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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의 범위
[고재열의 리플레이] 과잉 친절이 문제였다

고재열_시사IN 정치팀장/블로그‘독설닷컴’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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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다보면 그럴 때가 있다. ‘내 뜻은 그런 것이 아닌데, 왜 그런 식으로 오해할까’하는 생각에 억울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진심을 몰라주는 상대방을 탓하거나 중간에 말을 전달한 사람을 타박한다. ‘왜 그렇게 삐딱하게만 생각하느냐’ ‘그걸 왜 그런 식으로 해석하느냐’며 항변한다.

    그러나 오해도 이해의 일부다. 가끔은 오해가 숨겨진 진심을 읽어낼 때도 있다. 사회 지도층 인사라 일컫는 사람들은 오해의 씨줄과 날줄에 얽혀 있다. 그들의 진심은 때로 오해를 통해 간파 당한다. 최근에 오해하기 딱 좋은 언행을 한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억울한 사연을 더욱 오해해 보려고 한다.

    먼저 대통령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국무회의에서 “교과서를 더 충실하게 만들고 교과서 밖의 것을 절대 출제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라고 말하며 시험범위를 정하는 친절을 베풀었다. 그래야 선행학습도 없어지고, 사교육도 질서가 잡힐 것이라는 논리였다. 교육부는 수능과 내신에 모두 해당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대선 때 박 대통령은 ‘시험범위’와 관련해 핀잔을 받았다. 문재인 후보와 TV토론을 하면서 계속 참여정부 실정을 공격했는데 이에 대해 논객들이 “이번 대선은 참여정부 5년이 아니라 이명박정부 5년에 대한 평가를 하는 선거다. 박근혜 후보는 시험범위를 잘 모르는 것 같다”라고 비난했었다. 이런 이유로 ‘시험범위 트라우마’가 있는 박 대통령이 친절하게 시험범위에 대해 가이드라인을 내려주었다.

    그러나 ‘교과서 내에서 출제한다’는 단순 패러다임은 국정교과서 시절의 패러다임이다. 박 대통령은 지금 고등학교 교과서가 몇 종이나 되는 줄 알까? 대부분의 교과목이 10종이 넘는 교과서를 가지고 있다. ‘교과서 내에서 출제한다.’는 말이 쉬운 말이 아니다. 대통령이 교육에 대해서 얘기할 때 ‘디테일’에 대해서 얘기해야 할까, 아니면 교육철학에 대해서 얘기해야 할까? 답은 명확하다. 철학의 부재를 오지랖으로 대체할 수는 없다.

    다음은 야당 대표다. 문희상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최근 국정원 대선 여론조작 사건과 관련해 “윗선이 사건을 축소·은폐하려고 했다.”고 주장한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현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을 옹호하면서 최근 광주시 당 대의원대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민주당은 당력을 총동원해서 광주의 딸, 권은희 과장을 반드시 지키겠다.”

    당장 말이 나왔다. 여당이나 보수 언론이 아니다. 같은 진영에서 나왔다. “‘광주의 딸’이라서 지켜주는 것이면 ‘부산의 딸’이거나 ‘대구의 딸’이었으면 안 지켜주려고 했나?”라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국정원과 여당이 이 사건을 정치공방으로 희석시키려고 하는데 야당 대표가 그것을 막기는커녕 더 부추겼다는 비난도 나왔다.

    문제가 되자 문 비대위원장은 권 과장에게 보내는 공개편지를 통해 “결코 광주출신이라는 점을 강조하거나, 지역감정을 부추겨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 이를 가지고 ‘국정원의 국내정치개입 문제’의 핵심을 흐릴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전적으로 공감하지만 전후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광주의 딸’만을 부각시키려는 자들의 저의 또한 의심스럽다.”라며 핑계를 댔다.

    글쎄? 문 비대위원장은 ‘광주의 딸’을 부각하는 것에 대한 ‘저의’를 의심했지만, 굳이 이런 편지를 쓰는 그의 ‘저의’ 또한 의심스럽다. 정치인의 말은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것이 상징이다. 그리고 그 말의 무게는 정치인의 정치적 입지에 따라서 결정된다. 그런데 문 비대위원장은 어설픈 핑계로 빠져나가려 했다. 공개편지는 어떤 면에서 ‘2차 망언’이라 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문희상 비대위원장 모두 과잉 친절이 문제였다. 왜 굳이 대통령이 시험범위를 정하고 야당 대표가 구제 범위를 정하는가? 과잉 친절은 문제다. 국회에서 누드사진 검색을 한 심재철의원은 검색범위를 정해주었고, 국정원 대선 여론조작과 관련해 검색어 4개만 수사하라는 경찰수뇌부는 수사범위를 정해주었고, 대체휴일제는 안 된다는 재벌은 휴일범위를 정해주었고, 도로안내판을 찼기 때문에 싸이의 뮤직비디오를 방영할 수 없다는 KBS 심의위원회는 표현범위를 정해주었다. 다들 지나치게 친절한 것이 문제였다.

    과잉 친절은 과잉 해석을 낳는다. 이해가 아니라 오해를 유도한다. ‘왜 좋은 의도로 한 일인데 그런 식으로 비난하느냐’며 억울해 해도 소용없다. 세상이 험하다. 누드사진 검색한 국회의원 변명을 들어주고 국정원 대선개입 수사 축소한 경찰의 논리를 믿어주고, 대체휴일제를 거부하는 재벌의 선의를 인정하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심의를 받아들이기에는 국민들이 너무 많이 속아왔다. 억울해도 참아라. ‘오해 권하는 사회’에서 국민이 의심이라도 실컷 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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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23호   2013-05-02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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