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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이 세상을 구원할 때
[고재열의 리플레이]

고재열_시사IN 정치팀장/블로그‘독설닷컴’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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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년 전의 일이다. 아직 시사저널에 근무할 때다. ‘삼성기사 삭제 사건’에 항의해 파업을 벌였다. 파업은 길어졌다. 가장으로서 집에 월급봉투를 몇 달 동안 못 주는 것이 힘들었다. 심지어 중간에 퀴즈프로그램에 나가서 상금을 받아 생활비에 보태기도 했다(절반은 파업기금으로 썼다). 우리를 응원하는 목소리는 잦아들었고, 그만큼 우리는 지쳐갔다.

    파업 기간 동안, ‘이 파업이 언제쯤 끝날까’를 헤아려 보았다. ‘우리는 어디쯤 왔을까’를 짐작해 보았다. 쉽지 않았다. 아마 우리의 위치를 명확히 알 수 있었다면 남은 날을 역산할 수 있었을 것이고, 버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터널의 끝부분까지 왔는지, 중간인지, 아직 시작인지 알 수 없어서 힘들었다. 여럿이 함께할 때는 파업을 어떻게 지켜나갈지를 고민했지만 혼자 있는 시간에는 갑자기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때 위로가 되었던 것이 바로 영화 <미션>이었다. 인간 사냥꾼 멘도사에서 로드리고 신부로 거듭나, 원주민을 지키기 위해 장렬히 산화한 로버트 드니로의 모습에 내 모습을 투영시켜보곤 했다. 소영웅주의의 발로였을 수도 있지만 나태한 기자에서 강인한 파업기자로 재탄생하는 모습에 그런 생각을 해봤다. 파업이 내게 준 ‘미션’ 덕분에 파업기간을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로드리고 신부처럼 ‘산다는 것은 일단 해보는 데까지 해보는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이것저것 도모해 보았다.

    또 하나 위로가 되었던 것은 소설 『남한산성』이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이 바로 남한산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파업을 접고 회사로 복귀하느냐, 아니면 함께 나가서 새로운 매체를 창간하느냐의 문제를 놓고 격론을 벌일 때라 ‘죽어서 아름다울 것인가, 살아서 더러울 것인가’하는 소설의 질문이 가슴에 박혔다. 결국 우리는 죽어서 아름다운 이름으로 남기를 택했고, ‘시사IN’이라는 이름으로 부활했다.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온 국민이 ‘정신적 재난’을 당한 상태다. ‘집단 우울증’, ‘집단 트라우마’, ‘집단 PTSD’ 등 다양한 말이 나온다. 확실한 것은 ‘일상과 애도의 병행’되고 있는 시기라는 것이다. 애도만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이들이 아직 배에 남아있는 상황에서 온전히 일상에 돌아올 수도 없어서 사람들은 한쪽 귀와 눈은 세월호 소식에 열어두고 다른 한쪽 귀와 눈으로 일상을 감당하고 있다.

    어려운 시기인데, 연극이 세상을 위로할 때가 지금이 아닌가 싶다. 국민들이 연극계를 떠받쳐 주었다면 지금과 같은 시기에 위로받기 위해서는 아니었을까? 슬픔과 분노와 의혹으로 격정에 휘말리는 국민들에게 ‘마음의 부표’가 되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몇몇 작품이 떠올랐다. <푸르른 날에>, <날 보러와요>, <봉선화>, <상처꽃> 등등….

    비극이 반복되는 것은 지나온 역사에서 충분한 교훈을 얻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교훈을 얻지 못했다는 것은 우리가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일 수도 있다. 과거를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루면서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가해자와 피해자의 상처 모두를 담아낸 연극 <푸르른 날에>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아픔을 극복하는 것은 함께하는 것이다. 가장 아픈 것은 남들이 이 아픔을 몰라주는 데서 오는 아픔이다. 연극은 그들의 아픔을 우리의 아픔으로 끌어올 수 있어야 한다. 젊은 주인공이 위안부에 관한 진실을 직접 찾아가는 형식으로 구성된 연극 <봉선화>는 그런 의미에서 권할만한 작품이다. 친일파이고 부유했던 외가와 위안부 피해 집안이었던 친가의 역사를 동시에 조명하면서, 처한 상황에 따라 어떤 인식의 격차가 나타나는지를 보여준다.

    모든 게 뒤죽박죽이고 엉망진창이고 정부 발표는 믿을 수 있는 것이 도무지 없고 정부 부처끼리 하는 소리도 달라서 ‘이것이 정부인가? 이것이 나라인가?’하는 생각을 들게 만들 때 기억해야 할 사건이 있다. 바로 1986년부터 1991년까지 경기도 화성시 태안읍 일대에서 10명의 여성이 차례로 살해되었으나 범인이 결국 잡히지 않았던 화성연쇄살인사건이다. 큰 공권력의 무책임과 작은 공권력의 무기력 사이에서 범인이 비열한 웃음을 짓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1974년 울릉도간첩단사건을 다룬 <상처꽃>은 처음부터 끝까지 조작으로 일관한 공권력의 횡포를 다룬 작품이다. 외딴 섬에서 이뤄진 일이기에 그들을 변호해 줄 사람이 없었다. 그들이 자신들을 변호해 줄 사람들을 만난 것은 수십 년이 지나고 민주화가 된 일이다. 주목할 것은 가슴 깊이 박힌 상처를 꺼내는 방식이다. 조심스럽게 그러나 끈질기게 상처를 꺼낸다. 그렇게 꺼낸 상처가 아물도록 잘 들어주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일일 것이다.

    사람들이 슬퍼하고 있다. ‘모두가 슬픈 이때 무슨 연극이냐?’고 자조할 것이 아니라 연극이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아픔이 단순한 아픔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성찰로 이어지도록 해줘야 한다. 이번 참사를 통해서 우리가 세상을 대하는 방식과 받아들이는 방식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도록 연극이 진지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태그 연극, 정신적 재난, 남한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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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열

고재열 시사IN 문화팀장
시사저널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으나 '삼성기사 삭제사건'에 항의해 6개월 동안 파업을 벌인 후 사표를 내고 동료들과 시사IN을 창간했다. 블로그 '독설닷컴'으로 인터넷 논객 활동을 시작했으며 요즘은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 더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트위터 @dogsul | 페이스북 facebook.com/dogsuldotcom
제43호   2014-05-08   덧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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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한것인생
귀한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92.229.82.41

2014-05-09댓글쓰기 댓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