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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극, 시대를 희롱하다
시사 열풍 속 대학로 시대극

고재열 _ 시사IN 문화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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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꼼수다’열풍이 지나간 자리에 ‘시사’가 유행 코드가 되었다. ‘시사 개그’가 웃음코드가 되었고 <도가니><부러진 화살> 등 시사적인 영화가 흥행했다. ‘닥치고 시사’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무상급식 주민투표부터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거쳐 19대 총선까지 콘텐츠의 주류는 단연 시사였다.

19대 총선이 야당의 참패로 끝나고 ‘멘탈붕괴’를 겪으면서 시사에 대한 관심이 한풀 꺾이기는 했지만 대학로도 여전히 시대극(혹은 사회극)이 대세다. 시대극을 표방하거나 시사적인 내용을 환기하거나 암시하는 작품이 즐비하다. 시사주간지에서 일하다보니 아무래도 시대극에 관심이 가고 애정이 간다. 그래서 제법 챙겨보았다.

시대극 중에는 감탄할 만한 걸작도 있었지만 아쉬운 작품도 많았다. 좋은 시대극은 시대를 희롱했지만 나쁜 시대극은 관객을 희롱했다. 시대를 희롱하느냐 관객을 희롱하느냐, 그 차이는 시대에 대해서 고민하느냐 아니면 시대를 이용하려고 고민하느냐의 차이일 것이다. 시대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인간의 나약함과 사악함을 여실히 까발리는 작품도 있었지만 시대에 대한 불만과 반감을 이용만 하는 작품도 많았다.

우리가 시대를 다룬 연극 작품에 기대하는 역할은 우리 대신 감정의 심연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이 개인적인 감정이든 혹은 사회적인 성찰이든 불편해서 혹은 괴로워서 들어가지 못한 그 감정의 심연 속으로 이끌 때 관객은 희열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이 불편한, 그러나 꼭 필요한 과정을 생략한 작품들이 많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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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극 중 단연 압권은 연극 <푸르른 날에>였다. ‘우리도 이렇게 의미 있는 내용을 재미있는 연극으로 잘 만들 수 있구나’ 하는 감격에 눈물이 나왔다. 깊이 있는 역사의식을 두텁게 깔고 그 위에 연극적 실험과 요절복통한 웃음을 버무렸다. 스피디한 스토리 전개로 극의 긴장감 역시 포기하지 않았다.

연극 <푸르른 날에>는 3개의 축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여산 스님을 중심으로 보면 불가적 구도에 대한 이야기이고, 민호와 정혜를 중심으로 보면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고, 시민군을 중심으로 보면 아픈 현대사를 다룬 시대극이다. 중요한 것은 이 세 가지 이야기 축이 화학적으로 결합되어 있다는 것이다. 비유컨대 맛깔스러운 남도 한정식을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팝음악을 들으면서 먹는데 정말 괜찮은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 이런 밥상을 준비한 사람이 누구인지도 절로 궁금해지게 만드는 연극이다.

연극 <빨간시>도 좋았다. 탤런트 고 장자연 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이 연극에는 종군위안부 할머니 이야기도 넣어 역사의 데자뷰를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정치권력이나 언론권력 등 권력에 의한 성적 괴롭힘이라는 점에서 종군위안부 문제와 장자연 사건은 궤를 같이한다는 것이 연출가의 생각이었는데 위안부 할머니들의 ‘수요집회’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면서 우리 사회 폭력과 상처의 악순환의 고리를 한번 끊어보겠다 문제의식이 잘 드러났다.

“기억하고 이야기해야 치유가 돼. 치유되지 않은 고통은 사라지지 않아. 다른 이의 고통으로 흘러 다니게 돼”라며 성적 괴롭힘이 남긴 상처에 대한 어려운 말 걸기를 시도하는 작품인데 남성 관객의 공감도 이끌어내는 수작이었다. 반면 이 작품을 쓰고 연출한 이해성씨가 극본을 쓴 <전하의 봄>은 좀 불편했다. 내용이 불편한 것이 아니라 표현이 매끄럽지 못해 불편했다. 작가가 연출까지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시대극 중에서 연극 <878미터의 봄>은 ‘여성’ 연극인들이 사회문제를 인식하는 방식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폐광된 탄광촌의 문제, 그곳에 카지노가 들어서면서 생긴 문제, 그리고 이 문제의 당사자가 타워크레인 고공 시위자를 촬영하면서 느끼는 고뇌 등을 여성의 시선에서 풀어냈다. 갈등을 중심으로 하지 않고 치유와 소통으로 풀어내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878미터의 봄>의 무대는 탄광촌이다. 광부였던 아버지가 사고로 죽은 뒤 탄광촌을 떠나 방송사 PD가 되어 타워크레인 고공 농성자를 촬영하게 된 주인공이 그 뒤 카지노가 들어선 폐광촌에 다시 돌아와 겪게 되는 사건을 그렸다. 자본의 모순에 의한 피해자였던 아버지를 둔 아들이 또다시 17년 뒤 그 모순에 의해 목숨을 잃는 노동자를 취재하며 고뇌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빨간시>와 마찬가지로 사회문제가 어떻게 반복되는지 일깨워주었고, 참여와 성찰이 작품의 주제의식을 깊게 했다. <878미터의 봄>을 연출한 류주연씨의 말을 잠시 옮긴다.

“카지노 사람들이 좀비처럼 보였다. 과천경마장에서 보던 사람들과 비슷했다. 그런데 이젠 대한민국 전체가 카지노가 된 것 같다. 카지노의 핵심은 바로 돈만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다른 데 관심을 쏟지 않고 카드와 칩만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한데, 평범하게 생긴 사람들이 거기에 홀려 있는 모습이 섬뜩했다.
탄광촌에서는 가게에서 전표를 주고받는다. 먼저 쓰고 갚는 일종의 외상거래인데 그것 때문에 월급이 제법 되는데도 불구하고 광부들은 늘 가난했다. 그런데 예전에는 탄광촌만 그랬다면 지금은 전국이 다 그런다. 신용카드가 그런 것 아닌가? 특히 이명박 정부 들어 대한민국 전부가 카지노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연극 <칠수와 만수>는 아쉬움이 많은 작품이었다. 30년 전 작품을 요즘 대학로 스타일로 잘 만들었다. '요즘 대학로 스타일로 잘 만들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말은 칭찬이기도 하고 지적이기도 하다. 상황소극으로 재미나게 재구성했지만 시대를 향한 청춘의 분노가 희석되어버렸다. 아이디어는 넘치는데 고민이 얕아서 여운이 짧다.

<칠수와 만수>를 보러오는 관객은 결기 있는 사회극을 보고 싶었을 것이다(단순히 진중하라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누구를 비꼬고 조롱하는 이야기만이 아니라, 그 안에 처한 인간의 고뇌까지 치고 들어가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런데 시대를 단지 BGM으로만 활용한 느낌이다. 아이디어를 짜내는 노력의 시대의 구체적 문제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조금 지난 시대극 중에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연극 <아큐, 어느 독재자의 고백>이었다. 이 작품에서 명계남씨는 감옥에 갇힌 독재자 처지에서 자신을 선출한 국민을 마음껏 조롱한다. <아큐>는 바로 ‘우리 안의 이명박’을 일깨우는 연극이다. 그래서 통쾌하면서도 불편하다.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장 출신으로,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명계남씨에게는 더욱 괴로운 일이었다.

“마술사는 진실의 가면을 쓴 환상을 보여주지만 배우는 환상의 가면을 쓴 진실을 보여준다. 셰익스피어의 말이지. 나는 권력의 가면을 쓰고 너희들의 욕망을 보여주지. 그런 의미에서 난 마술사에 가까워”라는 아큐의 독백은 이 연극이 권력에 대한 조롱을 넘어 ‘권력으로부터의 조롱’을 그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큐>의 연극적인 가치는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독재자로 비난받는 아큐는 그 같은 자신을 뽑아준 국민을 조롱한다. 그럴 자격이 있느냐는 것이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뽑아놓고 왜 지랄들이야. 내가 치사스럽게 선거를 조작했니, 투표함을 바꿨니, 돈을 뿌렸니? 나, 이래 보여도 정정당당하게 권력을 차지한 놈이야. 코르마 공화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래 니들이 뽑은 거야.”

그리고 배신을 한 것은 자신이 아니라 국민이라고 일깨운다. 정책에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국민을 조롱한다. “뽑았으면 일을 하게 해줘야지. 왜 뒤에서 욕하냔 말이지. 내 말이 틀렸어? 그리고 전임자가 하던 일을 뒤집는다고? 전임자하고 같게 할 거면 나를 왜 뽑아. 또 똑같이 하면 똑같이 한다고 지랄할 거 아냐? 달라야지…. 지루하잖아. 안 지루해?”

<아큐, 어느 독재자의 고백>은 권력자의 입장에서 국민을 조롱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좀더 고차원적으로 권력자를 조롱한다. 감옥에 갇힌 아큐는 마지막 순간 말한다. “지금도 니들이 나를 잡아온 거라고 믿고 있어? 니들이 나를 퇴장시킨다고 믿는 거지? 니들이 승리했다고 믿는 거지? 좋아. 믿는 건 자유지만 니들의 자유는 종이짝에 불과한 헛된 망상… 나는… 꿈에서 깨어난 거야!”

다시 시대극에 대한 고민으로 돌아와 보자. 요약하자면 ‘고민은 깊게, 그러나 표현은 경쾌하게’ 이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깊은 고민은 경쾌한 표현 속에서 부담을 떨칠 수 있고 경쾌한 표현은 깊은 고민이 받쳐줘서 자유로울 수 있다. 대학로 시대극이 이 두 마리 토끼를 포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태그 시대극, 고재열, 시사, 대학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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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준비 3호   2012-05-17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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