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인

top

연극인

검색하기

‘착한 연극’이 설 자리가 필요하다!
디미트리와 기국서

고재열 _ 시사IN 문화팀장

목록보기

  • 링크
  • 프린트
  • 페이스북
  • 트위터

“기국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연극in 창간을 위한 기획회의 때 이규석 남산예술센터 극장장은 연출가 기국서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기획회의 때 논의되던 특집은 ‘착한 연극’이었다. 어떤 연극이 ‘착한 연극’인지, 어떤 배우가 ‘착한 배우’인지, 어떤 관객이 ‘착한 관객’인지 한 번 다뤄보자는 것이었는데, 맨 처음 언급된 인물이 바로 연출가 기국서였다.

이규석 극장장이 연출가 기국서 이야기를 꺼낸 것은 최근에 있었던 그와의 만남 때문이었다. 대학로를 대표하는 연극계 원로 연출가인 그가 대학로를 떠난 지를 최근에야 알았다는 것이다. 후배의 연극을 보기 위해 3년 만에 대학로를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먹먹했다는 것이다. 그가 연극을 그만두고 서울 외곽에서 식당을 하고 있다고 했다. 대학로는 돌아보고 싶지도 않다고...

그때 최근 관람했던 한 연극에 출연한 후배의 말이 떠올랐다. 그 연극에 출연한 배우 중 주연배우 1인을 제외하고는 모두 출연료를 받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소정의 교통비를 받는데 그것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의 교통비 정도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독립운동하는 심정으로 무대에 올랐을 배우들에게 더 주목했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스티브 잡스의 이 말이 연극계엔 굳이 해줄 필요도 없었다. 그들은 과거에도 현재도 그리고 미래도 배가 고팠고 고프고 고플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연극인들의 행복지수는 상대적으로 높게 나왔다. 서울연극센터가 조사한 ‘2011년 대학로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연극을 해서 행복하다는 응답과 대학로에서 연극을 해서 만족한다는 응답이 많았다. 그들의 가난한 행복이 존경스러웠다.

‘2011년 대학로 실태조사’를 보면 연극인들이 여전히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정부의 단기필마적인 지원은 연극 창작 풍토를 왜곡시켜 오히려 창작극의 설자리를 좁히고 있었다. 대학로 연극 전체의 1년 매출이 불과 200억원 내외였다. 얼마 전 TV조선이 조기종영한 드라마 <한반도>의 제작비 100억 원이면 대학로 연극 반년 치를 만들 수 있을 정도였다.

이런 대학로의 어려운 속사정을 다시 떠올리게 만든 곳은 남부 스위스의 한 시골마을이었다. 스위스관광청의 안내에 따라 남부 스위스 로카르노 근처의 한 작은 마을에 갔다. 그곳에 마임이스트 디미트리의 극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극장엔 레스토랑과 디미트리 기념관 그리고 무언극 아카데미와 연습실까지 딸려있었다. 디미트리라는 배우에 대해서 관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극장에 딸린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 있는데 공연 관계자가 급히 뛰어왔다. 첫 회 공연은 매진이라며 다음 공연을 보라는 것이었다. ‘아니 이 시골까지 공연을 보러 온 사람이 그렇게 많다니...’ 기다려서 다음 회차 공연을 보았다. 여든에 가까운 디미트리가 자글자글한 주름 위로 피에로 분장을 하고 나타나 웃음과 해학이 어우러진 무언극을 선보였다. 선하고 재치 있는 약자와 악하고 우둔한 강자가 대립하는 ‘톰과 제리’와 비슷한 구도의 작품이었는데, 글자 그대로 국경과 인종과 나이를 초월해 관객들이 울고 웃었다.

공연이 끝나고 무대 밖에서 만난 디미트리는 생각했던 것보다 체구가 작았다. 눈가에 선한 미소를 머금은 그는 영락없는 시골 할아버지였다. 그런 그가 고향 마을에 ‘디미트리 소왕국’을 세우고 아직도 관객을 만나고 있는 모습에 ‘작은 거인’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가 처음 자기 이름을 내걸고 공연을 했던 것이 1959년의 일이었다. 53년 째 공연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그는 기회가 되면 자신의 극단과 함께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고 했다.

공연을 마친 마임이스트 디미트리(왼쪽)와 필자
공연을 마친 마임이스트 디미트리(왼쪽)와 필자
Teatro Dimitri 웹사이트(www.teatrodimitri.ch)
Teatro Dimitri 웹사이트(www.teatrodimitri.ch)

디미트리는 단순히 무대에만 오르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공연을 위한 포스터를 직접 그렸고 아카데미를 베른시와 취리히시의 연극학교와 공동과정으로 운영하고 있었고 인근 로카르노시에서 열리는 각종 국제 행사에 함께 하고 있었다. 왜 도시가 아닌 이런 시골에 극장을 세웠냐는 질문에 그는 “이곳은 내 고향이다. 내게 가장 편안한 곳이고 가장 영감을 많이 받는 곳이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방해도 덜 받는 곳이다. 이곳만한 장소는 없다”라고 말했다.

디미트리는 7살 때 부모님을 따라 서커스를 보고 ‘사람을 웃기는 것이 직업이 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광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평생을 자기 자신의 몸을 악기로 사용하는 광대로 산 그는 ‘광대는 몸으로 보여주는 시인이다’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선과 악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다’라는 자신의 철학을 작품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었다.

다시 기국서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왜 ‘착한 연극인’ 기국서는 대학로를 떠나야만 했을까? 그리고 대학로를 돌아보기도 싫을 정도로 정을 떼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가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은 지금 대학로에서 청춘을 불태우는 젊은 연극인의 미래가 없다는 이야기와 마찬가지다. ‘착한 연극인’이 설 자리가 없으면 ‘착한 연극’도 오를 무대가 없을 것이고 ‘착한 관객’도 볼 작품이 사라질 것이다. 연극in이 그 답을 찾는데 일조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태그 고재열, 착한 연극, 디미트리, 기국서

목록보기

창간준비 1호   2012-04-19   덧글 0
댓글쓰기
덧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