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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의 블록버스터 감수성과 가능성
[고재열의 리플레이]

고재열_시사IN 정치팀장, 블로그 ‘독설닷컴’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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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량>의 엄청난 흥행이 빛이라면 스크린 독점은 그늘이다. 개봉 초기 30% 정도였던 <명량>의 스크린 점유율은 개봉 2주차에 40%까지 올라갔다. 여기에 여름휴가 특수를 노리고 개봉한 <군도: 민란의 시작> <드래곤 길들이기 2>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스크린 점유율을 합하면 85%에 이른다. 극장마다 10여 개의 스크린을 둔 멀티플렉스 시대에 보고 싶은 영화를 찾기 위해 극장을 헤매야 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을 쓰는 이유는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의 스크린 독점을 훈계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명량>의 스크린 점유율은 40% 정도인데 매출액 점유율은 70%에 이른다. <명량>의 스크린 점유가 최소한 자본주의 경제법칙에는 맞는 행위라 할 수 있다. 문제는 깜냥이 되지 않는 영화가 배급사의 독과점 구조와 물량 공세 마케팅으로 밀어붙이는 경우다. 이럴 때 관객은 선택권이 박탈당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군도: 민란의 시작>이다. <군도: 민란의 시작>은 검증된 연출자와 검증된 배우가 출연했지만 영화의 완성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래서 ‘민란의 시작’이 아니라 ‘도둑질의 끝’일 뿐이라는 혹평이 많았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막걸리 웨스턴’이라 할만한 퓨전 사극이었지만 마케팅은 반란을 그린 정통 사극의 분위기를 전했다. 관객이 오도된 것이다. 시사회 이후 배급사와 홍보사의 물량공세에 냉정한 평은 설 자리가 없었다.

    <군도: 민란의 시작>이 7월23일 개봉한 데 이어 <명량>(7월30일) <해적>(8월6일) <해무>(8월13일) 등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가 잇달아 개봉한다. 제작비가 100억 원이 넘는 블록버스터 영화 네 편이 이렇게 연이어 개봉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최악의 경우의 수는 이런 블록버스터 영화가 줄지어 망하는 것인데, 올여름에는 최소한 흥행 면에서는 나름의 성과를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영화계는 2강(<명량>과 <해적>) 2중(<군도: 민란의 시작>과 <해무>) 구도를 예상하고 있다.

    블록버스터 영화의 최대 해악은 흥행에 실패하는 것이다. 자본과 스크린을 독과점한 이런 영화들이 실패하면 영화계 전체가 침체되고 경색된다. 2011년 여름부터 1년 여 동안 <가비> <마이웨이> <7광구> <퀵> <고지전> <라스트 갓 파더> <황해> 등 7편의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가 개봉했는데 대부분 흥행에 실패하거나 손익분기점을 겨우 달성했다. 이때의 영화들을 보면 ‘블록버스터 영화는 어때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와 대박 영화를 분류해보면 크게 네 가지 유형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괴물> <해운대>와 같은 ‘재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 <웰컴 투 동막골>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와 같은 ‘분단 영화’, 그리고 <왕의 남자> <광해, 왕이 된 남자> <관상> <명량>과 같은 ‘역사 영화’, 마지막으로 <친구> <아저씨> <두사부일체>와 같은 ‘조폭 영화’이다.

    ‘공상과학 영화’ ‘영웅 영화’ ‘판타지 영화’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이 블록버스터로 제작되는 할리우드에 비해 다양성이 떨어짐을 알 수 있다. ‘분단 영화’와 ‘조폭 영화’ 정도가 우리만의 독특한 흥행 코드라 할 수 있다. 그나마 ‘조폭 영화’는 이미 시효가 다했고 ‘분단 영화’도 관객이 피로에 젖어 소구력이 날로 떨어지고 있다.

    2012년 이후의 상황을 보면 그래도 조금씩 ‘종의 다양성’이 구현되는 양상이다. 한국영화 최대 흥행작인 <도둑들>은 케이퍼무비로 일종의 장르영화다. <7번방의 선물>은 가족영화다. <설국열차>는 일종의 SF 판타지 영화다. <변호인>과 <명량>은 실존인물을 다룬 영웅 서사다. 여기에 올여름 개봉하는 <해적>까지 흥행하면 액션어드벤처 영화까지 구색을 갖추게 된다.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지금까지의 흐름과 올여름의 흥행 양상을 보면 한국영화계가 블록버스터 영화의 기획과 제작 그리고 마케팅에 어느 정도 감을 잡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거대한 삽질’이 아니라 ‘계산된 재미’로 승부를 해서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말하자면 블록버스터 영화 제작이 ‘투기 등급’에서 ‘투자 등급’으로 상향된 것이다. 몇 개의 영화가 전범을 보여주었으므로 이후 제작되는 영화도 나아질 것이다.

    이제 남은 숙제는 세계시장 진출이다. ‘월드 와이드 개봉’이라는 과제가 남았다. 이를 위해서 먼저 ‘아시안 와이드 개봉’이 이루어져야 한다. 한류의 영역 중에서 대중음악이나 드라마의 성취에 비해 아직 영화는 파괴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아시아 국가들에서도 멀티플렉스가 일반화되고 있는 지금이 바로 영화 한류의 변곡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스크린 독과점 문제에 대해 관용을 베풀 여지가 있다면 바로 이 가능성 때문일 것이다.

    댄스음악 위주의 음악시장이 한참 욕을 먹을 때 댄스음악 위주의 한류가 일어났다. 해외시장에서 인정을 받자 한국형 댄스음악에 대한 평가도 달라졌다. 댄스음악이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리면서 한국 음악시장에도 숨통이 트였고 덕분에 다양한 장르의 발전이 이뤄질 수 있었다. 영화에서도 비슷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의 스크린 독과점을 과도기적 현상으로 봐줄 수 있다면 말이다. 한 번 지켜보련다.

태그 고재열의 리플레이, 한국영화의 블록버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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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호   2014-08-07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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