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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를 늘이고, 다리를 없애기 - 신체를 동기화하는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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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과학자 라마찬드란의 잘 알려진 실험이 있다. 의자 두 개를 나란히 놓고 뒷자리에 앉은 후, 그 옆에서 친구가 당신의 눈을 가리도록 한다. 당신 앞 의자에는 다른 사람이 앉도록 한다. 이제 손을 뻗어 당신 앞에 앉은 사람의 코를 일정 간격으로 톡톡 건드려보자. 동시에 당신의 친구는 의자 옆에 서서 당신의 코를 톡톡 친다. 당신이 앞 사람의 코를 건드리는 순간과 친구가 당신의 코를 건드리는 순간이 일치하는 것이 중요하다. 라마찬드란의 이 실험에서, 모든 참가자는 1분 정도가 지나면 자신의 코가 앞 의자에 앉은 사람의 코 위치만큼 약 60cm쯤 길어진 것으로 느꼈다.
라마찬드란에 따르면, 나의 손 끝이 타인의 코를 두드리는 감각과 내 코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지속하여 일치하면, (눈마저 가린 상태이므로) 우리 뇌는 이 경험을 통합적으로 해석하기 위해 앞에 앉은 사람의 위치까지 내 코가 60cm 길어졌다고 추리한다는 것이다. 유사한 실험에서는 탁자 위에 플라스틱 손을 올려두고, 탁자 아래에는 실제 손을 집어넣은 후 탁자 밑에서 실제 손을 두드리면서 정확히 같은 순간 탁자 위의 플라스틱 손도 건드렸다. 그러면 참가자는 잠시 뒤 플라스틱 손이 마치 자신의 실제 손인 것처럼 감각한다.
(사진출처:http://lg-sl.net/product/scilab/sciencestorylist/ALL/readSciencestoryList.mvc?sciencestoryListId=IQEX2010030006)
위 실험은 우리가 경험하는 나의 신체가, 사실은 두뇌가 상상적으로 구성한 일련의 이미지들임을 말해준다. 이는 4D를 넘어 생생한 가상현실(VR) 콘텐츠로 날로 발전하는 영상예술의 시대에, 연극이 마지막으로 기댈 곳인 현존감(presence)을 위기로 몰아넣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의 신체에 대한 감각조차 뇌의 구성물이라면 공연장에서 우리가 느끼는 배우와 관객의 신체와 신체가 만나는 긴장감, 아우라, 공통경험의 창출 모두 뇌라는 스크린으로 세계를 보는, 그저 더 생생한 가상체험에 불과하지 않을까? 우리의 뇌가 배우와 관객의 신체를 결국 특정하게 재구성한다면, 고성능 VR의 등장 앞에서 공연예술이 현존 또는 실재성(reality)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기란 꽤 무색한 일일지도 모른다(물론 이는 다른 쟁점을 더 포함하는 문제인데, 일단 미뤄두기로 하자.)
이처럼 우리의 몸이 뇌가 만들어낸 가상이며, 뇌가 상당한 유연성을 가지고 우리 몸을 상상적으로 구성한다는 이론은 신체의 현존성과 그에 토대를 둔 무대창조에 약간은 회의를 불러온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이는 우리 뇌가 자기 신체와 타인의 신체 혹은 사물조차도 뒤섞는 폭넓은 구성능력을 가졌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사실은 최근 (여전히 공연계 전체로 보면 한 줌에 불과하지만) 관심을 끄는 배리어 프리 공연에 대해서도 일정한 통찰을 주는 것 같다.
배리어 프리가 장벽barrier을 제거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무대 위 현존의 순간에 다양한 조건과 감각을 지닌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예술적 실천이라고 생각해보자. 우리는 어떤 공연에서 배우의 다리 혹은 휠체어와 관객의 몸을 뒤섞는 시도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이를테면 모든 객석이 휠체어로 된 무대를 상상해보라. 관객 수십 명은 휠체어 위에 앉고, 휠체어를 탄 배우가 특정 움직임을 관객에게 요구하고 그 움직임을 얼마간(5분 정도?) 반복한다. 그런 후 배우가 본격적으로 공연을 시작한다. 실험해본 적은 없지만(휠체어 수십 대를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이렇게 신체적으로 동기화를 시도한 후 시작된 공연에서 관객의 뇌는 한 번도 구성된 적 없는 특정한 패턴으로 자기 신체를 재구성할 것이고, 이는 배우의 표현과 접속되어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확장되지는 않을까? 이때 무대 위에서 우리는 어떤 ‘배리어’도 상상하기 어려울 것인데, 그렇다면 배리어 프리 공연이란 일종의 감각, 신체, 나아가 ‘두뇌’의 재구성이 되는 셈이다.
참고문헌

앤디클락, 『내추럴-본 사이보그』, 아카넷, 2013
빌라야누르 라마찬드란, 샌드라 블레이크스리, 『라마찬드란 박사의 두뇌실험실』, 바다출판사 2015

태그 코를 늘이고, 다리를 없애기, 김원영, 신경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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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영

김원영 작가, 변호사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희망 대신 욕망>을 쓴 저자이고, ‘법무법인 덕수’에 소속된 변호사다.
연극 프릭쇼(2014년 변방연극제) 등을 기획했다. 장애예술, 그 중에서도 공연예술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지체장애가 있어 휠체어를 탄다. 한겨레신문, 비마이너, 시사인 등에 글을 썼고 쓰고 있다.
https://www.facebook.com/DisabilityTheoryAndArt
제161호   2019-06-13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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