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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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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수년 전, 서울에서 두 번째로 한적한 동사무소 민원창구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파리 깨나 잡던 때 이야기다. 주민등록증 재발급신청의 경우 보통 “최근 6개월 안에 찍은 반명함판 증명사진” 준비를 안내하는데, 민원인이 들고오는 증명사진들은 누가봐도 20년 전에 찍은 사진이거나 아니면 과노출로 눈코입의 흔적만 보이거나, 여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군지 알아볼 수 없는, 아무나의 사진이라고 해도 말이 되는 사진들이 많았다. 이런 경우일수록 민원인은 사진과 실물이 일치함을 과도하리만치 단호하게 주장하곤 했다. 사진을 언제 찍은 건지 확인할 길 없는 상태에서 해당 사진을 주민등록 사진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는 민원안내자의 자의적 판단에 따를 수밖에 없는데, 이게 신분을 증명하는데 유효한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미학적 상상력이 필요했다.

형이다.(출처: hankookilbo.com)

신분증명서의 사진은 인물을 다른 이와 구분하기 위한 시각적 장치일텐데, 첫번째 물음은 과연 엄밀하게 생각해봤을 때 개별자의 특수성(개별성)을 사진으로 재현할 수 있는가이다. 화장이나 분장이나 변장을 할 수도 있고 머리모양이 바뀌었을 수도, 안경을 쓰거나 특정 표정을 지은 채 사진을 찍었을 수도 있다. 사진은 어떤 순간의 이미지일 뿐이다. 게다가 3차원인 실물을 2차원 평면이미지로 만들면서 무려 1/3차원이 사라졌는데 그것으로 실물을 재현(복제)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150년 전 코닥이 담배피던 시절에나 어울릴법한 순진한 발상일 것이다. 게다가 요즘같이 유인원이 내면연기 하고 어벤져스가 지구 지키는 시대에는 원본 없이도 얼마든지 재현과 복제가 가능하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이미지는 어떤 개별성을 재현할까. 혹은 개별성은 무엇으로 규정 혹은 재현이 가능할까.

일찍이 주민등록증 민원인들은 그 사진들이 자신의 시각적 개별성을 재현한다고 믿었다. 엄밀하게 얘기하자면 개별성을 재현한 것이 맞을 수도 있다. 다만 시각적 개별성을 재현했다기보다, 자신의 시각적 특성이 사진과 일치한다는 믿음, 혹은 그러하고 싶다는 욕망의 재현에 가까울 뿐이다. 이는 우리가 매일 보는 소셜네트워크의 프사(프로필사진)나, 하다못해 인스타그램에 매일 올리는 셀카들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자랑쟁이의 타임라인은 그 이면에 있는 삶의 헛헛함을 재현한다. 중2병 멘트나 보그병신체의 타임라인은 그 개별자가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고 싶다는 욕망을 재현한다. 어쩌면 불특정다수에게 노출되는 프로필의 글, 사진, 셀카, 모든 것들이 자신이 외부에 어떻게 비춰지고싶다거나 외부와 어떻게 관계맺고 싶다는 욕망을 충실하게 재현한다. 하다못해 아무 글이나 사진도 안 올리는 행동마저도 노출되고 싶지 않다는 욕망을 드러낸다. 그 욕망과 현상들의 총합이 바로 그 인물의 “개별성(Identity)”이 될 것이다.

그런 맥락으로 봤을 때, 우리의 셀카는 우리의 개별성을 드러내는 것이 맞다. 어떤 상황과 장소를 기억에 남기고 싶은지, 그 순간의 내가 어떤 얼굴이었으면 좋겠는지, 어떤 톤의 기억으로 남기고 싶은지, 그 기억의 총합이 내가 나였으면 싶은 ‘나’일 것이며, 그 ‘나’로 사람들이 날 기억하고 규정하고 보아줬으면 하는 욕망으로 우리는 타임라인에 고르고 골라서 필터까지 적용한 사진을 올릴 것이다. 말하자면 셀카의 이미지가 우리의 개별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셀카를 찍고 (혹은 안 찍고) 타임라인에 올리는 (혹은 안올리는) 행동 자체가 우리의 개별성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같은 박 씨끼리 뱀!(출처: huffingtonpost.kr)

한국의 정체성, 한국적인 것은 무엇일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리는 유난히도 “한국적인 것”을 끊임없이 찾아왔다. 개별성이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현상”일 뿐이지 고정된 이미지가 아닐텐데, 우리는 끊임없이 한국의 개별성(Identity)이라는 고정된 진실이 존재하기라도 하듯 셀카를 찍고 골라내며 골라낸 그 이미지와 한국이 동일하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다시 얘기하자면, 끊임없이 셀카를 찍어대는 행동 자체가 우리의 개별성일 것이다.

얼마 전, 어느 외국인 사진작가가 서울 구석구석을 여행하며 서울의 가장 인상적인 모습을 담은 사진을 공개했는데, 그 프레임에는 우리가 늘상 지나치고 있지만 셀카 찍지 않는, 종로의 어지러운 뒷골목에 뒤엉긴 네온사인, 전봇대 등등이 들어있었다. 서울의 그 흔한 셀카에 포함되는 한강의 야경이며 높이 솟은 빌딩, 잘 정돈된 테마파크 같은 “전통적인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서울이 보기엔 숨기고 싶고 프레임 밖으로 밀어내고 싶은 풍경이었겠지만, 그 누군가는 서울이 다른 도시와 구분되는 개별성을 그 뒷골목에서 보았나보다. 그러면 그 동안 우리가 프레임 밖으로 밀어낸 또 다른 풍경은 무엇일까. 우리가 숨기고 외면했던 현상은 무엇이 있을까. 한국의 개별성은 그 배제와 외면의 욕망에서 찾아야만 할 지도 모른다.

우리는 한자리에서 5개 국어 이상이 들리는 명동 한복판에서 코스모폴리스 서울의 셀카를 찍지만, 현상적으로 한국은 이미 다인종, 다문화 국가이다. 하지만 우리의 셀카 속 한국은 여러 인종이 명절 때마다 다인종이 한복을 입고 떡을 빚고 김치를 담그고 있다. 한국의 정체성을 현상적으로 찾는다면, 유러피안이나 아메리칸 백인종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배타적으로 작동되고 있는 언어/문화적 민족주의, 인종주의를 빼놓을 수 없다. 199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이주노동자 2세들이 한국에서 태어났고,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는 다인종 한국인들이 이제 속속들이 성인연령대에 진입하고 있다. 그 동안에는 폐쇄적 중등교육의 사회에서, 분리된 지역사회에서, 계급적으로 차별받고 프레임 밖으로 밀려났던 이 한국인들이 이제 한국의 셀카를 다시 찍을 때가 됐다.

16세 현직모델 한현민 군(출처:AFP news agency)

태그 한국의 셀카, 박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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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성

박해성 연출가
상상만발극장에서 연출
트위터 @theatreimaginer
제120호   2017-07-20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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