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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탕발림으로 낫는 병이 있다면
힐링필드 대한민국의 힐링 장사꾼들

고재열_시사IN문화부 기자/블로그‘독설닷컴’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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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년은 멘붕(멘탈붕괴)의 해였다. ‘총선멘붕’ ‘통진당멘붕’ ‘대선멘붕’, 3단 멘붕 콤보 세트가 야권 지지자들을 낙담시켰다. 물론 이것은 절반의 이야기다. 하지만 아마 결과가 다르게 나왔다면 반대쪽 절반이 멘붕을 겪었을 것이다. 보수와 진보 사이의 대결 구도가 선명해지면서 선거가 큰 상처를 남겼다.

    이런 멘붕의 해와 궤를 같이 하는 것이 바로 힐링 열풍이다. 지난해 힐링 열풍은 해를 넘기고도 기세를 유지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이 힐링 열풍에 편승했던 것 같다. 힐링을 위한 아이템을 기사로 소개하기도 하고, 스스로 힐링을 핑계로 히말라야를 찾기도 했었다. 그렇게 ‘힐링 권하는 사회’에 일조하다 문득 대한민국이 ‘힐링필드’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은 환자를 치료하는 곳이면서 또한 환자를 발굴하는 곳이기도 하다. 병에 대한 병원의 규정이 환자를 만들어 내듯이, 힐링이 필요하다는 규정은 우리 사회를 문제사회로 규정한다. 자신이 아프다는 병원의 규정이 의사에 대한 수요를 부르듯 우리 사회에 힐링이 필요하다는 진단은 ‘힐링 전도사’들에게 큰 장이 서게 했다.

    우울증 치료제의 판매는 우울증에 대한 규정으로부터 시작된다. 우울증에 대한 규정은 우울증 치료를 받을 사람들을 발굴해낸다. 치료제가 우울증을 치료해낸 것인지 우울증에 대한 자각을 늘린 것인지 모호하다. 약이 계속 개발되고 있지만 우울증이 정복되고 있는 것인지, 더욱 적극적으로 규정되고 있는 것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힐링 전도사’들이 힐링에 대한 국민 과외로 돈을 긁어모으고 있다. 그들의 복음은 주로 책으로 전해진다. 복음서로 이름 높은 책을 대충 몇 권 읽어보았다. 말장난의 향연이었다. 그들은 ‘힐링 만병통치약’을 파는 약장사들이나 다름없었다. 고민을 해결하는 것을 포기한 사람들은 고민을 고민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그들의 말장난에 환호했다.

    결정적으로, ‘힐링 전도사’들은 힐링이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자신의 책 판매 수익을 한 푼이라도 더 챙겨보겠다며 임프린트 출판사출판사가 편집자에게 별도의 브랜드를 내주고 편집, 기획 등 일체의 운영을 맡기는 시스템 를 차려서 또 다시 하나마나 한 소리를 쏟아내는 전도사, 출세에 대한 강박으로 빈곤한 콘텐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구루guru, 스승, 지도자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그럴 듯한 이야기를 쏟아내는 사이비 독설가까지,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힐링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하루 세 번 이상 힐링 강의를 하는 그들의 단내 나는 혀를 헹궈주고 그들에게 속삭이고 싶다. ‘너 자신을 힐링하라’라고.

    세상에서 제일 쉬운 일이 남을 상담해 주는 일이다. 왜? 남 일이니까. 집단지성의 전당이라는 네이버 지식IN에 대해 한 대학교수는 이렇게 규정했다. ‘대학생이 묻고 초등학생이 답하는 곳’이라고. 아픈 이는어떻게 해야 하나? 뽑으면 된다. 뽑을 때 아플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 참으면 된다. 얼마나 깔끔한 충고인가, 사람들은 내 문제가 아닐 때 너무나 간단하게 정답을 내놓는다.

    힐링 열풍은 사회의 보수화와 맞닿아 있다. ‘가난한 사람을 도우면 성자가 되지만 가난한 사람을 만드는 구조를 바꾸자고 말하면 빨갱이가 된다’는 격언을 힐링 버전으로 바꾸면 이렇게 된다. ‘가난한 사람을 도와도 성자가 되기는 어렵지만, 가난을 잊으라고 말하면 쉽게 힐링 전도사가 된다.’ 힐링 열풍에 편승해 싱거운 위로로 한몫 단단히 챙긴 힐링 전도사들이 흔들리는 20대를 위해 '개평'을 내놓았다는 이야기를 나는 아직 듣지 못했다.

    문제를 문제로 여기지 않는 것은 문제를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외면하는 것이다. 문제의 원인에 대한 규명 없이 문제를 잊으라는 것은 암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 마사지를 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진정한 힐링은 현실에 대한 체념이 아니라 문제 해결이다. 그런데 멘붕 사회는 그 해결의지를 잃고 ‘힐링’이라는 솜사탕을 찾게 만든다. 그래서 솜사탕 장사치들만 배불려줬다.

    진정한 힐링은 면벽수도面壁修道 로 달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땅바닥에 고개를 처박고 현실의 문제를 외면하는 타조의 몸부림일 뿐이다. 멘붕은 일종의 집단 병리상태다. 상식이 구현되지 않는 것에 대한 집단 히스테리다. 그러므로 이 히스테리의 치료는 상식을 되돌리는 것이다. 뒤틀린 상식을 되돌리지 않고서 영원한 안식은 요원하다. 문제를 외면하는 힐링은 영혼의 마약일 뿐이다.

태그 고재열, 힐링, 힐링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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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19호   2013-03-07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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