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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와 객석 사이]

박해성_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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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연 좀 본 관객이나 공연 좀 해본 창작자라면, 공연장에서의 전화기와 관련된 불쾌한 에피소드들은 일일이 기억하지도 못할 정도로 너무나 많을 것이다. 어차피 공연이라는 형식이나 약속이란 게 시대와 관객과 함께 계속 변화하는 것일 터, 일상이 된 불쾌함은 이제 공연의 형식에 포함시켜도 되지 않을까. 하는 대인배 코스프레는 현대를 살아가는 관객/창작자에게는 기본 덕목이다. 생각해보자. 공연 중 전화벨이 울리거나, 심지어 통화를 하는 관객에게 “거 적당히 좀 합시다!”라고 소리치는 상상은 우리 모두가 하지만, 객석 한가운데서 실제로 그렇게 일갈한다는 건, 왠지 구스타프 말러 교향곡을 연주하다 객석에서 아이폰 마림바 벨소리가 울리자 연주를 멈추고 돌아서 기다리다가 “끝났나요?”라고 묻고 그 악장을 처음부터 다시 연주하는, 간지나는 뉴욕커 지휘자쯤 돼야 할법한 까탈스러움 아닌가. 그리하여 ‘그래, 유난 떨지 말고 참자. 난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는 정신승리를 향한 처절한 전장이 우리의 극장이다.

    전화기와 관련된 불쾌한 에피소드

    “18분 만에 배우들과 오퍼레이터가 나갔다. 관객은 침묵 속에 기다리다 점차 웅성거리기 시작하며 대상을 달리하여 의아해하기도, 서운해 하기도, 화를 내기도, 흥미로워 하기도 했다.
    연극사에 남을 진귀한 퍼포먼스를 경험했다. (후략)”

    지난 3월 27일, 극단 그린피그의 공연 <이야기의 방식, 노래의 방식 - 데모버전>을 보러갔다가 극장을 나서며 어느 직업 연출가가 올린 페이스북 글이다. 이 글에는 격한 통쾌함을 토로하는 댓글들과 대지를 울리는 ‘좋아요’ 합창이 이어졌고, 이 이슈에서 정신승리를 이루기까지 창작자들에게 얼마나 큰 내상이 있었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주로 업계 사람들로 연결된 그 연출가의 페이스북 타임라인이 아닌, 개방적인 트위터나 개인적 수다 등에서는 다른 양상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관객에 대한 "존나예술부심쩌는" 폭력이다, 단체기합 주듯 관객을 훈육하려 든다, 퍼포먼스의 형식이 극의 내용과 별 상관이 없이 자의식만을 드러냈다 등 "그래도 공연은 계속돼야 한다" 라는 쇼비즈니스 성경을 깬 파괴자에 대한 실망과 염려, 옹호가 뜨겁게 오갔다. “공연 재미 없으면 일부러 벨소리 울리면 되겠네.” 류의 비아냥은 농담으로 넘어간다고 치더라도, 이 이슈가 다뤄지는 방식은 극장을 ‘창작자’와 ‘관객’의 진영으로 나누어 서로에 대해 성토하거나 변호하는 양상으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그 극장에서 실제로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극장은 정녕 무대와 객석으로 나뉜 전장이었을까?

    아시다시피 이 작품이 공연된 혜화동 1번지는 작은 블랙박스식 소극장이며, 사진으로 보시다시피, 이 작품의 무대는 블랙박스의 벽체를 드러낸 전면의 검정색 벽에 “전화기의 벨, 진동이 터지는 순간 공연을 종료합니다.” 라는, 궁서체 글이 채워져 있다. 사진에선 그냥 궁서체인가 하지만, 실제로는 글자 하나가 사람 머리 크기보다 큰, 그야말로 저 말을 “궁서체로 외치고 있는” 양상이다.

    공연은 배우들이 몇 명씩, 혹은 모두가 등장해서 장면을 수행하고 모두 퇴장하고, 잠시간 빈 무대의 침묵 후 다시 등장해서 다음 장면을 수행하는 형식인 듯 했다. 첫 장면과 두 번째 장면을 지켜보며 관객들은 숨죽여 이 작품의 형식을 받아들이고 적응해가고 있었다. 두 번째 장면 후 빈 무대의 침묵이 길었다. 관객의 호기심은 높아졌다. 몹시 길었다. 어떤 관객은 지루했고, 어떤 관객의 기대감은 더 높아졌다. 극장 외부에서 소음이 들렸다. 극장 내부가 조용하니 당연히 외부 소리가 들린 것이었으리라. 침묵은 아주 길어졌다. 몇몇 관객이 조용히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전화벨 울렸어요?” “누구예요?” “아니요, 안 들렸어요.” “아이, 뭐야.” 등등. 오퍼레이터쪽에서 타타탁 하는 발소리가 들렸다. “뭐야 이거.” 난 이 모든 것을 공연의 일부라고 생각했고, 관객들이 서로를 의심하고 불쾌해하는 것을 보며 이 ‘작품’에서 국가보안법 모티브를 추출해냈다. 성미 급한 관객은 노골적으로 화를 내며 극장을 나갔고, 남은 관객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 모든 과정을 흥미롭게 지켜보던 나도 슬슬 의아해지기 시작할 무렵, 프로듀서가 극장으로 들어와 이야기했다.
    “공연 중에 메시지 진동 소리가 울려서 공연이 중단됐고, 배우들과 오퍼레이터도 극장에서 나갔습니다. 관객들도 돌아가 주세요”
    객석에 남아있던 관객은 일순간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 “뭐야!” “들렸어?” “아니.” “너무하네.” “위에서 관객 누가 싸우고 있나봐” 등등.

    거의 마지막으로 극장을 나서고 보니, 관객들은 의아해하기도, 서운해 하기도, 격하게 화를 내기도, 흥미로워 하기도 했다. 그 감정의 대상은 진동소리의 주인공이자 이미 그 자리를 뜨고 없었을 (그러고 보니 가장 먼저 객석에서 나간 관객이 그분이었을 수도) 관객이기도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너무하지 않냐며 제작진 측을 향하기도 했다. 나는 조용히 프로듀서에게 “오늘이 가장 빨리 중단된 건가요? 보통 땐 기록이 어느 정도였나요?“라고 물었는데 대답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오늘이 처음이에요. 한 번도 중단된 적 없었어요.“ 그러고 보니 집에 갔다던 배우 중 몇 명이 차마 골목을 떠나지 못하고 멍하니 담배를 피며 서성거리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알려진 바와는 다르게, 이 공연중단 해프닝은 위의 뉴욕 사례나 우리가 수도 없이 겪었던 것처럼 명확하고 황당하게 울리는 ‘띠리링’이 아니었고, 관객들 대부분이 못 듣고 지나갔던 애매한 사례였다. 이 공연을 중단시키는 것 보다 중단시키지 않는 게 더 안전하고 쉬운 선택이었고, ‘당황하지 않고 들리지만 안 들리는 척 하는’ 정신승리는 우리 대부분의 장기이자 특기이다. 하지만 공연은 중단됐고, 모두가 상처를 받았다. 당연하지만 외면됐던 사실은, 공연이 중단된 것은 관객뿐 아니라 배우들과 제작진들에게도 씻을 수 없는 큰 상처이다. 폭력적인 훈육도, 통쾌한 복수도 없었다. 그 날 그 현장의 상처에는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없었다. 모두의 상처를 감내하면서 ‘들리지만 안 들리는 척하는’ 정신승리를 거부하고 현실을 정확하게 응시했을 뿐이다. 극장에 있었던 모두.

    이 작품의 마지막 날 다시 극장을 찾았다. 다행히도 그 날 말고 또다시 공연이 중단된 적은 없다고 했다. 사실 개인적으로 온전한 공연을 보는 내내 또 전화벨이 울릴까봐 무척 조마조마했다. 공연의 막바지 절정에 이르는 순간, 무대의 궁서체 글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그 메시지는 이 작품과 몹시 잘 맞는 내용이었을뿐더러, 한발 더 나아가 무대와 객석, 극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응시였다. 그렇다. 공연은 연출이 중단시킨 순간에 중단된 게 아니라, 벨소리가 울리는 순간에 이미 중단된 것이다. 비굴한 정신승리는 끝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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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성

박해성 연출가
상상만발극장에서 연출
트위터 @theatreimaginer
제42호   2014-04-17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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