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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어셔와 유니폼 ― 치마에서 바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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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_하우스매니저 인터뷰 영상 www.youtube.com/watch?v=OmH3li_z6sY)
흰색 블라우스에 신체 라인에 꼭 맞는 어두운색 치마, 커피색 스타킹―혹은 계절에 따라 검은색 스타킹, 굽이 낮은 검은색 구두, 하나로 묶은 머리에 리본 핀 머리망까지. 색상이나 디자인에 차이는 있지만, 서비스직 여성 노동자가 착용하는 포멀한 정장형 유니폼의 기본적인 요소들이다. 보다 화려한 색상과 엄격한 의복 규정이 있는 승무원 유니폼도 같은 스펙트럼을 공유하며, 불과 2-3년 전까지 CGV 영화관 직원들도 위와 같은 유니폼을 착용했다. 그리고 이는 하우스 어셔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물론 CGV는 젊은 세대의 니즈를 반영한다는 이유로 유니폼을 점프수트형으로 교체했고, 이례적으로 진에어 항공사 승무원들은 청바지를 착용하고 있다. 공연계의 경우에도 국립극단 서계동(백성희장민호극장·소극장 판)이나 두산아트센터, 그리고 삼일로창고극장이나 대학로의 소극장들에서는 하우스 어셔가 후드 집업, PK티셔츠, 청바지와 같은 편안한 유니폼을 착용한다. 반면 남산예술센터를 비롯하여 국립극장, 명동예술극장, 예술의전당, 아르코예술극장 등의 공공극장이나 LG아트센터, 블루스퀘어 등 - 공공극장은 아니지만 공연장 규모가 큰 극장들 - 은 여전히 정장형 유니폼을 착용하고 있다. 여기에는 각 극장이 표방하고 있는 가치가 다른 것에서 오는 차이도 있다. 편안한 유니폼을 착용하는 극장이 ‘젊음’, ‘실험’, ‘친근함’ 등의 이미지를 보여준다면, 정장형 유니폼을 착용하는 극장은 ‘격식’, ‘신뢰’, ‘단정함’ 등의 이미지를 보여준다.(경험 부족으로 서울권 극장만 예시로 든 것에 양해를 구한다)
하우스 어셔는 관객을 면대면으로 만나는 사람으로서, 우리가 착용하는 유니폼은 각 단체가 표방하는 가치를 시각적으로 잘 나타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유니폼은 긍정적인 기능을 수행한다. 일례로, 남산예술센터 하우스 어셔들은 삼일로창고극장에서도 함께 근무하고 있는데, 삼일로창고극장에서는 남산예술센터의 유니폼을 착용하지 않는다. 이는 삼일로창고극장이 남산예술센터와는 또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니폼을 특정하지 않고 편안한 사복을 입는 삼일로창고극장은 편리한 만큼 때때로 불편함을 초래하기도 한다. 관객과 의상 경계가 모호해 겉보기에 어느 소속인지 알기 어렵게 하기도 하고, 종종 우리를 나름의 노동 인력으로 바라보기보다는 그냥 ‘알바생’으로 보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이에 반해 유니폼, 특히 정장형 유니폼은 어떠한 힘을 가진다. 유니폼은 우리를 전문 노동 인력으로 보이게 하며, 관객들이 안내를 필요로 할 때 우리를 한 눈에 찾을 수 있게 만든다.
(이미지 출처: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_하우스매니저 인터뷰 영상 www.youtube.com/watch?v=OmH3li_z6sY)
하지만 하우스 어셔가 실제로 수행하게 되는 업무를 세세히 들여다보면, 또 다른 시각에서 유니폼을 바라볼 수 있다. 특히 정장형 유니폼의 경우에 여성 어셔가 치마 유니폼을 착용하는 것이 얼마나 착오적인 일인지 알 수 있게 된다. 객석 근무의 경우에는 관객들을 자리로 안내하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이나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며, 로비 근무의 경우에는 때론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상황도 빈번하다. 즉 치마 유니폼은 하우스 어셔의 신속함과 정확함을 떨어뜨리고, 업무 효율에까지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남산예술센터의 경우에도 치마 유니폼과 관련하여 민망하고 불편한 일들이 있었다. 치마폭이 좁은 탓에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게처럼 옆으로 내려가야 하는 일이 빈번했고, 지연입장 시 관객들에게 라이트 불빛을 비춰주기 위해 쭈그려 앉아야 할 때마다 자세 잡기가 쉽지 않았다. 또 자리를 안내받아야 할 관객이 “내가 내려 갈테니 내려오지 말라”고 우리를 배려하는 경우도 있었고, 직접적으로 여성 어셔들이 딱 달라붙는 치마를 입는 것이 보기 불편하다고 말하는 관객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극장에서 치마 유니폼이 유지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한 하우스 어셔의 경험담에 따르면, “왜 남성 안내원들은 바지를 입는데 여성은 치마를 입느냐”라고 극장에 물어봤을 때, “사회적 인식 때문에 아직은 바꾸기 어렵다”라는 답변을 받았다고 했다.1) 여자는 치마, 남자는 바지라는 이분법이 이상하지 않던 시대에는 이러한 유니폼 형태가 매우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에도 분명, 많은 여성 노동자들은 불편함과 위험함을 감내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때의 치마는 편했던 옷인 것이 아니라, 단지 불편함에도 불편하다고 말하지 못했던 것뿐이다.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되는 요즈음, 여성 노동자들이 ‘단정함’과 ‘격식’을 위해 꼭 치마를 입어야 하는지 질문을 던질 수 있을 때라고 생각한다. 이미지라는 것이 과연 실질적인 업무보다 상위에 있는가?
남산예술센터는 작년에 여성 어셔의 유니폼을 바지로 교체했다. 남산예술센터가 첫 사례도 아니고 그저 작은 변화일 수 있지만, 공연계―넓게는 우리 사회 전반―에 일어나는 변화의 바람에 함께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바지 유니폼을 착용하는 여성 어셔들의 만족도는 매우 높다. 무엇보다 어셔 개인의 편리함을 넘어서, 실질적인 업무에도 매우 효율적이다.
최근 아르코예술극장에서도 여성 어셔가 바지 유니폼을 착용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관객으로 찾은 극장에서, 나와 동일한 노동을 하고 있는 여성 어셔가 바지를 입은 모습을 보니 묘하게 기쁜 마음이 들었다. 아직 치마 유니폼을 착용하고 근무하는 여성 어셔들이 많다. 물론 모든 극장이 단기간에 유니폼을 교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예산을 비롯하여 현실적인 문제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장이라는 거대한 공간에서 함께 노동하고 있는 하우스 어셔들의 영역에도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기를 바라본다.
  1. 더관객, 『더―관객 #2018 #연극 #관객 #기록』, 서울연극센터, 2018, 156쪽.

태그 하우스 어셔와 유니폼,치마에서 바지로,윤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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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소희

윤소희
2016년부터 남산예술센터에서 하우스 어셔로 근무하고 있다. 2018년부터 삼일로창고극장에서도 함께 근무하고 있다.
https://www.facebook.com/sohee.youn.52
제163호   2019-07-11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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