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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하신 지 얼마나 되셨어요?
목화에서 창단 재공연때부터니까, 85년부터.
와, 30년이 넘으셨네요. 목화는 어떻게 들어가시게 되셨어요?
대학 졸업하고, 한명구하고 우리 어디 가야 되냐, 극단을 만들어야 되는 거 아니냐, 궁시렁 대다가, 목화라는 데가 창단됐는데, 오태석이라는 최고가 계시다, 그래서 갔어요. 거기에 선배들이 많이 계시기도 했고요.
연기를 전공하신 건가요?
애초에는 소설을 쓰고 싶었고 , 연극과 들어가면서는 극작을 하고, 연극을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죠. 그때는 극작과는 없었어요.
문학청년이셨나 봐요.
양아치지, 뭐. (웃음) 목화에서도 나는 작품을 써야 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서, 배역 욕심을 안 냈어요. 오태석 선생님한테 배우로서 적극적으로 어필을 하지는 않았지. 내가 가끔가다 어떤 역할을 하면 다들 재밌어 했어요. 평사시의 내 모습이 아니라 다른 모습이 나오고 그러니까.
연기, 극작, 둘 다 병행하고 계신데, 스스로 정체성을 어느 쪽에 두세요?
둘 다죠. 배우이자 작가. 힘이 있어서 날아다닐 때는 배우를 하고, 작가는 힘이 없어도 할 수 있으니까. (웃음) 지금 못 쓰고 있는데 그걸 위안으로 삼죠.
극작하신 작품에 출연하시기도 하세요?
< 에비대왕> 할 때는 출연도 했지. 에비대왕을 써포트 하는 역할을 했어.
직접 쓰신 작품에 출연하면 어떠세요? 다른 작품에 출연할 때랑 좀 다를 것 같은데요. 연출이랑 작가가 부딪힐 때가 있잖아요. 연출이 좀 부담스러워 할 것 같기도 하고요.
부담스러울 수도 있죠. 그런데 그 순간에는 배우로 있는 거니까. <에비대왕>할 때는 재밌게 우애롭게 작업해서 작품이 잘 만들어졌어요. <리어의 역>할 때는 내가 한 30분을 모노드라마처럼 끌고 가는 장면이 있는데. 기국서 선생님이 “홍형이 작가니까 만들어가면서 해도 된다.” 그러시기도 했지.
그래서 대사를 새로 쓰기도 하셨나요?
아니. 그건 기 선생님의 소울이 담겨있는 작품이니까. (웃음) 목화에서는 내가 애드리브의 마왕이었었는데, 다른 작품을 할 때는 애드리브도 절대 안 해요. 쓸데없는 간투사도 안 하고. 아이들 지도할 때도, 그 간투사를 할 호흡으로 대사를 해라, 김빠진다, 절대 못하게 하죠. 번역극을 할 때는 한국 어법에 맞게 윤색을 좀 하기도 해요.

연극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었다면요?
연기를 7년동안 쉬었다가 <수수께끼의 변주곡>이라는 작품을 했는데, 김광보 연출이었고 2인극, 번역극이었어요.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 두려움도 많았어요. 대본의 반 이상을 내가 했어야 되니까. 근데 해보니까 되더라고요. 그걸 하면서 다시 연기를 해도 되겠다, 생각을 했죠. 그리고 작가로서도, 사실 우리나라가 서구 전통에 비해서 극작술이 좀 떨어지는데, 그 작품의 극작술을 보면서 공부랑 반성을 많이 했죠.
극작을 하면서는 내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에비대왕>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일본에 가서 공연도 했는데, 10일동안 만석이었어요. 내가 학교 다니면서부터 왜 우리는 전통을 근본으로 한 연극이 없나, 그런 고민을 했어요. 서양은 셰익스피어, 더 거슬러 올라가서 그리스극이 있는데, 그러면 우리 연극의 근원은 뭐냐, 생각해보니 굿이에요. 그래서 바리데기 얘기를, 아버지 버전으로 푼 작품이 <에비대왕>이에요. 시대에 대한, 역사에 대한 발언을 담았던 <진짜 신파극>이라는 작품, 마지막 남은 친일파가 섬에 은둔해서 아직 천황을 모시면서 사는 이야기인데, 이것도 기억에 남고요. 임종국 선생의 『친일문학론』이라는 책이 있어요. 그걸 보고서 친일파 얘기를 하되, 연극적으로는 재밌어야 된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쓴 작품이죠. 이것도 형식적으로는 좀 관념적이었던 것 같아요. 우리 스스로가 아직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래서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기억에 남아요. <고요한 아침의 호텔>은 노무현과 박근혜를 먼 상징으로 두고 땅을 차지하려는 사람들 이야기인데, 나름대로 고민하면서 썼는데 대본 자체가 성공을 못한 것 같아요. 그리고 한번 공연으로 끝나서 아쉬움 때문에 기억에 많이 남아요. 내 작품엔 사람이 많이 나와서 재공연하기가 힘들어요. 서너명 나오는 거 써야 되는데. (웃음)
역사 문제나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으신가 봐요.
그래서 꾸중도 많이 듣죠. 그런 거 하지 말고 쉬운 얘기, 사람 얘기 해, 그런 얘기 많이 들어요. 앞으로는 그래야 될 것 같아요.
왜요?

역사 생각하면 짜증나. (웃음) 연극에 정치적 발언을 내포한 인간을 담는 게 좋지, (직접적인) 정치적 발언은 하기 싫어요. 그건 다른 데서 하니까. 만약 독재국가에서 < 햄릿>, < 맥베스>, < 줄리어스 시저> 같은 작품을 하면 그 자체가 저항이 돼요. 백퍼센트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면 오히려 더 어려워져요. 유신시대나 5공, 군부독재 시절에는 오택석 선생님의 <태>라는 사육신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이미 연극적 저항이었었다고. 지금은 그런 은유로 얘기하기가 오히려 어려워지니까 자꾸 직접적이 된다고. 너무 직접적이 되면 차라리 광장에 나가서 떠들지 이걸 왜 연극으로 하느냐, 그런 딜레마가 있어요. 나도 아직 해결 못했고. 후배들이 하는 공연을 보다 보면, 그 상황에서, 그 나이 때 그런 걸 하는 게 맞지, 했다가도 그것보다는 역사나 시대에 대해서 좀 더 내밀하게 들어가고, 더 넓은 이야기를 하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런 꼰대적 생각을 하기도 하지. (웃음)
최근에 검열사태나, 돌아가는 시국 때문에 정치적인 발언을 담은 작품이 좀 많아지기도 한 것 같아요. 그런 걸 보시면서 아쉬움을 좀 느끼시나 봐요.
세대차이일 수도 있지. 아직 우리는 연극적 미학의 다양성을 우리 스스로 만들지도 못했고 관객이 누리지도 못했다고. 우리가 분단국이라는 현실 때문에, 문학도 그렇고 굉장히 이념적이에요. 목화가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중반까지 거의 매년 일본에 공연을 갔어요. 일본 연극을 보면, 거긴 이념의 문제를 떠났기 때문에, 물론 형편없는 것도 많지만 굉장히 다양한 작품을 해요. 우리는 정치적인 메타포 같은 걸 담으면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그렇지 않으면 덜 평가하는, 그런 부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확실히 다양성은 부족한 것 같아요. 형식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그게 박근혜 정권 들어와서 더 그렇게 된 것 같아, 검열문제니 뭐니. 연극과 문학이라는 거 자체가 시대에 대한 저항이라는 것을 담보하고 있는 건데, 그걸 검열한다는 게 웃기는 거죠. 문화부 관리들이 바보들이에요. 얘네들은 (예술가들) 워낙 그런 거예요, 당신을 비판하는 걸 가서 보세요, 그러면 오히려 좋아할 겁니다, 이렇게 어드바이스 해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는 거지. 요즘 보면 유신 때보다도 더 회귀한 거 같아. 또 다른 면으로는 이미 지나간 이념의 노래를 부르는 작품도 많아요. 이미 답이 나와있는 목적극은 싫어요.
시절이 이렇다 보니 이런 얘기를 하게 되네요. 지금 연극관에 대해 좀 말씀을 해주셨는데, 연극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건 뭐예요?
관객이 중요해요. 한달 보름 이상 열심히 연습하고, 연습 끝나고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술 마시면 작품 얘기하고, 연출은 연습기간보다 더 길게 준비하는데, 관객이 없으면 어떡하나, 그게 제일 두려워요. 연극을 좀 줄여야 되나? (웃음) 연극 공부하는 학생들, 연극인들이 객석을 많이 채우는데, 일반 관객이 많이 봐야 되잖아요. 어떻게 관객을 끌어들이나, 그게 참 문제인 것 같아요. (한참 생각) 이건 너무 복잡한 문제야.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그렇죠. 다들 고민하지만 쉽게 해결하긴 힘든 문제죠.
오래 전에 들은 얘긴데, 외국에서 어느 연극하는 사람이 자기네 나라 관객은 중년, 노년층인데 한국에 와서 연극을 보니까 젊은 관객이 많다고 너무 좋다, 그랬대요. 착각이죠. 대학 졸업하고 나면 연극 잘 안보잖아요. 관객층이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죠.
그게 참, 연극 보고 싶어도 야근에, 뭐에 여유가 없잖아요.
독서 인구랑 연극을 보는 층은 같은 건데, 우리나라는 독서율이 굉장히 낮잖아요. 그런 거지. 배우들이 2,30대에 연극을 하다가, 기회가 와서 (영화나 TV 같은) 다른 장르로 가는 거 좋아요, 그런데 나중에 다시 연극을 같이 하면 좋겠어요. 장르를 넘나드는 배우들이 좀 있긴 하지만 많지 않잖아요. 매체를 넘나드는 게 연기 테크닉적으로도 힘들고 현실적인 여건에서도 힘든 일이지만, 일본이나 유럽처럼 그렇게 넘나드는 배우가 많으면 좋겠어요.
그게 스타시스템의 문제를 낳기 쉽지만, 또 한편으로는 연극 저변을 확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죠.

어떤 작품을 선택할 때, 매력을 느끼는 지점이 있잖아요. 배역이라든가, 뭘 중요하게 생각하세요?
시켜주면 다 해야지. 배우는 선택 당하는 존재라고. 내가 애들 가르칠 때도 “배우는 선택 당해야 돼. 누가 널 선택하겠니? 너보다 잘 하는 놈들 쎄고 쎘어. 왜 이 배역으로 널 선택하겠니? 그걸 니가 해내야 해.” 그러는데, 나한테도 하는 말이에요. 배우는 역할을 제안 받으면 겸허하게, 감사하게 받아들여야죠.
작가로서나 배우로서나, 슬럼프에 빠지실 때는요?
배우는 많이 안 했으니까. 작가로서는 이 얘기를 내가 써야 되느냐, 순수한 의도와 발상이냐, 그런 문제가 많이 걸리죠. 어차피 우리나라 극작가들은 작품을 하려면 지원금을 신청을 해야 되잖아, 그리고 의뢰를 받을 때도 있고. 사실 생활인이 되려면 다 할 수 있어야 돼요. 그런데 어느 순간에 그게 걸리면서 안 써질 때가 있더라고. 자발신명이 나야 되는데, 그걸 일으키기가 참 어려워요, 점점. 2, 30대엔 하루에 몇 편씩 머리 속으로 썼다 지우고 그랬는데, 지금은 몇 개월에 하나씩 떠오르고. (웃음) 글 쓸 친구들은 2, 30대에 막 떠오르는 것들 잘 메모해두고 그래야 돼.
연극판에 오래 계셨잖아요. 뭐가 많이 달라졌어요?
일단 연극하는 사람이 많아졌고, 그 때에 비하면 훨씬 다양해졌죠. 그래도 아직 (예술가들이) 분단된 한반도의 섬에 갇혀있어요. 상상의 폭이 여기를 벗어나야 되는데 그게 좀 약한 것 같아요. 이미 답이 나와있는 거, 다 아는 얘기를 연극으로 왜 해? 예를 들면 정의가 중요해, 민주주의가 중요해, 가족이 소중해, 그걸 누가 몰라요? 정의가 중요해, 중요해! 그러면 그게 목적극이 되는 거예요. 그 얘기를 하기 위해서 다른 얘기를 해야 되는데 그 기술이 모자른 거예요. 나도 그렇지만, 극작술이 모자른 거죠. 젊었을 때는 과감하게 해야 돼요. 머리카락에 불도 지르고 막 그래야 되는데. (웃음) 오히려 예전보다 착해진 거 같아요.

한반도라는 섬에 갇혀있다는 얘기가 정말 맞는 거 같아요. 한 문화권이긴 하지만 유럽 같은 곳이 부럽죠. 예전에는 있었는데 지금은 사라져서 아쉬운 건 있으세요?
이런 얘기 싫어하는데, 그 당시에는 집에 돌아갈 토큰(버스비)만 있으면 한달 내내 대학로에서 술 먹을 수 있었지. (웃음) 사람이 적어서 다 아는 사이였으니까. 그리고 대학로가 너무 유흥가가 된 게 아쉬워. 다른 지역으로 떴으면 좋겠어.
아무래도 오래 계셔서 그런지 연극판에 대한 말씀을 정말 많이 하셨어요. 후배들한테 해주고 싶은 얘기 있으세요?
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칠 때 하는 얘긴데, “니네들 대학로에 들어와서 공연 1년에 한두 편 하고, 술 먹고 왔다 갔다 하고, 친구들하고 깔깔거리고, 그러다 눈 감았다 뜨면 10년이다.” 그래요. 연극판에 함몰되면 안될 것 같아. 항상 깨어있어야 되고, 미술이나 영화나 다른 장르에 대한관심이 많아야 되고, 무식하면 안돼요. 자기계발을 끊임없이 해야죠.
너무 부끄러워지네요. 작품 한다 뭐 한다, 어쩌다 보면 서너 달 동안 읽은 책이 대본 밖에 없어요.
나도 그래. (웃음) 그리고 선배들이 하는 얘기를 소중하게 생각하면 좋겠어요. 내가 직접 경험을 한 건 아니지만 술자리 같은 데서 선배들 얘기를 들으면서 간접 경험을 한 게 내 재산이 되거든. 나도 선배들이 해준 얘기에서 많이 배웠죠.
마지막 질문 전에 덧붙이고 싶은 말씀 있으세요?
살아남아야 돼요. 아이들을 지도하고 내보낼 때 살아남으라고 얘기해요. 그렇지만 연극 아니어도 멋지고 재밌는 삶은 많죠. 그래도 괜찮고 두려워할 필요도 없어요. 그런데 이왕 선택했으면 즐기면서 했으면 좋겠어.
연극데이트 마지막 공식 질문입니다. 홍원기선배님께 연극이란?
숨어있는 신이다. 왜 숨어있는지는 모르겠어요. 그 신이 내가 못마땅한 건지, 부끄러운 건지, 내가 찾아야 될 꺼 같아.
아직 연극에서 더 찾고 싶은 게 많으신 거 같아요. 극작술에 대해서도 그렇고 연극의 다양성에 대해서도 그렇고.
제일 원통한 게 내가 영국에서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싶어. 사실 동양 한자 문화권에도 위대한 문명이 있는데 그걸 더 공부해야 될 꺼 같아요.

[사진: 장우제 woojejang@gmail.com]

홍원기(배우)

주요작품
< 피카소 훔치기> < 리어의 역> < 됴화만발> < 마라, 사드> 외

태그 숨어있는 신, 홍원기, 부새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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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새롬

부새롬 연출가, 무대디자이너
달나라동백꽃 대표
주요작품 <뺑뺑뺑> <달나라연속극> <로풍찬 유랑극장> <뻘> 외
puromy@gmail.com
제104호   2016-11-17   덧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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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울
그게 박근혜 정권 들어와서 더 그렇게 된 것 같아, 검열문제니 뭐니. 연극과 문학이라는 거 자체가 시대에 대한 저항이라는 것을 담보하고 있는 건데, 그걸 검열한다는 게 웃기는 거죠. 문화부 관리들이 바보들이에요. 얘네들은 (예술가들) 워낙 그런 거예요, 당신을 비판하는 걸 가서 보세요, 그러면 오히려 좋아할 겁니다, 이렇게 어드바이스 해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는 거지. 요즘 보면 유신 때보다도 더 회귀한 거 같아. <= 최근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문제를 일으켰다. 놀라운 건 유수의 극단 극단'목화' 출신 내로라하는 배우의 이름은 단 한명도 발견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술이라는 허울을 쓰고 사회에 대해 눈 닫고 귀 닫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해본다.

2016-11-18댓글쓰기 댓글삭제

연극고픈맘
대학졸업하고 연극을 보는 사람이 없다.. 정말 연극 보러 가기 힘듭니다. 영화가 인기가 많은 이유가 있죠. 아무때고 어디서든 볼 수 있으니까. 연극을 보려면 시내로, 대학로로 먼 거리를 찾아 가야 하고, 애기 키우는 엄마는 보고 싶어도 오후, 저녁 공연이라 볼 수가 없어요 ㅜㅜ 워킹맘은 말 다했죠. 오전 공연이라도 있으면 보러갈텐데.. 어느 극단에서든 시도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연극을 정말 좋아하는데 보러 가지 못하는 마음도 슬프답니다.

2016-11-18댓글쓰기 댓글삭제

judang
이 기사 너무 너무 좋아요.인터뷰 하신 분의 배우에 대한 애정이 넘치고 홍원기라는 배우의 답변이 마음을 울리더라구요.아직 작품을 보진 못 했지만 꼭 출연작 보고 싶어요

2016-12-01댓글쓰기 댓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