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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뜨는 봄
[무대와 객석 사이]

박해성_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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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항상 끊이지 않고 공연이 이어지는 대학로이지만, 공연계에도 알게 모르게 성수기와 비수기가 있다. 공연계에서 흔히들 얘기하는 비수기로는 장마철과 여름 휴가철, 올림픽 기간, 동계 올림픽 기간, 아시안 게임 기간, 월드컵 및 그와 관련된 각종 예선, 그 외 종류도 다양한 각종 컵, 대선, 총선, 대규모 지방선거 기간 등을 꼽는다. 이렇게 따지다 보면 일 년 내내 비수기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더욱이 올해는 지방선거와 월드컵, 아시안 게임이 손에 손잡고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하지만 항상 그랬듯, 어떻게든 대학로에서 공연과 관객은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그렇게 공연이 봇물을 이루는 가을과 연말이 지나고, 크고 작은 시상식, 각종 연말 결산과 상찬의 폭풍이 지나간 후에, 대학로는 명실상부한 비수기를 맞는다. 이 기간에 각종 제작극장과 창작단체들은 한 해의 레퍼토리를, 각종 공연 관련 기관들은 조직과 사업 계획을 준비한다. 창작자들은 긴긴 휴식을 취하기도, 어딘가 물 밑에서 조용히 무언가를 준비하기도 한다. 각종 공연 팀들이 서로 마주치던 술집들은 한가해지고, 한두 명씩 따로 만나 가끔 서로의 안부를 묻곤 한다.

    올해는 유달리 이 겨울이 길었는지 많은 기관과 단체의 제도와 조직이 큰 변화를 준비하고 있고, 그 영향인지 1년 동안의 계획이나 방향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창작단체와 제작극장이 적지 않다고 한다. 많은 창작자의 휴식은 본의 아니게 더 길어지기도, 무언가를 준비하는 물밑은 과도하게 깊어지기도 한다. 공연계 한편에서는 이 긴 겨울을 두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허나 이 겨울을 길지만은 않게 느끼도록 만든 또 하나의 ‘시즌’이 올해 있었으니, 어쩌면 몇몇 창작자들과 애정도 높은 공연 관객들에게는 오히려 ‘정규시즌’ 보다 더 뜨거운 기간이었을 수도 있겠다.

    공공기관의 지원으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ARKO가 주목하는 젊은 예술가 시리즈’, 서울문화재단의 ‘유망예술 지원사업’, 남산예술센터의 ‘남산희곡페스티벌’이, 기업의 지원으로는 두산아트센터의 ‘두산아트랩’, CJ문화재단의 ‘크리에이티브 마인즈’의 일환으로 공연된 이십여 편의 작품이 약속이나 한 듯 1, 2월을 채웠다. 심지어 기업이나 기관의 후원을 받지 않은 자생적 민간축제로 큰 호응을 얻은 ‘아오병잉 페스티벌’까지 포함하자면, 명실상부한 공연 비수기였던 연초 시즌이 가장 뜨거운 신진예술 시즌이었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이 시즌 공연들의 무대에서뿐 아니라, 객석에서도 수많은 창작자를 만날 수 있었음을 감안한다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 ‘새로운’ 공연들의 시즌이 제대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신진’이라는 개념에 대해 재정리가 필요하다. 기관이나 기업이 ‘신진예술가육성’을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을 10년쯤 전부터라고 본다면, 애석하게도 얼마 전까지 그렇게 매번 ‘육성’된 예술가들은 살아남지도, 자신만의 흐름을 만들어내지도 못했다. 어쩐 일인지 기관이나 권위에 의해 ‘신진’으로 낙점받은 창작자는 관객이 보기엔 상대적으로 나이만 적었지 그다지 새롭거나 다르지 않았다. 바꾸어 말하면, 새롭거나 다르지 않은 상태에서 나이만 어리다 보니 단지 미숙함만 보이는 게 당연했다. 그러다 보니 ‘뭔가 미숙한 것이 신진’이라는, 본래 신진의 개념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경험이 창작자 자신과 관객들에게 쌓여온 것이다.
눈뜨는 봄
그 이유는 ‘육성’이라는 말과 그 육성의 주체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신진’은 말 그대로 새로운 세대이다. 새로움은 어떤 권위나 기관에 의해 인정받거나 육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관객들의 반응 자체로 하나의 현상이다. 권위나 기관은 그러한 현상을 찾아내고 발견해내는 것이지, 신진들의 줄을 세우고 (더 새로우라고) 육성해서는 결코 이룰 수 없다. ‘새로운 흐름’은 누가 발견해내기 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으며, 그것을 새롭게 하는 주체가 관객과 창작자 자신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가장 주체적으로 ‘신진예술의 흐름’을 선언한 아오병잉 페스티벌1)은 우리의 신진예술이 10년간의 악전고투 끝에 묻힌 것이 아니라 계속 이어지고 진화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현상적으로, 이 페스티벌의 작품들은 누구에게 선택받기 위해 경쟁하지 않고 그 자신이 당당했으며, 관객 역시 당당하게 주체적으로 그것을 즐기고 공감했다.

공연 비수기라고 여겨지던 기간들이 오히려 공연계의 불확실한 정책적 공백을 메우는 새로운 시즌이 되었다. 그렇게 길고도 짧은 겨울이 지났고, 이제 눈뜨는 봄2)이다.

태그 아오병잉페스티벌, 박해성, 칼럼, 비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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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성

박해성 연출가
상상만발극장에서 연출
트위터 @theatreimaginer
제40호   2014-03-20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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