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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소멸 시대의 소멸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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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지역방송 프로그램에 패널로 출연했다. 방송 시작 전 광고를 보니, 7개 중에 4개가 상조회사나 장례식장 관련 광고였다. 한때의 유명 탤런트가 나와 마지막 가시는 길을 따뜻이 보내드리겠다고 속삭이고 한때의 인기 가수는 ‘어머님은 나의 영원한 VIP’라며 가시는 길을 VIP로 모시겠다고 약속했다. ‘김서방 고맙네, 이서방 고맙네, 박서방도 고맙네’라며, 서방사거리의 이 장례식장은 고인이 감탄할 지경이라며 서비스를 자랑했다.

그러고 보니 지역에 가면 예전에 결혼식장이 있어야 할 위치에 요즘은 장례식장이 있는 것 같다. 쇠락해 가는 지방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시설이 바로 장례식장이다. 점점이 흩어진 사람들이 그나마 모이는 날이 바로 장례식이 아닌가 싶다. 일전에 지방도를 지나다 ‘장례식 특별 할인 기간’이라는 선전문구를 본 적이 있다. 특별 할인을 위해 죽을 날도 가려야 한다는 것인지, 기분이 묘했다.

언론에 ‘소멸 위험 지자체 순위’가 공개되면서 지방소멸에 대한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는데, 지방에서는 상조회사와 장례식장이라는 소멸산업이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었다. 그럼 그 다음은? 답이 안 떠오른다. 두 달 뒤면 지방자치 선거인데, 거기 나오는 후보들에게는 답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 장례식까지 털어먹고 난 다음에 지방은 무엇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지, 그 답을 그들이 찾아주길 바란다.

어쩌면 이 소멸산업은 좀 더 이어질 수도 있을지 모른다. 요즘 지방에 장례식장만큼 활발한 곳이 요양병원이다. 힘들게 모시고 사는 것이 아니라 좋은 요양병원에 보내는 것이 효도라며, 이들은 효도의 프레임을 바꾸며 자식들을 유혹한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의 말년 풍경이 될지도 모른다. 요양병원에서 말년을 보내고, 지방 장례식장에서 의식을 치른 뒤에, 현지의 납골당에 안치되는, ‘화려한 고려장’이 우리의 미래일 수 있다.

아이러니다. ‘혐오시설’이라는 이름으로 도시 밖으로 밀어낸 시설에서, 우리가 말년을 보낸다는 것이. 선호와 혐오를 구분한 것은 우리인데, 우리가 스스로 혐오가 되는 상황은, 단두대를 개발한 왕이 단두대에 처형된 것만큼 아이러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방 소멸을 막고 지역을 가꾸는 것은 우리의 노후를 대비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소멸해가는 지방에서 같이 소멸하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하지만 전망은 어둡다. 지금 지방의 모습은 사람이 살았던 자리에 건물이 살 수 있도록, 헛돈을 쏟아 붓고 있다. 이런 식이다. 노인들이 운동할 수 있도록 게이트볼장을 만든다(이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런 다음 비를 피할 수 있도록 지붕을 만들자고 한다(그럼 해를 가리게 되는데?). 그 다음에는 저녁에도 할 수 있도록 전기 시설을 하고 시원한 바람이 아쉬우니 선풍기를 달자고 한다.

마을 정자는 어떤가? 처음에는 마을 정자를 예전 것보다 훨씬 멋진 팔각정으로 짓자고 한다(이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런 다음 비가 들이치지 않도록 샷시와 유리창을 달자고 한다(그럼 바람을 가릴 텐데?). 그런 다음 선풍기를 틀고 냉장고를 둘 수 있도록 전기를 연결하자고 한다.

이들의 효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참 아이디어가 무궁무진하다. 어르신들을 위해 공원을 조성하기도 하는데, 이거야말로 상상력의 극단이다. 비유하자면 잔칫집에 도시락 싸가는 격이다. 사방이 자연인데, 그 자연의 한복판에, 자연의 일부를 복원한 공원을 조성한다. 여기에 녹슬고 있는 운동시설이 화룡점정 역할을 한다.

황당한가? 현실이다. 이런 지붕 있는 게이트볼장과 통창이 설치된 정자는 약과다. 도농복합센터와 웰빙센터처럼 수십억을 들인 삽질도 곳곳에 즐비하다. 도시와 농촌이 함께 무엇을 할 것인지, 지역 어르신들을 위한 웰빙이 무엇인지, 단 1도 고민하지 않고 만든 시설이 개점휴업 상태로 방치되고 있다. 지방선거가 중요하다. 금수강산이 금수들의 강산이 되지 않도록 매의 눈으로 골라야 할 것이다.

태그 고재열,소멸산업,지방소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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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열

고재열 시사IN 문화팀장
시사저널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으나 '삼성기사 삭제사건'에 항의해 6개월 동안 파업을 벌인 후 사표를 내고 동료들과 시사IN을 창간했다. 블로그 '독설닷컴'으로 인터넷 논객 활동을 시작했으며 요즘은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 더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트위터 @dogsul | 페이스북 facebook.com/dogsuldotcom
제137호   2018-04-05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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