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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매니저로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휠체어를 이용하는 지체장애인이 관객으로 찾아왔다. 일상에서 스쳐 지나가며 자주 봐왔지만 내가 주도적으로 장애인 관객을 안내하는 건 처음이라 매우 긴장되었다. 우리 극장에 찾아 오셨으니 무조건 친절하게 다 해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결론적으로 나는 결례를 범했다. 가장 중요시해야 할 가치인 ‘자립(自立)‘을 무시해 버렸으니 말이다. 이후 보건복지부에서 주관하는 ‘장애인 활동보조인’(현재 ‘장애인 활동지원사’) 교육에 참여했다. 대다수의 장애인들은 화장실 이용을 줄이기 위해 외출 3-4시간 전부터 물을 마시지 않는다고 했다. 신체활동이 자유롭지 못하고, 도움 없이는 이용이 어렵기 때문이었다. 장애인이 처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나의 마음가짐을 ‘의무감’에서 ‘사명감’으로 바꾼 내용이었다. 장애인 관객을 응대할 때 가장 중요하게 지키는 두 가지가 있다. ‘일행을 통하지 않고 관객과 직접 대화하기, 의사를 먼저 물어보기‘이다. 현장에서 관객을 응대할 때 가장 많이 하는 실수 중 하나는 ‘일행’을 ‘보호자’라고 칭하는 것이다. 내가 초창기에 제일 많이 했던 실수로 아직도 생각날 때마다 이불을 차곤 한다. 서비스를 제공할 때도 항상 ‘자립‘을 존중하며, 최우선의 가치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장애인 관객을 응대하며 기억에 남는 두 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한 번은 주말 낮 공연 시작 2시간 전에 사무실로 전화가 걸려왔다. 시각장애인 3명이 공연을 관람하러 오는데 지하철 역으로 마중을 나와 줄 수 있는지 문의하는 전화였다. 지하철 역 내부에는 출구로 안내하는 점자블록이 있지만, 역사 밖으로 나올 경우 극장까지 안내하는 점자블록이 없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연락처를 전달받고 만나기로 약속한 후 지하철 출구에서 관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각 장애인 관객 3명이 역무원의 도움을 받아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얼른 달려가 관객을 모시고 가려고 했으나 역무원이 일방적으로 무언가를 말하며 놔주지 않았다. 내용인 즉, ‘이렇게 자꾸 제 팔을 주물럭거리면 성희롱으로 고발될 수 있으니 조심하세요. 요즘 성희롱이 얼마나 무서운데요. 저니까 그나마 참는 겁니다‘ 라고 훈계 중이었다. 말문이 턱 막혔다. 시각장애인과 보행을 할 때는 안내자가 팔꿈치를 내줘서 잡고 보행을 한다. 이 때, 정안인의 눈으로 걷다보면 보행 속도를 맞추지 못해 손이 미끄러지게 되고 재차 팔을 잡는 과정에서 신체 접촉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속상한 관객을 대신하여 싸울 수도 없는 터. 현실에서는 답답한 일이 비일비재하다.

시각장애인을 안내할 시에는 자신의 소속과 이름을 밝힌 후, 팔꿈치를 내어주고 보폭을 맞추며 걷는다, 나의 경우에는 동선을 그림 그리듯 자세하게 설명하여 불안감을 느끼지 않도록 한다. 정지한 상태에서 한 두 걸음 앞으로 가야할 경우 ‘보폭’으로 요청한다. 착석 후에는 공연의 기본 정보(러닝타임, 쉬는 시간, 화장실 이용 등)를 전달하고 공연 중 도움이 필요할 시에는 손을 들어 달라고 안내한다. 또한 퇴장 시기도 조율하여 관객이 불안해하며 기다리지 않게 한다.
뮤지컬 공연 중, 지체장애인 관객이 마른 기침을 심하게 한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주변 관객들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으나 기침이 멈출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횟수가 반복될수록 주변 관객들이 불편함을 표시하였다. 관객도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해 주변의 도움 없이는 물을 마시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객석 입구에 비치한 비상용 물병에 빨대를 꽂아 가져다 드린 후 물을 마실 수 있도록 도왔다. 다행스럽게도 기침은 금방 잦아 들었다. 이 일이 있은 후로 극장 입구 수표대에는 언제 사용할지 모르는 ‘꺾어지는 빨대’가 필수품이 되었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지체장애인의 경우, 위압감이 들지 않도록 눈높이를 맞추고 대화하며 직원이 휠체어를 직접 조작하는 일은 최소화한다, 전동휠체어의 조이스틱이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비숙련자가 조작할 경우 망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불가피한 경우에는 양해를 구하고 손을 대도록 한다. 휠체어, 보행 보조기 등 관객의 보행을 돕는 물건은 신체의 일부와 같다고 생각하고 응대한다. 휠체어에서 좌석으로 이동하여 관람을 원할 경우, 관객에게 신체 접촉이 발생할 수 있음에 대한 양해를 구한 후 이동을 돕는다. 다른 관객들을 위해 공연 중 대화 삼가와 휴대폰이 울리지 않도록 전원을 끄거나 비행기 모드로 전환하도록 하는 기본 에티켓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는다.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해 휴대폰 전원을 끄기 어려운 경우, 휴대폰을 만져도 되는지 물어본 후 관객이 화면을 직접 볼 수 있도록 한 상태에서 전원을 끈다. 휴식시간에 귀가를 위한 콜택시를 불러야 할 경우도 있기 때문에 전원을 켜야 하는 시점에 대해서도 조율한다.

4~5년 전부터 장애인 공연 관람 동호회가 활성화되어 장애인 단체관객이 많이 방문하는 추세다. 우리 극장의 경우 장애인 관객 응대는 매니저가 직접 하는 편이다. 하지만 다수의 관객이 방문할 경우를 대비하여 하우스 스탭들도 장애인 관객 응대 교육 및 실습을 통해 현장 응대에 차질이 없도록 준비한다. 가장 난감할 때는 객석 점유율이 80% 이상인 상황에서 예고 없이 오신 휠체어 사용 관객이다. 관객들은 전동휠체어를 많이 이용하는데, 우리 극장의 경우 객석의 단차가 전동휠체어의 머리 받침대의 높이를 따라잡지 못해 뒷좌석이 사석이 된다.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자리는 범위가 한정되어 있는데 미리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방문 시, 뒷좌석 관객에게 양해를 구해 다른 좌석으로 옮기면 서로 껄끄러운 감정이 발생할 수 있다. 극장에 방문 관련 정보를 준다면 사전 준비를 많이 할 수 있어 매끄러운 현장 응대가 가능하다. 극장의 시설을 개선할 수 없는 경우, 서비스로 모자란 부분을 채우려고 한다. 진심과 최선을 다 하지만 분명 미숙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겁게 관람하고 돌아가시는 모습에 항상 감사할 따름이다.

태그 내 마음 속 VIP, 권율아, 하우스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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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율아

권율아 하우스 매니저
하우스 어셔 아르바이트로 공연장에 처음 발을 들여 지금은 서울 중심권의 극장에서 7년째 하우스 매니저로 재직 중이다. 장애인 관객 서비스 및 접근성 향상에 대해 관심이 많다.
slavm1305@naver.com
제164호   2019-07-25   덧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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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
이렇게 섬세한 고민을 하고 계셔서 (장애가 있는 관객으로서) 우리 공연계에 대한 더 많은 기대를 가지게 됩니다! 경험을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2019-07-29댓글쓰기 댓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