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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가 많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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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최광일

인터뷰 장소에 최윤우 편집장이 놀러 왔다.

광일
‘추적 60분’에 너(최윤우) 나온 거 봤어. 많이 나오더라. 좋은 얘기 많이 했더라고.

얼마 전 ‘추적 60분’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을 이슈로, 대학로 소극장들이 맞고 있는 위기에 대해서도 다루면서 최윤우 편집장의 인터뷰가 방송에 나간 것이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대학로의 현실로 이어졌다.

이왕 이런 얘기를 하기 시작했으니까… 현장에서 일어나는 그런 일들에 관심 많으신 편이세요?
광일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죠. 집안 얘기잖아요. 집안에 우환 꼈다, 그런 거랑 똑같은 거니까.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렇게 소극장들이 사라지고. 며칠 전에 기사 보니까 결국에 시골로 내려가서 극장 짓고 거기서 작업을 하신다고…
광일
‘대학로극장’, 정재진 선생님이요.
네. 씁쓸하더라고요. 이런 일련의 사태, 아니, 사태는 아니죠.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던 일이니까요.
광일
한 마디로 슬픈 얘기죠. 예전부터 조금씩 계속 쌓여온 거예요. 극장주들이 단번에 월세를 올리고 그런 게 아니니까, 운영하던 분들이 버티고 버티다가 더 이상 손쓸 방법이 없으니까 그만두게 되는 거죠. ‘대학로 극장’ 뿐만 아니라 내놓은 데가 많잖아요.
누구는 ‘대학로를 문화 특구로 만든 때부터 지금까지 정책적으로 많이 잘못돼있었다.’ 그렇게 얘기를 하기도 하죠. 욕심 때문인 것도 있는 것 같아요. 건물주가 극장을 지으면 세금 혜택을 받잖아요. 그래서 건물을 짓는 분들이 그렇게 극장을 짓기 시작했고. 물론 그분들 나름의 사정이 있겠죠. 사실 정책적으로 배려를 해줘서 (소극장 운영 주들이) 남아있게 해줘야 하지 않나, 그렇게 생각해요.
저도 어렸을 때 들었던 얘긴데 처음에 연극이 명동에서 시작했다가 그쪽에 세가 비싸지니까, 이쪽 대학로로 넘어오게 됐다고, 여기서 이제 다른 곳으로 밀려나는 꼴이 되고 있는 거죠.
연극은 참 어디로 옮겨가기도 힘든 것 같아요.
광일
그렇죠.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극장이 처음에 터를 다지고 관객한테 인식되려면 3년은 걸린다고 했거든요.
아이고, 인터뷰를 너무 우울한 얘기로 시작했네요.

배우 최광일

선배님, 연기하신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광일
스무 살 때 시작해서 20여 년 됐어요. 정확한 연수를 말하자니 너무 많이 한 것 같아서. (웃음)
제가 생각하기에는 20여 년 전, 그때가 더 열악할 것 같은데, 어떤 면에선 당연히 그럴 테고요. 지금도 사실은 열악하잖아요, 이렇게 쫓겨나고 있고. 돌아보시면 어떠세요?
광일
맞는 말인 것 같아요. 주먹구구식이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아요. 계약이고 뭐고 그런 것도 없었고, 극단 자체도 힘들었던 때고.
좀 희한한 게 있어요. 연극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들어봤음직 한 ‘좋은 연극을 만들어야 된다.’는 말이요. 저도 누가 물어보면 ‘좋은 연극배우가 되고 싶다, 좋은 연극을 하고 싶다, 해야 한다.’ 그랬죠. 어렸을 때는 ‘좋은 연극이 뭘까?’ 생각하면서 신비롭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었고. 근데 지금 시간이 계속 지나면서 그 말이 희미한, 무지개 좇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거기엔 모든 말이 속할 수 있고, 반대로 아무것도 안 속할 수도 있잖아요. 나이가 들면 (연극을 하는 사람으로서의 생각이) 점점 단단해져야 할 텐데, 많은 일이 주변에서 생기고 그러다 보니까, 제가 나이를 그렇게 많이 먹은 건 아니지만, 저도 사실은 헷갈려요, 솔직히. 저보다 더 어린 친구들은 더 헷갈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좋은 연극이 작품성이 훌륭한 걸 말하는 건지, 대중들로부터 각광받는 걸 말하는 건지, 단적으로는 그런 얘기예요. 그렇다고 제가 막 하고 싶은, 고집부리고 싶은 연극이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에요. 누가 부르면 가요. 연출이 부르면 ‘감사합니다’하고 가요. 아니면 쉬게 되니까. 쉬고 싶진 않으니까. 이전에는 다작도 많이 했어요. 동료들이 “너는 1년에 몇 작품 하냐, 장사하는 놈이냐” 농담으로 그랬어요. 공연 하나 끝내고 1주일 있다가 바로 공연하고 그랬거든요.
공연하시면서 다른 작품 연습하고 곧바로 공연하고 그러셨나 봐요.
광일
1년에 4개? 5개 작품을 그렇게 하고 나니까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하나 끝내고 다음 작품 하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어 가지고, 완전히 민폐죠. 보는 사람한테도, 같이 하는 동료들한테도. 제가 힘들어하고 헤매니까. 1년 정도 그런 시기가 있고 나서는 (작품 사이에) 조금 시간을 가져야겠다 싶었는데, 지금은 그 시간이 또 너무 길어져서. (웃음)
선배님은 1년에 4, 5개 하시면서 힘들었다고 하시지만 요즘엔 더블로, 트리플로 공연을 동시에 두세 개씩 하기도 하고 그러잖아요. 후배가 그러고 있으면 조언이나 그런 거 하세요?
광일
아주 친한 후배 중에 그런 친구가 있어요. 조언이 아니라 술 한 잔 먹으면서, “그렇게 하면 힘들지 않느냐, 힘들겠다.” 그랬죠. 그 친구가 세 작품을 동시에 할 때, 나랑 하는 연습이 마지막이었는데 많이 피곤해하더라고요. 연습 끝나고 맥주 한잔 하는데, 건배하고 한 모금 마시고 조는 거예요. 딱하잖아요. 물어봐도 자세한 얘기는 안 하고. 나중에 지인한테 집안일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들었어요. 사정 알고 나서는 뭐… 그렇게까지 해야지만 생활을 할 수 있는 상황이니까.
또다시 우울한 얘기로 갔네요.
광일
연극 얘긴 거의 다 우울할 걸요. 우울하고 막 쪼잔하고. (웃음)
연극인의 생활고는 참… 20여 년간 연기하시면서 생활고 말고 힘드셨던 때 있으세요?
광일
힘들었던 얘기하면 또 우울해지잖아요. (웃음)
저는 힘든 얘기가 궁금하더라고요. 선배님들은 어떤 과정으로 연극을 해오셨고 또 어떻게 버텨오셨나. 연극에 관련해서나 연기적으로 뭐가 잘 안 되고 힘들었던 때요.
광일
<종로고양이>(조광화 작, 김광보 연출)를 혜화동1번지에서 공연할 때였는데, 그 조그만 극장에 사람들이 많이 보러왔어요. 되게 센 작품이었고 깡패역이었어요. 하면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들기도 했는데, 그 캐릭터 이후에 섭외가 안 들어왔어요. 배역을 못 맡을 때죠. 같은 캐릭터로만 자꾸 쓰이고.
그런 경우가 많죠. 또 반대로 어떤 연출이 배우의 새로운 면을 발견해줄 때도 있잖아요.
광일
그렇죠. <빨간 도깨비>(노다 히데키 작, 연출) 할 때였어요. 노다 히데키라는 연출이 참 재밌는 사람이었어요. 모든 연출법이 “나는 모르겠다”, 뭘 하든 “와, 너무 좋다” 그래요. 그 연출이 세계를 돌면서 공연을 했는데, 다른 나라에 갈 때마다 자기는 그 나라에 대해 모르니까 배우들한테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했대요. 그 연출이랑 되게 재밌게 했어요. 그때 좀 시원했어요.
그 연출님이 선배님에 대해서 선입견이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였겠어요.
광일
그렇죠. 막 쪼잔하고 까불까불대는 그런 캐릭터를 만들었어요. 되게 재밌었어요.

배우 최광일

잠깐 쉬는 시간.

선배님, 저 예전에 <남자충동>(조광화 작, 연출)에서 소품디자인 했었어요.
광일
아, 그랬어요?
기억 잘 안 나시죠? 너무 예전이라… 십 년 전쯤이잖아요. 이번에 <히키코모리 밖으로 나왔어>(이와이 히데토가 작, 박근형 연출) 보러 가서 좀 놀랬어요. 그 때 <남자충동>하셨던 선배님들이 많이 나오셔가지고.
광일
네, 정민이 누나, 남희 형. (황정민, 이남희 배우)
반갑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더라고요. <히키코모리>를 제가 작업하던 팀 사람들이랑 같이 보러 갔는데, 여기 웬 ‘어벤저스’냐고. (웃음) 소위 말하는 대작, 이런 것도 아니고 배역이 아주 많은 작품도 아닌데 어떻게 그렇게들 모이셨는지.
광일
저도 누가 하는지 모르고 갔어요. 첫날 엘리베이터 앞에 남희 형이 서 있길래 “어디 연습하러 가시냐” 그랬더니 “근형이 만나러 가” 그래요. 가보니까 다 그렇게 모였더라고요.
작업하시면서 어떠셨어요? 그렇게 쟁쟁한 분들이랑 많이 모여서 작업하신 건 되게 오랜만이실 거잖아요.
광일
그렇죠. 오랜만이죠. 작년에 <별무리>에서 주인영이랑 두 명 나오고 그런 거 하다가. 강지은 누나랑 골목길 식구 말고는 다 근형이 형이랑은 처음이었어요. 지나가다 술자리, 상갓집, 이런 데서만 보고 그러다가. 재밌었어요.
<히키코모리>에서 힘을 쫙 뺀 캐릭터를 연기하셨잖아요. (모리타 역, 히키코모리였다가 세상에 나온 인물) 저는 솔직히 선배님 작품을 많이 못 봤는데, 같이 봤던 다른 선배님이 연기하시는 게 좀 바뀐 것 같다, 라는 얘기를 하셨어요. 힘이 많이 빠진 것 같다고.
광일
그 날 내가 굶어서 그런가. (웃음)
스스로도 이전이랑 연기하는 게 좀 바뀌었다, 그런 생각 드세요? 아니면 역할 때문에 그렇게 인물 구축이 된 건가요?
광일
역할 때문인 것 같아요. 연습을 한 달 정도 했는데, 근형이 형이 연습을 많이 안 해요. 맨날 술 먹으러 다니고. 저도 술 싫어하지도 않고, 익히 듣기도 했는데… 한 30분 리딩하더니 “우리 너무 오래 한다, 옆에 치킨집 가서 시원한 맥주 한 잔” 그래요. 첫날은 다들 “그러죠”하고 가서 마셨어요. 다음날 1시간 연습하고 “우리 어제보다 더 많이 했다.” 그러더니 양주를 꺼내서 마시고. 연습시간이 적으면 배우들이 불안해지잖아요. 근데 전부들 어떻게 휩쓸려서 뭐. 연습하다가 “너무 덥지, 오늘 날 죽이던데.” 그러고 한마디 흘려요. “여기 조금만 걸어가면 동묘 있는데 거기 가면 구제 물건도 많고 기가 막힌 막걸리집 있다”고. 전부 다 보따리 싸서 나와서 두산아트센터에서 일렬로 서서 걸어갔어요.
그 선배님들이 다 같이요? (웃음)
광일
거기 가서 막걸리 먹고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자꾸 역할을 구축하려고 하는… 그런 게 안 들더라고요. 공연이 가까워지는데 내가 어떤 캐릭터를 만들어 내거나 그럴 필요가 없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차피 내가 하는 거니까. 모리타라는 그 사람을 내가 입어버리는 거잖아요. 사실 나랑, 아니 누구나와 비슷한 부분이 많아요. 어디서 기분 나쁜 일이 있거나 작품이 없거나 그러면 집에서 공상을 해요. 이틀, 사흘 집에서 안 나온 적도 있어요. 누구나 한 번씩 그런 경험이 있잖아요. 짧게는 몇 시간이라도. 나한테도 분명히 있는 경험이었고, 대본에 나오는 사건을 내가 겪은 걸로 끌어오다 보니까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선배님 말하기가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뭔가를 많이 안 만든 것 같기도 한데, 만든 것 같기도 하고, 말을 특별히 더듬는 것도 아니면서… 좀 만드셨어요? 아니면 자연스럽게 찾아가신 건가요?
광일
만들 수가 없었어요. 친한 후배가 보러 와서 “더듬은 거야, 뭐야?” 그래요. 근데 나는 더듬었다는 생각을 전혀, 한 번도 한 적이 없거든요. 그런 얘기를 들으면 “내가 언제, 어디서 더듬었느냐?” 그러면 첫 장면부터 그랬다는 거예요. 내가 더듬었다고? 그게 난 의문이었어요. 그래서 상화랑 정민이 누나한테도 나 더듬느냐고 물어보고 그랬어요.
참 좋았어요. 어떻게 저렇게 무대에서 편한 말하기를 할 수 있을까, 그런 얘기를 같이 본 배우들하고 했어요.

배우 최광일

생활인으로서 요즘 제일 많이 하는 생각 있으세요?
광일
어떻게 하면 잘 살아갈 수 있을까. 금전적인 문제도 있고, 작업하면서 갖고 있는 고민이 있잖아요. 그런 거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죠.
다시 연극 얘기로 돌아오는 것 같긴 하지만, 어떤 고민이 있으세요?
광일
답답함, 공연하면 생기는 답답함. 어떤 역할을 만났을 때 좀 더 딱 붙어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게 한참 된 생각인데, 이 생각을 하다 보면 선생님들, 선배님들 생각이 나요. 그럼 그분들은 편하게 하실까. 이런 생각을 해보면 내가 생각했던 게 좀 쭈그러들긴 하는데, 그게 그렇게 목말라요.
방법을 모르니까 실험도 해보고 그러는 편인데… 전에 도둑놈 역할을 한 적이 있어요. (도둑질할 때) 흥분이나 떨림도 없고 그래서 남의 집 지붕에 올라갔던 적이 있어요. 여름에 장위동에 있는 컨테이너로 된 옥탑 위에 올라갔어요. 밑에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니까 진짜 겁나더라고요. 야, 이게 이렇게 떨리는구나, 내가 진짜 훔치러 간 것도 아닌데. 근데 갑자기 밑에서 사람들이 막 고기 구워 먹고 그래가지고 한참 있었어요. (웃음) 정말 무서웠죠. 만약 걸리면 내가 연극배운데요, 이런 게 통하겠냐고. (웃음) 뼈저리게 기억하게 됐죠. 근데 연습을 계속하다 보니까 ‘도둑도 프론데 너 같으면 떨겠냐?’ 그 생각이 훅 들어오더라고요. 그럼 내가 올라갔던 건 뭐지? (웃음)
재밌네요. 또 어떤 실험을 해보셨어요?
광일
<보이첵>(게오르크 뷔히너 작, 임형택 연출) 할 때였는데, 환청 듣는 걸 익히려고 플라스틱 컵을 들고 다니면서 한쪽 귀를 컵으로 막고 손톱으로 컵을 긁어서 그 소리를 듣고 그랬어요. 한 달쯤 그러고 다녔는데 15일 정도 지나니까 컵을 떼고 누구랑 얘길하는 데도 계속 들리더라고요. 그쪽 귀랑 골이 무거워져요. 공연엔 도움이 많이 됐어요. 환청으로 음악 소리도 듣는데, 하다 보니까 내가 마음대로 상상하는 소리로 들리더라고요.
그런 접근이 위험하다는 생각은 안 드세요?
광일
위험을 감수하죠. 어쩌면 위험할 거란 생각을 못 해요. 그게 문제라면 문제겠지만. 스스로를 볼 때 나는 똑같은 일반인인데 이 직업을 갖고 있으면 거기에 따라서 필요한 게 있잖아요. 요리사가 칼질을 잘 해야 하는 것처럼. 배우도 그런 게 있어야 되는데 작품마다 다르잖아요. 주머니가 좀 많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배우 최광일

공연 가까워지면 많이 예민해지시겠어요.
광일
예민해지지 않아요. 사실 젊었을 때는 좀 그랬어요. 예전에 러시아 배우들이랑 트레이닝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감각 트레이너가 “공연을 하든 영상물을 찍든 자신의 고민이 하나라도 남아있으면 집중이 안 된다. 최대한 편안한 상태가 되어야 한다”는 얘기를 했는데 너무 맞는 얘기더라고요. (주머니가) 비어있으니까 그걸 채우려고 막 하다 보니까 예민해지기도 하고 오히려 공연은 잘 안되고. 요즘은 공연할 때쯤 되면 편해져요. 만약에 못 찾았다 그러면, 고대로 보여졌으면 좋겠어요. 관객들이 빈주머니를 발견하면 욕먹어야지, 뭐, 그렇게 생각을 해버리니까 아등바등 안 하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내가 내 일 하면서 예민해지고 싶지 않아요.
슬슬 마무리를 지으려고 하는데요.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한 가지가 있으시다면요?
광일
저희 큰 형님(최찬식 화가)이 서양화가예요. 형이 물고기, 북두칠성, 옥수 떠놓은 장독대, 포장마차에 눈은 있고 입은 없는 넥타이 맨 사람들, 연탄불에 구워지는 생선들, 또 고양이는 담 위에서 지켜보고 있고, 그런 걸 그리는데 솔직히 그 그림들이 참 좋아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면서 어렵지도 않을뿐더러 얘기도 많고. 그 그림들을 공유했으면 좋겠는데 형이 전시회를 자주 하진 않아요. 나중에 기회 되시면 보시면 좋겠어요.
연극데이트 마지막 공식질문입니다, 최광일에게 연극이란?
광일
아, 갑자기 닭살이 막. (웃음) 약인 것 같아요, 약.
뭐, 좋은 약이 될 수도 있고 나쁜 약이 될 수도 있고.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직업이다 보니까 올바른 자세로 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약사나 의사한테 뭘 받으면 백 프로 믿잖아요. 이것 먹으면 정말 좋아집니다, 그러면 비타민 처방한 거 먹고도 나아진다고 하고. 공연, 연극, 저도 그렇게 하고 싶어요.

[사진: 장우제 woojejang@gmail.com]

배우 최광일

최광일(배우)
주요작품
<히키코모리 밖으로 나왔어> <별무리> <동물 없는 연극> <돈키호테> 외 다수

태그 배우 최광일,부새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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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새롬

부새롬 연출가, 무대디자이너
달나라동백꽃 대표
주요작품 <뺑뺑뺑> <달나라연속극> <로풍찬 유랑극장> <뻘> 외
puromy@gmail.com
제72호   2015-07-16   덧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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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자연스런 질문들에 은근한 대답들
넘 좋네요

2015-07-16댓글쓰기 댓글삭제

순우
좋은이야기옆에서듣는기분에젖는밤입니다좋습니다감사합니다

2015-07-17댓글쓰기 댓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