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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버스터 경제학
[고재열의 리플레이] 한국영화 공정경쟁의 안과 밖

고재열_시사IN 정치팀장/블로그‘독설닷컴’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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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블록버스터 영화는 숙명적으로 ‘절대로 망하지 않는 영화’가 되어야 한다. 엄청난 자본이 투입되는 ‘머니 게임’이기 때문이다. 실패하지 않기 위해 다양한 영화적 장치와 볼거리를 배치한다. 그래서 ‘블록버스터 영화는 블록버스터다워야 한다’는 명제가 성립한다. 영화적 안전장치를 두어야 하기 때문에 일종의 양식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장르 영화에 취약한 한국 영화계는 이런 양식화에 취약하다. 한국 영화계의 과제다.

    이런 양식화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시스템이다. 그런데 이 시스템 구축에 있어서 한국 영화계는 만족할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1년 전, <가비> <마이웨이> <7광구> <퀵> <고지전> <라스트 갓 파더> <황해> 등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만족할만한 흥행 결과를 내지 못할 때 이 시스템 구축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와 관련해 <화차>의 변영주 감독이 해준 말이 있다. “블록버스터일수록 감독의 작가적 역량보다 제작사의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진다. 블록버스터에는 법칙이 있고 그 법칙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구현하느냐가 관건이다. 우리 블록버스터 영화는 감독 개인의 역량에 지나치게 의지해왔다. 또한 한국 영화계 체질이 아직 블록버스터 제작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투자사의 간섭이 자주 이슈가 되는데, 투자사가 블록버스터 제작에 관여하느냐 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관여할 만한 안목과 전략이 있느냐가 관건이다. 블록버스터에 대한 축적된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이뤄진 섣부른 간섭은 영화를 망치게 된다”라고 말했다.

    블록버스터 영화의 특징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죄다 말이 안 되는 영화라는 점이다. 관건은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는 것을 잊고 보게 하거나 왜 말이 되는지를 관객에게 잘 납득시키느냐 하는 것이다.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 시리즈>가 세계적으로 흥행할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이것이다. 보고 나서 곰곰 생각해보면 말이 안 되는 장면이 있을지라도 보는 동안 그 상황에 빠져서 보게 만들면 관객은 그것으로 만족한다.

설국열차
설국열차(Snowpiercer,2013)
감독 봉준호ㅣ 2013.08.01 개봉
http://snowpiercer2013.interest.me
  • 여기서 <설국열차> 현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설국열차>는 개봉 12일 만에 6백만 명을 넘긴 흥행작이 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더 테러 라이브>를 보았는데 영화적 재미가 있었다. 이 영화가 개봉 2주차 주말부터는 <설국열차>를 제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나의 예상은 틀렸다. 실제 관객 스코어를 보면 8월3일 44만2천 명이었던 <더 테러 라이브>가 8월10일 42만7천 명을 기록하는 동안 <설국열차>는 84만4천에서 64만8천으로 변했다. 격차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역전되지는 않았다.

    개봉일 극장에서 <설국열차>를 보았다.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들의 표정은 ‘이건 뭐지?’ 하는 것이었다. 한 젊은 남자관객이 옆에 있는 <퍼시픽림> 포스터를 보고 “말이 안돼 말이. 차라리 이게 더 말이 되겠다”라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말이 안 되는 이야기를 말이 되는 이야기로 생각하고 보게 하는 블록버스터 영화의 첫 번 째 공식을 만족시키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중의 일반적인 평가도 다르지 않았다. 포털사이트 다음DAUM의 관객 평점을 보면 <설국열차>는 7.0이다. 1천만 명 이상의 흥행 영화들은 대부분 8.5점~9점 대의 평점을 받았다. < 광해> 8.6점, <7번방의 선물> 8.9점, <괴물> 9점, <왕의 남자> 9.2점, 외화 <아바타>가 9점을 받았다. 참고로 <도둑들>(7.5)이나 <해운대>(7.0)처럼 7점 대 평점을 받은 영화도 있었다. <설국열차>의 낮은 평점은 경쟁작인 <더 테러 라이브>의 평점 8.4점과 대비된다.

    대중의 낮은 평점을 해석한다면 <설국열차>는 말이 안 되는 이야기를 말이 되게 보이게 만드는데 실패한 셈이다. 보는 동안 영화의 설정, 전개 과정, 대사의 내용, 갈등 해결 방식 등에 관객이 이의를 제기하게 만드는 것이 많다는 것이고, 감독이 설정한 대로 끌고 가는 대로 잘 끌려가지 않으려는 반작용이 작용하는 것이다. 왜 그럴까?

    설국열차는 기본적으로 지배와 피지배의 알레고리를 형성하지 못한 작품이다. 지배자는 토지의 독점이든 자본의 독점이든, 재화의 독점을 통한 지배의 이유가 있어야 한다. 이런 기본적 설정도 안 되어 있으니 관객이 공감을 못하는 것이다. 이것이 없으면 착취의 구조라도 설명이 되어야 한다.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에게 무엇을 착취하는지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것도 없다.

    알레고리는 내적 개연성을 통해 힘을 받는다. 그런데 이런 개연성이 약하니 관객은 영화의 설정에 빠져들지 못하고 계속 '왜?'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철학적 질문이 아니라 영화적 억지에 대한 질문을 말이다. 그리고 재미를 잃는다. <설국열차>의 설정을 냉정히 풀어보면 열차에 무임승차한 ‘잉여’ 승객들이 단백질블록을 먹다가 질려서 스테이크를 찾아 앞칸으로 가는데 스시를 발견한다는 내용이다.

    <설국열차>에 대해서 봉준호 감독은 ‘글로벌 인디영화’라고 설명했다. 이는 감독 자신이 블록버스터 영화의 양식화에 대한 답을 구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잡다한 설정과 어설픈 알레고리가 영화적 힘을 빼앗았고 캐릭터들은 입체감을 잃었다. 블록버스터와 작가주의 사이에서 봉 감독은 적절한 답을 찾지 못했다. 물론 ‘믿음 안에서’ 이 영화를 봐주는 사람들은 관객들이 피식 웃음을 짓는 어설픈 장면에서 엄청난 은유와 환유를 읽어주기도 하지만...

    문제는 <설국열차>가 영화 생태계에서 맡고 있는 악역이다. 지배와 피지배, 억압과 해방에 대한 은유와 환유로 가득 찼다는 이 영화가 영화 생태계에서 베스처럼 포식자가 되었다. 엄청난 홍보비와 물량공세에 평단과 언론은 찬사 일색이고 이 영화의 허술한 만듦새에 침묵한다. 배급에서는 1천 개 이상의 스크린을 독점하고 다른 영화의 설자리를 빼앗았다. 마치 최고급 와인에 캐비어를 먹으며 혁명을 이야기하는 쁘띠 부르조아의 모습이다.

태그 설국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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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30호   2013-08-14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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