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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개박수 쳐야 살아남는 사회
[고재열의 리플레이] 보시기에 참 좋았더라

고재열_시사IN 정치팀장/블로그‘독설닷컴’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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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도 안 된다. 영화도 안 된다. 소설도 안 된다. 노래도 안 된다. 그 분이 보시기에 불편한 것은 안 된다. 다 안 된다. 박근혜 정부 1년 동안의 문화정책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심기관리’가 딱 맞을 것 같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런 것을 원했는지 원하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현장 문화예술인들은 대통령의 심기를 편하게 하기 위해 잦은 무리수를 두었다. 하나하나 살펴보자.

    11월12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개관했다. 그런데 개관식에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하기로 해서 11월7일 청와대 직원들이 국립현대미술관을 방문했는데, 그들이 다녀간 후 몇몇 작품이 제외되었다. 작품이 제외된 이유에 대해 임옥상 작가가 청와대 외압설을 주장하자 국립현대미술관 측은 한사코 기획자의 판단이라고 우겼다. 2년을 준비한 전시회라면서 그림이 빠진 이유를 ‘다른 그림들과 어울리지 않아서’라고 둘러댔다.

    문제가 된 작품은 임옥상 화백이 그린 고 문익환 목사 그림이었다. 「하나됨을 위하여」라는 이름의 이 그림은 분단의 장벽을 넘어서는 문 목사를 종이 부조로 표현한 것으로 임옥상 특유의 부감과 입체감을 살린 작품이다. 함께 문제가 된 또 다른 작품은 1980년대의 암울한 시대를 인물들의 일그러진 얼굴로 나타낸 이강우 화백의 「생각의 기록」이다. 사람들 표정이 마치 고문을 당하는 듯해서 마음이 편치 않은 작품이다. 신학철 화백과 전준화 화백의 작품 역시 보도자료에는 전시되는 것으로 되어 있었지만 실제로는 전시되지 않았다.

    논란이 된 서울관 개관전 현장을 직접 찾았다가 새로운 문제를 발견했다. ‘현장제작 설치 프로젝트’ 작품 중에서 이상한 점을 본 것이다. 제6전시실 밑 창고갤러리에 전시 중인 장영혜중공업(장영혜 작가와 마크 보주 작가의 공동 프로젝트)의 텍스트-애니메이션 작품 「색동 프로파간다」의 자막에 ‘빨갱이’라고 표기되어야 할 부분이 ‘빨X이’라고 바뀌어 있었다. 주제를 드러내는 키워드여서 계속 반복적으로 등장했는데 전부 ‘빨갱이’가 아니라 ‘빨X이’였다. 이 역시 전시 직전에 바뀐 것이었다.

    이번엔 영화계로 눈을 돌려보자. 지난 11월6일 박근혜 대통령은 영국 런던 시네월드 헤이마켓 극장에서 열린 런던한국영화제 특별시사회에 참석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이 영화제에 참석하기로 하면서 두 편의 영화가 영화제 상영작에서 제외되었다. <설국열차>나 <관상>을 개막작으로 하려고 했지만 VIP(박근혜 대통령)가 개막식에 오기 때문에 적합하지 않다고 바꿨다는 것이다.

    상황을 종합해보면 <설국열차>와 <관상>이 상영작에서 제외된 이유가 영화제 측의 자기 검열로 해석할 수 있다. <설국열차>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계급투쟁과 관련한 내용이 나오고, <관상>에는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권력을 찬탈한 수양대군이 나온다. 크게 문제가 될 내용은 아니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불편해할 수도 있다. 런던한국영화제는 런던 한국문화원이 주최하는 행사로 대통령의 심기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자, 이번에는 소설이다. 월간 문예지 『현대문학』이 작가 이제하, 정찬, 서정인 등의 소설 연재를 거부하거나 중단했는데, 정치적인 이유로 거부했다는 비난을 듣고 있다. 이제하 작가는 『현대문학』 2014년 1월호부터 연재할 예정이었던 「일어나라 삼손」에 ‘박정희 유신’과 ‘1987년 6월 항쟁’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연재가 거절됐다고 주장했다.

    정찬 작가 역시 『현대문학』 10월호부터 장편 소설을 연재하기로 했으나 거절 통보를 받았다. 정 작가의 소설에는 지난해 대선 결과와 1970년대 유신 시절과 관련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서정인 작가의 경우는 장편 소설 「바간의 꿈」을 연재하고 있었는데 3회분부터 연재가 중단되었는데, 역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대목이 있었다. 세 작가의 소설에 대한 연재 거부가 연이어 발생하자 의혹이 더욱 커졌다.

    마지막으로 광주로 가보자. 반년 정도 지난 이야기이긴 하지만, 광주에서는 ‘님을 위한 행진곡’과 ‘체 게바라’ 그림이 퇴짜를 맞았다. 5월18일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는 ‘님을 위한 행진곡’의 합창이 허락되지 않았으며, 8월15일 광복절 기념행사에서 소년·소녀 합창단이 체 게바라 얼굴이 그려진 옷을 입고 공연하게 한 합창단 단장이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었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의 ‘인민해방군가’를 작곡한 정율성을 광주 출신이라며 기념하는 광주가 ‘님을 위한 행진곡’과 ‘체 게바라’도 부르지 못하고 입지 못할 만큼 소심해진 것이다.

    개별적인 사건은 우연의 산물일 수 있다. 그리고 ‘설마 그런 일이?’ 하며 넘길 수도 있다. 그런데 여러 사건을 두루 살펴보면 퍼즐이 맞춰진다. 지금 문화예술계의 대세는 ‘심기관리’다. 이제 미처 이런 섬세한 배려를 하지 못한 다른 영역에서도 ‘심기관리’를 하려 들 것이다. 북에서 박수를 건성건성 쳤다고 장성택이 처형당했다는데, 남 얘기 같지 않다. 우리도 왼새끼 꼬지 말고 물개박수나 쳐야 할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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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열

고재열 시사IN 문화팀장
시사저널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으나 '삼성기사 삭제사건'에 항의해 6개월 동안 파업을 벌인 후 사표를 내고 동료들과 시사IN을 창간했다. 블로그 '독설닷컴'으로 인터넷 논객 활동을 시작했으며 요즘은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 더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트위터 @dogsul | 페이스북 facebook.com/dogsuldotcom
제38호   2013-12-19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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