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재단
TOP

연극인

검색하기

버티면 쌓이고 쌓이면 사랑하고 사랑하면 연극이죠

목록보기

  • 링크
  • 프린트
  • 페이스북
  • 트위터

나는 황이선입니다. 나는 공상집단 뚱딴지의 작가이자 연출입니다.
지금까지 쓰거나 연출하거나 쓰고 연출한 작품은

<팩토리 왈츠>, <바람이 들려준 이야기>, <리어>, <프로메테우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봄은 한철이다>, <앨리스를 찾아서>
<모든 건 타이밍>, <런닝머신 타는 남자의 연애갱생 프로젝트>

연극데이트에서 연락이 왔을 때 이상한 모순에 빠졌어요.
연극데이트를 보면서 “왜 나는 안 부르지?”
막상 연락이 오니까 “난 아직 숨어있고 싶은데?”
나는 참 모순덩어리예요. 그래서 내 작품도 참 모순덩어리예요.

잠깐
인터뷰 이렇게 해도 되나?

나는 원래 사회복지사였어요.
일반 회사에도 있었고, 정신병원에도 있었어요.
어느 날 영화가 너무 하고 싶더라구요.
잠깐, 정정할게요.
솔직히 일은 너무 하기 싫고 다른 게 너무 하고 싶어서
머리를 굴리다가 떠올린 게 영화예요.
제 선택의 대부분은 다 그래요.
아주 큰 뜻이 있고, 신념에 가득 차 있다고 스스로를 속이는데 익숙해졌어요.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연극도 그렇고 담배도 그렇고.

잠깐
인터뷰 이렇게 해도 되나?

어찌 되었건 스물다섯 나이에 서울예대 극작과에 들어갔어요.
연극을 처음 봤어요.
신입생 오티 때 선배들이 직접 쓰고 직접 출연해서 우리한테 보여줬어요.
정말 정말 정말 재미가 없었어요.
연극이 이런 거구나. 연극하지 말아야겠다.

정말로
인터뷰 이렇게 해도 되나?

그때까지도 내 꿈은 무조건 영화였어요.
영화를 만들려는데 계속 엎어지더라구요.
이야기가 밖으로 못 나간다는 엄청난 답답함이 있었어요.
내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를 빨리 만나고 싶은 열망이 있었어요.
내 이야기를 가장 빨리 보여줄 수 있는 수단이 뭘까.
연극이 떠오르더라구요. 그래서 연극으로 슬쩍 넘어왔어요.

아이고
인터뷰 이렇게 해도 되나?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나는 오태석이라는 이름을 학교 와서 알았어요.
오태석 선생님은 엄청나게 놀라운 열정덩어리였죠
대체 저 분은 잠을 언제 자는 걸까.
잠을 계속 안 자면서 대본이건 무대건 연기건 술이건
그 무엇이건 계속 시간을 쌓아나가는 모습을 봤어요.

아 결국 시간을 버티면 무언가 이루어지는구나.
이야기이건 팀워크이건 무대이건 관객의 평가이건

시간을 버티고 버텨서 뚱딴지에 들어왔어요.
문삼화 연출님의 조연출도 하고, 내 작품을 삼화연출님이 연출하기도 하고
열심히 연극을 했는데, 뭐랄까…
연극에 대한 확신, 사람에 대한 확신이 점점 퇴색이 되는 거예요.
연극을 그만 하고 싶더라구요.
그래서 인도에 가서 마음을 다잡고 다시 연극에 올인을…

잠깐 잠깐 정정할게요. 사실 계속 하고 싶었을 거예요.
계속 하고 싶었는데 계속 하게 만들 동기부여 때문에 인도에 갔던 거예요.

아아,
나 자꾸 꾸미려고 하네.

인도에서 돌아온 후 <런닝머신 타는 남자의 연애갱생 프로젝트>를 올리면서
터닝포인트가 찾아왔어요.

영화를 하고 싶은 연극인이 아니라 연극을 하고 싶은 연극인이 되고 싶더라구요.
그 전까지 나한테 극단은 부르면 가고 아니면 말고 정도의 존재였는데
지금은 같은 이야기를 공유하는 존재가 되었어요.

그 전까지 모르는 걸 아는 척 하는 게 연극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모르는 건 모른다고 하는 게 연극이라고 생각해요.
아는 것만 안다고 하자. 아는 것만 작품으로 쓰자.
그러다보니까 써놓은 작품이 하나도 없네요. 나는 아직 하나도 모르니까.

연극은 참 이상해요.
어려운 프로덕션일수록 연습실에 먹을게 넘쳐나죠.
집에서 바리바리 싸오니까. 풍족한 프로덕션일수록 연습실에 먹을 게 없어요.
다 밖에서 먹고 들어오니까. 없을수록 넘쳐나는 이상한 뭉클함이 연극에는 있어요.

그나저나 내년이면 데뷔 10년인데 어떻게 살아야 될까요.
먹고사는 문제 말구요. 연극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음 이제는 좀 안 슬펐으면 좋겠어요.
세월호 사건이 있던 해에 나는 울지도 못했어요.
계속 계속 계속 벙 뜬 느낌이었어요.
그러다 갑자기 작년부터 계속 계속 계속 울음이 터져요.
교복 입은 아이들만 봐도 계속 울음이 터져요.
그렇게 계속 계속 계속 울다가 그런 마음이 들더라구요.
최소한 무기력해지지는 말자고.
어떤 슬픔과 어떤 재난이 있더라도 슬퍼만 하지 말자 무기력해지지 말자
어차피 슬픔은 남이 주는 게 아니니까.
내 안에 있는 것이니까 내 안의 슬픔을 내가 꺼내자.
아마 내 연극도 그런 작업이 될 것 같아요.
내 안의 있는 어떤 것들을 계속해서 꺼내는 작업.

사랑이라는 단어가 참 간지러운 단어인데 그 간지러운 단어가 요즘 계속 떠올라요.

신랑이 참 센스도 없고 재미도 없고 그런 타입인데 결혼 하고 나서 한 번도 외로운 적이 없었어요. 잘해줘서가 아니라 같은 지붕 아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신적 위안이 생기더라구요.

사랑이 흐르더라구요. 너무 사랑스러워서 너무 슬프기도 했어요.
사랑이라는 것의 영향을 계속 깨닫고 있는 중이에요.

연극도 배우도 작품도 사랑이 흘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요즘 작업하면서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하고 있어요.
당연히 간지럽지만 사랑을 하면 화가 나도 힘들어도 돌파구를 찾을 텐데
사랑하지 못하면 그냥 화만 나고 힘들기만 하는 거죠.

문삼화 연출님도 늘 사랑을 강조해요. 정말로 사람을 사랑하고 무대를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오태석 선생님에게 근성을 배웠다면, 삼화 연출님에게는 사랑을 배웠죠.

연극이라는 건 사람을 사람으로 만드는 작업 같아요.
연극 하면서 망나니가 사람 되는 거 여럿 봤어요.

부정을 위한 부정,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하던 사람이
사랑을 위한 부정, 사랑을 위한 비판을 하는 사람으로 바뀌는 기적
이게 연극 같아요,

10년간 연극을 하면서 연극도 싫고, 연극인도 싫고, 동료도 싫고, 세상도 싫고
다 싫었던 적이 있어요.
그런데 버텼어요. 무슨 객기인지는 모르겠어요.
내가 그만두더라도 이름값은 하고 그만두자. 이런 생각이었을 거예요.

그렇게 10년을 버티니까 연극이 사랑으로 다가오고 있어요.
지금은 이름값은 없어도 좋으니
연극을 하면서 최소한 창피하지는 말자고 생각해요.

작가로서의 황이선은 의도적으로 모호성을 추구하는 사람이에요.
네 얘기도 내 얘기도 아니고 우리 얘기도 그 쪽 얘기도 아닌 그런 얘기
무언가를 규정하거나 강요하고 싶지 않아요.
무대나 연극이 무언가를 가르치거나 강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슬픔이건 기쁨이건
우리가 안다고 믿었던 것들이 다른 방향성을 가질 수도 있다는 것을
언제나 생각해요

아는데 외면하고 있던 것들, 모르는데 아는 척 했던 것들
이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무대에 꺼내고 싶어요.
인정할 것을 제대로 인정하는 것. 나의 가장 큰 화두는 외면이에요.
외면하지 말자. 내 앞의 문제를 절대 외면하지 말자.

그것이 큰 문제이건 작은 문제이건 간에 내 앞에 놓인 것들은 무조건 외면하지 말자.

재작년까지는 희망을 외면하고 싶었어요.
희망은 좋은 거다, 라는 것을 강요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희망하면 나아질 것이다.
그래서 없는 사람들을 자꾸 희망하게 만들어놓고.
근데 희망이 정말 있나. 희망을 외면하면 어떤 일이 생기는 걸까.

이제는 나의 외면에 대해 생각해요. 내가 나를 알잖아요.
내가 외면했던 그 모든 것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왔다고 생각해요.
내 안의 나를 솔직하게 꺼내는 것이 결국은 정치라고 생각해요.

누군가가 나한테
연출님도 이제는 정치적인 이야기 좀 해야 되는 거 아니냐. 그래야 주목받는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정치적인 얘기를 하고 있다.
제 시간에 밥을 먹고, 제 시간에 잠을 자는 얘기. 이게 나한테는 정치적인 얘기다.

잘 먹고 집에 잘 돌아가서 돌아왔다고 잘 말하고 잘 자는 것.
이게 나한테는 가장 소중한 정치다.
잘 먹는 사람이 집에 잘 돌아가는 사람이 잘 자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있을 것 같냐.
나한테는 이게 정치다. 이 소중한 것들을 외면하는 정치는 정치가 아니다.

나는 관객과의 대화가 그렇게 좋아요.
잘 봤으면 잘 봤다. 못 봤으면 못 봤다. 이것도 외면의 문제예요.
공연이 끝나면 연극인들과 관객들은 서로 외면하고 갈 수밖에 없잖아요.
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잠시 극장에 머물러서 서로를 봐줬으면 좋겠어요.

일방적으로 몇 시간 동안 우리 얘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얘기도 들었으면 좋겠어요.
누군 말하고 누군 봐주는 게 아니라 서로 말하고 서로 봐줬으면 좋겠어요.

나한테 연극이란 참 귀여운 일이죠. 사람이 귀여워지기 시작하는 일.
누군가를 싫어하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참 귀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연극을 하기 전에는 싫은 사람은 정말 싫었는데,
연극을 하고 나서는 싫은 사람도 점점 귀여워지고 있어요.
사랑과는 다른 느낌이에요. 아껴준다는 느낌이랄까.

서로의 다른 가치를 아껴주는 작업이 연극 같아요.
스태프가 배우를 아끼고 배우가 관객을 아끼고
관객은 다시 배우를 아끼고 배우가 다시 스태프를 아끼고
어떻게 서로 아껴나가면서 서로의 가치를 빛낼 것인가가
나의 가장 큰 화두예요.

어떤 공연의 쫑파티에서 우리가 하는 일이 정말 신났으면 좋겠다.
그 얘기를 신나게 하면서 엉엉 울었던 적이 있어요.
너무 신나는 얘기를 하는데 나는 왜 너무 서럽게 울었을 까요.
그 좋은 얘기를 왜 통곡을 하면서… 그게 연극인가 봐요.

[사진: 장우제 woojejang@gmail.com]

황이선(작가·연출가)
공상집단 뚱딴지
주요작품
<팩토리 왈츠> <바람이 들려준 이야기> <리어> <프로메테우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외

태그 황이선, 오세혁

목록보기

오세혁

오세혁 작가, 연출, 배우
정의로운 천하극단 걸판에서 작가 연출 배우로 활동중.
트위터 @gulpanart
홈페이지 www.gulpan.com
제89호   2016-04-07   덧글 3
댓글쓰기
덧글쓰기

봉도
앨리스를 찾아서 공연 봤었는데. 좋았습니다~

2016-04-07댓글쓰기 댓글삭제

Dragon
파란만장한 인생, 연극은 인생이다 !!!!

2016-04-07댓글쓰기 댓글삭제

행인
너무좋은글입니다

2017-02-23댓글쓰기 댓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