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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를 꿈꾸는 거인
[김은성의 연극데이트] 배우 윤상화

김은성_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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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학로 최단신 남자배우 윤상화의 별명은 땅콩이었다. 160이 될까 말까한 작은 키뿐이랴, 얼굴도 풍기는 이미지도 곱상함과는 거리가 멀다. 한마디로 배우를 하기에는 최악의 조건. 그러나 그는 건장한 미청년들로 넘치는 대학로 바닥에서 그야말로 바닥부터 치고 올라와 어느덧 배우인생 20년을 바라보는 믿음직한 중견연기자로 자리매김했다. 올라서는 무대마다 자신의 존재감을 기어코 각인시키고야 마는 작은 거인의 삶과 연극을 돌아봤다.
  • 해남 윤씨 숨은 종손

    윤상화의 말은 굉장히 독특한 억양을 가지고 있다. 경상도 사투리 같기도 하고 전라도 사투리
    처럼 들릴 때도 있다. 어디서 태어났는가?

    그럴 것이다. 전라도에서 태어나 경상도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전라도 강진에서 살다가 5살 때 아버지 직장을 따라 밀양으로 이사를 갔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줄곧 마산에서 살았다.

    (이때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어린이집에 다니는 꼬맹이 딸과 소꿉친구처럼 통화를 했다.)
    딸 바보가 따로 없다. 굉장히 가정적인 가장으로 알려져 있다. 맞는가?
    글쎄... 딸이 지구 평화에 조금이라도, 마음이라도 기여할 수 있는 인물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선 우리 집부터 평화로워야 하지 않겠는가? (웃음)
    음... 나는 해남 윤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외아들에 장손이라는 말을 가끔 들으면서 자랐다. 집안 분위기도 그랬을 뿐더러 스스로도 혈통적인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는데(웃음) 4-5년 전 쯤 느닷없이 해남 윤씨 종친회에서 전화가 온 거다. 해남 윤씨 종친회 사무실이 이화사거리에 있다는 것은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근처 연습실에 왔다 갔다 하면서 간판을 본 적이 있었는데 바로 그곳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회장님 말씀 "잃어버린 종손을 찾았다." (웃음) 그게 나라는 거였다. (웃음)
    당장은 웃고 넘어갔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놀라운 일이었다. 삶을 인식하는데 작지만 큰 변화가 있었다. 아, 내가 사는 게 나 혼자 사는 게 아니라 어떤 큰 흐름 속에서 나라는 존재가 나왔구나... 그러니까 이전에는 내 개인에게 집중한 삶이었다면 그 이후에 어울려 함께 살아가는 호흡이랄까, 주변을 보는 시선이랄까, 조금 넓어진 게 있다.
공연 포스터
  • 어렸을 때부터 배우의 기질이 있었는가?
    아니다. 숫기가 없는 아이였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일을 힘들어하는 아이였다. 그런데 돌아보면 뭔가 숨은 끼는 가득했던 아이였던 것 같기도 하다. 초등학교 때 학예회 시간, 중학교 때 소풍 장기자랑 시간을 돌아보면 신나게 놀던 그림이 떠오른다. 음... 그러니까 멍석을 깔아주면 잘 놀던 아이, 그게 나였다.
  • 연극과의 첫 만남은?
    고등학교 불교 학생회를 하면서 부터다. 교회에서도 연극을 하듯, 절에서도 연극을 한다. (웃음) 배우로 참여했는데, 달마대사가 동쪽으로 이동하게 된 계기를 담아낸 연극이었다. 정말 재미있었고, 결국 그 기억을 잊지 못한 거다.
    대학교에 들어가서 자연스럽게 연극동아리를 찾아가게 되더라. 전공은 경영학이었지만, 입학 초에 학과 모임보다 연극반 모임에 먼저 참여했다. (웃음)
  • 연극반 활동, 어땠는가?
    동아리방에서 살다시피 했다. 3학년 때까지 배우로 활동하다가, 4학년 때는 연출을 두 작품 했다. <감마선은 달무늬 얼룩진 금잔화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라는 범상치 않은 제목의 작품을 올렸었고, <시민 조갑출>이라는 작품으로 대학연극제에 나가 동상을 받았다. 94년인데 그때 심사위원이 김철리 선생님이었다. 좋은 인연이었다. 훗날 대학로에서 인사드렸을 때 당시 만남을 기억하고 계셔서 놀란 적이 있다.
  • 본격적인 활동은 언제부터?
    마산에서 방위생활을 할 땐데, 퇴근 후 저녁시간을 활용하고 싶어서 극단 마산에 들어갔다. 입단을 하자마자 <에쿠우스>의 알런 역을 맡게 됐다. 그게 프로 무대 첫 데뷔였다.
    연출가 정세혁, 뮤지컬배우 홍지민 등이 당시 마산에서 함께 활동했던 친구들이다.
  • 청우에서의 10년

    대학로에는 언제 어떻게 입성했나?
    방위를 마치고 학교를 졸업할 즈음에 연극반 염동원 선배가 부산 가마골소극장에서 올라가는 <에쿠우스>에 출연한다고 해서 보러갔는데 너무 재밌더라. 아직도 선연하게 기억날 정도로 정말 뻑이 갔었다. 연출가 이름을 기억해 뒀었다. 김광보.
    얼마 후에 김광보 연출이 염동원 선배 등과 서울에서 극단을 창단한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그들과 같이 하고 싶었다. "저도 같이 하고 싶어요" 하며 대학로로 찾아왔다.
    운 좋게 극단 청우의 창단 공연 <종로고양이>에 참여하게 됐다. 스물여섯, 대학로 데뷔무대였다. 하루에 포스터 100장, 200장씩 붙이러 다니고 이런저런 고생도 많이 했지만 힘든 줄도 모른 행복한 시절이었다. 운이 참 좋았다. 김상호, 문경희, 윤복인, 강승민 등 좋은 배우들과 함께 했다. 그때부터 청우에서 시간을 보냈다.

    극단 청우에서의 시간, 어땠는가?
    음... 2004년 <뙤약볕>까지 극단 청우 작업을 계속 하다가 그 뒤로는 외부 작업을 많이 하게 되면서 지금까지 왔는데 청우에서 한 10년을 보냈다.
    청우에서의 10년... (정색) 정말 치열했다! 치열했다.
    입단 초에 배우로서의 존재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나 스스로 존재가치를 입증해 내고 싶었고, 버텨내고 싶었다. 아주 기본이 되는 것들을 정말 열심히 했다. 발성, 신체를 활용하는 법, 열심히 공부했다. 열심히 연습했다.
    돌아보면, 배우의 기본에 대해서 충실히 기반을 닦았던 시간이었다. 지금도 김광보 연출이랑 이야기를 많이 한다. 정말 의미 있는 작업들을 했다고.

    김광보, 윤상화에게는 어떤 연출가 인가?
    단원들에게 참 무뚝뚝한 대표였다. 과묵하고 일에 있어서 철저하신 분이다.
    당시에는 서운한 느낌이 들 때도 많았는데, 점점 나이를 먹으면서 그가 속정이 참 많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나는 그에게 많은 것을 배웠고, 지금도 얼마나 의지하고 있는지 모른다. 작업을 할 때마다 어떤 고민에 부딪힐 때 제일 먼저 생각난다.
    "광보 형이라면 지금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했을까?"
병사이야기
병사이야기
  • 나의 연극친구들

    청우에서 점차 활동영역을 넓히게 되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나?
    당시에 어울려 놀던 친구들의 영향이 컸다.
    그때가 2002 월드컵도 열리기 전이니까 벌써 10년도 더 됐는데, 작,연출을 하는 장우재와 배우 윤제문과 친하게 지냈다. 그들과 어울려 놀면서 약간 충격을 받았다. 연극과 연기를 들여다보는 관점이 나와 굉장히 다르더라. 그 느낌이 좋았다. 충격적이었다.
    내 속에서 변화의 욕심이 꿈틀거렸다.

    무엇이 다르던가?
    그들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연극에 나오는 인물을 연극 중심으로 봐왔었는데 그들은 삶을 중심으로 인물을 보더라. 깜짝 놀랐다. 부끄럽기도 했다. 그 뿐만 아니라 우재나 제문이 둘 모두 연극을 너무 잘 하더라. 부러워하기도 하고 질투도 하면서 그러면서 재밌게 지냈다.

    당시 어떤 작업들을 했는가?
    쉼 없이 달리던 청우가 조금 휴식기를 가진 적이 있었다. 나에게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되었다.
    조광화 연출의 <미친 키스>를 하면서 아코디언을 본격적으로 만지게 되었고 또래의 친구 연출가들과 재밌게 어울리기 시작했다. 김낙형의 <나의 교실>, 장우재의 <차력사와 아코디언>에 출연했다. 김학선, 최진아와 아비뇽에 거리공연을 만들어서 다녀오기도 했던 귀한 시간이었다.
공연 포스터
  • 기억에 남는 공연은?
    음... 기국서 선생님의 <관객모독>이다.
    기국서! 정말 좋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런 연출가였다.
    재밌는 일화가 있다. (웃음)
    공연 개막 열흘 쯤 지났나, 무대에서 독백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객석 한쪽에서 누군가 기립박수를 치는 거다.
    (웃음) 기국서였다.
    원래 연출한 공연이 시작되면 안 보시기로 유명한 분인데 약주 한잔 드시고 슬그머니 들어오셨 던 거다. 박수를 치시다 공연 중에 퇴장 당하셨다. (웃음)
    물론, 웃지 못 할 해프닝이다. 하지만 나는 그 일로 큰 용기를 얻었다.
    공연을 함께 했던 전수환, 양동근, 서은경과 10년 후에도 꼭 같이 하자고 했는데 정말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이후 지금까지 행보는?
    언젠가 <시동라사>라는 작품의 포스터를 길 가다가 봤다. 제목도 이상한데 왠지 끌리더니 재공연에 출연하게 되어 전인철 연출을 만나게 되었다. 이후 그와 <순우삼촌>, <목란언니>를 함께 했다. 호흡이 잘 맞는 믿음직한 젊은 연출가다.
    <다락방>을 통해 만난 일본 연출가 사카테 요지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히끼꼬모리 역의 내게 던진 그의 주문을 잊을 수가 없다.
    "너의 고독을 우주 한가운데 고독으로 끌어올리지 않으면 안 된다. 개인차원에 머물러 있는 고독이 아니다."
    철학적인 멘트였지만 아주 구체적으로 와 닿는 디렉션이었다.
    최진아 연출과는 <1동 28번지 차숙이네>를 정말 열심히 만들었다.
    지금은 신인 연출가 부새롬의 <뻘>에 출연 중이다. 공연 막바지다. 많이 보러오셨으면 좋겠다.
  • 진짜 사자가 되고 싶다

    40대 연극배우이자 한 집안의 가장이다. 어떤가?
    음... 아직 힘든 건 잘 모르겠다.
    전세금을 올려달라고 할 때 좀 힘들긴 하다. (웃음)
    큰 위기가 한번 있었다.
    작품 활동을 왕성하게 하다가 10개월 가까이 어디에서도 출연 제의를 못 받았을 때가 있었다. 꾹 참고, 죽자고 산에만 다녔는데, 수입이 없으니까 경제적 어려움과 자괴감이 한꺼번에 밀려오더라. 너무 힘들었다. 아이가 태어날 즈음이어서 더 불안했다.
    그런데 차이무의 민복기 연출이 <부드러운 매장>이라는 작품에 불러줬다.
    작업도 아주 재미있게 했다. 두고두고 그에게 고맙다.

    언제 가장 행복한가?
    딸하고 있을 때.
    그리고 작품으로 인정받을 때.
    특히 아내에게 작품으로 인정받을 때 행복하다.
    아내의 평이 굉장히 가혹하다. 좋은 작품에 대해서 가혹하다.
    전에는 연출가가 인정해 줄 때 행복했는데 지금은 아내가 인정해 줄 때 행복하다.

    언제 가장 힘든가?
    작품이 내가 기대했던 것 보다 안 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
    힘들다. 속상하다.

    어떤 연극이 좋은가?
    나는 문학을 좋아한다. 대부분의 영감은 문학에서 많이 받는다.
    그 중에서 시에서 영감을 많이 받는다.
    시, 나는 시적인 지점이 있는 연극이 좋다.
    마술적 판타지가 열리는 연극이 좋다.
    최근에 본 <과부들>이 그런 작품이었던 것 같다.
    과부들의 마지막 부분은 아주 힘 있는 시처럼 느껴졌다. 아주 좋더라.

    꼭 한번 만나고 싶은 연출가는?
    박근형 선배를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는데 작품으로도 한번 만나보고 싶다.

    좋아하는 선배배우가 있다면?
    주진모 선배님을 좋아한다.
    <인류 최초의 키스>에서 죽는 역을 하고 계실 때였다.
    어느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연극배우로 살면서 뭐가 힘드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하셨다.
    "내가 매일 죽는 게 나는 가장 힘들다."
    그 말이 각인되어 있다. 믿음직스럽고 존경할 만한 배우의 힘이 느껴지지 않는가?
병사이야기
병사이야기
공연 포스터
  • 후배 배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음...
    (한참을 생각한 후 단호한 한마디가 터져 나왔다.)
    진실로 원하는 게 있으면 시간을 아까워하지 말아야 한다.

    윤상화의 목표는?
    연기하다가 늙어 죽는 것.
    한국연극 100년사를 다룬다면, 한 시대의 좋은 배우로 이름이 거론되는 배우로 남고 싶다.

    연기 인생 20년이 가까워져 간다. 풀어야할 숙제가 있다면?
    (정색) 연기를 하면서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
    관객에게 웃음을 줘야 할 때, 감동을 줘야 할 때, 그 포인트를 찾고 있는 내 연기가 나는 싫다. 그냥 물처럼 흘러가는 연기를 하고 싶다. 웃기기 위해서 울리기 위해서 노력하는 나를 발견할 때 스스로 혐오감이 든다. 참 어렵고 복잡하고 정리가 잘 안 되는 생각인데...
    음.... 이를테면 내가 사자 역할이다.
    내가 쓱 지나갈 때 사자 냄새가 나면 좋겠다.
    굳이 사자 발톱을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 공연 포스터
  • 윤상화 (연극배우)

    주요작품 l <뻘><목란언니><이형사님 수사법>
    <1동 28번지 차숙이네><순우삼촌><락희맨쇼>
    <시동라사><다락방><감포사는 분이,덕이,열수>
    <발자국안에서><관객모독><차력사와아코디언>
    <뙤약볕><인류최초의 키스><쟈베트>
    <나의 교실><종로고양이>

태그 윤상화, 뻘, 극단청우, 김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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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성

김은성 극작가
극단 달나라동백꽃 대표
주요작품 <로풍찬유랑극장><뻘><목란언니><연변엄마><순우삼촌><시동라사>외 다수
본지 편집위원.
웹진 4호   2012-07-19   덧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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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숙
항상 인상적인 연기로 작품을 잘 채워주시는 윤상화님~~ 앞으로 파이팅 이세요. ^^*

2012-07-19댓글쓰기 댓글삭제

레고영
맞아요. 이번 갤럭시 박 도 그렇구...ㅋㅋㅋㅋㅋ

2012-07-19댓글쓰기 댓글삭제

???
작가가 필진인데 자기공연 출연배우 인터뷰하면 좀 그렇지 않나? 자기 프로필엔 <뻘> 작가인거 쓱 빼놓고?

2012-07-19댓글쓰기 댓글삭제

연극in편집부
바로 필자 프로필에 <뻘> 업데이트를 했습니다.^^ 편집부에서 좀 게을렀네요~ 저희 인터뷰이 선정은 필자가 아닌, 연극in 편집위원회의를 거쳐 선정하고 있습니다.^^ 주목 할 만한 젊은 연극인을 소개하고, 기사를 통해 본 연극인의 매력을 공연을 통해 직접 느끼시도록 하기위해, 현재 작품 활동 중인 연극인을 위주로 기획하고 있지요.

2012-07-19댓글쓰기 댓글삭제

연극in편집부
앞으로도 많은 의견 부탁드리며.. 혹시, 인터뷰를 통해 만나고 싶은 배우가 있으시다면 인터뷰 신청 게시판에 사연과 함께 남겨주세요. 다음 코너 기획 시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2012-07-19댓글쓰기 댓글삭제

강주리
윤상화님 인터뷰 보니 너무 좋네요.. 한상 좋은 연기 보여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요, 앞으로도 좋은 공연 부탁드립니다 ^^

2012-07-20댓글쓰기 댓글삭제

김수연
목란언니에서 진짜 좋은 연기를 보여주셨던 윤상화 배우님의 인터뷰 기사 너무 재밌어요~

2012-07-23댓글쓰기 댓글삭제

이자연
연기하다 늙어 죽는 것, 가끔 배우들의 그 목적이 부러울때가 있어요. 단순하나 확실한 그 목표가. 연극in편집팀도 좋은 웹진을 만드는 목표가 있으니 잘못된 부분도 수정해 가시며 더 발전된 모습을 보이시라 믿어요. 배우님도 작가님도 연극in도 힘내세요!

2012-07-26댓글쓰기 댓글삭제

테디
말씀 만큼이나 멋지신 배우님.따님에게도 마눌님께도 다정하실듯... 인터뷰이 선정은 인터뷰어가 직접 하시나요....;;;;

2012-07-31댓글쓰기 댓글삭제

연극in편집부
오랜만이에요, 테디님.^^ 저희 인터뷰이는 매달 연극in 편집위원회의를 통해 선정하고 있습니다~^^

2012-08-01댓글쓰기 댓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