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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폐적 사고 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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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암을 고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다.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일단 수술이 있다. 다른 신체기관으로 전이가 되지 않고 부분적으로 절제해도 괜찮은 장기인 경우 수술로 제거한다. 이미 다른 기관에 전이된 상황이면 전신 치료를 통한 암세포 말살 방식을 쓴다. 방사선치료나 항암 화학요법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방사선치료나 항암제는 부작용이 커서 정상 세포도 죽기 일쑤다.

항암 치료는 무엇보다 통증이 크다. 그래서 비마약성 진통제, 약마약성 진통제, 강마약성 진통제를 단계별로 사용한다. 진통제를 사용할 때는 ‘가능한 한 간단한 방법으로 투여한다’ ‘소량으로 시작하여 조금씩 양을 증가시켜 통증을 없애는 데 필요한 양에 도달한다’ ‘비마약성 진통제로 시작하며 효력에 따라 약마약성 진통제, 강마약성 진통제로 단계적으로 약을 바꾸어 간다’라는 세 가지 원칙을 지켜야 한다.

이번에는 적폐청산에 대한 이야기다. 암 치료와 비슷한 원칙이 적용될 수 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이라는 ‘적폐암’은 청와대라는 대한민국의 중심 장기에 발발했다. 하지만 국정원 검찰 등 정부기관, 국민연금관리공단 한국마사회와 같은 공기업 그리고 대한승마협회나 이화여대와 같은 민간 영역까지 두루 전이되었다. 전신 항암치료가 필요하다. 항암치료와 마찬가지로 적폐청산으로 인한 대한민국의 통증도 크다. 대한민국의 환부가 낱낱이 까발려 지는 것을 감당해야 한다.

그런데 이 ‘적폐암’ 치료에 어설픈 민간요법을 들이대는 이들이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만 구속했으면 됐지 시키는 대로 한 공무원들이 무슨 죄가 있냐는 것이다. 수사를 받던 검사가 자살했으니 ‘집도의(적폐청산 수사를 지휘하는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를 바꾸라는 요구도 한다. 적폐청산은 치료가 아니라 ‘정치보복’이라며 대통령과 여당을 비난하며 목소리를 높이고도 있다.

최근 보수언론 칼럼과 기사 제목을 보자. “국정원장 3명 안보실장 2명 전원 구속 추진, 지금 혁명 중인가”, 조선일보 사설 제목이다. 중앙일보는 “여론재판식으로 MB수사 몰아가서는 곤란하다” “적폐청산이 복수극이 안 되려면” “김관진, 감방에 보내야 했나” 등 사설과 칼럼을 통해 적폐청산을 비난했다. 매일경제는 “靑 지시 따른 공무원만 구속..관가 쇼크 ‘일하지 말란 얘기’”라는 기사에서 적폐 공무원을 두둔하기도 했다.

좀 따져보자. 위에서 시키는 대로만 한 공무원이 무슨 죄가 있냐는 논리인데, 맞을까? 위법이든 탈법이든 상관 않고 시키는 대로만 할 것이면 조폭을 했어야지, 왜 공무원을 하는가? 심지어 시키는 대로만 한 조폭도 잡혀가는데 공무원이 무슨 항변인가. 우리가 낸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공무원이 시키는 대로 불법을 자행해도 된다면 공무원의 법적 지위를 왜 보장하는가?

수사를 받던 검사가 자살했으니 수사책임자가 물러나라고 한다. 정확히 말하면 ‘수사 중인 검사’가 자살한 것이 아니라 ‘곧 구속될 검사’가 자살한 것이다. 자살한 검사는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변호사 사무실에서 상담을 하다가 자살했다. 사실 관계를 바탕으로 책임 소재를 따져 본다면, 수사를 받는 와중에 자살한 것이 아니라, 변호사와 상담하다 자살한 것이니 상담을 제대로 하지 못한 변호사의 책임일 것이다.

수사를 받던 검사가 자살했으니 서울중앙지검장이 옷을 벗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검사 자살이 그리 값진 것인가? 그동안 검찰 조사 받으면서 자살한 사람이 100여 명인데, 그때마다 지검장을 교체했는가? 아니 지검장을 교체해야 한다는 목소리라도 있었는가? 그때 검찰이 스스로 자성을 했나? 왜 검사 죽음에만 호들갑인가? 변 검사에 대해서는 특별히 압박수사가 진행되었다고 밝혀진 적 없다. 확실한 것은 공범자들이 대부분 구속되었다는 사실 뿐이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국정원 정치개입 사건의 수사를 방해한 국정원 파견 검사들에 대한 수사를 지휘하는 것이 ‘피해자가 가해자를 수사하는 형국’이라고 공격하기도 하는데,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당시 가해자는 윤 지검장에게 인사 불이익을 준 검찰 수뇌부와 박근혜 정부다. 국정원 파견 검사들은 가해자가 아니라 ‘방해자’다. 방해자 수사는 당시 방해를 받았던 사람이 가장 잘 안다. 당연히 윤 지검장이 수사를 지휘해야 한다. 그리고 ‘박영수 특검’ 때도 윤 지검장은 수사팀장이었다. 그때는 자신의 가해자인 검찰 간부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수사했다. 그때는 되고 왜 지금은 안 되는가?

이런 어설픈 민간요법에 기대 항암치료에 반대하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일개 청와대 행정관이었던 자가 ‘정치 보복’이라며 저항하고, 방송 적폐의 주역인 KBS 사장은 ‘방송법을 개정하면 사퇴하겠다’며 버틴다. 정치적으로 아무런 가치가 없는 인물이 '정치 보복'을 운운할 정도로 '적폐적 사고 체계'가 만연하다. 방송 장악의 주역이 사퇴의 조건을 다는 것은 비유하자면 똥차가 길 닦아 놓으면 지나가겠다고 버티는 격이다.

이런 '적폐적 사고 체계'의 정점에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있다. 이 전 대통령은 적폐청산 하느라 과거에 발목 잡히지 말고 안보와 경제나 신경 쓰라고 한다. 하지만 적폐청산이 바로 안보고 경제다. 안보와 경제를 망친 과정을 따져보는 것이 바로 적폐청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짜 적폐는 이런 일이 ‘어쩔 수 없었던 일’이며 ‘이제는 덮어야 할 때’라고 말하는 그들의 사고 체계다. 과거의 잘못을 제대로 따져보고 합당한 처벌을 하지 않고 묻어두는 것은 미래의 도둑들에게 용기를 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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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열

고재열 시사IN 문화팀장
시사저널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으나 '삼성기사 삭제사건'에 항의해 6개월 동안 파업을 벌인 후 사표를 내고 동료들과 시사IN을 창간했다. 블로그 '독설닷컴'으로 인터넷 논객 활동을 시작했으며 요즘은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 더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트위터 @dogsul | 페이스북 facebook.com/dogsuldotcom
제129호   2017-12-07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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