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인

top

연극인

검색하기

우리는 아직 충분히 울지 않았다
[무대와 객석 사이]

부새롬_연출가, 무대디자이너

목록보기

  • 링크
  • 프린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무슨 일 때문에 온 나라가 호들갑을 떨라치면 어쩐지 거북하고 삐딱해진다. 전체주의니 집단이니 잘난 체하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다. 그냥 그렇게 생겨먹어서 저절로 느끼게 되는 무섭다, 싫다, 같은 기분에 가깝다. 언젠가부터 여기에 민망함이랄까, 부끄러움 같은 게 더해졌다. 딱히 어디에서 읽었다고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도 많은 사람이 이런 부류의 글을 읽은 적이 있을 것이다. 아빠든, 엄마든, 우리 부모님은 왜 친구 부모님처럼 세련되지 못할까, 혼자 속앓이 하는 아이 이야기. 어느 날 세련되지 못한 부모님 때문에 혼자 얼굴이 홍당무처럼, 이럴 땐 꼭 홍당무여야 하는데, 새빨개졌다든가, 남몰래 울었다는 이야기. 그 이야기 속 아이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아, 왜 이렇게 촌스러울까. 어, 왔어? 그랬어? 이렇게 ‘쏘- 쿨’ 할 수는 없는 것일까.

    이건 꼭 ‘국가적 경사’에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니다. 온갖 흉사, 참사가 생겼을 때도 비슷하다. 무슨 일이 생기면 지금 당장 직접적 가해자를 찾아내서 광화문 광장에서 참수라도 할 듯이 온 나라가 들끓는다. 그러는 동안 직접적 가해자 뒤에 숨어있는 간접적 가해자, 그 이슈와 관련된 여러 가지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고 얘기 나눌 시간은 지나가 버린다. 어느새 더는 그에 관해 얘기하는 것은 지겹고 피로한, 지나간 일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세상은 그 이전과 별로 바뀐 것 없이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간다. 지금껏 수백 번 봐온 것처럼. 나는 안 그런데 사람들이 그래, 지적하는 게 아니다. 부끄럽지만 나 역시도 그래 왔고, 스스로 느끼는 것이기도 하다. 목청 높여 욕할 에너지로 좀 ‘쿨’하게 오랫동안 천천히 얘기할 수는 없는 것일까.

    교황이 방문 중이다. 여느 때였으면 이런 ‘국가적 경사’ 앞에 왜 이리 호들갑이야, 삐딱했을 텐데, 많이들 그랬던 것처럼, 나한테도 기대감이 생겼다. 이대로 얼렁뚱땅 지나가 버리지나 않을지, 해결될 기미가 안 보이고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는 세월호 참사 문제에 어떤 돌파구를 마련해 주지 않을까. 이제는 지나간 일처럼 묻혀버린 강정 마을 해군 기지 문제, 밀양 송전탑 건설 문제에는 신부, 수녀들이 함께하고 있으니까 뭔가 힘을 실어주지 않을까. 그래서 그 일이 다시 지금의 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한편, 생각해보면 내가 살고 있는 나라의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현안들인데 그 해결을 교황한테 바라다니… 얼굴이 새빨개졌던 그 아이처럼 민망해지고, 자꾸 씁쓸해졌다. 부끄러웠다. “왜, 교황한테 세월호 특별법에 기소권이랑 조사권도 넣어달라고 하지?” 술자리에서 툭 튀어나왔던 농담은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진 한 장을 봤다. 34일째 단식을 하고 있는 유민이 아버지 김영오 씨가 고개를 숙이고 있고 교황이 두 손으로 그의 손을 잡고 있었다. 울컥했다. 아, 이거였구나, 싶었다. 그 사진으로 내가 위로를 받고 있었다. 위로와 공감, 그리고 이를 통해 어떤 사람을 기억하게 하고, 그 사람을 통해 그가 겪고 있을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것이 교황이 할 수 있는 해결이었던 것이다. 너무나 뻔한 얘기지만.
    익숙함을 걷어내고 다른 눈으로 그 사진을 보면, 중세시대 옷 같은 기다란 흰 원피스에 흰 모자를 쓴 외국인 할아버지가 힘든 이의 손을 잡고 있는 묘한 풍경이기도 했는데, 마치 연극의 어떤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종교와 연극이 한 뿌리에서 나왔다는 걸 굳이 구구절절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 비일상적인 무언가와 버거운 현실이 만나고, 그를 통해 위로와 공감을 나누는 것이, 연극이란 것도 저와 비슷한 게 아닐까, 싶었다.

    항상 남는 질문은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다. ‘잊지 말고, 천천히, 오랫동안 얘기해야지’ 하지만 무언가 부족하고 답답하다. 연극을 만들 때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행동’이다. 단순히 무언가를 하는 행위가 아니라 ‘목적이 담긴 동사’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결국 이 ‘행동’이 모여서 연극은 진행되고 결말에 다다른다. ‘행동’을 찾지 못하면 장면엔 분위기만 남고 연극이 앞으로 나아가질 못한다. 연극창작자로서 무슨 행동을 해야 할까. 반성과 고민 속에 어물쩍, 서 있다.

태그 우리는 아직 충분히 울지 않았다, 부새롬

목록보기

부새롬

부새롬 연출가, 무대디자이너
달나라동백꽃 대표
주요작품 <뺑뺑뺑> <달나라연속극> <로풍찬 유랑극장> <뻘> 외
puromy@gmail.com
제50호   2014-08-21   덧글 2
댓글쓰기
덧글쓰기

조르바
결국 이런 고민들이 작은 외침을 만들고 한 발작 걸음을 내딛겠죠. 허무한 마음 또한 그 걸음 위에 싹을 돋우는 거름이 될 것입니다. 힘냅시다!

2014-08-21댓글쓰기 댓글삭제

홍양이
행동하자101.235.27.107

2014-08-22댓글쓰기 댓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