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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비정상은 우리의 정상보다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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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은영입니다.
극단 청우의 단원입니다.
나는 연출가
아니 아직은
연출가의 길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습니다.

내가 언제부터 연극을 하고 싶었을까요.
잘 모르겠어요.
저는 늘 계획을 따르지 않고 즐거움을 따랐거든요.
어느 순간 알게 된 연극이 너무나 즐거웠고
그 즐거운 연극 속에서 연출은 더더욱 즐거웠고
그래서 지금은 즐겁게 연출을 하고 있네요
살면서 겪게 된 순간순간의 즐거움들
그 기적들 때문에.
나는 지금 연극을 하고 있습니다.

연극에 관련된 모든 것이 즐거웠어요.
책이란 책은 죄다 싫어서 만화책도 안 보던 사람이
연극에 관련된 책을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거든요.
책 읽다 잠드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사람이 잠을 안자도 살 수 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렇다고 재능이 넘쳤던 것은 아니에요.
빛나는 동료들은 주변에 넘쳤었죠.
나는 그저 연극 속에 있는 순간이 너무나도 행복했기 때문에
계속 그 순간에 머물고 싶어서
하루하루 계속해서 연극의 세계를 들여다보려고 노력했죠.

2007년이었을 거예요. 대학에서의 연출실습 수업.
김광보 연출님이 수업을 오신다고 했어요.
수업을 하시는데 ‘정상과 비정상’에 대한 질문을 하시더라고요.
그 질문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요.
살아가면서 단 한 번도
무엇이 정상적인 것이고
무엇이 비정상적인 것인지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생각을 하면 할수록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정상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비정상처럼
비정상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정상처럼
뒤죽박죽으로 다가왔어요.
때로는 비정상이 아름답게
때로는 정상이 흉측하게

어쩌면 연극은
정상과 비정상에 대한 물음으로부터
시작이 될 수도 있겠구나.

그 수업에서 연출님은
‘에쿠우스’를 만들어보자고 하셨어요.
어느 장면이든 좋으니
너희가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을
마음껏, 솔직히 보여 달라고.
‘너희가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이라는 말이 너무 좋았어요.

그 수업 이후로
저는 연출님을 선생님이라고 불렀고
작업을 하면서
고민이 생길 때마다 선생님을 찾아갔어요.

재밌는 건
작업에 대한 고민 때문에 찾아갔는데
작업에 대한 얘기는 안 하셨다는 거예요.
제 근황에 대해 물으시고
작업에 대한 얘기를 묵묵히 듣고
그리고 딱 한마디.

“너의 작품은, 말 그대로 너의 작품이야. 너의 작품이니까, 네가 책임져야지”

그 한마디는
참으로 따뜻한 동시에 참으로 무서운 한마디였어요.
선생님을 몇 번이고 찾아가서
그 한마디를 몇 번이고 들으면서
‘내 작품을 내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힘’이
조금씩 생겨났어요.

극단 청우에는
선생님이 연출을 맡으신 공연에
조연출로 참여했다가
‘조연출만 하지 말고 우리 극단에 와서 연출을 해보라’는
선생님의 제안을 받고 들어왔어요.
감사하면서도 두려운 제안이었죠.
하지만 그 덕분에
매일매일 행복하게 연극을 할 수 있는
든든한 고향이 생겨났어요.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 1년도 안 된 신입단원이에요.
하하하

청우의 단원으로서 제 요즘 생활은 이래요.
아침에 눈을 떠요. 씻어요. 도시락을 싸요. 연습실에 가요.
연습을 해요. 연습이 끝나면 막차 시간이 와요.
정류장으로 달려가서 버스를 타요.
가끔 선배님들과 술 한 잔 하는 날은
과감하게 택시를 타요.
집에 와서 잠을 자요.
다음날 눈을 떠요. 도시락을 싸요.
이 반복된 하루하루가 나한테는 최고의 행복이에요.

지금은 히라타 오리자 작 <곁에 있어도 혼자> 연출을 맡아서 즐겁게 작업하고 있어요.
일본에서 열린 SCOT(Suzuki Compant Of Toga) 여름 페스티벌에 참여를 했었어요
. 일본어를 전혀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던 때였죠.
거기서 처음 그 작품을 봤어요.
너무 놀랐어요.
말을 한마디도 못 알아들었는데도 엄청나게 재미가 있는 거예요.
그때는 왜 재미가 있었는지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인물들의 관계가 다 보였기 때문인 것 같아요.
연극에서 인물과 관계가 명확하면 어떤 대단한 것이 없어도
엄청나게 재밌을 수 있다는 것을 그 연극을 통해 배웠죠.
그러다가 그 기억을 잠시 잊고 3년이 지났고
극단 청우에 들어가고 연출을 해보고 싶은 작품을 찾던 중에
라는 희곡을 읽게 되었는데
세상에
그 작품이 바로 3년 전에 본 그 작품이었어요.
말을 몰라도 기가 막힐 정도로 재밌었던 작품이었는데
한국어로 번역된 대본을 읽으니 더더욱 기가 막혔죠.
무조건 하고 싶었어요.
곧바로 히라타 오리자의 극단 청년단에 연락을 했어요.
이 작품을 하고 싶다고,
‘언어 너머에 있는 인간의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라고 확신한다고.

그 작품이 바로 지금 연습하는 <곁에 있어도 혼자>예요.
7월 7일부터 31일까지 ‘혜화동 1번지’에서 공연해요.
8월 6일과 7일에는 이 작품으로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 젊은 연출가전’에도 참가해요.
정말로 행복한 여름이 될 거예요.

여름이 지나고 나면
또 어떤 삶이 펼쳐질 지 아직은 모르겠어요.
확실한 것은
분명 ‘연극을 하는 삶’이 펼쳐질 것이라는 것.

연극을 하면서 정말 행복한 건
이 세상에 예술이 아닌 것은 단 하나도 없다고
확신이 든다는 거예요.
살면서 접하는 모든 것
살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이
정말로 다 예술이에요.
그래서 늘
소중하게 대해야 할 것 같아요.
내가 접하는 모든 것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
연극을 통해서
내가 행복해지고
나랑 닿아있는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고
그리고
나의 다음 세대가 나보다 조금 더 행복해지고
그렇게
행복이 계속해서 이어지면 좋겠어요.
그 행복들이 쌓이고 쌓여서
비정상적인 세상의 모습 때문에
비정상이라고 여겨지는 모든 것들이
정상으로 여겨지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어요.
‘이 세상에서 당신의 비정상은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이 오면 좋겠어요.

그래서 나에게는 연극이 종교 같은 거예요.

모든 삶이 행복하게
모든 만남을 소중하게
모든 관계를 사랑스럽게
그리고
모든 비정상을 정상으로.

[사진: 장우제 woojejang@gmail.com]

이은영(연출가)
주요작품
<곁에 있어도 혼자> [The Actor's Nightmare] <리어왕> 외

태그 당신의 비정상은 우리의 정상보다 연출가 이은영, 오세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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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혁

오세혁 작가, 연출, 배우
정의로운 천하극단 걸판에서 작가 연출 배우로 활동중.
트위터 @gulpanart
홈페이지 www.gulpan.com
제95호   2016-07-07   덧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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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을홍
부럽고 멋지십니다...
김광보연출님께서 와서 연출을 하라고 하셨다니... ㅠㅠㅠㅠ

2016-07-08댓글쓰기 댓글삭제

what
인터뷰 읽은 당일에 혜화 근처 카페에서 뵈어서 넘 신기했어요 ㅎㅎㅎ 아리까리 했는데 대화 중에 배우 연기 등의 단어가 들려서 확신했지용 잘 읽었습니다 화이팅하세요!!

2016-07-12댓글쓰기 댓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