하곤 한다. 우리는 한 작품을 하고 나면, 그 다음 작품은 이전 작품에서 가진 의문들을 해결하기 위한 선택을 해왔다. 그래서 공부가 필요했고, 자연스럽게 월요연구실이 만들어진 거다. 공연만 한다면 힘이 안 생길 것 같았다. 그래서 연구실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단원들끼리만 했는데, 그러다 보니 맨날 같은 사람들과 같은 이야기만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2011년부터는 단원이 아니더라도 공부나 연구를 많이 하는 배우들과 함께하다 보니 훨씬 좋아졌다. 그런데 월요연구실이 곧 극단 동은 아니니까 그에 대한 약간의 혼란스러움이 있는데, 물론 잘 극복할 수 있는 혼란이다.

연출가 강량원에게 연극이란 무엇인가?

언젠가 누군가 이런 질문을 했는데, 그때는 가볍게 ‘움직이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동(動)이니까. 그런데 지금은, ‘진짜’인 것 같다. ‘무대 위에서 이루어지는 어떤 것들이 온전하게 다 진짜인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진짜.

연출가 강량원

<투명인간>에서 소외된 가장을 보고 나니 문득 궁금해진다. 집에서는 어떤 가장인가?

좋은 가장이다. (웃음)

연극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떳떳한 가장은 별로 없을 것 같다. 연극인들이 대체로 연극을 하게 되면 연극만 생각하지 않나. 다른 거 생각하지 못하고 10년, 20년, 30년을 지내다 보면 한쪽 뇌만 발전하고 다른 쪽 뇌가 죽지 않나. 일상생활이나 그런 것들을 잘 못하고, 잘 못 알아들을 때가 있다. 이런 불균형함이 내 가족들에겐 꽤 많은 불편함이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 식구들은 <투명인간>을 보고 되게 좋다고 한다. 늘 그랬다. 어떤 작품을 보든. 그래서 하고 있다. 이렇게 가족들이 지지해주니까.

[사진 : 임진원 limjinwon@gmail.com]

연출가 강량원

강량원 (연출가, 극단 동 대표)
주요작품
연극 <나는 나의 아내다>, <칼집 속에 아버지>, <비밀경찰>, <상주국수집>, <샘플054씨 외 3인>, <테레즈라캥>,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태그 말을 앞세우지 않는 만남도 있지 않던가,연출가 강량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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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김지현 연극칼럼니스트
연극학을 전공하고 월간 한국연극 기자로 활동했다.
diario2046@naver.com
제54호   2014-10-16   덧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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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물론, 말을 앞세우지 않는 만남이 있다. 그러나 그 만남이 의미가 되려면 말을 하지 않아도 공유되는 최소한의 지점이 어디에 설정되느냐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비단 연극뿐아니라 모든 예술장르에서 말이다.
예술행위냐 자위행위냐를 가르는 지점은 종이 한 장과 같이 미묘하게 작은 차이에 있다.
예술생산자는 자신의 관점을 잃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한 존재 가치임은 분명하지만, 그것과 함께 예술향유자가 생산자의 관점을 공감하며 공유하게 하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며 연극은 관객이라는 대상을 떼어낼래야 떼어낼 수 없는 애증의 동반자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극단 동과 강량원 연출의 건승을 빈다.

2014-10-17댓글쓰기 댓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