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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가지 없는 사회를 위하여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논란

고재열_시사IN 정치팀장/블로그‘독설닷컴’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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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귀태’ 논란이 일단락되었다. 야당의 완패였다. 발언을 한 홍익표 의원은 민주당 대변인 직에서 사퇴했고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유감을 표하며 백기투항했다. 윤상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사과의 진정성을 볼 때 여러 가지로 미흡했다. 그러나 책임 있는 여당으로서 짊어진 무거운 책무를 생각해서 받아들였다”라며 승리를 즐겼다.

    귀태鬼귀신 귀, 胎아이 밸 태는 ‘귀신이 낳은 아이’로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존재를 일컫는 말이다. 지난해 국내에 번역된 도쿄대 강상중 교수의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원제는 「대일본 만주제국의 유산」에 나오는 표현으로 저자는 박정희를 두고 ‘(일본)제국의 귀태라고까지 불러야 마땅할 만주 인맥’이라고 묘사했다. 귀태는 원래 일본의 국민작가 시바 료타로가 만든 조어로 그는 「국가의 형체(この간체자のかたち)」에서 “일본의 근대는 역사의 연속성이 없는 귀태”라고 표현했다.

    박정희는 1939년 10월 만주국 육군군관학교 입학시험을 치렀다. 그러나 입학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던 그는 “일본인으로서 부끄럽지 않을 만한 정신과 기백으로 일사봉공의 굳은 결심을 가지고 있다.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충성을 다할 각오다”라는 혈서를 만주국 치안부에 보내고 겨우 입학했다. 이후 그는 교장인 나구모 신이치로 중장이 “천황페하께 바치는 충성심이라는 면에서 그는 일본인보다도 훨씬 일본인답다”라고 표현할 만큼 신실한 생도가 되었다.

    7월11일 논평에서 홍 의원은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를 인용하며 “일본이 제국주의를 위해 세운 만주국의 귀태가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다. 아이러니하게도 귀태의 후손들이 한국과 일본의 정상으로 있다”라며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언급했다. 단순히 독후감 이상의 의미는 없는 표현이다. 귀태라는 말의 의미에 빗대어 표현하자면, 귀태 논란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논란이다. 절대 권력을 비판할 때는 싸가지는 예외이기 때문이다.

    이 논란을 좀 더 입체적으로 들여다보기 위해 잠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자. 연산군 시절인 1497년 7월21일의 일이다. 30세의 사간원 정언정6품, 현재 서기관급 조순이 70세의 전직 영의정정1품, 현재 국무총리급 노사신을 겨냥해 한 상소다. “춘추의 법을 말하자면 노사신의 죄는 비록 극형에 처해도 도리어 부족합니다. 저희들은 그의 살코기를 씹고 싶습니다. 이를 다스리지 않는다면 신하로서 누가 임금 앞에서 직언할 자가 있겠습니까?”

    노사신이 자격 없는 지방 수령을 천거한 것을 비판하기 위해 올린 상소인데 이 상소로 조순이 직접적인 처벌을 받지는 않았다. 연산군의 폭정에 대간들은 직을 걸고 상소했다. 대간들은 자신의 의견이 조금이라도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즉시 사직했는데, 60~70번에서 1백 번까지 지속되기도 했다고 한다. 결국 연산군은 왕을 능멸한다며 무오사화戊午士禍, 1498년를 일으켜 이들을 탄압했다.

    조선왕조는 싸가지가 없는 시대였다. 신하들의 거친 상소가 거듭되었다. 비교적 태평성대로 분류되던 성종조에 대간에 의해 탄핵된 인사가 무려 2,700여명에 달했는데 연평균 100명이 넘는 숫자다. 훈구파의 거두 한명회는 성종 연간에만 무려 107회나 탄핵을 받았고 좌리공신 임원준이 20회, 그의 아들 임사홍은 무려 140회, 정인지는 17회, 김국광이 27회, 유자광이 56회의 탄핵을 받았다. 모두 세조의 공신들이었지만 예외는 없었다. 절대 권력에 대한 절대 비판이 이뤄졌는데 이것이 바로 조선왕조 600년을 지탱한 힘이었다.

    논란을 좀 더 입체적으로 들여다보기 위해 이번에는 잠시 스포츠계로 가보자. 축구선수 기성용이 페이스북 비밀계정에서 최강희 전 국가대표 축구감독에 험담한 것이 폭로되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기성용이 비밀계정에 올린 글은 거친 푸념 정도의 글이다. 해외파 선수를 배려하지 않겠다는 감독에 대한 푸념, 자신의 팀이 속한 리그를 얕잡아 보는 것에 대한 푸념, 그리고 자신을 기용하지 않은 것에 대한 푸념이었다. 당연히 그 글은 거칠었고 예의가 없었다.

    모든 것은 싸가지의 문제로 귀결되었다. 그 직전까지 최강희 감독의 국가대표 운영에 대해서 가해지던 비판은 사라지고 기성용은 국가대표를 국내파와 해외파로 분리해 갈등을 조장한 원흉이 되어 있었다. 국내파 위주로 국가대표팀을 꾸리겠다고 해서 갈등을 야기한 감독의 책임이나 비록 월드컵 예선은 통과했지만 무기력한 플레이를 펼친 것에 대한 비난은 사라지고 모두 기성용의 문제로 수렴되었다. 대한축구협회에서 징계까지 논의될 뻔 했으나 ‘엄중 경고’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기성용은 사과했고, 홍명보 신임 국가대표 감독은 그런 기성용에게 “외부 소통보다 부족한 내면을 신경쓰라”며 경고했다. 이렇게 해서 ‘군사부일체’의 윤리가 다시 바로 세워진 것일까? 감독은 감독답게 하고 선수는 선수답게 행동하자고, 그래서 다시 하나가 되어 다가오는 월드컵을 대비하자고 하면 끝인가? 왜 갑자기 국가대표 축구팀이 동방예의지국 홍보대사가 되려고 안달인가. 그 사이 문제의 본질은 사라져 버렸다.

    싸가지는 잊자. 모든 것을 싸가지의 문제로 수렴하는 것은 우리가 지나온 군부독재 시절로, 절대왕권 시절로 회귀하자는 것이다. 심지어 연산군 시절에도 허락했던 싸가지가 지금 문제가 되고 있다. 연산군 시절보다 못한 것이다. 죽은 박정희를 귀태라고 부르든 변태라고 부르든 그것이 민생과 무슨 상관인가? ‘바쁜 벌꿀은 슬퍼할 겨를이 없다’고 하지 않았나? 아버지 제사를 지내려고 대통령이 된 것이 아니지 않은가? 국민에게 싸가지를 허하고 민생에 전념하시라.

태그 귀태 논란, 고재열, 연산군, 기성룡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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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28호   2013-07-18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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