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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 논란이 불편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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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가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개봉 주말 400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지만, 한쪽에서는 환호 소리가 들리는 반면 한쪽에서는 야유 소리가 들린다. 환호하는 측에서는 일제의 강제 징용 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했다고 치켜세우는 반면 야유하는 측에서는 스크린 독과점의 폐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영화라고 비판한다.

영화 내용을 놓고도 논쟁이 일고 있다. 논란의 중심에 있는 것은 일본 제국주의 시스템에 기생해 동포들을 속박하고 학대한 조선인 캐릭터다. 대단한 친일파가 아니라 처녀들을 속여서 종군 ‘위안부'로 만든 조선인, 징용 현장에서 일본인을 대신해 조선인을 압박하는 인물이 두루 나온다. 이런 장면들이 불편했던 관객이 많았던 것 같다.

<군함도>는 전반부와 후반부가 결이 많이 다르다. 전반부는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다. 어떤 식으로 징용이 이뤄지고 그 과정에 어떤 사기와 기만이 있었는지, 징용 현장이 얼마나 참혹했는지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체험하게 해준다. 후반부는 이런 역사적 상황 조건을 기반으로 감독이 상상력을 발휘한다. 사실의 토대 위해 허구가 구축된 영화라 할 수 있다.

<군함도> 논란의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해서는 <군함도>가 군국주의와 애국주의를 대하는 태도를 먼저 살필 필요가 있다. 류승완 감독은 일제의 군국주의를 절묘하게 활용했다. 이런 블록버스터 영화에는 일정한 스펙터클이 필요한데 군국주의의 시청각 상징을 영화 전반부에 만끽하게 해준다. 덕분에 관객은 쉽게 징용자와 위안부의 ‘화려한 비극’에 빨려 들어가게 된다.

이런 군국주의 코드가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것은 군부독재 시절 우리가 경험했던 애국주의 코드의 원형이기 때문이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부부 싸움을 하다가 국기 하강식 애국가가 울려 퍼지자 멈춰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군함도>에는 유곽에서 술판을 벌이던 간부들이 꼬마가 ‘천황 폐하 만세'를 외치는 것을 보고 긴장하고 함께 외치는 장면이 나온다.

태평양전쟁 말기 일제는 강력한 전시 동원 체제를 구축하면서 조선반도에도 군국주의를 이식시켰다. 문을 숭상하던 조선인들에게 무를 부각하기 위해 신라 ‘화랑도’를 끌어내 조명했고 어린이와 여성도 보호받는 존재가 아닌 ‘후방에서 전쟁을 보좌하는 존재’로 재해석했다. 이때 나온 것이 ‘황국신민체조’로 국민체조의 원형이다. <군함도>의 군국주의가 낯설지 않은 것은 이런 군국주의 복제의 역사 때문이다.

이렇게 군국주의 코드를 재활용하면서 류승완 감독은 군국주의 서사에서 세 가지를 가져온다. 하나는 ‘군국주의의 부작용’이고 다른 하나는 ‘군국주의의 은폐’ 그리고 마지막은 ‘군국주의에 기생한 조선인’ 문제다. 군국주의에 대한 감독의 깊은 고민을 볼 수 있는 부분이다.

‘군국주의의 부작용’은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 군대에서 나타난 정신병리에 대한 부분이다. 일본의 대표적 정신분석학자인 노다 마사아키 교수에 따르면 전쟁 말기 후방 후송 환자의 20% 정도가 정신병을 앓고 있었다(전쟁 초기에는 1% 수준). 과거를 제대로 반성하지 않은 일본은 이런 ‘사회적 트라우마’를 극복할 계기가 없었는데 이런 집단주의가 나중에 이지메(집단 따돌림) 문화를 만든다고 분석한다.

‘군국주의의 은폐’는 감독의 영화적 상상력의 모티브를 제공한다. ‘패전이 확실해지면서 군함도의 참상을 은폐하려고 했을 텐데 그렇다면 조선인 징용자들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었을까?’가 하는 상상력이 영화 후반부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징용자와 종군 ‘위안부’를 폭사시킨 사례나 731부대의 생체 실험을 은폐하려 했던 전력이 있기 때문에 이런 설정이 낯설지 않다.

마지막은 가장 민감한 문제이고 영화에 대한 비판이 집중된 부분이기도 한 ‘군국주의에 기생한 조선인’의 역할이다. 어찌보면 일본인 관리자보다 더 가학적이었던 이들이 조선인이라는 사실이 관객을 불편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것 또한 역사적 진실이다. 그것이 ‘생계형 친일’이었던 확신범이었던 이런 인물이 두루 있었다. 영화는 이런 역사의 민낯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군함도> 논쟁에서 우리가 참고해야 할 것은 군국주의에 대해 제대로 반성하지 않은 일본이 ‘사회적 상흔'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인들은 원폭을 핑계로 태평양전쟁에 대해 피해자 논리를 내세운다. 전쟁은 원래 비참한 것이고 가해자도 피해자라는 논리다. 일본의 평화운동도 그 출발점이 이런 피해자 논리다. 친일 청산을 제대로 하지 않은 우리도 애국주의의 폐해를 지금 겪고 있다. <군함도>가 드러낸 역사의 민낯을 피하지 말고 응시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태그 군함도, 고재열, 리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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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열

고재열 시사IN 문화팀장
시사저널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으나 '삼성기사 삭제사건'에 항의해 6개월 동안 파업을 벌인 후 사표를 내고 동료들과 시사IN을 창간했다. 블로그 '독설닷컴'으로 인터넷 논객 활동을 시작했으며 요즘은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 더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트위터 @dogsul | 페이스북 facebook.com/dogsuldotcom
제121호   2017-08-03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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