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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우면 뜨거워지고 뜨거워지니까 즐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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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가 이기쁨

저는 이기쁨입니다.
창작집단 LAS의 대표이자 연출입니다.

라스(LAS)는 산스크리트어로
반짝반짝 빛나다,
갑자기 나타나다,
놀이하다,
활활 타오르다,
등의 뜻이 있습니다.

라스의 관객들 중에는
아주아주 소수지만
아주아주 뜨거운 분들이 많습니다.
라스의 모든 공연을
한 번 두 번 세 번
계속 보러 오시는 분
부산에서 보러 오시는 분
도시락을 싸다주시는 분
씨리얼을 싸다주시는 분

이런 뜨거운 관객들 때문에
우리의 공연도 자꾸자꾸 뜨거워집니다.

뭐랄까요.
우리는 관객을 모으는 일은 정말 서투르지만
한번 보러온 관객을
계속 보러오게 하는 힘은
꽤 있는 것 같습니다.
하하하.

<서울 사람들>을 보러 왔던 박원순 시장님이 떠오릅니다.
이 작품은 서울에 상경해 살고 있는 2~30대들의 이야기죠.
기획하던 오빠가 포부가 참 컸습니다.
<서울 사람들>이니까
서울시에서 일하는 분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온갖 분들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아무도 답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막공 전전날 연락이 왔습니다.
박원순 시장님이었어요.
시장 당선되기 전에 뮤지컬 <빨래>를 봤었다.
얼마 전 비서실에서 공연 얘기를 하는데
빨래 얘기를 하는 줄 알고 안 보러 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검색해보니 다른 작품이었다.
그래서 늦었지만 막공이라도 보러 오겠다.

그때까지 믿지 않았습니다.
진짜 오실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진짜 오셨더라구요.
공연을 보시고
얘기를 나누고
사진을 찍고
청춘에 관한 토론도 벌어지고
무엇보다 관람후기도 트윗하시고
트윗 이후로 흥행을 좀 했죠.
하하하.

연출가 이기쁨

제가 연극을 하는 이유라.
음…
사실 저는 영화가 하고 싶었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영화제작 동아리 활동을 미친 듯이 했습니다.
회장도 했습니다.
전교에 소문이 날 정도로 떠들고 다녔습니다.
이기쁨은 영화를 할 것이다.
이기쁨은 영화계를 떠들썩하게 만들 것이다.
이기쁨은 연극영화과에 갈 것이다.
전교에서 연극영화과 간다는 학생은 저밖에 없었습니다.

떠들고 다녔으니 약속은 지켜야죠.
열혈 공부 끝에
정말로 연극 영화과에 들어갔습니다.
난 이제 당연히 영화를 하면 되는 것이었죠.
근데 입학하자마자 한 선배가 그러더군요.

너는 연극을 하게 생겼다.
네? 무슨 말씀이시죠?
너의 얼굴은 연극을 하기 위한 얼굴이다.
저는 영화를 할 것입니다.
영화를 하려면 연극을 해야 한다.
아, 진짜요?

그래서 연극을 시작했습니다.
소품도 만들고
오퍼도 하고
크루도 하고

정말 즐거웠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연극 하나를 위해
한 자리에 모여서
지지고 볶고
땀을 흘리고
토론을 하고
술을 마시는 광경들이
눈앞에서 그 광경들을 목도하는 것이.

그래서 계속 연극을 했습니다.
연극은 즐거웠거든요.

여담인데
라스를 만들고
고등학교때 담임 선생님께
공연 한다고 연락을 드리니
놀라시더라고요.
이럴수가! 네가 왜 연극을 하니!
너는 영화를 할 아이인데!

2007년에 드림플레이의 김재엽 연출을 만났습니다.
<겨울잠 프로젝트>라는 것을 한다고 하길래
학생 신분으로 무작정 찾아갔습니다.
좀 귀여웠을 수도 있습니다. (하하하)
조그만 학생애가 와서
쫄랑쫄랑 따라다니고
거창연극제 따라갔다가 감전 되고. (하하하)

그렇게 그 분들과 잘 놀았는데
졸업을 하니까 돈을 벌어야 하더라고요.
배우 에이전시에서 일을 했습니다.
배우들 사진만 수천 장 보고
촬영 나가면
배우들과 모델들과
스태프들의 현장을 계속 지켜보고

그 현장을 지켜보면서
내가 저기 있어야 하는데
내가 현장에 있어야 하는데
나는 왜 현장을 ‘지켜보고’ 있나
아니야.
이건 아니야.

회사를 다니면서 계속 갑갑해 하니까
재엽 선배가
그만 괴로워하고 얼른 와서 연극이나 해라.

그 말 듣고 곧바로 회사를 그만 두고
<조선형사 홍윤식> 조연출을 했습니다.

재엽 선배가 참 고맙습니다.
회사를 그만둘 힘을 주고
연극을 할 힘을 주고
연출 데뷔할 힘도 주고.

절 볼 때 마다
조연출 그만하고 빨리 연출하라고 그랬거든요.
전 아직 준비가 안 되었다고 말하면
한 팀에 연출 많은 거 안 좋다.
빨리 데뷔해서
빨리 나가라
언제까지 재고 있을래
재지 말고 그냥 해.
남의 꺼 그만 하고
빨리 네 꺼 해라.

그래서 2009년 <겨울잠 프로젝트>에서
대관료 무료에 제작비 100만 원을 받고 <정옥이>라는 작품을 올렸습니다.
참 짜릿했습니다. 결심이 섰습니다.

이제 내 팀을 꾸리자

연출가 이기쁨

사람들을 만나고 모으고 모아서
2010년 2월에 창단공연을 했습니다.
<장례의 기술>이라는 작품이었습니다.

초창기에는 단원이 세 명이었는데
점점 연이 닿는 이들이 생겨서 이제는 스물한 명이 되었습니다.

이렇게까지 늘릴 생각은 없었습니다.
극단이라는 것이 원래 싸우면서 크잖아요.
싸우는 시간 속에서 관계와 역량이 만들어지는 것이니까.
우리도 수백 번을 싸웠는데
그러다보니
새로운 사람과 함께 한다는 것이 조금 두렵더라고요.
우리처럼 수백 번의 싸움을 인내할 사람들이 또 있을까?

그러다 문득 꼭 받아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우리가 한 발을 더 나가야 되는데
그러려면 쉬지 않고 판을 벌일 여력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들로는 벅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민 끝에
객원으로 작업했던 동료들에게 한 명씩 콜을 해서
함께 할 의향이 있다고 하면 단원으로 지내보자.
열 명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서너 명 정도 할 줄 알았는데 열 명이 다 한다고 하더라고요,

아아! 얘네들!
되게 외로웠구나.
진작 연락할걸!
하하하!

제가 작, 연출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 글을 정말 못 씁니다.
글 쓰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제 꿈은 대화할 수 있는, 같은 꿈을 꿀 수 있는
좋은 작가를 만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극단 작업을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제가 써야만 하는 순간들이 오더라고요.
<호랑이를 부탁해>를 시작으로
얼기설기 어영부영 두어 편을 쓰게 되었죠.
문제는 단원들이 제 작품을 신뢰하지 않아요. (하하하)
초고를 써 가면 엄청난 비판과
이걸로는 절대로 공연 못 올린다는 악담이 올라옵니다.
그러고는 모두 다 같이 열심히 뜯어고치죠.
그래서 공연이 올라갈 수 있습니다. (하하하)

작가를 못한다는 말이 연출을 잘한다는 말은 아니죠.
연출을 할 때도 엄청 난투를 벌이죠.
요즘 기분이 좋은 것이 있는데
같이 작업하던 친구들이 저에게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하더라고요.

옛날에는 내가 배우들에게 참 많이 기댔던 것 같은데
참 철없이 굴었던 것 같은데
“이거 해줘 저거 해줘” 했던 것 같은데
“노트 주세요” 하면
“노트는 뭔 노트야” 했던 것 같은데
그들과 내가 대립되는 지점이 훨씬 많았던 것 같은데

이제는 뭐랄까.
“네 말이니까 믿고 갈께”라는
기운이 있다고나 할까.
재밌는지 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네 말이니까 해볼게”라는
믿음이 생겨나고 있다고 할까.
우리 모두 싸움보다는
믿음과 책임이 훨씬 많아진 느낌이라고나 할까.
참 좋은 느낌입니다.

연출가 이기쁨

라스의 작품에는
‘유쾌’와 ‘경쾌’라는 말이 늘 따라다닙니다.
글쎄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연극적인 문법 같은 것도 잘 모르고
분명 아직은 깊이도 덜할 것이고
제 유일한 방법은 나한테 솔직해지는 것이겠지요.
나한테 재밌는 연극을 해야
관객이 재밌을 확률도 높아지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계속 재밌으려고 노력을 합니다.
연습실에 앉아서도 내가 연습을 보면서 지루하면 안 되니까.
내가 재밌게 연습하고 싶으니까
계속 재밌으려고 노력하고
그러다보니 ‘유쾌’와 ‘경쾌’라는 말이 따라 붙는 것이 아닐까요.

상업성과 예술성을 나누겠다는 것은 아닌데
노선을 정하겠다는 것도 아닌데
웃고는 싶은데 웃고 끝나기는 싫고.
그러다보니
우리가 할 얘기만 명확하다면
어떻게 웃겨도 될 것 같고 혹은 재밌기만 하다면
어떤 얘기를 해도 될 것 같고
이런 느낌이랄까요. 하하하.

우리 팀의 정치노선은 모두가 다릅니다.
좌와 우와 중도가 모두 골고루 분포해 있죠.
자신이 원하는 것이 다들 강하고 그래서 만나면 늘 싸웁니다.
하지만 한 가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상식적인 선에 있어서는 모두 생각이 같죠.
그래서 늘 상식의 수준에서 얘기하려고 노력합니다.

더 깊게 들어가면
선택을 해줘야 하고 결론을 내줘야 하니까.
깊게 들어가서 결론을 안 내는 것은
비겁한 일이니까.
세상에 온갖 연극이 있지만
저는 대다수가 볼 수 있는 연극을 하고 싶습니다.
그런 성향을 가진 친구들이 라스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죠.

라스는 큰 그릇이 되고 싶습니다.
공연 하나에만 머물지 않고
영화도 미술도 음악도 사진도
모든 다양한 장르들이 모두 모일 수 있는 큰 그릇.
배우들이 연극을 하고
그 배우들이 영화에 출연하고
그 영화를 가지고 사진전을 하고
모든 작업들이 라스로
라스라는 이름이 브랜드가 될 수 있는
갈 길은 멀지만
올해 공연 잘 올리고
내년 공연 잘 올리고
하루하루 잘 해내다 보면
언젠가 되어있지 않을까요.

연출가 이기쁨

이기쁨에게 연극이라.
나를 지배하는 가장 큰 것이죠.
그 안에 다 있는 것 같아요.
더 이상 설명을 못 하겠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이 이것밖에 없고
이걸 가장 잘 할 것 같고.
인생의 전부.
연극은 그냥 나.
죄송합니다.
이제 연습 하러 가야할 것 같아요.

[사진: 장우제 woojejang@gmail.com]

연출가 이기쁨

이기쁨(연출)
주요작품
<대한민국 난투극> <호랑이를 부탁해!> <서울 사람들> <장례의 기술>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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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혁

오세혁 작가, 연출, 배우
정의로운 천하극단 걸판에서 작가 연출 배우로 활동중.
트위터 @gulpanart
홈페이지 www.gulpan.com
제85호   2016-02-04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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