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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평한’ 성평등이라는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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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11일 한국여성의전화는 지난 10년간 언론에 보도된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 의한 여성 살해 피해자 수는 887명, 살인미수 피해 여성은 727명이라고 발표했다. 언론에 보도된 사건만을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실제 피해 상황은 이보다 클 것이다. 최소 2-3일마다 1명이 죽거나 다쳤다. 이 사실을 보도하는 기사에는 놀랍게도 일부 범죄자의 잘못을 성평등 문제로 끌고 오지 말라는 댓글이 달려 있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이 여성차별과 억압의 가장 기본인데, 왜 성평등 문제가 아니라는 것일까?
비슷한 문제는 교육 현장에서도 발생한다. 학생들은 양성평등에 관해 배우는 시간인데 왜 여성의 피해만을 이야기하냐고 말한다. 남성들이 겪는 고통도 같이 이야기해야 공평하다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상황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남녀의 문제를 똑같이 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교실 곳곳에서 새어 나왔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여성혐오적 발언을 일삼는 문제 학생인 것도 아니다. 양성평등이니 양성을 공평하게 다루어야 하고, 이때 공평함은 여성의 피해 한 가지 대 남성의 피해 한 가지라는 수량적 방식으로 환원된다는 식의 산술적 평등이 한국 사회에서 유통되고 있기 때문이다.

평등과 권리를 말하는데, ‘나도 피해자다’라는 방식의 논리가 등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나도 피해자’인 사람만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평등의 개념을 확장하고, 권리를 주장하자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보편적 인권의 개념이 확장되는 대신 너와 나의 피해가 빼기로 누적된다.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게 살해당한 여성에 관련된 통계를 보고, 군대에서 부상당하거나 사망한 남성의 숫자를 통계로 제시하라는 댓글은 비단 한 사람의 견해만은 아닐 것이다. 이는 아주 손쉽게 여성의 피해만큼 남성의 피해도 있다는 공평의 논리에서 등장한다.
그런데 이 ‘공평한’ 성평등이라는 논리는 근본적인 모순을 포함하고 있다. 성평등이 필요한 것은 현재 성이 평등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별 임금에서부터 가정폭력, 성폭력에 이르기까지 성차별적 상황을 나타내는 지표는 매년 업데이트된다. 차별받는 자에게 적극적 조치를 취해서 평등하도록 돕는 것이 성평등이다. 그러니 성평등의 근본 개념에서부터 ‘공평한’ 성평등이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회적 약자의 지위를 높이는 것이 근본적 평등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표상 평등에 도달하면 문제는 해결될까? 한국에서 유일하게 성평등이 달성된 분야는 교육이다. 여성의 대학 진학률은 남성보다 앞서고 있다. 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학교 내 성폭력과 성차별은 여학생들이 평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박탈한다. 스쿨미투를 통해 학교에 문제제기를 한 경우, 같은 학교 내에서도 ‘문제아’로 낙인찍혀서 학교를 결국 그만두게 되는 일이 발생했다. 다수의 학생이 문제 교사를 옹호하고 문제제기를 한 학생을 ‘원래 이상한 애’라는 식으로 비난한 것이다. 이는 스쿨미투 문제가 여성의 학습권과 교육권을 침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표상 평등을 달성한 거의 유일한 분야에서조차, 성차별은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2016년 이래로 계속되고 있는 #00_내_성폭력 사태와 미투 운동의 피해자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학교, 군대 등 공공기관의 성폭력 가해자에 엄격한 처벌과 비밀유지를 보장할 것을 요청하였다. UN 아동권리위원회에서는 한국 정부에 스쿨미투와 관련한 후속 조치를 보고하라고 요청하였다. 소수자,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제정 역시 주요 권고 사항 중 하나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성적 지향을 비롯한 차별금지 사유 등 차별금지법상 다양한 쟁점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지속되는 상황’이라고 답변하며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사회적 합의’의 문제로 미루고 있다. ‘공평한’ 성평등과 마찬가지의 모순이다. 불평등을 평등하게 시정하는데 있어 피해를 복구하고 차별을 금지하는 것은 우선순위 과제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현재 ‘사회적 합의’라는 절차를 동원하고 있다. 결국 우리는 『선량한 차별주의자』(김지혜)나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오찬호)가 말하듯이 사회적으로 차별을 정당화하는 기제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EBS의 인기 프로그램에서 남성 성인 출연자가 여성 청소년 출연자에게 폭력을 가하는 장면이 유튜브 라이브 방송으로 중계되어 논란이 되었다. 그는 친한 사이에서 장난을 쳤을 뿐, 억울하다고 말했다. 제작진 역시 “매일 생방송 출연으로 흉허물없는 사이에 벌어진 장난”이라고, 절대 폭력이 아니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그동안 방송된 영상에서 문제점들을 찾아낸 사람들의 제보에, 국민청원까지 등장하자 EBS는 해당 행위가 폭력임을 인정하고 프로그램을 잠정 중단하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 문제의 남성 배우는 마녀사냥을 당했다며 신문사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프로그램을 폐지하거나 해당 배우를 해고하는 것으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것이 장난이 아니라 폭력인 이유를 재교육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여성에 대한 폭력이 왜 성차별이냐는 문제제기처럼, 이것이 폭력이냐 아니냐를 논하는 것이 개인과 개인 사이의 문제처럼 이야기되고 만다. 성별과 나이의 차이, TV 프로그램 제작 환경에서 벌어지는 문제 등을 살피지 않고 개인 사이의 돌발행동 정도로 바라볼 때, 차별의 구조는 드러나지 않는다. 구조의 문제는 산술적 평등이나 ‘공평한’ 성평등에서는 질문이 되지 못한다.

2015년 이후 한국 사회는 페미니즘과 함께 성장하고 있다. 성폭력 피해를 고발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하였고, 가해자를 강력하게 처벌할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는 집단들이 늘어갔다. 하지만 사회 전반의 성인지 감수성이 높아진 만큼, 사회갈등도 커졌다. 페미니즘에는 찬성하지만, 이것은 성폭력이 아니라는 식의 인지 부조화가 곳곳에서 발생한다. 여성과 남성 사이의 감수성 격차 역시 마찬가지다. 모두 양보하고 화해하자는 식의 ‘공평론’은 이 격차를 봉합하고, 갈등이 없던 예전처럼 행복해지자는 주문 같은 것이다. 아직 한국사회는 차별과 평등을 두고 더 치열하게 싸워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두가 어떤 곳에서든 ‘공평한’, ‘가치 중립적인’ 태도를 버리고, 자신의 위치를 밝히면서 이야기했으면 한다. 내가 놓인 사회적 구조를 가시화하면서, 갈등을 드러내면서 이야기했으면 한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2020년에는 더 많이 싸우는 사회가 되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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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

허윤 문학연구자
부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조교수. 이화여자대학교 국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1950년대 전후 남성성의 탈구축과 젠더의 비수행」, 「냉전아시아적 질서와 1950년대 한국의 여성혐오」, 「1950년대 퀴어 장과 법의 접속」 등의 논문과 『그런 남자는 없다』(오월의봄, 2017),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민음사, 2018) 등의 공저, 『일탈』(현실문화, 2015) 등의 역서가 있다.
yunheo@nate.com
제174호   2019-12-19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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