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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기획자, 생각하는 사람, 페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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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질문으로 시작해볼게요. (하하) 연극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희경
대학교에서 극회가 처음이었어요. 과는 언론영상이구요. (허허) 고등학교 때는 영상에 더 관심이 있어서 ‘고딩영화제’라고 비경쟁영화제 기획단도 했었고 청소년 방송국 기자단도 했었어요. 학교가 재미없어서 그런 것 들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너무 건전하죠? (하하) 마냥 놀았던 건 아니죠. (하하) 대학교 들어갔을 때 사실 영화 쪽에 더 관심이 많았어요. 그런데... 나는 공동작업 못하겠더라고요. (하하) 거기 있을 자신은 없고, 그래도 하고는 싶고 그러다가 연극동아리를 하게 되었어요. 왠지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그러다가... 인생 망한 거지. (하하)
맛을 본거네요. (웃음)
희경
연극의 맛을 본 거죠. (하하)
혹시 배우도 했어요?
희경
그땐 다했어요. 배우도 하고, 기획도 하고, 연출도 하고. 내 학번 때는 위로 선배가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1학년 때 부터 주도 적일 수밖에 없었죠. 1학년 때는 극회에서 배우를 했고 2학년 때부터는 학생회를 하게 됐어요. 2학년은 총학생회 기획국장으로 3학년은 사회과학대 부학생 회장을 했어요. 2년을 그렇게 보내고, 4학년 때는 다시 연출을 했죠. 그때 했던 작품이 다리오 포의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사고사>였어요. 그러다가 4학년 6월부터 공연기획사에서 처음 일하게 되었어요. 공연 제작, 기획을 하는 회사였죠. 연극을 계속하고 싶었고, 돈을 벌면서 연극할 수 있는 곳이 연극 제작, 기획하는 회사였던 거죠. 회사가 좀 어지러웠던 시기에 내가 들어 간 것 같아요. 그렇게 3년 정도 일하다가 너무 지쳐서 연극 안 할 생각으로 회사를 나왔던 것 같아요. 회사를 관두고 여행을 떠났죠. 2012년에 첫 해외여행을 파리로 갔어요. 근데 희한한 게 여행 와서 공연 같은 건 보지도 않았는데 연극이 또 하고 싶더라고요.
외국에서 좋은 것들을 보니까?
희경
아니요. 그냥! (하하) 그냥, 하고 싶다는 생각? 그냥, 이 공연 바닥을 떠나고 싶진 않다는 생각을 했어요. 일 안 하고 3개월 놀았어요. 제주도도 갔다가 경주도 갔다가... 여행 엄청 다녔죠. 그러다가 갑자기 조급해진거지. (하하) 사람이 3개월 정도 쉬면. (웃음) 그래서 다시 일을 시작했죠. 기관의 티켓매니저로 일 했어요. 출퇴근 시간 정확하고 반차, 연차 꼬박꼬박 쉬고 좋았죠. 근데 이게... 또... 뭔가... 답답한 거지. (하하) 안 맞는 거지.

얘기하는 거 들어보면 뭔가... ‘이게 아닌데’가 좀 있는 것 같아요. 안정된 것에 대한 불편함? 혹은 현장에 더 가까이 가고 싶은 그런 것인가요?
희경
그랬나?(웃음) 졸업하고 학교에서 연출을 한 번 더 했어요. 12학번 친구들과 체홉 <6호 병동>을 각색해서 공연을 올렸죠. 답도 안 나왔지. (하하) 어쨌든 창작하는 쪽으로 더 가고 싶어 했던 것 같긴 해요. 다시 일 그만두고 달나라동백꽃이랑 처음 작업했던 <뺑뺑뺑>이라는 작품이 끝나고 쫑파티 때 내가 선언을 했어요. 이제 혼자 프리랜서 기획자로 나서겠다고. 그때 이후로 1인 기획자로 계속 작업을 해 왔죠.
제가 알기로도 굉장히 바쁜 기획자로 알고 있는데, 그렇게 끊임없이 작업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진지) 본인의 인덕? 인품? (미소)
희경
저 성격 그렇게 좋지 않아요. (하하)취미와 특기는 연출 구박하기 (웃음, 그러다 돌연) 항상 나한테 좀 짜증나는 부분은 머리가 계속 돌아간다는 거예요. 생각을 멈출 수 없는 사람들 있잖아요. 계속 머릿속으로 뭔가를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 이 순간에도?
희경
네. (하하)
좋은 작가 한 분이 탄생하려는 징조가 아닐까... 대작가가... (비장)
희경
(하하) 자려고 누우면 생각 때매 못자고 그래요. 계속 머릿속으로 생각이 돌아가요. 전 다른 사람이랑 상의를 별로 안 해요. 상의를 한다 해도 잘 안 들어.(웃음) 나 혼자 계속 이리 돌아보고 저리 굴려보고... 나한테 질문을 계속 해요. ‘이럴 때는 이렇게 하는 게 맞지 ’하는 이상적인 결론을 정해 놓고 있어요. 근데 현실은 다른 거지. 그래서 화가 많아지고 (하하) 항상 그 간극 속에서 고민하는 것 같아요. 머릿속으로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것이 있고, 이게 현실에서는 잘 되어 지지 않고요.
(문득) 연극적인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거죠. 일하는데 있어서도 사람을 못 불러. 사실 혼자 뭔가를 한다는 게 너무 힘들잖아요. 분명히 사람이 필요한데 내가 누군가를 불러도 일한만큼 뭔가 챙겨주질 못하는 거죠. (긴 사이)
그래서 나도 공연 준비할 때 꾸역꾸역 나 혼자 어떻게든 해보려고 갖은 애를 쓰는데 그게 작업에 도움이 안 되는 걸 떠나서 이게 정말 마이너스구나 하는 걸 절실하게 느껴요. 내가 너무 아는 거죠. 연극을 그만두고 싶어지는 순간이 별 큰 계기가 아니더라구요. 참... 내가 뭘 하려고 주변에 피해주면서까지 해야 하나... 이런 생각이 문득 드는 거죠.
희경
근데 저는 요새는 기획 안 하고 싶다 이런 건 없는 것 같아요. 회사도 다니다가 한 번 나왔고... 그런 생각들이 한 번 지나 간 것 같아요. 다만 이런 생각이 드는 거죠. ‘그러면 난 뭐지? 1인 기획자로서 그 회사들과 다른 게 뭐지? 나는 나 혼자고, 내 마음 대로 할 수 있고 (물론 극단과 조율이 필요한 거지만), 나 혼자서 할 수 있고... 그러면 나만이 할 수 있는 게 뭐지?’ 또 머리가 돌아가는 거죠. 이제. (하하)

아! 그 얘기 들으니까 작년 말쯤에 SNS에 올렸던 <나PD의 선언>이 떠올라요.(웃음) 어떤 내용인지 말씀해 주신다면?
희경
작년 10월이었던 것 같아요. 그 시점으로부터 1년 전부터 품고 있던 생각이었는데. 조금 정리를 해보자면. 2015년에 기획자로 지원 사업을 낸 적이 있었어요. 그때 그 사업은 기획자도 낼 수 있었으니까. 작품 중심이 아니라 기획자 중심으로 썼어요. 처음 작품선정부터 아이디어회의, 혹은 작가에게 대본을 의뢰하는 단계부터 시작해서 재원 끌어오고 팀 꾸리고 공연을 무대화 하고 정산하는 것까지가 기획의 처음부터 끝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그걸 할 수가 없는 거죠. 그래서 그 지원 사업을 내면서 지원서에 ‘내가 공연의 A부터 Z까지 해보겠다!!’ 이렇게 쓴 거죠. 떨어졌죠... (하하) 근데 그걸 쓰면서 그럼 이런 일들을 하는 기획자는 창작자가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근데 창작자가 아니라고 하기도 참 이상한 것 같은 거예요. 근데 창작자라고 해주는 사람도 없으니까. 그럼 뭐지? 작가는 글을 쓰고... 연출은 표현방식을 창작하고... 배우는 연기스타일을 창작하고... 그럼 기획자는 뭘 창작하지? 이런 전체적인 판을 창작하는 것이 기획자의 역할을 하는 게 아닌가. 그런 고민을 계속하다가 고민만 하지 말고 한발자국씩 다가 가보자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저는 연극은 목소리라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내가 내고 싶은 목소리는 무엇인가 에 집중해 보는 거죠. 나는 여성이고, 나는 퀴어고, 나는 노동자고, 나는 예술가고... 그렇다면 ‘그런 존재로서의 내 목소리를 내야겠다.’ 하고 생각한 거죠. 그래서 ‘올 한해는 이런 주제에 대한 이야기들을 다루는 작품들과 함께 가고 싶다!!’ 이렇게 SNS에 올린 거죠. 글을 올리고 사람들을 참 많이 만났어요. 젊은 작가들. 여러 연출들을 만나면서 계속 이야기를 나눈 거죠. 페미니즘에 관심 있는, 그런 목소리를 내고 싶은 창작자들을 만났죠. 직접 만난 사람들을 통해서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공통 관심사에 대해 계속이야기를 나눴어요. 내 이야기를 퍼뜨려 놓는 거죠. 저는 전화해서 ‘대본 얼마나 썼어요. 준비는 얼마나 돼가요?’ 이렇게 독촉하는 스타일은 아니구요. (하하) 씨를 뿌려놨다고 생각해요. ‘언젠가 그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르익고 준비가 됐을 때 나한테 연락을 주겠지.’ 이런 마음인거죠. 언제든 나눌만한 정보가 눈에 들어오면 그들과 공유하고 이런 얘기를 써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하기도 하고.

요즘 되게 재미있겠네요. (부럽)
희경
그렇죠. (하하) 덧붙이자면 나는 여성으로 정체화를 하고 사는 사람이고 그런 존재로서 불편한 것들이 계속 보이는 거예요. 그런데 내가 일하고 있는 이곳(연극동네)에는 그런 이야기를 하는 작품들이 너무 적은 것 같고... 그러다가, ‘그럼 내가 하면 되겠다! 어차피 다른 얘기들은 다른 사람들이 많이 하니까. 이런 얘기들은 내가 하면 되겠다.’ 그렇게 생각했죠.
저는 사실 너무 몰라서. 그런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고 그런 의견에 쉽게 동의한다고 말하는 것조차도 조심스러워지더라고요.
희경
저는 그것이 무엇을 바라보는 태도, 혹은 어떤 시각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문제 인 것 같아요. 어떤 시각을 가지고 어떤 자세로 이야기하느냐. 사실 저도 책을 잃거나 공부를 해서 아는 편이 아니라 (하하) 공부가 많지 않아서 정확히 얘기하긴 어렵지만. 어쨌든 쉽게 얘기하자면 나한테 새로운 질문이 들어온 거예요. 사실 나를 돌아봤을 때 TV 드라마가 나를 키웠다고 생각할 정도로 초등학교 때부터 드라마를 엄청 많이 봤거든요. (하하) 초등학교 2, 3학년 때였나. 친한 친구 집에 놀러갔는데 엄마들은 엄마들끼리 놀러 나가시고 나랑 친구랑 방에서 드라마 흉내 내면서 역할 놀이를 한 거예요. 그때를 떠올려 봤을 때, 내가 친구와 했던 놀이에서 조차도 여자의 역할은 대부분 남자 한명 놓고 싸우는 거 였더라구요. (하하) 뭔가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지고 있지 않은 역할... ‘대부분 이런 역할 들이 많았었구나...’ 하는 기억이 갑자기 떠오르더라구요. 이런 기억들이 문득 떠오르면서 눈에 보이는 것들이 불편해 지기 시작하는 거죠. 심지어 나의 오래된 과거 속의 추억까지도. 획일화된 성역할, 그리고 그게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는 것들에 대해서도 불편함이 많아지더라구요.
그리고 내가 좋아했던 것들, 내가 지금 읽고 접하고 있는 콘텐츠들과 공연들. 그런 것들이 더 이상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사랑할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는 그런 관계가 되어 버린 거죠. (하하) ‘그럼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고민을 계속하다가, ‘그럼 내가 그렇지 않은 공연들이 나오도록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에 닿았던 것 같아요. 요즘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서 확신이 생기는 것 같아요. 아직은 좀 미약하지만 이게 계속 이어져나가게 된다면 연극계의 한 흐름이 될 거라는 생각. 연극제의 형식으로 가느냐 라고 질문하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근데 제 생각은 좀 더 긴 호흡으로 가고 싶다는 거였어요. 잠깐 지나가는 이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계속 이런 시선의 작품을 내 놓는 것이 그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공부나 설교로 저 같이 게으른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기란 참 어려운 것 같아요. (멋쩍은 웃음) 그런 면에서 극장에서 어떤 순간을 체험하고 그 체험으로 인해 자연스러우면서도 강력한 계기가 만들어 질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가 생겨요. 좋아요.
희경
저도 사실 페미니즘 관련 책만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트위터만 보고 있어요. (하하) 처음 연극을 좋아 하게 되었던 이유는 이 공연이 나한테 생각거리를 던져 주는 것 같아서 좋았어요. 그 생각이 또 다른 새로운 생각을 하게하고 끊임없이 생각하게 하면서 내가 좀 사람다워 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하하)

그런 의미에서 나희경의 라이프에서 플레이가 주는 의미란? (나희경에게 연극이란?)
희경
이름 참 거창하죠? (하하) 2014년 부터해서 1년에 10개 이상 공연을 해왔어요. 엄청 많이 했죠?
그러네요. 그러고 보니 작년에 했던 피디님의 선언에서 너무 많은 작업량을 좀 정리하겠다. 이런 느낌도 들었던 것 같아요.
희경
내가 하고 싶은 작업만 하겠다. 이런 의미였는데... 연락이 자꾸 오네요. (하하) 어쨌든... (황급히 질문으로 돌아가 본다) 나에게 연극이란... 자극. 새로운 생각을 자꾸 만들어주는 것.
아까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이 단점이라고 얘기했지만 나희경을 움직이는 동력이기도 한 것 같네요. 나를 움직이기 위해 생각이 자꾸 돌아가고, 또 생각이 자꾸 돌아가다 보니까 움직여지는 것이고 그런 것 아닐까요?
긴 시간은 아니지만 얘기를 나누다 보니까 이런 생각이 들어요. 안정됨 이라는 것에 반대되는 느낌이랄까. 보통 사람들은 불안정한 것이 두려워서 안정 되려고 속도를 줄이거나 멈추는 선택을 하곤 하는데, 반대로 계속 어느 방향으로든 움직이는 것 같달까? 계속해서 돌아가는 생각이 나희경을 움직이고, 멈추려 할 때 즈음에 다시 공연을 통해서든 스스로의 선언을 통해서든 스스로를 자극하고 움직이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단순히 재미있는 것을 찾아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사람처럼 생각되어졌는데 그런 것과는 또 다른 것 같아요. 안정이라는 것의 반대(?)처럼 느껴져요
희경
내가 이상적으로 이미 설정해 놓은 지점을 내가 이미 아니까. (웃음) 그리 안 가면 내가 싫은 거죠. 조금씩이라도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계속 가는 거지. (호탕한 웃음)
‘내가 끊임없이 그 쪽으로 가고 있다는 그 자체.’ 그 자체가 나희경을 움직이는 것 같아요. (웃음)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나희경(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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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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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나희경, 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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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

김정 연출가
'프로젝트 내친김에' 연출

주요작품 <광장의 왕>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꿈> <손님들> 외
shinji8406@naver.com
제111호   2017-03-09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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