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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신화를 이용한 현대의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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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없는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위해 나아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가 던지는 질문이다. 호주 출신 조지 밀러 감독이 만드는 <매드맥스> 시리즈는 우화적이다. 핵전쟁으로 인해 인류의 문명이 사라진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데 살아남은 인류는 하루하루 오직 생존을 위해 살아간다. 미래를 과거로 그린 이유에 대해 감독은 "사회가 진화하는 과정이 한편으로는 고무적이지k만 다른 한편으론 불편하기도 하다. 현대 세계의 복잡성을 제거하면 매우 기초적이고 자유로운 세계가 탄생하고, 기본적인 우화로 이야기를 진행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매드맥스>의 사회는 문명이 ‘리셋’된 곳이다. 원시사회나 다름없다. 생존과 멸종, 지배와 복종만 있는 그곳에서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서, 구원받기 위해서, 생산하기 위해서만 살아간다. 복잡한 현대사회를 단순한 과거사회로 환원한 것에 대해 감독은 "몰락한 디스토피아 세계로 가는 일은 중세로 돌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생존에만 관심이 있다. 명예도 없고 공감·연민 같은 감정을 느낄 겨를도 없다. 계급 구조가 뚜렷해지고 권력을 가진 소수가 다수 위에 선다. 이런 세계에서 극중 맥스(톰 하디)의 목표는 과거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가 전작과 다른 점은 구원의 상징으로 ‘모성’이 쓰인 점이다. 독재자 임모탄의 여성들을 데리고 탈출하는 여전사 퓨리오사는 ‘녹색의 땅’을 향하는데 그곳은 ‘위대한 어머니’들이 있는 땅이다. 임모탄의 세계가 명분과 의리의 세계라면 퓨리오사가 지향하는 대안세계는 공감과 교감의 세계다. 영화는 이것만으로는 답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지만 ‘모성’의 활용을 통해 영화는 그렇고 그런 마초영화와 확연히 다른 차원의 선을 긋는다.

과거에서 미래를 읽는 법, 요즘 대중문화에서 가장 주목 받고 있는 방식이다. 신화와 설화는 스토리텔링의 원형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끝없이 재창조된다. 유럽 르네상스 미술 작품은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 많았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피라모스와 티스베’ 신화를 원형으로 한 작품이다. 할리우드 영화 <천국보다 아름다운>은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를, <미녀와 야수>는 ‘에로스와 프시케’를, <마이 페어 레이디>는 ‘피그말리온’ 이야기를 변형한 것이다.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5월에 공연된 연극 <변신 이야기>는 신화가 이 시대에도 여전히 의미를 발휘할 수 있음을 알려주는 작품이었다. 고대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가 그리스·로마 신화를 바탕으로 쓴 서사시 ‘변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연극인데 평단의 호평과 관객의 호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2002년 초연되었는데 “9·11 테러로 상처받은 뉴욕 시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다”라는 평가를 받으며 그해 토니상을 비롯한 각종 연극상을 휩쓸었다.

<변신 이야기>의 작가 메리 짐머먼은 이후에도 <오디세이> <아라비안나이트> 등 신화와 설화를 재해석한 작품을 썼다. <변신 이야기>에서 그는 극중 캐릭터의 입을 빌려 현대사회에서 신화가 갖는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신화는 집단의 꿈이며, 꿈은 개인의 신화다. 불행하게도 요즘 우리는 우리의 신화적인 부분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엄청난 것들이 우리에게서 도망쳐 나가고 우리는 더 이상 우리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성적이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뿐 아니라 수수께끼 같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여전히 중요하고 유익하다.”

<변신 이야기>는 옴니버스 형식의 연극이다. 천지창조 이야기부터 시작해 미다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에로스와 프시케 등 우리에게 익숙한 신들이 등장해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나간다. 신들의 능력과 욕망, 사랑과 갈등을 다루는데 마치 인간 사회를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이다. 변정주 연출가는 “신화는 다양한 해석과 토론을 낳는다. 이런 과정에서 신화 속 신들은 인간과 친구가 되어 우리 무의식의 단면을 바라볼 수 있는 뷰파인더 구실을 한다. 이것이 신화의 힘이다”라고 말했다.

유일신을 섬기는 기독교 국가에서 신화가 살아남는 까닭은 이처럼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기 때문이다. 기독교에서는 신의 형상을 본떠 인간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신화 속 신은 인간의 욕망을 반영한다. 그래서 전지전능하고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끝없는 욕망 때문에 갈등을 빚고 그래서 이야기의 극적 구성이 탄탄해진다. 국내에서 크게 흥행한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도 이런 신화적 모티브를 볼 수 있다.

영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몇 캐릭터는 그리스·로마 신화 속 신을 연상케 한다. 영화에서 아이언맨은 억만장자 토니 스타크인데 그가 지은 ‘어벤져스 맨션’에 모여 있는 슈퍼 히어로들의 모습은 올림포스 신전에 모인 신들을 떠올리게 한다. 재력을 과시하는 토니 스타크(아이언맨)는 미다스, 헐크는 괴력을 지닌 헤라클레스, 호크 아이는 활의 신 아폴론, 캡틴 아메리카는 전쟁의 신 아레스를 떠올리게 한다.

고대의 신화 가운데 요즘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가장 각광받는 것은 북유럽 신화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도 이런 북유럽 신화의 계보를 잇는 작품이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는 아이언맨, 토르, 헐크, 캡틴 아메리카, 블랙 위도, 호크 아이, 퀵 실버, 스칼릿 위치, 울트론 등이 등장하는데 이 중 토르가 바로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신이다. 절대신 오딘의 아들인 그는 천둥의 신으로 풍요와 농업을 상징한다. 인간을 괴롭히는 사나운 거인에 맞서는 수호신이기도 하다. 전편인 <어벤져스>에 나오는 악역 로키는 토르의 이복동생으로, 북유럽 신화에서도 대표적인 ‘트러블 메이커’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또 하나 찾을 수 있는 신화적 모티브는 ‘파괴가 곧 창조이고 선과 악이 하나’라는 인도 신화다. 3억3000명의 신이 있다는 인도 신화에서 가장 중요한 신은 창조의 신 브라흐마, 유지의 신 비슈누, 파괴의 신 시바다. 인도 신화는 파괴를 재창조로 규정하고 창조-유지-파괴가 끝없이 반복된다고 말한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이 윤회의 모티브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절대악 울트론이다. 울트론은 선과 악이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이며, 선에서 악이 나오고 악에서 선이 나온다는 것을 보여준다.

창작의 샘이 되고 있는 신화와 설화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어떨까?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2002년부터 시행한 ‘문화 원형 디지털콘텐츠화 사업’이라는 프로젝트가 있다. 매년 수십억 원의 비용을 들여 신화와 설화 같은 우리 문화의 원형을 연구하고 이를 문화산업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디지털 정보로 재구성하는 사업이다. 이렇게 제작한 콘텐츠는 사극 <주몽>이나 영화 <왕의 남자> 등에서 시대를 고증할 때 참고하기도 하고, 게임 <거상>, 캐릭터 ‘뿌까’ 등의 제작에도 응용되었다. 이렇게 ‘신화가 대박이다’ 하고 외치던 시절이 있었는데, 창조경제를 주창한 박근혜 정부에서는 축소되었다. 전편 <어벤져스>는 15억 달러 이상(역대 흥행 순위 3위)을 벌어들이며 ‘마블버스터(마블코믹스+블록버스터)’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고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한국에서만 1천만 명 이상의 관객을 불러 들였다. 창조경제를 일으키겠다면서도 문화 원형은 등한시하는 박근혜 정부가 새겨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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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열

고재열 시사IN 문화팀장
시사저널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으나 '삼성기사 삭제사건'에 항의해 6개월 동안 파업을 벌인 후 사표를 내고 동료들과 시사IN을 창간했다. 블로그 '독설닷컴'으로 인터넷 논객 활동을 시작했으며 요즘은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 더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트위터 @dogsul | 페이스북 facebook.com/dogsuldotcom
제69호   2015-06-04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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