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인

top

연극인

검색하기

극장과 어둠에서 모든 게 시작되는 것 같아요

목록보기

  • 링크
  • 프린트
  • 페이스북
  • 트위터

극작가 동이향

저는 처음 동이향 작가님으로 만났었잖아요. (동이향 작, 성기웅 연출의 <해님지고 달님안고>에서 필자가 무대디자인을 하면서) 그래서 자꾸 작가님이라고 부르게 되는데, 작·연출을 계속 해오신 걸 보면 그게 좀 다른 경우였나요?
이향
아니었어요. <어느 날 문득, 네 개의 문>(이하 <네 개의 문>)이 처음으로 연출 입봉을 한 거였어요. 대학 동아리에서는 연출도 했지만, 동아리는 다 그렇게 하잖아요, 그 이후로는 작가로만 생각을 했었어요. 어떻게 하다 보니 <네 개의 문> 연출을 하게 됐죠. 그때 제가 4개의 에피소드로 된 <네 개의 문>을 쓰고, 이건 누구한테 줘서 연출을 할 만하다, 싶어서 몇 분한테 내밀어봤는데 다 못하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4개의 단편을 잘 모으면 하나의 작품이 되겠구나, 내가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러고 지원사업에 냈는데 쇼케이스를 통해서 작품이 선정됐어요. 그래서 하게 됐죠, 뭐. 그게 처음이었고 지금까지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학부에선 뭐 공부하셨어요?
이향
사회학이었는데, 거의 연극 동아리만 했죠. 아시죠? (웃음)
연극 동아리 하시다가 자연스럽게 연극을 해야겠다, 그렇게 된 건 가요?
이향
4년 동안 열심히 연극동아리 하다가 졸업을 하고 <한국연극>지에 들어가게 됐어요. 졸업은 했는데 뭘 할지는 잘 모르겠고, 연극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런 것도 모르겠고, 아무 개념이 없었어요. 원래 그런 매체 쪽에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아는 선배가 연극지에서 교정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 도와달라고 그러더라고요, 했죠. 그러고 나서 기자를 뽑는다고 내보라 그래서 냈고, 졸업도 하기 전에 들어갔어요. 기자 생활을 몇 년 하고, 놀다가 연극원에 들어갔어요. 다니던 중에 휴학을 하고 또 기자 생활을… 무려 한겨레 신문사에 입사를 해서 월간으로 나오는 여성지를 창간했었어요. 그러고 다시 그만두고 학교로 돌아갔죠.
학교 중간에 취업을 두 번이나 하셨네요. (웃음) 기자 일에 관심이 있으셨나 봐요.
이향
글쓰기였기 때문에 그렇지 않았나 싶어요. 그리고 말을 듣는 걸 좋아해서 그런지 사람을 만나서 사람에 관해서 질문하고 얘기를 듣고, 이런 게 재밌었던 것 같아요. 근데 사람을 챙기는 건 힘들더라고요. 기자는 네트워크도 가지고 그래야 일이 점점 쉬워지는데, 그런 게 너무 어렵게 느껴졌어요.
연출도 비슷하잖아요, 네트워크도 가져야 되고 사람을 잘 챙겨야 하고…
이향
그렇죠. 저는 그런 걸 잘 못해요. 거기다 애기를 키우고 있으니까, 프로덕션에 들어가야 좀 챙기는데, 잘 못하니까 힘든 것 같아요. 그래도 기자는 어쨌든 돈을 받고 하는 일인데 연극은 정말 자기가 좋아서 하는 거니까 좀 다르긴 한 것 같아요.
한겨레에 들어갈 때는 오랫동안 기자를 하겠다, 그런 생각은 아니었던 거예요?
이향
아뇨. 그 때는 10년 후에, 내 나이 마흔에는 멋진 기자가 되어있겠다, 그랬죠. 입사 면접할 때도 이 말을 했었어요.
그게 연극원을 다니던 중이었으니까 연극을 그만두려고 했던 거네요?
이향
네. 좀 힘들었어요. 저는 동아리에서 연극 시작할 때부터 어렵게 쓴다, 너무 난해하다, 이런 말을 많이 들었거든요. 연극원까지 들어가서도 계속 그 말을 들으니까, 하면 안 되나… 학교에서 공연을 하고 그러면서도, 하면 안 되는 일을 하려고 하나… 그랬어요. 너무 외롭고 고달프고. 학생이긴 했지만.
그렇게 힘들어서 그만두려고 언론사에 들어갔다가, 어떻게 다시 연극으로 돌아오게 됐어요?
이향
솔직히 말하면 잘 생각이 안나요. 정말 견디지를 못했던 건 기억이 나요. 매달 내가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지? 라는 생각을 했어요, 매달. 10개월 만에 그만뒀는데 한 2,3년을 한 느낌이었어요. 창간이었기 때문에 일도 많고 빡셌고, 내가 좀 더 버티면 여기에 적응해서 어엿한 사회인이 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했어요. 이후에 가끔 힘들 때면 ‘그때 내가 거길 왜 그만뒀지?’ 그랬어요. (웃음) 견딜 수가 없었죠. 써야 되는데, 쓸 수 없는 환경에서 지금 뭘 하고 있지, 라는 생각이 계속 있었어요.

극작가 동이향

학교에 다시 돌아가서는 어떠셨어요?
이향
학교는 내내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냥 마무리를 한 거죠. 극작과는 프로덕션에 참여할 기회가 별로 없어서, 그냥 수업만 듣고 친한 사람이랑 술이나 마시고. 되게 외로웠던 기억이 많아요.
같이 작업했던 연출이 없었어요?
이향
이미 학교에 들어갈 때 ‘신기루만화경’에 들어가 있었어요. 창단멤버거든요. 이해제 형이 제 작품을 연출한 적이 있어요. 극단에서 공동창작을 하거나 하면 옆에서 돕기도 하고, 그랬어요.
지금도 ‘신기루만화경’이에요?
이향
이전까지는 제가 개인 프로덕션을 꾸리는 게 아니면 계속 ‘신기루만화경’에서 작업을 했는데, 이번에 <떠도는 땅>이라는 작품을 하면서, 극단을 창단하려고 하고 있어요. 어렸을 때부터 같이 해온 배우들 4명이랑. ‘극단 두’예요. 극단 이름을 못 지어서 너무 오랫동안, 거의 몇 년을 고민하고 있었어요. 친구가 같이 술집에 앉아있는데 “두 어때?” , “오, 괜찮은데!” 그랬어요. 만두에 ‘두’를 보고. 그러고 나서 의미 부여를 막 하기 시작했죠.
극단 이름을 몇 년이나 고민하셨으면 생각이 있었던 건데 왜 이제야 창단 결심을 하게 됐어요?
이향
지원사업에 지원하려면 사업자가 필요하잖아요. 그러면서 이름을 고민하기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한 건 최근이에요. 이전에는 사실 작가에 좀더 정체성을 두고 있었던 것 같은데, 어떤 시점부터 작, 연출하는 사람으로서, 연극이라는 매체를 다루는 사람으로서의 나를 더 생각하게 됐어요. 공간, 시간, 배우의 몸, 극장, 빛, 이런 모든 것들을 하나의 매체로 해서 작업을 하는 사람으로서의 나에 대해서 더 깊이 생각하게 됐고, 이전에는 책상과 연필만 있으면 됐지만, 이제는 그걸 할 수 있는 사람들의 힘이 필요하게 된 거죠. 처음엔 이름만 걸까 하다가, 최근의 일련의 경험을 하면서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사람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어요. 배우와 내가 서로를, 서로의 언어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많은 것들을 처음부터 설명하고, 배우의 몸을 설득시켜내는 것이 한 번의 프로덕션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함께 이 언어를 더 깊이, 만날 때마다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되는구나, 생각하게 됐죠. 작년에 완전히 맘을 먹었어요.
저는 작가치고도 느린 편인데, 극단에 배우들이 모여 있으면 어쨌든 1년에 두 편 이상은 작업이 돌아가야 배우들이 지치지 않고 갈 수가 있는데, 그걸 책임질 자신이 없었어요. 이제는 그냥, 두려워하지 말고 가보자, 그래요.
한 번은 직접 쓰시고, 한 번은 다른 작가 작품을 하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이향
제가 쓴 걸 연출하는 건 그냥 흘러갈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다른 작가의 작품을 연출하는 건… 그 작품과 제가 어떻게 대화해야하는 지 알아야 되는 것 같아요. 다른 작가의 작품을 연출하는 나에 대해서 너무 무지하다, 라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무엇을 연출로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안목이 없는 거예요. 그것을 끌고 갈 수 있는 힘도 작, 연출자와는 다른 것 같아요. 앞으로 아마 조금씩 고전이라든가 이런 걸로, 작년에 <엘렉트라 파티>라는 작품을 했었는데 <엘렉트라>를 다시 쓴 거였거든요, 그런 작업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싶어요. 작, 연출하는 사람들이 어떤 순간에 고전으로 작업을 하거나 하는 걸 주변에서 보게 되는데 일종의 다른 접근을 해보는 거죠.

극작가 동이향

말이 되게 빠르신 거 같아요.
이향
그래요? 성질이 급해서. 제가 하루 밤을 새고 나면 말도 약간 느려지고 호흡도 가라앉고, 적정수준이 되는 것 같더라고요. 요즘 연출하느라 말을 많이 해서 그래요. 연출을 하면 말도 아주 많아지고 와일드해지고, 작가하면 말수도 없어지고.
이중인격자네요.
이향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저희 엄마가 아세요. “너 요즘 연출한다고 아주 드세졌구나.” 그러시거든요. 작가하고 있을 때는 “야 말 좀 해라.” 그러시고. 정말 이중인격 맞아요. 사람들이 제가 쓴 텍스트를 다 낯설어하는 상황에서 연출로서는 같이 하는 배우들한테 설명을 해야 되잖아요. 예전에는 이게 너무 고통스러운 거예요. 한 번 그런 고통을 호소한 적이 있는데, 아는 선생님께서 저한테 그건 자기 등에 칼을 꽂는 일이랑 같다고, 얼마나 자기분열 적인 일이냐고 하셨어요. 작가는 쓰면서 사람들이 다 알 거란 생각을 하는데 결코 그렇지 않거든요. 작가의 생리는 배우랑 더 가까운 것 같아요. 몸으로 이루어지는 작업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거든요. 근데 연출의 언어로 (작가의 언어를) 모든 구성원들한테 다시 설명해야하는 과정이 되게 많이 고통스러웠고, 사람들이 질문하는 게 욕을 하는 것 같고, 초반에는 그랬어요. 지금은 그렇진 않다는 건 알죠. 알기까지 오래 걸렸죠. 30대 거의 모든 시간을 그것과 싸우는 데 보냈던 것 같아요.
지금은 편안해졌다기보다는 이해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연출을 계속 하면서 어떻게 대화를 해야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지, 또 무엇을 선택해야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라는 생각을 하게 많이 하게 돼요. 누가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 것보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훨씬 중요하고.
아까 작품이 어렵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고 하셨잖아요. 저는 <네 개의 문>이랑 <해님지고 달님안고>, 두 개밖에 모르지만 비슷한 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약간 잔혹동화 같은 세계? <떠도는 땅>도 비슷한가요?
이향
그 이후 작품 <당신의 잠>, <내가 장롱롱메롱문 열었을 때>, <엘렉트라 파티>을 봤을 때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네 개의 문>이나 <해님지고 달님안고>에서는 아이들의 관점이 되게 중요했지만, 잔혹동화적인 세계를 추구하거나 그러지는 않아요.
현실에서 내게 보이는 것들을 낯선 감각으로 다시 보게끔 하는 것에 관심이 있는 것 같아요. 언어를 주고받는 방식에 있어서도요. 말을 하고, 듣고, 나누는 걸 되게 좋아하지만 말은 항상 미끄러진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말로 소통하는 것에 있어서) 사람들은 별로 성공하지 못한다고 느껴요. 그런 일상성, 우리가 발을 디디고 살아가지만 어떻게 해야할 지 잘 모르겠는 뭔가 불편함이 존재하고, 나 빼고 모두가 다 괜찮아 보이는 일상이라고 하는 부분을 언어라든가, 시간, 인물을 통해서 연극적인 언어로 표현해요. 재현적인 드라마는 아니죠, 관심도 없고요. 어떻게 하면 내가 지금 살고 느끼고 있는 이 삶을 내가 생각하는 연극, 무대 위에 다시 펼쳐놓을 수 있을까, 그래서 사람들이 자기가 생활하고 있는 현실에서 극장이라는 비현실로 들어와서 어떻게 공감하고, 어떤 경험을 하고 나갈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많이 해요.
얼마 전에 기획하는 친구가 왜 그렇게 끔찍한 것들을 자꾸 가져다가 쓰냐고 그래서, 일부러 그러려고 하진 않는다고 했는데, 특별히 끔찍한 것 같지도 않아요.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고, 우리가 충분히 당할 수 있는 일들이고. 옛날에 극작을 하시는 선배가 인상적인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자기가 젊었을 때는 세상은 이렇다, 고 썼는데 나이를 먹으니까 세상은 이래야 한다, 라고 쓴다고, 전자가 절망을 얘기하는 거라면 후자는 희망을 얘기하는 거라고. 사람들은 세상은 이래야 한다, 는 걸 좋아한다고. 연극에서 그런 걸 보고 싶어 한다는 거죠.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작품을 하는 데 달라지는 게 있나요?
이향
나이를 먹어가면서, 연극을 해가면서, 경험들이 쌓이면서, 아이 엄마가 되고 나서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면서 작가로서도, 작업자로서도 좀 변하는 게 느껴져요. 예전에는 진부한 것에 대한 극도의 거부감이 있었어요. 이미 연극사에 나오는 걸, TV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걸 왜 지금 무대에서 해야 하나, 되게 싫고 재미없었어요. 근데 지금은 그게 진정하다면 두려워하지 않고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용기고, 소중한 것이다, 싶어요. 그런 경험을 나누는 것에도 관심이 가고요. 예전에는 잘 안되지만 어디로 가기 위해서 애를 썼다면 이제는 눈에 보이는 것들을 가지고 가보는 것에 관심이 생긴달까. 연습 과정에서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선택하려고 노력을 해요.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할까, 이런 게 없지 않았었는데 별로 점점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예전에는 제가 죽는다는 것에 포커스가 많이 갔는데, 이제는 나의 죽음 이후에 아이의 시간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는데, 그게 여러가지 감정을 들게 해요. 연극에서의 시간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고요. 아직 말로 설명하는 좀 어려운데 이번 작품에서 극장이라는 공간과 이야기의 시간이라는 것에 관해서 풀어보려고 하고 있어요.

극작가 동이향

좀 불편하실 수도 있는데 ‘창작산실’ 얘기를 좀 해볼까요? 너무 민감하고 뜨거운 문제라 걱정이 좀 되는데, 왜냐하면 말이 글이 됐을 때 오독되기가 쉬우니까요. 그래도 얘기를 좀 해보자면… 저는 이 사안을 둘러싸고 정작 당사자 이야기는 별로 못 들었거든요.
이향
저도 좀 놀랬어요. 저는 애기 키우느라 거의 집에서 있고, 대학로도 잘 못나오는 그런 상황이었는데, 내가 어떤 자리에 있는지, 내가 무슨 일을 경험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나한테 피부로 오기 전에 먼저 이름 되어지는 느낌이 되게 강했었어요, 초반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정리하고, 그것에 관해서 되새기고, 이럴 수 있는 시간이 가기 전에 (이름 되어지는) 그런 것들이 먼저 와서 생기는 혼란들이 굉장히 많이 있었어요. 추스르기가 어렵더라고요. 내가 어떻게 생각을 하고 무엇을 해야 되고, 어떤 판단을 하고… 그것이 무엇이든지간에. 내려갈 수 없는 무대에 선 느낌이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이건 이런 거야, 라고 막 얘기하다가 갑자기 확 사라지기도 하고, 또 누군가 나타나서 막 얘기를 하기도 하고, 저한테는 좀 그렇게 느껴졌어요. 영문은 잘 모르겠으나 내가 그 무대에 서버리게 된 건데, 처음에는 그걸 받아들이기가 되게 어려웠어요. 나중에 받아들여야 되는 거구나, 라고 수용하는 데까지 시간이 좀 걸렸어요. 그 일이 무슨 일이었는지, 그 과정을 겪으면서 외적으로 정부, 예술, 검열, 배제, 이런 것들과 별개로 나 자신과 세상에 대해 무지했음을 되게 많이 느꼈어요. 작업을 하는 사람으로서도 더… 그런 일이 만약 다시 벌어진다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앞으로 그런 일은 더 많이 벌어질 거란 생각이 드는데, 그랬을 때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판단을 하고, 무엇을 하는 사람이어야 할지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을 해야만 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벌어졌던 일들에 대한 상처뿐만이 아니라, 이런 일을 한 중심에서 경험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사람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가지고 앞으로도 지내는 데 있어서 그것이 굉장히 중요한 지반이여만 하고, 지반이 될 수밖에 없겠구나… 그러면서 가장 많이 생각했던 건 그 누가 뭐라고 해도 움직이지 않을 수 있을 만큼 단단한 독립적인 작업자가 되어야 된다, 라는 거였어요. 제 중심으로만 얘기를 하자면 이 일을 겪으면서 굉장히 다양한 종류의 권력을 느꼈어요. 그것들 속에서 극단에 대한 생각도 단단해져갔고, 극단이 어떤 식으로 작업을 해야 할 지에 대해서도 고민을 깊게 하게 됐어요. 어떤 의미에서 작업자들이 점점 독립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말이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뭘까요? 일차적으로는 자본이나 지원금 이런 것들로부터의 독립성을 말하는 건가요?
이향
그것도 포함되는 것 같고요. 어려운 이야기인 것 같아요.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작업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좀 더 깊어졌어요. 내가 하는 이야기를 누가 어떤 식으로 공유하게 되는가에 대한 생각들을 근본적으로 하게 됐다고 해야 되나? 근데 내가 정말 바뀔까? 생각을 여기까지 진전시켜놓고 내년에도 똑같이 하고 있겠지? 라는 자조적인 생각도 해요.
이 일이 많은 작업자들한테 그런 생각을 하게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아까 얘기한 것처럼 이런 일은 또 있을 텐데 어떻게 해야지 내상을 덜 입고 편을 안 가르고 이야기를 깊이 있게 잘 가져갈 수 있는 거지? 제가 뭐, 뭣도 아니면서 그런 고민을 하게 되더라고요.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었건 이 일을 둘러싸고 다들 내상을 많이 입고 있는 게 보이더라고요.
이향
네, 되게 많이 힘들었어요. 어느 순간에 너와 나 사이에 생긴 섬세한 착오들, 왜곡들, 벽들, 이런 것들이 만들어놓은 미로에 갇힌 것 같고, 언어가 통할 수 없음을 많이 느꼈어요. 여러 가지 경험을 했던 것 같아요. 일련의 과정을 거쳐서, 지금은 작품 하느라 정신이 없지만, 앞으로 두고두고 영향을 미치는 어떤 일이 아닐까, 싶어요.

극작가 동이향

혹시나 오독될까봐 걱정이 돼서 정리가 많이 될 것 같은데요.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얘기 있으세요?
이향
아까 얘기했었는데, 앞으로 벌어지게 될 일에서 작업자로서 자신에 대해서 많이 생각을 하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렵고 우울한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요. 좀 급한 마무리지만, 마지막으로 연극데이트 공식질문입니다. 동이향에게 연극이란?
이향
극장과 어둠에서 모든 게 시작되는 것 같아요.

[사진: 장우제 woojejang@gmail.com]

극작가 동이향

동이향(극작·연출가)
주요작품
<엘렉트라 파티> <내가 장롱롱메롱문 열었을 때> <해님지고 달님안고> <어느 날 문득,네 개의 문> 외

태그 극작,연출가,동이향,부새롬

목록보기

부새롬

부새롬 연출가, 무대디자이너
달나라동백꽃 대표
주요작품 <뺑뺑뺑> <달나라연속극> <로풍찬 유랑극장> <뻘> 외
puromy@gmail.com
제84호   2016-01-21   덧글 0
댓글쓰기
덧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