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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정을 ‘열겠다’는  연극의 신호를 감지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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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은 늘 설렘과 두려움을 공존하게 한다. 무언가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에 맞닥뜨리면 그런 감정은 증폭된다. 2019년 다시 시작하는 첫 호(3월 14일)를 발행한 ‘웹진 연극in’의 시작 역시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어떤 모습으로 다가가야 하는가에 대한 오랜 고민 끝에 드러난 맨 얼굴에 붉은 홍조가 사라지기 전, 다행스럽게도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가꾸어진 지면들에서는 두려움보다는 설렘이 더 강력하게 다가온다. 이제 우리가 함께 주목해야 하는 것은 여기에 지속해서 담겨질 연극의 이야기다. 

그런데, 사실 그게 참 어렵다. 지금 이 시대에 ‘매체’라는 역할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가를 구분하기도 어렵지만, 늘 새로운 경향과 이슈를 찾는 일도 쉽지 않다. 연극 현장에서 첨예하게 전개되는 순간의 일상을 담기에는 호흡이 딸리기도 하고, ‘객관성’이라는 중립적인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는 숙명 역시, 좀 더 진일보한 태도를 제한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극은 각자의 공간에서 몇 날, 몇 달의 시간을 거쳐 관객을 만날 준비를 쉼 없이 이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 주목해야 할 연극의 모습은 무엇일까. 어쩌면 그것은 우리가 끊임없이 중요시했던 연극의 ‘과정’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최근 한국 연극은 다양한 변화의 흐름에 있다. 삶의 태도와 인간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품어야 하는 연극의 태생적 근원은, 문화예술계에 불어 닥친 비상식적이고, 비인간적인 행태들의 변화를 요구할 수밖에 없는 본성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런 흐름 속에서 뭔가 꿈틀꿈틀 새로운 흐름들이 올라오고 있지만, 기실 무엇 하나 명확하게 감지되는 변화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아마 조금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최근 명확하게 변화의 양상을 보여주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창작의 과정을 열겠다는 창작자들의 신호다. 

‘수행성’이라는 단어가 연극의 과정에 스며들었던 시절이 있다. 희곡을 근간으로, 연출가의 해석을 통해 전개되던 방식에서 창작자들 스스로 이야기를 꺼내고, 그것을 직접 실행하면서 작품을 만들어가는 방식, 그것은 관객과의 접점을 더 가깝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왔다. “우리의 예술적 담론을 봐 달라”는 관점과 태도가 사라지고, 비로소 연극은 지난 수십 년간 경계 지었던 창작자와 관객의 구분을 벗어나는 기회를 만났다. 그리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연극의 관점을 관객으로 옮기는 계기가 되었다고 기억한다. 

그런 변화의 흐름에서 2019년 현재, 조금 더 적극적으로 창작의 과정을 열겠다는 신호가 감지된다. ‘프리 프로덕션’에 대한 중요성에 대해 감각적으로 인식하던 부분들을 실현하고자 하는 창작 그룹들이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올해 ‘서울변방연극제’가 그렇고, ‘화학작용’ 역시 그러한 계획을 페스티벌의 주요 방향성으로 삼고 있다. 일차적으로는 연습실을 열겠다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참여하는 이들과 함께 프로그램을 완성해간다는 것이지만, 그 기저에는 그러한 과정 자체가 하나의 ‘창작품’이라는 생각을 품고 있다고 감히 예측해본다. 

이러한 창작의 방식이 늘어가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변화다. 왜냐하면 아직 연극 지원정책과 제도는 이런 변화를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원기관의 입장에서는 ‘우수한 작품 또는 그것을 기대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성과 위주의 지원 프레임에서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창작과정’을 지원한다는 것은 그저 ‘불안 요소’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창작자들은 스스로 창작과정을 열겠다고 공언하며 그런 방식을 애써 만들어가려고 하는 것일까. 여기에 연극의 실질적인 변화의 단초가 있을지도 모른다. ‘우수한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은 결단코 시간에 비례한다. 당연하게도 우수한 작품을 원한다면 그것을 만들 수 있는 과정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지난 50여 년간, 그러니까 창작지원을 위한 지원기관이라는 것이 생기기 시작했던 때부터 유지되어왔던 ‘결과위주’의 지원정책이 지금 우리 연극계의 창작방식에 부합하는가를 고민해야 할 충분한 요소가 있다는 말이다. 그것이 예술현장 스스로의 변화로부터 촉발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중요한 지점이다. 

이런 변화의 길목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웹진 '연극in'의 행보 역시 이전보다 더 명확하게 창작의 과정에 주목해보길 바라본다. 결과를 기록하는 것이 여느 매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연극in'은 창작자들의 과정 자체를 성과로 기록해줄 수 있는 또 다른 역할로 무게 중심을 가져가 보길 기대하는 것이다.

2012년 6월 창간호부터 웹진 '연극in’이 주목해 온 흔들리지 않는 방향 중의 하나는 ‘사람’이었다고 기억한다. 그 이유는 분명했다. 연극은 그것을 행하는 사람들의 ‘태도’, 함께 하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 그것을 함께 공유하는 이들의 ‘정서’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 과정에서 웹진 '연극in’이 연극인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매체로서 유의미했었다면, 이제 또 다른 시작에서는 연극인들의 현재를 증명하는 매체로서 더 많이 활용되기를 희망한다.  

간혹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라는 말을 많이 하기도 하고, 듣기도 한다. 뭔가 벌여 놓은 일에 쫓길 때도 그렇고, 차분하게 생각해봐야 할 때도 그렇다. 혹은 타인의 다양성을 존중하기 위해서도 시간이 필요하고, 무언가에 더 큰 확신을 갖기 위해서도 그렇다. 무슨 일이든 어쩌면 조금은 더딘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웹진 '연극in’의 편집진들뿐 아니라, 이 매체를 마주하는 연극인들, 독자들 역시 예의 그 변화라는 측면에 대해 너무 조급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매체가 하나의 흔들리지 않는 성격을 갖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만큼, 앞서 밝혔던 과정 자체의 주목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연극in’ 역시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지금 ‘연극in’에 포진해 있는 이들이 지금 연극 현장에서 누구보다 가열 차게 스스로를 증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들로부터 기록될 연극의 이야기는 이미 흥미롭다. 남은 것은 그것이 더 확산되기를 기다리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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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우

최윤우 새움 예술정책연구소 대표

월간 <한국연극>, 웹진 <연극in> 편집장을 역임했다. 연극평론가 및 새움 예술정책연구소 대표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소극장협회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예술정책 및 제도, 특히 예술 현장에 적합한 지원정책 개발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parodia@naver.com
제156호   2019-03-28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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