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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의 발견, 낭독인의 발견
책을 들려주던 그 배우를 떠올리며

고재열 _ 시사IN 문화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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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선돌극장 <박완서, 배우가 다시 읽다. - 여덟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 中>
[사진제공] 선돌극장 <박완서, 배우가 다시 읽다. - 여덟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 中>

이야기 하나, 올해 초 <낭독의 발견>이 종영되었다. 그렇게 열심히 보았던 프로그램은 아니었다. 보다가 스르르 잠이 드는 경우도 많았다. 보고 나서 책을 더 좋아하기보다 배우 송선미를 더 좋아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제법 즐겼다. 찾아보니 마지막으로 낭독된 작품은 윤석중의 시 『넉 점 반』이었다. 귀여운 구석이 있어 옮겨본다.

아기가 아기가 / 가겟집에 가서 / "영감님 영감님 / 엄마가 시방 / 몇 시냐구요." / "넉 점 반이다." // "넉 점 반 / 넉 점 반." / 아기는 오다가 물 먹는 닭 / 한참 서서 구경하고. // (...) // "넉 점 반 / 넉 점 반." / 아기는 오다가 잠자리 따라 / 한참 돌아다니고. // "넉 점 반 / 넉 점 반." / 아기는 오다가 / 분꽃 따 물고 니나니 나니나 / 해가 꼴딱 져 돌아왔다. // "엄마 / 시방 넉 점 반이래."

보통 최고의 낭독자를 꼽으라면 대부분 아나운서를 꼽는다. 우리말을 가장 정확히 전달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보다 더 고수로 꼽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배우들이다. 문장에 극성을 넣어서, 읽는 것이 아니라 소화해내는 그들이 바로 낭독의 프로들이다. 얼마 전 홍대 앞 카페에서 있었던 출판기념 파티에서 남녀 배우가 책의 한 구절을 연기하듯 읽었는데 들으면서 ‘아 이렇게도 들려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그 책을 쓴 작가를 최고의 낭독자로 생각하곤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마치 작곡자가 최고의 가창자가 아니듯, 작가의 낭독이 오히려 풍부한 느낌을 가리는 경우도 많다. ‘기적의 책꽂이’라는 책모으기/나누기 소셜프로젝트를 하면서 북콘서트를 5번이나 열었다. 저자가 직접 읽어주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2% 부족했다. 낭독의 지점에서 그때 그 배우들이 그리워졌다. 책에서 문장들이 걸어나오는 듯한 그 느낌을 다시 받고 싶다는 욕망이 솟구쳤다.

[사진제공] 선돌극장 <박완서, 배우가 다시 읽다. - 그리움을 위하여 中>
[사진제공] 선돌극장 <박완서, 배우가 다시 읽다. - 그리움을 위하여 中>

이야기 둘, 몇 년 전 뉴욕에 갔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 중 하나는 콜럼비아대학 근처의 바였다. 뭐라고 불러야 할까? ‘재즈바’에 빗대어 ‘아리아바’ 정도로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재즈 보컬들처럼 테너와 소프라노들이 바의 소박한 무대에서 오페라 아리아를 부르고 있었다. 오페라 아리아를 부른다고 하면 바로크 장식의 하얀 카페를 생각할지 모르지만 정말 평범한 바였다.

아리아를 부르는 분위기도 엄숙하지 않았다. 평범한 바에서 가수들은 편안한 청바지 복장으로 노래를 불렀다. 심지어 맥주병을 들고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바 이곳저곳에는 TV모니터가 있었고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의 라이벌 경기가 중계되고 있었다. 어떤 노교수는 아리아 선율에 맞춰 몸을 흐느적거리며 맥주를 마시며 야구 중계를 보았다.

반주를 하는 꼬부랑 할머니는 메트로폴리탄극장의 상임지휘자인 로린 마젤의 스승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 바에서 노래를 부르는 성악가들은 메트로폴리탄 극장의 언더스터디 급의 성악가들이라고 했다. 잊을 수 없는 풍경이었다. 오페라 아리아와 청바지... 맥주와 야구중계... 가방을 메고 바에 서서 아리아를 들으며 야구중계를 보는 노교수...

여기서 두 가지 생각이 겹쳤다. 그렇다면 ‘낭독카페’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책을 가장 극적으로 읽어주는 배우들이 책을 읽어주는 카페라면 괜찮지 않을까? 요즘 유행하는 북콘서트와 토크콘서트를 북카페 버전으로 ‘낭독 콘서트’를 해보면 어떨까? 연극배우들의 이름이 너무나 관객들로부터 멀어져있는데, 연극계의 인정이 대학로 담장을 넘지 못하고 있는데 이렇게 대중과 스킨십을 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연극배우들을 위한 소소한 일자리 창출도 될 수 있지 않을까?

[사진제공] 북+스테이지 <단편소설 입체낭독극장 - 김연수作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 중>
[사진제공] 북+스테이지 <단편소설 입체낭독극장 - 김연수作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 중>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으면 아마 ‘취지는 좋지만 누가 그런 낭독카페를 만들려고 하겠느냐’고 할 지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이야기를 더 들어보면 제법 그럴 듯하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서울에 ‘마을 공동체’를 복원하려고 하는 박원순 시장은 그 공동체의 중심으로 ‘서울형 북카페’를 계획하고 있다. 서울에 있는 작은도서관을 북카페로 변형하는 프로젝트인데 시설비와 운영비를 서울시가 지원할 예정이다. 올해 투입되는 예산만 25억원이다. 이 ‘서울형 북카페’가 ‘낭독 카페’가 되면 어떨까?

‘서울형 북카페’가 생긴다면 복합문화공간으로 이용되어야 할 것이다. 낭독이라는 형식을 통해 연극배우들을 만날 수 있다면 멋지지 않을까? 25곳(25개 구에 각 한 곳 씩)의 ‘서울형 북카페’가 예정되어 있는데 이곳들이 극단 한 곳과 제휴해서 ‘낭독 콘서트’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배우들이 낭독만 잘하나? 노래를 잘하는 배우는 얼마나 많은가? 뭔가 멋진 작품이 나올 것 같지 않은가?

태그 낭독, 낭독인, 고재열, 책,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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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준비 4호   2012-05-31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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