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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이 내 인생이야” 말할 수 있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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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정은

김정은 선배님과의 조금은 어색하고 긴장된 첫 만남. 초면이라 나에 대해 찾아보셨다는 선배님이 극단에 대해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셨다. 한참 인터뷰어와 인터뷰이가 뒤바뀌어 있다가, 드디어…

선배님은 소속 극단이 있으세요?
정은
수레무대 소속으로 돼있지만 극단 작업을 안 한지는 오래 됐어요. 굳이 탈퇴할 필요를 못 느껴서 그냥 두고 있어요.
수레무대면 꼬메디아 델아르떼(Commedia Dell'Arte)에 영향을 많이 받으셨겠어요.
정은
코미디로 연극을 시작한 게 참 다행인 것 같아요. 통계를 내본 건 아니지만, 비극으로 시작한 배우들을 보면 다양하지가 않아요. 코미디를 했던 배우가 비극을 만났을 때 훨씬 더 다양하게 접근하고 표현하는 것 같아요. 저만 해도 꼬메디아 델아르떼로 출발하지 않았으면 아주 평범한 드라마 연기하는 배우가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설득력이 있는 것 같아요. 사실 기억은 안 나지만 예전에 수레무대 공연에서 선배님을 뵀을 수도 있겠네요. 수레무대에서 어떠셨어요?
정은
장르적인 특성도 있고, 김태용 연출님 연극의 특징이기도 했는데, 무대에서 몸을 많이 써야했어요. 어렸을 때는 몸도 좋고 그러니까 괜찮았는데, 어느 순간 몸에 한계가 오기 시작하더라고요. 공연 하다가 뼈가 두 번이나 부러졌어요. 그러면서 1년을 쉬었어요. 뼈는 시간이 지나면 붙지만 데미지를 많이 받았죠. 그런 게 참 속상하더라고요. 극단이 가난하다보니까 안전장치가 제대로 없잖아요. 매트 하나 깔아놓고 뛰고 구르고 해야 하니까. 그런 게 어느 순간 너무너무 지치더라고요.
힘들죠. 어쩔 수 없는 열악함이 참…
정은
그리고 계속 같은 장르를 하다보니까 다른 걸 좀 해보고 싶었어요. 다른 배우들도 그런 욕구가 있어서 극단에서 <유리동물원>을 했어요. 한계가 있더라고요. 아무래도 꼬메디아 델아르떼 전문이니까요. 다른 공연에 비해 평가도 별로 안 좋았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수레무대를 떠나게 됐죠.

배우 김정은

이번 <이영녀>에서 얼굴이나 몸을 많이 만들어서 연기를 하셨잖아요. 신체구축이 아주 인상적이었는데, 여기에도 꼬메디아 델아르떼의 영향이 있었을까요?
정은
처음 <이영녀> 희곡을 받고 피디가 몇 장 빠진 걸 잘못 보낸 줄 알았어요. 너무 짧기도 하고 뭐 이렇게 끝나나 싶었죠.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이음새에 빈 부분도 많고 점핑도 심하고요. 요즘 희곡이랑은 좀 달랐죠. 희곡 <이영녀>는 미완성작으로 알려져 있는데 박정희 연출님은 완성작으로 보셨어요. 처음엔 납득이 잘 안됐는데 배우들이 각자 공부해온 걸 나누는 과정을 거치면서 완성된 희곡으로 받아들여지더라고요. 쉽게 말해서 이영녀가 죽었는데, 주인공이 죽었는데 그럼 뭐 이야기 끝난 거 아닌가? (웃음) 꽉 짜여진 희곡도 아니고 박정희 연출님의 스타일이 있다 보니까 이 인물(차길례 역)에 접근할 때 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겠다, 는 생각을 했죠. 보통 우리가 인물에 접근할 때 이 인물이 왜, 어떻게 이렇게 됐는지 구체적으로 생각을 하잖아요. 예를 들어 다리가 불편하면 소아마비 때문인지, 사고인지 이런 거를 따지는데, 그런 일반적인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가 없겠다, 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물의 전사를 따져가는 것 보다는 당시의 사회상 안에서 어떤 인물상을 잘 보여주면 작품의 인물과 만날 수 있겠다, 싶었죠. 연출 방향도 굉장히 표현적이었고. 그래서 그저 평범하게 맞고 사는 여자, 그런 역할이 되면 안 되겠다, 표현적인 부분을 좀 더 극대화 시켜야겠다, 그러고 있는데 공옥진 할머니 병신춤이 딱 떠오르더라고요.
어렸을 때 우연히 TV에서 병신춤을 보고 너무 싫었어요, 그 뒤틀리고 추한 모습이. 근데 나중에 한 인터뷰를 보고 그 병신춤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알게 됐는데 굉장히 인상적이었거든요. 그걸 가지고 왔죠. 매 맞고 제대로 치료를 못 받고 그래서 몸이 뒤틀리기도 했겠지만 그런 이유를 물을 수 없을 정도로 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하나 더 뒤틀자, 더 일그러뜨리자, 그랬어요. 지문에도 굉장히 추물로 나오기도 하고요. 남편의 폭력에 짓밟혀서 고통 안에서 살아가는 여자의 삶이 몸의 형태로, 얼굴의 일그러짐으로 나온다고 생각했어요. 어중간하게 가지 말고 갈 데까지 가보자 하고 보여드렸는데, 연출님이 별말씀이 없어요. 아, 연출님이 나한테 힌트를 얻으셨구나, 했죠. (웃음) 나중에는 연출님이 더 일그러뜨리자, 그러셨죠. 이런 과정이었으니까 꼬메디아 델아르떼에 영향을 받았다고 하긴 어렵겠죠.
가끔 사람들이 넌 어떻게 그런 표정을 만들어? 그래요. 저는 어떤 표정을 막 만든다기보다 거울로 제 얼굴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그런 게 보이고 만들어지더라고요. 여배우니까, 라는 거나 못 생겨 보이고 이런 거에 별로 신경을 안 써요.
제가 선배님한테 질문하려고 했던 거 한꺼번에 다 답해주셨어요. 신체구축은 누구의 요구였는지, 여배우로서 못 생겨 보이는 게 부담스럽진 않으셨는지, 어떻게 힌트를 얻으셨는지 궁금했거든요. (웃음)
연습, 공연 때 계속 몸을 뒤틀고 계시면 육체적으로 힘들잖아요. 괜찮으셨어요?
정은
일단 충분히 몸을 잘 풀고 긴장을 안 하면 괜찮아요. 예전에 노량진 좌판에서 장사하시는 분들을 본 적이 있어요. 아저씨는 술 마시면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그 옆에 아줌마가 장사를 하고 계신데, 딱 봐도 아줌마 등쳐먹고 사는 아저씨, 그런 관계로 보였어요. 그 아줌마 얼굴에 화상이 있어서 얼굴이랑 표정이 일그러져 있었거든요. 그게 본인의 얼굴이고 삶이니까 그런 표정을 짓는 게 힘들진 않을 거 아니에요. 제가 44년간 지은 제 얼굴표정이 하나도 안 힘든 거랑 같은 거죠. 배우의 마음에 긴장감이 있거나 외부적으로 긴장을 하면 힘들죠. 다행히 외부적으론 유연한 편이라 괜찮았어요. 공연이 끝나면 다시 다 돌아왔어요.
보통 작품하실 때 그렇게 과감하게 제안을 하는 편이세요?
정은
어떤 연출을 만나냐에 따라 다르죠. 어렸을 때는 뭘 몰라서 고집도 많이 피우고 그랬는데 나이 들면서 좀 더 유연해졌어요. 새로운 연출을 만나면 그 연출의 언어를 알아듣는데 시간이 많이 들잖아요. 특히 좀 관념적인 연출을 만나면, 그 말 알아듣는데 중요한 시간을 다 쓰게 되니까 최대한 연출의 언어를 열심히 알려고 노력해요. 그리고 뭔가 잡히면 제가 먼저 만들어서 보여드리죠. 또 어떤 연출은 원하는 걸 굉장히 정확하게 얘기해요. 연출한테 부여받은 모습을 만들어가는 게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니에요. 그걸 제대로 해내기도 쉽지 않거든요. 만약 연출이 세모를 원한다면 네모인 내가 그 세모가 되는 것도 쉽지 않죠. 어떤 성향의 연출이건 최대한 연출이 가려는 방향에 같이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그러기 위해서 더 유연해져야겠다, 그런 생각을 많이 하죠.
김정은이 하는 차길례가 보이는 경우가 있고, 차길례를 보고 난 후에 어머, 걔가 김정은이었어? 그런 경우가 있어요. 다양한 배우가 있는데 전 후자가 좋아요. 제가 얼마나 숙성이 될지 모르겠지만 “김정은이 아닌 줄 알았어”, 그런 얘기를 듣고 싶어요. 배우는 작품에 들어가면 역할의 존재가 더 커지니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는 경우를 많이 봐요. 어렸을 때 저도 역할보다 배우의 존재가 더 잘 보이는 배우를 보면서 나도 저렇게 멋있게 보이고 싶다, 그랬죠. 그런데 경험도 쌓이고 나이도 들다보니까 연극 안의 어떤 인물로 존재하는 김정은을 훨씬 더 지향하게 되더라고요.
역할보다 배우의 존재가 클 때 관객들이 작품을 보는 게 아니라 그 배우를 구경하게 되는 것 같아요. 유명한 배우들이 나오는 연극을 보러 가면 그런 느낌을 받게 돼요.

배우 김정은

잠깐 쉬는 시간, 실내가 더워서 야외로 자리를 옮기려고 정리를 하던 중,
아!!!!!! 앞서 한번 녹음이 안 된 걸 깨닫고 다시 녹음 버튼을 눌렀는데, 또 녹음이 안 된 걸 발견, 울고 싶다.

여기까지는 짧은 메모와 기억에 의존해서 정리. 초짜 인터뷰어를 용서해주시길.

선배님은 연극영화과 출신이세요?
정은
서울예대 연극과 나왔어요.
진부한 질문이지만 처음에 연기나 연극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으셨을 텐데, 어떻게 연극과로 가시게 됐어요?
정은
초등학교 6학년 때, 5월에 집 앞에 있던 백화점에서 무슨 효도하자는 연극을 봤어요. 제목이나 내용은 기억 안 나는데 조명이랑 배우들, 그런 게 굉장히 기억에 남아있었어요. 초등학교 때 희곡, 스크루지 이런 걸로 연극하면 열심히 했었고, 잠깐 교회도 다녔는데 교회도 연극하러 다녔고, 재밌었으니까 (웃음), 자연스럽게 연극반도 했었고, 그냥 뭐 자연스럽게 갔던 것 같아요. 집에서 반대도 별로 없었고요.
반대가 없으셨다고요?
정은
반대를 한 건 졸업을 하고 나서, 밥벌이를 못하니까 후회를 하셨죠. 첫 극단인 수레무대가 그 때는 산골에서 합숙하면서 논밭에 무대 세워놓고, 하늘의 별 보면서 연극할 때였거든요. 목욕도 1주일에 한번 산 넘어 읍내 가서 하고, 군대처럼 사식으로 들어온 초코파이 먹고, 콜라 먹고 싶어서 울고… 그렇게 연극을 했으니 (반대를 하셨죠). 근데 그렇게 연극하는 게 재밌고 좋았어요. 막 외인구단 같고 스스로 되게 멋있는 것 같았죠, 어릴 때니까. 나중에 시간 지나고 보니까 꼭 그렇게 안 해도 연극 하더라고. (웃음)
그때 무비카메라가 하나 있었는데 그거 팔아서 100만 원 들고 내려갔었죠. 그렇게 연극하다가 꼬메디아 델아르떼라는 장르에 지치기도 하고… 그래서 새롭게 다시 시작하고 싶다, 그랬어요. 학연 때문에 선배들도 되게 많고 연줄이 많을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어렸을 때 워낙 외지에 있었잖아요. 그러다보니 선배님들이랑 유대도 별로 없고 수레무대 떠나니까 완전히 낙동강 오리알이더라고요. 그때가 29살이었어요.
오, 꽤 오래 계셨네요.
정은
네 8년 정도 있었어요. 그러고 대학로에서 그 누구나 다 겪는 먼지처럼 부유하는 시간을 겪었죠.
사실 안 그래도 서른 즈음은 여배우한테 굉장히 힘든 시기잖아요. 작품에 남자 배우만 역할 엄청 많고 여배우는 맨 아줌마 아니면 어린 여자 밖에 안 나오니까 힘들 땐데… (선배님의 격한 공감.) 진짜 힘드셨겠어요.
정은
진짜 힘들었죠. 차라리 먼지가 낫겠다, 싶었으니까요. 그러고 있는데 무대미술 하는 심채선 언니가 극단 주변인들에서 <코끼리 사원에 모이다>(노동혁 작, 서충식 연출) 라는 작품을 소개해줬어요. 그러면서 ‘수레무대’에서 주인공만 하던 애가 역할이 작아서 어떡하니? 그러는 거예요. 여주인공 했던 거는 여배우가 나밖에 없어서 그랬던 거거든요. 힘들어서 그걸 누가 해. (웃음) 극단에 찾아가서 그 작품의 청소부 역할을 했어요. 대사도 짧게 한 마디 밖에 없었는데, 서충식 선생님이 대사랑 장면도 늘려줬어요. 좀 난데없는 장면이 있었는데 관객들이 좋아하면서 웃더라고요.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 싶고 뭔가 뿌듯함 같은 걸 느꼈어요. 서충식 선생님이랑 극단 주변인들에서 작업을 오랫동안 많이 했어요. 어떻게 보면 저한테 은인인 분이시죠. 그렇게 이래저래 작품 해왔고… 올해는 국립극단 시즌단원으로 바쁘게 몸을 굴리고 있어요.
시즌 단원 어떠세요, 해보시니까?
정은
무정규직에서 비정규직, 1년 계약직이 된 거죠. 그 차이가 어떤 거냐면 배우들이 항상 힘들어하고 불안해하는 게 다음 작품이 없다는 거잖아요. 여기는 들어오면 1년에 3작품을 의무적으로 하게 되어있고, 일단 배는 안 고프죠, 경제적으로 아주 만족스럽진 않지만 필드(흔히 대학로로 말해지는 현장)에서보다는 나으니까.
그리고 오디션을 통해 뽑힌 17명의 배우가 있는데, 오디션을 통과했다는 건, 기본적인 역량이 있다는 거니까, 어떤 작품에 투입이 돼도 안정적이죠. 공연을 보다보면 비는 연기자가 있잖아요. ‘아쉽다, 그래 저 배우도 앞으로 발전을 하겠지’ 그렇게 생각은 해요. 하지만 그렇게 다독이고 넘어가기에는, 한편의 연극을 올릴 때 굉장히 완성된 완성체를 올려야하는 의무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면에서 보면 시즌단원을 뽑아서 작품에 투입하는 게 작품의 퀄리티를 어느 정도 보장해주죠. 그런데 국립도 마케팅을 해야 하니까 외부에서 좀 유명한 배우들이 들어와서 주역을 하게 돼요. 물론 탄탄한 조역이 작품의 완성도를 만들긴 하지만 일선에서 약간 밀려나는 느낌? 그런 게 있죠. 그게 맹점이라면 맹점일 거예요. 우스갯소리로 “필드에 나가면 주인공할 애들이잖아. 코러스 하고 그런 거에 불만 없냐?” 그런 질문을 받아요. 불만을 갖기 시작하면 할말은 진짜 많죠. 근데 제 생각엔 김윤철 예술감독님이 국립극단에 단원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즌 단원을 통해서 무언가를 실험해 보는 것 같아요.
내년에는 30명으로 늘이자고 예술감독님이 문체부에 의견을 내셨다는데 예산 문제 등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네요. 작품이 30편쯤 예정돼 있다고 하니까, 그만큼 배우가 많이 필요하긴 하겠죠.
시즌제의 장단점은 분명히 있죠. 이번 시즌제가 마무리될 때면 이런저런 얘기들을 예술감독님과 관계자들하고 나눌 시간이 있겠죠. 여러 가지 보완점을 찾아가는 건 그들의 몫이기도 하지만만 거기에는 깊은 고민이 따라야 한다고 봐요.
어떤 면에서는 배우가 계속 묶여있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국립’이라는 이름이 붙은 곳에서 1년 비정규직으로 단원을 구성한다는 게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근데 또 ‘국립극단’ 이런 곳에 오래 있게 되면 안주하게 되는, 그런 문제가 있는 것 같고…
정은
맞아요. 보니까 국립현대무용단도 1년 계약직으로 하고 있더라고요. 1년 비정규직이면 노조를 못 만들죠.
그렇죠. 그런데 또 ‘국립극단’ 이런 곳에 오래 있게 되면 안주하게 되는, 그런 문제가 있는 것 같고, 그렇다고 지금처럼 1년 비정규직으로 가기에도 또 문제가 있는 것 같고…
정은
그 중간에 어떤 적절한 지점이 분명히 있을 거예요.
이런 시즌제 역시 그 적절한 지점을 찾기 위한 과정일 수 있겠죠.
정은
예술감독님도 그런 말씀을 하시죠.

배우 김정은

생활인으로서 요즘 뭘 많이 생각하세요?
정은
계속 작품을 하고 있어서 연극 연습이 가장 크게 자리 잡고 있죠. 세상 돌아가는 것들이나 사회적인 이슈들에 대한 관심, 내가 정말 반대하고 분노했던 것들, 이런 것들이 연습을 하면서 자꾸 없어져요. 왜냐면 너무 바쁘고 피곤하다보니까. 그래도 여전히 한 생활인으로서 그런 부분에 대해 녹슬거나 낡지 말아야겠다, 하는 생각을 문득문득 해요. 일 때문에, 뭐 때문에 그러면서 정신없이 살다보면, 어느 순간 세상을 등지게 돼요. 본인이 세상의 중요한 관심사에 외면하고 등을 돌리는 순간, 사실은 세상이 나를 등지게 되는 거죠. 지금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이, 너무나 엄청난 많은 일들이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잖아요. 잊혀져가는 세월호, 메르스의 창궐, 가깝게는 이번 서울연극제 사태에 대한 연극인들의 무관심… 그런 여러 사회현상들에서 비통함, 허망함, 어이없음… (그런 걸 느껴요.) 얽히고설킨 거대한 세상이라는 유기물 속에서 개인이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한 가치관의 혼란스러움에 골몰할 때는 참 힘든 날이 돼요.
지금 <문제적 인간, 연산>(이윤택 작, 연출) 이라는 정치적인 면을 많이 다루고 있는 작품을 하고 있는데 이런 작품을 할 때는 배우들끼리 지금의 정치적인 것들에 대해 풍성하게 많은 얘기를 나눠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꼭두각시가 안돼요. 머리가 텅 빈 채로 연출이 요구하는 대로 껍데기만 연기하면, 참 희한하게 무대에서 그런 게 다 드러나더라고요. 배우 이전에 한 사회인으로서 개인의 존재가 어떠냐에 따라 작품의 인물과 만났을 때, 중요한 지점에서 더 깊은 무언가를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세상 곳곳에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 계속 놓치지 않고 보려고 애쓰는 것도 결국 무대와 삶이 하나로 엮어져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저는 개인적으로 정의당 당원인데, <이영녀> 공연을 본 당원들이랑 작품 속의 그 시대와 지금 현실에 대해서 얘기 나눌 때가 참 좋았어요. 살아있다, 나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배우 김정은

이제 슬슬 마무리를 지으려고 하는데요. 앞으로의 꿈이 있으시다면요?
정은
배우로서 사는 게 내 인생인가보다, 라는 걸 알게 된지 얼마 안됐어요. 연극은, 배우는 내가 다른 일을 하면서살 수도 있는데 그냥 메인디쉬야, 그게 내 인생의 전부는 아니잖아, 그러면서 딴 데 막 관심 가지고 기웃거리고 그랬어요. 좀 부끄러운 얘기지만 다른 동료들처럼 부단히 노력하지도 않았어요. 왜냐하면 열심히 하는 거에 너무 지쳐서. 내가 좋아하는 일이니까 덜 지치려고 주변을 많이 돌아다녔던 것 같아요. 근데 어느 순간 보니까 연극이 가장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연극이 내 인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운명 따위는 믿지 않는데, (웃음) 인생이 돼버리는 순간이 있는 거구나, 싶었죠. 지금은 얘기하면서 좀 민망한데, 더 시간이 지나면 “연극이 내 인생이야.”라고 말 할 수 있는 순간이 분명히 올 것 같아요. 그럴 때 “연극이 내 업이 돼버렸어. 그러니까 나는 내 인생에 꽤 자신이 있는 거거든. 세상에 대해 좀 더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 서슴지 말아야지”하는 확신과 용기가 생긴다고 생각해요. 그 시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그게 꿈인지는 모르겠네요.
인터뷰를 보시는 분들과 나누고 싶은 한 가지가 있다면요?
정은
(사실 여러 가지를 추천하셨는데 지면 길이 상 연극 장르를 빼고 책 하나만 골랐다.) 강신주의 『감정수업』이요. 요즘 다시 읽고 있는데 쉽고 재밌으면서 가볍지 않아요. 이 책에 나오는 명작, 고전에는 중요한 인물들이 나오니까 배우로서 작품을 바라볼 때 도움도 많이 돼요.
연극데이트 공식질문입니다. 김정은에게 연극이란?
정은
인생이 될 것 같다. ‘됐다’, 는 아니고요. 될 것 같다.

[사진: 장우제 woojejang@gmail.com]

배우 김정은

김정은(배우)
주요작품
<이영녀>, <3월의 눈>, <노래하는 샤일록>, <아버지의 집> 외

태그 배우 김정은,수레무대,부새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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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새롬

부새롬 연출가, 무대디자이너
달나라동백꽃 대표
주요작품 <뺑뺑뺑> <달나라연속극> <로풍찬 유랑극장> <뻘> 외
puromy@gmail.com
제70호   2015-06-18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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