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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하면 흥이 생기고 흥이 생기면 집을 안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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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김정민입니다
나는 배우이고
극단 이와삼의 단원입니다

나는 정말 평범합니다
연극도 정말로 평범하게 시작했어요
대학을 가고 싶지 않았어요
왜 가야 되는지를 몰랐거든요
한참 생각을 하다가
어차피 가야 한다면 하고 싶은 걸 하러 가야지
근데 난 뭘 하고 싶지

불쑥 배우가 하고 싶었어요
그래, 연극과를 가자
준비하기엔 참 늦은 때였죠
남들은 오래전부터 연기학원을 다니면서
실기를 준비했는데
저는 수능이 끝나자마자
아는 분을 통해 딱 한 달 레슨을 받았어요

‘독백’이라는 생전 처음 접하는 말을 배웠죠
뭔 말인지도 몰랐어요
왜 이렇게 말이 길어야 하는지도 몰랐고
어렴풋이 아, 이게 연극의 말이구나 싶었죠
「둥둥 낙랑둥」이라는 희곡의 낙랑공주 독백이었을 거예요
그 독백으로 자유연기를 준비해서 시험을 보러 갔죠

그런데 그 학교에서는 인터뷰랑 당일 대사만 있더라고요
자유연기가 필요 없었죠
낙랑공주는 그렇게 사라졌어요


학교는
연극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재미있었어요

참 즐겁게 학교생활을 하고
세상에 나오자마자
윤광진 선생님의 작품으로 무대에 섰어요
무려 서울연극제였어요
무려 욘 포세의 작품이었어요

그렇게 큰 무대인 줄
그렇게 큰 작가인 줄
전혀 모른 상태에서
어떻게 어떻게 무대에 섰어요
참 행복했어요
그런데 그 이후에
어떤 일이 생겨서 3년간 무대를 쉬었어요
2007년에 데뷔를 하자마자 종적을 감춘 거죠
2010년에 돌아왔어요

분명 아무도 저를 모를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요
3년 전에 제 연기를 보셨던 남동훈 연출님이 연락을 해오셨어요
연출님은 아마 그때 시극단 일을 하고 계셨을 거예요
서울시극단에서 공연을 준비 중인데 해 볼 생각이 있냐고 하셨어요

정말 감동이었어요
3년 동안 저를 기억해주셨다니
딱 한 번 무대에서 섰던 저를
남동훈 연출님은
제 연극 인생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분이에요
계속 건강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때 시극단에서는
전인철 연출이 <순우 삼촌>을
장우재 연출이 <7인의 기억>을
준비중이었어요
저는 장우재 연출과 작업을 하게 되었죠

<7인의 기억>을 함께 하고
1년이 지난 후 연출님이 극단 제안을 하셨어요
<이와삼>이라는 극단이라고
거기에는 배우들도 있고 선배들도 있고
다같이 매일 모여 연습을 하고 있다고
참 재미날 것 같았어요

그렇게 극단에 들어갔는데
세상에 나랑 연출님 둘만 있었어요
어떤 배우는 다른 곳에서 어떤 여차여차한 이유로
어떤 배우는 중도에 그만 두고
그래서 나랑 연출님 딱 둘만 있는 거예요
하하하

점점점점
극단 일을 하게 되고
점점점점
극단에 일이 많아지고
점점점점
일을 다 맡아서 하게 되면서
저는 점점점점
이와삼이 되었어요

지금은 점점 식구가 들어와서
10명 남짓한 단원들이 있죠
작업이 너무 많아서 쉬는 때가 거의 없어요
공백 없이 계속 작업을 해요
공백이 있어봐야 한두 달 정도
그 공백에도 워크숍을 하고
거의 1년 내내 모여 있다고 보면 돼요



연출님은
극단 작업에도
외부 작업에도
언제나 이와삼 배우들과 함께 하려고 해요
마음을 많이 쓰시는 것 같아요

이와삼에서 중시하는 건 책이에요
세미나처럼 책을 정해서
함께 읽고 함께 얘기하고 함께 공유하죠

연출님은 배우와 내러티브를 중시하세요
한 배우가 한 이야기를
얼마나 다채롭게 펼쳐나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죠
배우가 생각하고 움직일 수 있게 고민하죠
생각하는 배우
그러면서도 도발적이고 시원시원한 배우
지적인 동시에 본능적인 배우
양쪽의 경계에 선 배우를 좋아하세요

관객을 흔드는 것은
감정이나 정서가 아니라
인식이다
인식의 전환이다
관객의 마음이 배우의 인식으로 바뀌는 것이지
감성과 정서로 바뀌는 것이 아니다
실제는 인식이다
인식이 실제다
인식은 세계이다
연출님이 하신 말이에요
연출님에게 배우는 부분이 많아요

연출님이 계속 앞서가시니까
그 생각을 계속 열심히 따라가게 돼요
앞서서 그 생각을 받게 되면서
내 스스로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계속 들어요
작업만 열심히 할 것이 아니라 쉴 때 잘 쉬어야겠다
잘 쉬는 것은 공부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죠


놀자
연출님은 놀자, 라는 말을 참 좋아해요
우리 언제 놀지
우리 좀 놀자
<환도열차>에 이런 대사가 나와요
열차를 타고 올라오는데
하나도 싫어하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시구문 산다
나는 미아리 산다
우리 만나자 놀자

놀자
작품에 너무 어울리는 대사이기도 하지만
이건 작가의 원래 화법이에요
놀자라는 말
저도 그래서 이와삼이 참 좋아요
우린 놀고 있으니까

<고제>에 출연한 것이 참 좋았어요
아리랑아트홀에서 전인철 연출의 <갈매기>를 봤었는데
이상하면서도 흥미로왔어요
1,2막만 하고 뒤를 안 하더라고요
이유가 너무 궁금했어요

저 연출은 왜 뒤를 안 했을까
어떤 이유로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뒤는 시간이 없어서 못 만들었다고 하더라고요
뭐지 저 이상한 당당함은
출연했던 배우들은 활기와 에너지가 넘쳤어요
배우들의 에너지가 좋다는 것은 연출의 에너지가 좋다는 뜻이죠
어떤 분인지는 모르나 호감이 가더라고요
꼭 한 번 같이 해보고 싶었는데 먼저 연락이 와서 기뻤어요

백하룡의 말은 시에요
시를 말로 붙인다는 게 쉽지 않아요

하지만 그 비어있는 것들이
그 비논리가
뭘로 채우지 않아도
그 여백이
이상한 기운과 말할 수 없는 무언가로
가슴을 계속 때려요
묘하디 묘한 기운이에요
관객을 만나면서
그 말의 매력을 참 많이 느꼈어요



저는 2007년에 데뷔를 했는데 경력이 많지가 않아요

<여기가 집이다>
<환도열차>
<미국 아버지>
<햇빛 샤워>

거의 다 이와삼 작품만 했죠
중간에 박근형 연출님의
<빨간버스> 한 번을 제외하고는
모두 이와삼 작품이에요
약속을 했었거든요
극단 작업에 매진하자는 약속을
올해부터 조금씩 외부작업 기회를 만들고 있어요

참 재밌는 건
장우재와 박근형은 전혀 다른 세계더라고요
장우재는 완벽한 대본이 나와서
체계적으로 하나부터 열까지 분석해가면서
체계적으로 하나하나 장면들을 만들어요

박근형은 일단 대본이 안 나와요
하하하
연습실에 가면
연습을 할 때가 있고
술을 마실 때가 있죠
술을 마실 때가 더 많아요
하하하

그렇게 술을 마시다가
우리 연습 한 번 해볼까
곧바로 연습을 시작하는데
순간순간
즉발적으로 생기는 것들이
굉장히 강렬하죠
연습해서 다듬어지거나
완성된 모습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즉발적인 순간의 완성을 원해요

처음에는 적응을 못 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점점 받아들여지게 되니
너무너무 재밌더라고요
그래서 <빨간버스>는 초연 때보다
재연 때가 훨씬 재밌었어요
연출님이 원하는 느낌을 나의 느낌으로 알게 되면서
전혀 다른 재미가 생겨났죠
배우를 보면서 대본을 쓰니까
배우들의 연습 속도와 대본 속도가 같이 가요
공연 전날까지 쪽대본이 나와요
공연 중인데도 이걸 이렇게 바꿔보는 게 어떨까
굉장한 라이브예요


그렇죠
이번에 연기상을 탔죠
내 일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에요
뭔가 잘못된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이 계속 들어요
수상 당일까지도
내가 가긴 가야 되는데
그 자리가 내 자리가 많나
어안이 벙벙했어요

부모님한테 처음으로 효도한 느낌이에요
경사났네, 경사났어, 이런 반응이셨거든요
그걸 생각하면 정말로 충만한 기쁨을 느껴요
부모님의 그 반응 때문에 제가 기뻐요
스스로 기쁘기 보다는 부모님 때문에 기뻐요
금전으로 효도는 못하지만 기분으로 효도를 했으니까요
하하하

연극과를 간다고 했을때
쟤가 왜 저러냐 난데없이
연극 시작한 초반에는
저러다 말겠지
그런데 끝까지 물고 있으니까
끝까지 물면서 계속 고생하는 것처럼 보이니까
많이 속상해 하셨어요

하지만 점점 제 무대를 보러 오시면서
잘은 모르겠다만 쟤가 저 길로 들어섰구나
그럼 된거지 뭐
그 전에는 저를 어설픈 아이
곧 다른 일을 할 아이로 보셨는데
이제는 저를 배우로 봐주시죠
뭉클해요

아, 나는 정말 연극을 계속 하겠구나
라는 느낌은
아직 오지 않았어요
그런데 계속 연극을 하고 있어요

자꾸 도망가고 싶은 순간이 많은데
자꾸 하게 되는 무언가가 있어요
자꾸 내 몸은 가려고 하는데
뭐가 자꾸 끌어당기는 느낌
내 안에서 난 이걸 해야 한다는 것을
강력하게 느낄 순간을 기다려요
언젠가는 내 안에서 찾기를
강렬히 원해요
그걸 찾고 싶어서 계속 연극을 하나 봐요

윤제문 선배님이 술자리에서 말씀하시더라고요
연극은 내가 못났다는 것을 당당하게 까는 거라고
내가 이거밖에 없다는 걸 당당하게 까는 거라고
그 말이 나한테 용기를 줬어요
내가 못난 것을 탓하고
내가 배우를 할 수 있을까
의심을 했지만
그 말을 듣고
아, 내가 못남을 인정하는 것이
참 좋은 거구나



저한테 연극이란 뭘까요

연극을 하면서 술을 너무 많이 마셨어요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건강해지는 유일한 길은 연극을 그만두는 거구나
하하하

술에 미쳐서 먹는 건 아니에요
작업을 하면 흥이 올라와요
흥이 계속 올라오면 술을 마시는 거예요
마시다보면 집에 못 가는 거예요
그 흥을 계속 느끼고 싶어서 연극을 하는 것 같아요

이와삼 단체 채팅방에 장우재 연출님이 물었어요
여러분, 연극을 왜 합니까
아무도 대답을 안 했어요
그러다가 며칠이 흐르면서 한두 명 대답을 했어요
왜 하는지 정말 다들 몰랐을 수도 있어요
저도 몰랐어요
간신히 쥐어짜내서 대답을 하지만
그 대답이 맞는지는 모르겠어요
답이 언젠가는 찾아지겠지만 급하게 찾고 싶지는 않아요

연극이란 말은 참 멋진 말이죠
하지만 내 안에서 계속 보류하는 말이죠
계속 궁금하지만
계속 답을 찾고 있는 말이죠
연극은 나에게
보류하고 있는 질문과
보류하고 있는 답변 같아요

[사진: 장우제 woojejang@gmail.com]

김정민(배우)
극단 이와삼
2007 서울연극제 신인연기상
제 52회 동아연극상 연기상
주요작품
<여기가 집이다> <환도열차> <미국 아버지> <햇빛 샤워> 외

태그 김정민,연극,이와삼,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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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혁

오세혁 작가, 연출, 배우
정의로운 천하극단 걸판에서 작가 연출 배우로 활동중.
트위터 @gulpanart
홈페이지 www.gulpan.com
제87호   2016-03-11   덧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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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민 배우 정말 좋아해요.. 이 글 보고 나니 더 좋아지네요. 항상 응원합니다!

2016-03-11댓글쓰기 댓글삭제

이프로
글이 너무 예쁘네요. 따뜻하게 잘 읽었어요! 김정민배우님도 파이팅!

2016-03-14댓글쓰기 댓글삭제

무적
<환도열차>도 <고제>도 잘 보았어요 인터뷰글도 잘 보았어요. 응원합니다~!

2016-03-19댓글쓰기 댓글삭제

효키
기사의 포맷이 참 새롭고 좋습니다

2016-03-24댓글쓰기 댓글삭제

ㅇㅇ
잘 보고 갑니다. 항상 응원하고 있어요:)

2016-05-25댓글쓰기 댓글삭제

수수깡
햇빛샤워를 보고 장우재연출님 김정민 배우님 열려한 팬이 되었습니다. 사랑합니다.

2016-08-08댓글쓰기 댓글삭제

루키
이 좋은 배우를 <나는 살인자입니다>에서야 처음 봤네요.. <햇빛샤워>랑 <목란언니>를 놓친게 너무 후회될 뿐입니다ㅠㅠ 앞으로 부지런히 챙겨볼게요

2017-11-19댓글쓰기 댓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