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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를 넘어 의미를 찾는 여행
여행고수 세 명의 독특한 여행법

고재열_시사IN문화부 기자/블로그‘독설닷컴’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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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겨울 일주일 동안 네팔 여행을 다녀왔다. 일행은 총 8명이었는데 우연히도 나만 월급쟁이였다. 산악인, 화가, 패션디자이너, 건축가, 사진가, 연주자, 그리고 여행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그들은 조직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들이었다. 부러웠다. 삶의 스케줄을 회사가 아니라 자신을 중심으로 짤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부러웠다.

    그들과의 동행은 여행에 대해서 배우는 시간이었다. 그들의 여행법을 보고 진정한 여행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최고의 여행이란 어떤 여행일까? 최고급 휴양지로 가는 여행일까? 최고급 음식을 먹는 여행일까? 최고로 유명한 곳을 돌아다니는 여행일가? 최고의 파트너와 함께 다니는 여행일까? 그들로부터 세 가지 답을 얻었다.
  • 산악인 박정헌(좌)
    산악인 박정헌(좌)

    함께 여행한 산악인 박정헌씨는 온전한 손가락이 왼손과 오른손의 엄지, 두 개 뿐이다. 나머지 손가락은 두 번째와 세 번째 마디가 없다. 크레바스crevasse, 빙하가 갈라져 생긴 좁고 깊은 틈에 빠진 후배를 구하다 동상에 걸려 잘라냈기 때문이다. 히말라야 14좌 완등을 위해서 달리던 그의 도전은 멈춰야 했다. 그에게 8천 미터급 고봉 8개를 허락한 히말라야는 그 대가로 그에게 8개의 손가락을 가져갔다.

    그러나 박정헌씨는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날개를 달았다. 패러글라이딩으로 히말라야에 오른 것이다. 히말라야 산맥 2400킬로미터를 패러글라이딩으로 종주했다. 적당한 언덕에 올라 상승기류를 타고 히말라야의 고봉들을 넘어 분지에 내려앉고, 그런 식으로 계속 패러글라이딩을 옮겨가며 비행을 이어가서 결국 종단에 성공했다.

    박정헌씨의 진정한 여행은 그 다음에 펼쳐졌다. 그는 사라져가는 네팔의 전통문화와 예술을 한국에 전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바로 실천에 들어갔다. 세계 최고 수준의 목재 창틀 제작 기술을 갖춘 네팔 네와르 건축양식을 한국에 전파했다. 수소문 끝에 최고의 목재 창틀 조각가 라미 샴 선생을 만나 함께 네와르 건축물을 복원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박정헌씨는 자신이 번 돈은 히말라야를 통해서 번 돈이라며 그 히말라야를 제대로 알리는 일에 그 돈을 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많은 산악인을 보았지만 그가 오른 산의 문화를 전파하는 사람은 그가 처음이었다. 그의 새로운 도전에 박수를 보내는 이유다.
  • 책을 나르는 여행가 강기태(우), 고재열(좌)
    책을 나르는 사진작가 김형욱(우), 고재열(좌)

    함께 여행한 김형욱 사진가는 네팔 오지에 어린이 도서관을 만들고 있다. 이번 여행에도 그가 만드는 스물두 번째, 스물세 번째 어린이도서관에 책을 전달하는 일정이 포함되어 있었다. 산을 오르기 위해 네팔을 찾았던 그는 포터poter, 운반인, 짐꾼 들의 아이들이 충분히 교육받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오를 산을 바꿨다. 그는 네팔에 산을 오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린이도서관이라는 기적을 쌓기 위해 찾는다.

    김형욱 사진가는 한국과 네팔에 ‘북로드book road’를 구축했다. 한국에는 책을 모아주는 사람들과 책을 네팔로 함께 옮겨주는 한국인들이 있다. 네팔에는 그 책을 받아서 오지 학교까지 함께 옮겨주는 네팔인들이 있다. 그렇게 선의와 선의를 연결해 마지막 순간 책이 네팔 어린이들의 고사리 손에 닿았을 때, 그 감동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최고의 여행은 바로 감동이다.
  • 네팔 아이들과 춤추는 사진작가 김형욱
    네팔 아이들과 춤추는 여행가 강기태

    일행의 막내 여행가 강기태씨는 트랙터로 세계 여행을 하는 전업 여행가다. 김형욱 작가의 후배인 그는 어린이도서관 프로젝트를 지원하기 위해 잠시 여행을 멈추고 우리 일행에 합류했다. 김 작가를 도우며 온갖 궂은일을 도맡았던 그는 그 와중에 한국 선교사들이 돌보는 여섯 명의 네팔 아이들을 만났다. 그리고 어린이도서관 프로젝트를 끝내고 새로운 숙제를 안고 귀국했다.

    강기태씨의 새로운 숙제는 여섯 명의 네팔 아이들에게 네팔 여행을 시켜주는 것이었다. 전 세계 사람들이 그토록 많이 찾는 관광 대국 네팔, 그런데 정작 네팔의 아이들은 제 나라를 여행해 보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는 그 아이들에게 네팔 구경을 시켜주겠다는 생각을 품고 귀국했다.

    귀국한 후 강기태씨는 리어카를 한 대 구했다. 그리고 고향인 경남 하동군에서 전북 완주군까지 180킬로미터를 리어카를 끌고 여행했다. 고생하는 그에게 안부를 묻는 지인들에게 10킬로미터 당 천 원씩 후원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 돈을 모아서 네팔 아이들을 여행 보내겠다는 것이었다. 프로젝트는 성공이었다. 알음알음으로 100여 명의 후원자들이 모였다.

    최고의 재미는 의미다. 최고로 고급스러운 곳도, 최고로 맛있는 음식도, 최고로 유명한 사람도 ‘의미’를 갖지 못하면 찰나의 재미 밖에 되지 않는다. 박정헌, 김형욱, 강기태씨는 의미가 최고의 재미를 선사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의미를 찾는 그들의 도전이 좋은 결실을 맺기를, 또 다른 의미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태그 고재열, 박정헌, 김형욱, 강기태, 네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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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20호   2013-03-21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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