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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다고 해서 안 하면 안 되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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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다 준노스케

세혁을 위기에서 탈출시켜준 타다

세혁
죄송합니다. 인터뷰를 하려면 노트북이 있어야 하는데, 오늘 갑자기 정해진 인터뷰라 못 가져왔어요. 핸드폰으로 적을게요. (웃음)
타다
아, 나, 노트북 있어요.
세혁
오오!
타다
한글도 쓸 수 있어요.
세혁
오오!
타다
한글 자판 커버도 있어요.
세혁
오오!
타다
와이파이도 자동으로 잡혀요.
세혁
오오!
타다
한국에 자주 오니까 이렇게 됐어요(웃음)

대학로와 문래와 팽목항과 안산과 추어탕과 양꼬치를 겪은 타다

세혁
한국에는 언제 오셨죠?
타다
12월 22~29일의 일정이에요. <동아시아 문화교류대사>라는 프로그램이에요. 오키나와 한 명, 한국 두 명, 중국 두 명 그리고 저예요.
세혁
상당히 장엄한 프로그램이군요. (웃음) 한국에서는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타다
<재난 이후의 연극>이라는 주제로 워크숍을 했어요. 세월호와 후쿠시마 사태를 가지고 한국의 윤한솔(연출)과 정진세(평론), 일본에서는 타다 준노스케(연출)와 후지와라 치카라(평론)가 참여했어요.
세혁
워크숍 과정을 간단하게 듣고 싶네요.
타다
음, 첫날에는 후쿠시마 사태 이후에 일본연극이 어떻게 변화했는지에 대해 얘기했어요. 저는 제 작품을 중심으로 얘기했고, 후지와라는 일본 연극인들의 변화에 대해서 얘기했죠. 다음날은 윤한솔과 타다, 정진세와 후지와라가 조를 이뤄서 서로를 심층인터뷰 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연극을 시작하게 된 계기라든지, 연극에서의 연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흥미로웠던 것은 한 조가 인터뷰를 할 때 다른 조가 그 과정을 지켜보는 방식이었다는 거예요. 공간은 문래동에있는 '아티스트-런 스페이스 413'이었는데 아주 재미있는 공간이었어요.
세혁
재미가 눈에 보이네요. 윤한솔, 정진세 두 분 자체가 워낙 재밌는 분들이라서. (웃음)
타다
다음 날에는 팽목항에 가서 실종자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눴어요. 가족 분들이 밥을 주셔서 같이 먹기도 했어요. 그 다음 날은 안산으로 이동을 해서 합동분향소를 갔고, 바로 앞에 있는 식당의 추어탕이 맛있었고 (웃음), 거기서 체력 회복을 하고 (웃음) 치유공간 이웃에도 가고, 원곡동에도 갔었고, 리트머스라는 예술공간도 방문하고, 양꼬치를 맛나게 먹고 (웃음), 기억 저장소도 가고, 단원고에 가서 교실도 보고, 마지막으로 다 같이 문래동 꼴카페에 다시 가서 보고회 겸 쫑파티 겸 송년회를 하고 (웃음), 아 맞다. 한국에 오자마자 대학로에서 열린 세월호 유가족 간담회에 참여했어요.
세혁
의미 있는 걸음을 많이 하셨네요. 정말 고맙습니다. 실종자 가족 분들의 얼굴을 보았을 때 어떠셨나요.
타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가족 분들이 밝으셨다는 거예요. 오는 사람들을 환영해주는 분위기가 인상적이었어요. 최근에 분위기가 바뀐 듯해요. 사람들이 점점 세월호를 잊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이 더욱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신 듯해요. ‘계속 질문해달라. 계속 이야기해 달라’고 하셨고. 그 느낌은 세월호 유가족 간담회 때도 느꼈어요. 잊히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느낌. 사람들이 계속 잊는 분위기니까. 그 분위기는 후쿠시마도 마찬가지예요. 서로가 없었던 일처럼 생각하려는 분위기.
세혁
안산도 조금씩 어떤 앙금이 생겨나는 분위기입니다. 제가 아는 분은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고 술집에 갔는데 옆 자리 손님이 시비를 걸었다더군요. 리본을 보니까 술 마실 맛이 안 난다고, 이제 그만 좀 하자고. 어쩌면 미안한 마음이 미워하는 마음으로 바뀌는 걸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타다
슬픈 일입니다. 하지만 이해는 갑니다.

후쿠시마 이후 관객석을 없애버린 타다

세혁
후쿠시마 이후에 일본 연극은 어떻게 바뀌었나요?
타다
가장 크게 바뀐 것은 ‘관객’이에요. 관객의 의식이 바뀌었어요. 예를 들면 <고도를 기다리며> 같은 경우에는 대부분이 이해를 못 했어요. 그런데 후쿠시마 이후에는 자기들의 이야기라고 생각을 하는 거예요.
세혁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여주면 하염없이 운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그들은 고도를 자신들이 빼앗긴 땅으로 생각한다더군요.
타다
두 번째는 ‘작품’이 바뀌었어요. 사회를 의식하는 작품들이 많이 생겨났죠. 저도 그 중의 한 사람 입니다. 관객이건 창작자이건 지금의 일본을 의식해야만 하는 상황이 온 거죠.
세혁
타다 씨의 작업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뀌었나요?
타다
관객석이 없는 공연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어디서 봐도 상관없는 거죠. 서서 봐도 되고 앉아서 봐도 되는 거예요. 관객들이 서로가 서로를 의식할 수 있는 상황이 된 거죠. <가모메>는 객석이 설치되긴 했지만 서로 마주 보게 설치가 되었고요.
세혁
그렇게 설치했을 경우에 관객의 기운 변화가 감지되나요?
타다
확실히 있어요. 8시간 동안 관객이 뭘 해도 상관없는 공연을 만든 적이 있어요. <모라토리움>이라는 작품이었어요. 관객이 어떤 짓을 할지 그 누구도 모르는 공연이죠. 꽤 시간이 흐른 다음, 한 고등학생이 천천히 일어나더니 공연장에 놓여있는 초콜릿을 관객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어요. 그 작은 행동이 저한테 큰 울림을 주었어요.
세혁
관객석이 없는 공연이라는 것은 타다 씨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타다
관객들이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어요. 보통의 연극은 객석에 앉아 있다가 공연이 시작되면 관객은 사라지죠. 배우들도 관객이 없는 척 하고 관객들도 자신들 스스로가 없는 척해요. 그 많은 관객들이 아까웠어요. 그 많은 에너지가. 화를 내도 좋고 웃어도 좋으니 그 에너지를 살려보자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세혁
걸판도 베이스가 마당극이라서 공연을 작은 집회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극장 바깥으로 나설 때 단 한 줌의 에너지라도 서로 나누자는 목표가 있죠. 괜히 반갑네요. (웃음) 관객들의 선택과 결정의 권리라는 것이 사회까지도 확장되길 원하시나요?
타다
일본인들은 스스로 선택하지 않는 것을 바탕으로 살아가요.

타다 준노스케

연극이 재미없어서 연극을 시작한 타다

세혁
어이구! 가장 중요한 걸 빼먹었네요! 타다 준노스케에 대해 간단히 소개한다면?
타다
얼마나 간단하게 해야 되나요? (웃음) ‘도쿄데스락’이라고 하는 극단의 대표이자 연출입니다. 2001년에 만든 극단이에요. 2009년부터 2013년까지 5년간은 도쿄에서 공연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고 도쿄 이외의 지역에서만 공연했죠. 2013년에 후쿠시마 사태가 있었던 후에 도쿄 공연을 다시 시작했어요. 극단 이름에 도쿄가 붙어있긴 하지만 거점을 일본 전체에 두고 하고 있어요. 일본 전국 어디에서나 공연하는 극단이에요. 하지만 여전히 도쿄 공연은 지양할 생각이에요. 4년마다 한 번씩 할 생각이니 올림픽 시즌에 맞추겠네요. (웃음)
세혁
극단과는 별도로 모 공공극장의 예술감독도 하고 계시다던데? 그것도 최연소로? (웃음)
타다
사이타마 현의 ‘키라리후지미 시민회관’의 예술감독으로 있어요. 근데 후배한테 빨리 물려주고 싶어요. 최연소 등용과 최연소 은퇴의 기록을 세우고 싶어요. (웃음) 2010년에 예술감독이 되었고 벌써 5년째네요. 연극작업을 하기도 하지만 거기 사는 어른들하고 아이들하고 작업도 하죠. 한 달에 한 번씩 어린이와 예술감독이 함께 노는 날을 만들었어요. (웃음) 귀신놀이도 하고 술래잡기도 하고. 예술감독 업무 중에 그 일이 가장 피곤해요. (웃음) 극장이 마을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관심이 많아요. 내부구조나 설비 때문에 극장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커뮤니티 센터’로서의 극장이 좋아요.
세혁
너무 반갑네요. 걸판도 안산에서 어린이들로 이루어진 극단을 만들었는데 배우는 게 많거든요. 목소리가 작아서 대사를 한마디도 제대로 못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아이가 대사를 치면 다른 아이들이 되풀이해서 크게 말해주더라고요. 합창하듯이. 그게 너무 감동이었어요. 연극이라는 것이 어쩌면 내가 빛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빛나야 하는 것이 아닌가. ‘목소리가 작은 친구를 위해 다 같이 대사를 되풀이해주는 것’ 이것이 연극작업이 아닌가.
타다
정말 맞는 말이에요. 나도 시민연극을 할 때는 대본을 쓰지 않아요. 대본이 있으면 대사를 외우는데 많은 에너지를 쓰거든요. 그래서 플롯만 정해놓고 알아서 말하라고 하죠. 대사를 이 사람이 못 하면 저 사람이 하면 되니까 그래서 늘 신선한 느낌이죠. 근데 초등학생 정도는 대본을 쓰는 게 나을 수도 있어요. (웃음)
세혁
연극은 언제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타다
고백하자면, 연극을 굉장히 싫어했어요. (웃음) 대학에서는 영화를 전공했죠. 연극은 뭐랄까, 되게 귀찮고 안 멋있다는 느낌이었어요. (웃음) 배우를 하고 싶어서 영화과에 진학을 했는데 연극이 아무래도 더 쉽게 만들 수 있으니까 1인극을 만들어봤어요. 근데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그런데 일본에서 하고 있는 연극들은 재미가 없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어요.
세혁
앗! 이런 말 하셔도 되나요? (웃음)
타다
그때는 나이가 열아홉 정도였으니까 아무래도 패기가, (웃음) 어쨌든 그게 연극을 시작한 계기에요. 일본에도 좀 재미있는 연극이 있어야지 않을까. 상당히 건방지고 치기 어린 생각이었죠. (웃음)
세혁
지금은 일본연극이 재미있으십니까?(웃음)
타다
상당히 재미있어졌어요. 물론 제 힘으로 그렇게 된 건 아니에요. (웃음) 하지만 조금은 공헌을 했겠죠.
(웃음)

한국과 일본, 연극과 사회를 고민하는 타다

세혁
한국연극과는 어떻게 인연이 되신 거죠?
타다
제일 처음 온 것은 2008년 아시아연출가 워크숍이었어요. 아시아 연출들이 한국배우들과 작품을 하는 거죠. <로미오와 줄리엣>을 했는데 배우들과 상당히 사이가 좋아졌어요. 그 배우들과 이번에도 끝나지 말고 계속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성기웅 연출도 그때 만났어요. 그래서 그 이후부터 12언어연극스튜디오와 도쿄데쓰락이 공동으로 공연을 하자라고 결의를 했죠. 로미오 배우들과 12언어 배우들이 매년 힘을 합쳐 작업을 해나가는 거죠. 로미오 배우들 중에 12언어연극스튜디오 배우가 된 사람도 있어요.
세혁
한국연극도 재미있으십니까?
타다
굉장히 좋아합니다. 제 한국말이 완벽하지 않은 것이 아직 문제가 있다 생각하지만. 오늘 세혁씨 공연도 재미있었어요. 특히 관객들의 분위기가 엄청 좋았어요. 커튼콜 환호가 특히. 저도 일본 가면 늘 그렇게 환호하고 싶어요. 그런데 눈치가 보이니까. (웃음)
세혁
<가모메>가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호평을 받았죠. 작업이 끝나니 심경이 어떠십니까.
타다
한일의 역사를 다루는 것은 정말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어렵다고 생각해서 안 하면 안 되는 것이니까요.
세혁
… 방금 그 말 너무 멋진데! 제목으로 쓰겠습니다! (웃음)
타다
제가 생각해도 멋지네요. (웃음) <가모메>를 하면서 ‘상상력’에 대한 생각을 했어요. 1930년대의 조선에서 조선 사람이 일본 기모노를 입고 다니는 장면이 있어요. 한국 사람들은 당연하게 생각하겠죠. 식민지였으니까. 하지만 일본 사람들은 이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아요. 단순한 충격을 넘어서 한국 관객들의 반응은 어땠는지 물어요. 이 장면을 봤을 때의 한국 관객들의 반응을 상상해보게 되는 거죠. 일본도 한국도 상대방의 반응에 대해 상상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가장 문제라고 생각해요. 인터넷 뉴스를 보고 아 한국은 이렇겠지 일본은 이렇겠지 정도인 거죠. 하지만 이 작품을 보고 나서는 서로가 서로를 궁금해 해요. 일본 관객은 한국 관객을, 한국 관객은 일본 관객을. 이게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점이지 않을까요.
세혁
그저 그 나라에서 온 그 나라의 작품으로만 보지 않는다는 말이군요.
타다
그렇죠. 이건 한국과 일본 모두 당사자이니까. 서로의 나라에 대해 흥미로워하고 상상력을 발휘하게 되는 거죠. 만약 한일 로미오를 만든다고 해도 이렇게 되지는 않을 거에요. <가모메>가 역사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일어난 거죠. 어렵긴 해도 하는 보람이 있는 테마라고 생각합니다.
세혁
‘당사자’라는 말이 참 와 닿네요. 사실 후쿠시마 사태가 벌어졌을 때 저도 뉴스로 보면서 안타까워 하다가 곧 잊었던 것 같거든요. 그러다가 농수산물과 방사능 폐기물 사건이 벌어지니까 다시 분노하고. 좀 부끄럽죠.
타다
후쿠시마에 대한 무관심 같은 경우는 일본 국내에서도 마찬가지예요. 2011년 여름에 이미 다른 지역 사람들은 뉴스를 보며 남의 일이라고 생각을 해요.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사람이 나빠서가 아니에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죠. 2011년부터 지진과 관련한 작품을 만들어서 일본 투어를 했었어요. “또 후쿠시마야? 또 지진이야”라는 반응이 일반적이었어요. 외국에서 그런 반응이면 어쩔 수 없지만 일본에서 그런 반응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 충격을 받았죠. 지진이나 쓰나미는 어쩔 수 없다 쳐도 방사능이나 원전은 일본 전체의 문제잖아요. 201년에 도쿄에서 떨어진 시즈오카 현에서 일본 어린이들과 워크숍을 했는데 거기 아이들은 원전이 훌륭한 것이라는 교육을 받는다고 해요. 한국도 그런가요?
세혁
… 음
타다
일본에서는 원전이 있는 전력회사에 가는 것이 엘리트코스예요. 집안의 자랑이 되죠. 시즈오카 어린이들이 말하더라고요. “후쿠시마 원전은 낡아서 그렇다. 시즈오카 원전은 문제가 없다. 좋으니까.” 이건 정말 충격이죠. 그래서 저는 ‘당사자 의식’이라는 것을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TV에서 일어나는 상황에 대해 얼마만큼의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라는 거죠.
세혁
일본은 전쟁으로 불가항력적인 방사능 피해를 받았던 나라인데 이번에는 원전과 경제의 논리로 어쩌면 ‘자발적인 방사능 피해’를 입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런 생각을 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타다
제대로 대답하려면 길어질 것 같아요. 나도 상당히 불가사의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일본에서도 원자폭탄이 떨어진 이후 비핵삼원칙 정책이라는 것이 생겼어요. 핵을 보유하지 말고 만들지 말고 반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이죠. 그러나 주어는 ‘핵병기’라고 되어있어요. 원전은 ‘경제의 활성화’를 위한 것이니 괜찮다는 논리가 있어요. 참 복잡합니다.
세혁
내년에 안산과 서울에서 올리시는 공연에 대해 이야기 좀 해주시죠?
타다
대본을 성기웅 씨가 쓰는데 아직 안 나왔어요. (웃음)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원본으로 재창작을 할 거예요. 일단은 한일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될 거에요. 체홉이 아니라 셰익스피어이기 때문에 <가모메>보다는 환타지가 더 들어가겠죠. 제목은 <태풍이야기>로 정해졌어요.
세혁
<템페스트>는 어느 배가 태풍으로 피해를 입지만 결국 섬에서 행복해지는 이야기이죠. 이 이야기가 안산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면 좋겠네요.
타다
저도요. 재해라는 것은,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정말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이죠. 그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근데 대본이 안 나와서. (웃음)

세혁
마지막 질문입니다. 타다 준노스케에게 연극이란 무엇이죠?

[사진 : 임진원 limjinwon@gmail.com]

타다 준노스케

타다 준노스케

타다 준노스케(연출가, 극단 도쿄데스락 대표)
주요작품
<가모메> <로미오와 줄리엣-아시아연출가전 일본편> <세 사람 있어!>
<재/생> 외

태그 극단 도쿄데스락,타다 준노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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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혁

오세혁 작가, 연출, 배우
정의로운 천하극단 걸판에서 작가 연출 배우로 활동중.
트위터 @gulpanart
홈페이지 www.gulpan.com
제59호   2015-01-08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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