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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 종갓집의 둘째언니
[김은성의 연극데이트] 배우 박윤정

김은성_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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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주 박씨 종갓집에서 나고 자란 박윤정은 스물셋에 대학로에 첫발을 디딘다.
    막내면 막내로, 넷째면 넷째로, 셋째면 셋째로,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묵묵하게 지켜왔다. 그 후 12년, 삼십대 중반이 된 그녀는 어느덧 큰언니를 돕고 동생들을 돌봐야하는 둘째언니 자리에 서있다. <벌>의 가희로 시작해 <안티고네>를 넘어 <878미터의 봄>을 뚫고 <과부들>의 세실리아까지, 지난 7개월간 쉬지 않고 달려온 대학로의 믿음직한 둘째언니를 만났다.
  • 흰 그늘의 얼굴

    -<과부들> 개막 3일이 지났다. 오늘 공연은 어땠나?
    안정감을 찾은 날이었다. 연습 막바지까지 맡은 역할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리허설을 하는데 불안한 느낌이 있었다. 연습실에서 확실하게 감을 잡아 궤도에 오른 상태에서 무대에 올라가야 마음이 놓이는데 그렇지 못해서 무대 적응이 쉽지는 않았다. 점점 좋아질 것이다.

-세실리아, 연기하기 결코 쉽지 않은 인물로 보였다. 어떤 고민이 있었나?
연출님은 카르멘 같은 여자로 보이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연습을 지켜보시다가 조금 더 세고 강한 여자, 쌈마이 같은 여자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 나는 그보다는 약한 여자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예전에는 내가 보는 캐릭터와 연출이 그리고 싶은 캐릭터가 맞지 않으면 많이 어필하고 힘들어하는 편이었는데, 요즘에는 작품의 큰 흐름에서 어떤 인물로 서야하는지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한다. 작품의 선에 잘 서있는 인물이 되려고 애쓴다.

-주목받는 작품에 연달아 출연하고 있는데?
연기가 체력전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고 있다. (웃음) 특히 이번 작품 연습하면서 앞으로 체력을 잘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절실하게 했다. 좋은 작품에 계속 출연할 수 있어서 행복하고 감사하다.

-전에 <우리 말고 또 누가 우리와 같은 말을 했을까?>에서 스태프와 배우로 만난 적이 있었다. 그때보다 얼굴이 굉장히 밝아 보인다. 기운이 환해졌는데?
아, 그때... 얼굴이 그늘져 보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바로 전에 굉장히 무거운 연극을 했었다. 박정희 연출의 <마라, 사드>라는 작품이었다. 이전까지 나는 밝고 경쾌한 역할을 주로 맡아서 해 왔었다. <마라, 사드>에 급하게 투입이 돼서 부담감이 큰 상태로 연습에 들어갔다. 마음의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어두운 인물로 급하게 빠져들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인물에 너무 젖어버렸다고 할까? 그리고...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사건도 컸다. 고선웅 연출의 <삼도봉 미스토리>를 할 때였는데 함께 공연하는 선배님들이 너무 잘 챙겨주시고 워낙 유쾌한 분들이어서 당시에는 잘 견디고 넘어가는구나 생각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후에 슬픔이 깊게 찾아오더라. 충분히 애도되지 못한 슬픔이 남아있었던 거다. 그때는 사람들 만나는 것도 꺼려지더라. 어려운 시기였지만 그래도 계속 작업을 했다. 돌아보니 연극에 집중했던 게 다시 기운을 차릴 수 있는 보약이었다.

병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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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갓집에서 대학로로

    -충청도 양반집 딸이라고 들었는데?
    맞다. 충청도 온양에서 태어났다. 충주 박씨 종갓집에서 자랐다. 제사를 일 년에 열다섯 번 지내던 집안이었다. 할아버지는 반바지도 못 입게 하는 보수적인 분이셨다. 그런데 실은 나의 끼는 그 할아버지께 물려받은 게 아닌가 싶다. 할아버지는 서예를 가까이 하시면서 흰 양복에 백구두, 중절모를 쓰고 다니시던 멋쟁이셨다.

    -종갓집에서 배우를 꿈꾸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꼬맹이 때부터 TV 보는 걸 좋아했다. 어른들이 "윤정아, 다음 프로 뭐냐?" 하실 정도로 방송 편성표를 달달 외우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비디오 안내책자에 나오는 영화 제목, 감독과 배우 이름을 다 외워야 직성이 풀렸다. 연기에 막연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는데 고등학교 2학년 땐가, 천안으로 <날 보러 와요> 공연을 보러갔다. 연극을 처음 보던 순간이었는데 커튼콜 때 "나는 저기 저 자리에 서 있어야겠구나." 생각이 들더라. 연극영화과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감히 말을 꺼낼 수 없는 분위기였다. 집에서 정해준 학교와 과에 입학했는데 도저히 꿈을 버릴 수 없더라.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연극영화과 시험을 보고 합격했다.

    -뒷수습은 어떻게?
    일단 어머니 허락을 받아내서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아버지에게는 나중에 알렸다. 이미 다니고 있다는데 어쩌실 것인가? (웃음) 그저 한숨만 쉬셨다.

    -대학로에는 어떻게 입성 했나?
    4학년 졸업 직전에 극단에 들어가려고 마음을 먹고 인터넷으로 극단을 탐색했다. 백수광부가 눈에 들어오더라. 올해로 백수광부 12년차다.
  • 12년차 여배우
  • -이십대 초반부터 삼십대 중반까지 온통 대학로에서 보낸 셈인데?
    어린 나이에, 연극적으로 순수할 때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 잘 배울 수 있었다. 이성열 대표님은 물론이고 김동현, 류주연, 박정희, 고선웅 같은 연출님들을 어린 나이에 만났다는 것은 커다란 행운이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돌아보니 인생이 연극에만 있다. 한참 다양한 세상을 경험할 나이에 너무 연극에만 빠져있었다는 후회가 들 때도 있다.

    -듣고 보니, 대학로 종갓집에서 잘 자란 배우라는 생각도 든다.
    12년 동안의 극단 생활, 이성열 대표가 각별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극단의 어린 후배들은 대표님을 굉장히 편하게 대한다. 대표님도 그런 후배들을 좋아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모자 푹 눌러쓰고 눈에서는 레이저 광선을 쏘던 대표님의 첫인상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아직도 대표님이 호랑이처럼 느껴진다. 무섭다. (웃음) <마라, 사드>를 했을 때, 대표님이 공연을 보러 오셔서 "윤정아, 이제 니가 배우 같다." 하시더라. 그 말씀이 아직도 큰 힘이 된다. 무뚝뚝한 아버지가 툭 던지는 묵직한 한마디 같았다. 따뜻했다.

    -30대 중반으로, 선배와 후배들 사이 딱 중간에 있다. 어떤가?
    과장해서 이야기 하면, 요즘 도 닦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웃음) 이제 내 것만 잘 하면 되는 나이는 지났다는 생각이 든다. 팀 전체를 보는 눈을 가져야 하는데 쉽지 않다. 팀을 아우르면서 많은 것들을 봐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수양이 더 필요하다.

    -기억에 남는 작품은?
    <마라, 사드>의 박정희 연출님을 잊을 수 없다. 나에게 새로운 연기세계를 열어주신 분이다. 꼭 한번 다시 만나고 싶다. 계속해서 연기 코치를 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 <안티고네>도 좋았고, <벌>은 창작극에서 주인공으로서 공연을 끌고 가야하는 경험을 가르쳐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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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밖에 몰라요

    -꼭 한번 해보고 싶은 역이 있다면?
    나이를 더 먹기 전에 해보고 싶은 역은 <하녀들>의 끌레르.
    나이가 더 들면 <벌>을 다시 하고 싶다. 가희라는 인물이 참 매력적인데 잘 소화해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강하게 남아있다. 솔직히 지금 내 나이에 감당하기에는 어려운 역할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숙제로 남아있다.

    -만나고 싶은 연출가는?
    술자리에서는 곧잘 만나는 박근형 연출님과 작품으로도 만나고 싶다. <목란언니>의 전인철을 비롯해서 새로운 젊은 연출가들과의 작업도 기대된다.

    -배우로서 본인이 생각하는 장점과 단점은?
    <878미터의 봄> 한현주 작가가 그러더라. "너는 작품을 끙끙 앓으면서 한다." 그게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생각한다. 인물분석을 그만큼 치열하게 한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 과정을 너무 힘들게 겪으니 연출이 더 많은 것을 요구하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연기를 하면서 희열을 느낄 때는?
    관객들 시간을 버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 때.
    희열? 일단 안심이 된다.
    관객들이 공연을 보러오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 공연을 보는 시간, 보고 돌아가는 시간... 그 귀한 시간을 헛되이 버리게 하고 싶지 않다.

    -고민이 있다면?
    <과부들> 공연이 6월 10일에 끝나면 당분간 공연이 없다.
    지난 7개월을 거의 쉬는 날 없이 달려왔다. 오랜만의 휴식이 기대될 법도 한데 그렇지 못하다. 노는 법을 잊어버린 느낌이 있다.
    친구들을 보면, 어디 놀러가야지, 어디 여행가야지, 뭘 배워야지, 할 것들이 참 많은 거 같은데 나는 잘 모르겠다. 휴가가 다가오는데 막상 할 게 없어서 걱정이다. 그냥 고향 집에 내려가 있어야 하나... (미소) 허무하다.
    얼마 전에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가 있는 친구를 만났는데 '아, 나는 거짓말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건가?' 생각이 들더라.
    안티고네를 하면서는 아버지를 묻겠다고 절규했고, 우영이로 살면서는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첫사랑을 만났고, 지금은 세실리아로 살고 있는데... 인간 박윤정은... 뭔가... 어디에 있는가...
    아, 이게 배우의 삶인가? 고민이다.

    -애인은 없는가?
    그렇다.
공연 포스터
  • -결혼에 대한 생각은?
    결혼? 하고 싶다. 엄마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아기를 너무 좋아한다. (미소)
    다정한 사람, 대화가 잘 통하는 마음이 열려있는 남자를 만나고 싶다.

    -닮고 싶은 배우가 있다면?
    닮고 싶은 선배님들이 너무 많다.
    <과부들>을 함께 하고 있는 예수정, 한명구 선생님.
    극단 선배로는 이지하 선배님이 계신다. 끝까지 절대로 포기 안하는 모습, 존경한다.

    -배우 박윤정의 목표는?
    학교 다닐 때 공연 끝나고 분장실에서 운 적이 있는데 그 이후에는 그런 적이 없었다. 혼신을 다해 연기하고 그 열기가 관객에게 전달되는 정말로 좋은 작품을 경험하고 싶다. 벅찬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뜨거운 눈물을 맛보고 싶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배우를 할 거다. 공연이 끝나면 나 이제 그만 할 거다, 투정을 부리기도 하지만, 그러다가 새로운 대본이 들어오면 이미 마음은 연습실로 달려간다.
  • 공연 포스터
  • 박윤정 (배우 / 극단 백수광부 소속)
    주요작품 l <878미터의 봄><안티고네><벌><응시><이오카스테>
    <마라 사드><물고기의 축제><오레스테스>
    <삼도봉 미스터리>
    <굿모닝 체홉2> 外
    주요수상경력 l 2011년 제16회 히서연극상 기대되는 연극인상 수상

 

태그 박윤정, 과부들, 세실리아, 안티고네, 극단 백수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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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성

김은성 극작가
극단 달나라동백꽃 대표
주요작품 <로풍찬유랑극장><뻘><목란언니><연변엄마><순우삼촌><시동라사>외 다수
본지 편집위원.
웹진 1호   2012-06-07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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