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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이후 1년, 연극은 달라졌는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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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연극in은 ‘미투 이후 1년, 연극은 달라졌는가?’를 주제로 기획 기사를 연재합니다. 연극계 미투 이후 관객으로서 체감하는 나와 연극계의 변화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는 좌담회를 진행했습니다. 관객의 익명성을 위해 참여자의 이름을 실명표기하지 않았음을 밝힙니다. - 웹진 연극in 편집부

일시 : 2019. 5. 21. 화. 오후 8시
장소 : 서울연극센터 1층
진행 : 김지수 (본지 편집위원)
참석 : 김지호, 배서, 제이, 하안지

2018년 2월 25일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린 일반 관객들의 위드유(with you) 집회
(사진출처: OSEN 이동해 기자)
#미투이후1년 #공연선택기준 #관객인 ‘나’의 변화
김지수
관객분들에게도 미투 이후 1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 같아요. 실제로 공연을 선택하는 기준이 달라지셨는지 궁금합니다.
하안지
저는 뮤지컬을 보기 시작해서 연극으로 넘어간 케이스인데요, 초반에 접근하기 쉬웠던 연극들이 소위 말하는 알탕연극, 남성 중심의 엇비슷한 서사가 많았는데 그조차도 무대예술을 처음 접했던 당시의 저에게는 굉장히 새로웠었거든요. 그렇게 보다가 약간 질린다고 느끼던 시기가 왔었죠. 그런데 미투 사건으로 인해 충격을 좀 많이 받았어요. 제가 정말 좋은 작품을 봐도 배우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작업을 했을까? 내가 다시 공연 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운 생각도 들었고요. 마침 미투 터지고 처음 본 작품이 <레드북>이었을 거예요. 여성서사 뮤지컬. 여성서사 연극도 많이 나오고 시대의 사회상에 응답한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객석에서는 더 이상 불안하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요. 예전만큼 많이 보지는 못하지만 꾸준히 여성서사극 위주로 보고 있어요.
김지호
저는 예전에 극단에 있었을 때 지인들이 나오는 연극을 많이 봤었어요. 거의 제 의사와 상관없이 동기들이나 선배들이 보기 때문에 가서 봤고. 그 전에는 내용의 완결성이나 작품성만 생각했다면, 미투 이후에는 보면서 혼자서 소외감이나 외로움을 느끼는 순간이 오는 거예요. 혐오적인 대사가 하나만 나와도, 그 공연이 아무리 무수한 칭찬을 받더라도, 저는 그것 때문에 감정이 상하고... 모두가 뒤풀이에서 좋은 작품이었다고 말하는데, 저도 웃으면서 좋았다고는 하지만, 속으로는 멀어지고... 혼자서 이게 뭐지?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런 혼란의 시기가 있었어요. 미투 이후 이윤택 연출가가 구속된 다음에는 마음이 굳어졌어요.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내가 불편함을 느낀다면, 그 작품은 위대한 작품이라고 볼 수가 없는 거구나. 그래서 요즘에는 골라서 보게 됐어요. 여성서사극을 주로 찾게 되고요. 남성적인 시선에서 만들어진 작품을 볼 때는 마음 한 쪽을 접게 되죠. 사람을 대할 때도 똑같은 것 같아요. 예전에 여성혐오적인 발언을 했던 사람과도 어쩔 수 없이 어울려야 하지만, 계속 마음을 접게 되는 거예요.
배서
미투가 있기 전에도 원래 여자배우들을 좋아해서 여자배우가 주로 나오는 공연을 봐왔었어요. 여성서사나 여성 인물이 대상화되지 않고 제대로 그려지는 작품을 봐야겠다는 사명감도 있지만, 좋은 작품이어도 여자가 안 나오는 작품은 별로 보고 싶지가 않은 거예요. 사명감이 아니라, 내가 이 시간을 버틸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고. 작품의 미학적 측면에 대해서는 정말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여성이 부재하다거나 대상화되어 그려질 때는 죄책감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그럴 때마다 고민이 돼요. 이걸 좋은 작품이라고 해야 하는지, ‘보지 마세요’라고 해야 하는지.
제이
전에는 제가 불편하다고 느끼지만 그게 예술이거니 하고 넘어가려고 했던 마음이었어요. 그런데 미투 이후에 제 감수성이 달라지니까, 알고 나서는 즐길 수가 없잖아요. 객석에 앉아있을 때도 확실히 보는 게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 같고요. 좀 더 명확한 기준이 생기고요.
김지호
그게 예술이겠거니,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겠거니, 생각하던 때가 있었어요. 관객으로 객석에 앉아있으면서도 그런 경험이 되게 많았어요. 이해가 안 되면 내가 어느 단계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거겠지, 내가 미숙해서 그런 거겠지. 나는 판단할 위치가 아니니까... 이런 생각에 되게 힘들었던 것 같아요.
김지수
저는 장애인 당사자로서 인권강의를 나가는데 그때 첫 번째로 이야기하는 것이 ‘불편함’이에요. 뭔가 불편하다고 느끼는 순간부터 시작이 되는 거죠. 그걸 감지하는 감각이 중요해요. 그리고 이게 또 연극계만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저는 일상에서도 계속 그런 게 느껴지거든요. 공연도 안 보게 되고, 관계도 접게 되고요.
하안지
공연계 미투 터지고 나서 저는 ‘한국 여성의 전화’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했거든요. 활동가들이랑 현장에서 공유하는 것과 개인적으로 공연을 보면서 활동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더라고요. 봉사활동을 하면서 제 개인적으로 여성 인권에 대한, 가슴으로만 느끼다가 머리로 생각하고 글로 쓰고 하는 그런 과정을 의식적으로 했던 것 같아요. 웬만하면 친구들이랑 모이는 사적인 모임에서도 옛날에는 학교 등의 단위로 모였다면 요즘은 페미니즘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들과 같이 만나서 얘기하고 있어요.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으로서 교류를 많이 하게 되는 거죠.
김지호
일상적인 친목 모임에서도 한 번은 꼭 미투 얘기를 하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그런 걸 말하는 것만으로도 꺼려졌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은 그래도 다들 공감하고 화를 내더라고요. 그런 감정이 생긴 게 되게 큰 차이라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얘기하다 보면 항상 확신이 없어요. 내가 느끼는 감정이 옳은 건지,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화가 나는 것만으로는 해결이 안 되니까요. 근데 여기 오니 이렇게 행동하는 분도 있다는 걸 배워갑니다. (웃음) 그런 분노가 연결되는 지점을 찾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김지수
작년에 시위가 많았잖아요. 다들 가보셨나요?
제이
전부 갔어요. 혜화역에서 시위가 많기도 했고요. 그 자리에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관객집회 때는 많이 울었습니다. 앞에서 발언하시는 분들도 그렇고요. 서로 모르지만 한꺼번에 목소리를 냈던 중요한 자리였잖아요.
배서
관객집회 때는 사정이 있어서 트위터로만 상황을 알았고요, 대학로에서 했던 불법촬영 반대시위는 연극 보러 가는데 하고 있어서 그 김에 갔어요.
김지호
이만큼 모였네? 하는 게 눈으로 딱 보이니까 되게 신나더라고요. 소리 지르니까 스트레스도 좀 풀리고요. (웃음)
제이
되게 재밌는 로테이션이 있었거든요. 밤공인 분들이 먼저 계셨다가 가시고 낮공 끝난 분들이 합류하고, 또 밤공가는 분들은 가고. 이런 식으로 스케줄에 따라 관극도 챙기면서 같이 했었죠.
#관객의변화 #적극적인관객행동 #연극계의변화
김지수
페미니즘이 이슈가 되면서 참여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졌잖아요. 공연계 안에서도 텀블벅 후원이나 혹은 반대로 보이콧, 불매운동 등등에도 참여하신 적이 있나요?
제이
집단행동이라기보다는 다들 개인적으로 기준이 좀 더 명확해진 것 같아요. 난 이런 극은 선택하지 않겠다, 이 사람이 나오는 건 안 보겠다, 하는 생각이 예전보다는 많이 생기지 않았을까 합니다.
김지수
주로 어떤 작품을 안 보시나요?
제이
미투와 관련해서 회피나 부정을 했다던가 하는 게 명확하게 알려진 분들. 제가 모든 걸 알지는 못하지만 알려진 선에서요. 개인적으로는 예전에는 봤더라도 다시는 보지 않겠다는 생각을 해요. 제가 할 수 있는 작은 것이죠.
하안지
하도 많아서요. (웃음) 이름이 쎄한데 왜인지 모르겠다 싶으면 일단 검색을 해봐요.
제이
왜냐면 제작사들이 해당자의 이름 또는 제작사의 이름 자체를 바꾸거든요. 그렇게 해서 다시 나오고요. 관객을 속이는 행동이라고 생각해요.
배서
항상 어려운 것 같아요. 예매를 했다가도 이 사람 것을 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보고 후기를 올리면 안 되나? 이런 생각을 하다가 결국 취소를 하기도 하고. 누가 그런지 다 알지도 못하고, 직접 가해자로 지목된 게 아니라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어디까지 제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지...
김지수
관객들께서도 치열하게 그런 고민들을 하고 계시는 것 같아요. 지금 보기에 연극계 내부는 변화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요?
하안지
저는 연극에서 재현되는 폭력의 수위가 약간 변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 남성이 소리 지르거나 팔을 휘두르거나 하는 장면이, 옛날에는 정면을 보고 하거나 관객의 시야에 딱 들어오는 방향에서 했기 때문에 자극적으로 느껴졌다면, 요즘은 좀 담백하게 뒤를 보고서 하거나 하는 식이에요. 불필요한 장면은 수위를 낮췄다는 생각이 들고요. 제가 모 극장에 계속 건의했거든요. 트리거 워닝(trigger warning : 창작품을 공개할 때 트라우마를 유발시킬 수 있는 소재나 내용이 들어있는 경우 그것에 대해 경고를 하는 것)을 해달라고. 옛날에는 몇 세 이상만 관람 가능하다 이런 것만 있지 관객에 대한 세세한 고려가 없었어요. 요즘은 그런 것에 신경을 많이 쓰시는 편이더라고요.
미투가 연극의 상상력을 제한한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을 거라고도 생각해요. 왜냐면 옛날에 했던 걸 지금은 자제하는 상황이 발생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향후 5년 정도는 이런 경향이 유지되어도 좋다고 생각해요. 시대에 발을 맞춰가는 방향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제이
얼마 전에 공연을 봤는데, 트리거 워닝이 있었어요. 그런데 공연팀이 공연을 만드는 과정에서 트리거가 되는 장면이 굳이 필요 없겠다 판단해서 수정한 다음, 관객들에게 직접적이지 않으니 공지했던 것만큼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는 말을 했던 적이 있어요. 저는 그걸 알고 있어서, 공연팀이 어느 부분에서 얼마나 고민을 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단순히 관객의 눈치를 보는 게 아니고 만드는 과정에서 느끼고 있었던 거죠. 창작자들이 그런 과정을 통해 더 민감성을 갖게 되지 않을까,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되어 좋았어요.
배서
결과적인 측면이 아니라 과정적인 측면에서도 극단별로 작업수칙을 공유하는 움직임이 있고요. 저는 로라 피셔 워크숍과 수잔나 딜버 포럼을 둘 다 갔었는데요. 미투가 단순히 성폭력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연극계에 있었던 뿌리 깊은 위계와 비민주적인 문화를 한 번에 까발려준 것 같아서 되게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시카고 씨어터 스탠다드(CTS)의 경우에는 극장 위주잖아요. 한국은 극장 위주가 아니니까... 자발적으로 다양한 분야의 연극인들이 모여서 고민하고 있다는 게 보여서 저는 앞으로 기대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요.
제이
관련한 포럼에 저도 갔었거든요.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세 번이 되면 소수가 아니라 점점 더 많이 알게 되지 않을까.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에서 <불편한 연극>이라는 책자도 만드셨잖아요. 그렇게 저작물이 나오면, 그전에는 나하고는 상관없어 이렇게 벽을 치고 있던 사람이라도 이제는 어쩔 수 없이 변화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관객으로서 하게 되죠.
#연극계진단 #내가보고싶은연극 #새로운시도 #여성서사극
김지수
앞으로 연극계에서 어떤 활동이 더 일어나면 좋겠는지 바람이 있으신가요?
김지호
이런 웹진 지면이나 공론의 장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연습을 하러 가거나 연극을 보러 가는 길에 이런 글이나 뉴스를 보면 되게 힘이 되더라고요. 그 글을 보면서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구나, 내가 지금 많이 힘들고 이상해도 그만두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안지
저는 여성서사 작품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개인적으로 더 신경 써줬으면 하는 부분은 여성의 역사적인 맥락이에요. 제가 최근에 본 연극 중에서는 젊은 여성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중년, 노년 여성의 세대가 이어지는 계보학적인 맥락이 만들어지는 작품이 굉장히 와 닿더라고요. 여성 의제에 집중하면서도 세대에 있어서 서사가 있으면 좋겠고, 중년, 노년 캐릭터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김지호
연출가나 작가들이 20대 이후의 여성의 얘기를 많이 다뤄줬으면 좋겠고, 여성 캐릭터가 입체적이면 좋겠어요. 평면적인 부속물로 나오는 게 아니라. 요즘 많이 변화되는 걸 보고 있지만 다양하게 더 나와야 할 것 같아요.
제이
예전에 봤던 고전 명작, 또 유명 연출가의 작품들이 지금 공연된다고 해서 사람들이 그렇게 받아들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작품을 보다 보면 작가의 성별이 달랐더라면 이야기의 결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가끔 들더라고요. 연극이 가장 많이 변화할 수 있는 장르가 아닐까요? 저는 연극을 통해서 사회를 보고 시야도 넓어졌다고 생각하거든요. 취미에 불과하지만 저를 많이 바꿨던 것 같아요. 지금도 영향을 많이 주고 있고요. 그런 만큼 이곳이 잘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김지수
자치규약을 통해 만들어진 작품은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나요? 작품에 대한 호감도나 의미가 좀 더 생기나요? 아니면 잘 지켜지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나요?
제이
그런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응원을 하고 싶어요. 제가 본 연극은 다 여성 창작진인 경우였는데 다른 조합인 경우에도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김지호
호감도는 올라가지만 막상 봤을 때 재미가 없을 때는... 어려워요. (웃음) 작품 자체가 좋고 편안한 환경에서 만들어졌다는 게 보이지만 나에게 매력적이지 않을 때. 제일 난감하죠.
하안지
응원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그것과 별개로 저는 소비자잖아요. 물론, 여성서사극이 지금까지의 전형적인 연극의 가능성을 벗어나 새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니까 이해는 하고 있어요. 다른 극들에 비해 쉽게 공격받는 위치에 있다는 것도 알고 있고요. 그래서 후기를 남길 때나 사람들에게 얘기할 때 조금 더 조심하게 돼요.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 자칫 다른 사람들에게 모든 의견으로 비춰질까봐.
김지호
사회적인 이슈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연극을 볼 때는 난감한 순간이 오는데요, 그걸 다루는 창작자 자신의 자의식만 있고 그것에 대한 성찰이 없어 보일 때 그래요. 좋은 시도였지만 창작자가 그 문제에 대해 제대로 공감한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정말 창작자 입장에서는 게으르게 한 줄을 쓰면 안 되는 것 같아요.
배서
그런 시도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는데요, 작품에서 보이는 창작자의 자의식 과잉이나 완성도 측면에서의 부족함을 말하는 게 그런 시도를 막는 게 될까 봐 조심스러워요. 지금은 과도기에 있는 것 같고요. 그런 방식의 시도가 더 많아질 때를 기다려야 하는 것 같아요.
김지호
일단은 실패하더라도 계속 시도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관객에게 욕을 먹어도, 헛다리를 짚더라도 그 방향으로 짚어야지. 그래서 그 방향으로 관객을 계속 이끄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리고 차별적이고 혐오적인 연극은 아예 관객들이 안 봐서 망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웃음)
하안지
맞아요. 여성서사를 시도했어도 비판받을 만한 부분은 받아야 하고, 만약 여성 연출가가 여성서사를 연출했는데 비판을 받았더라도 다음 기회가 주어지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동시대성 #연극의3요소 #관객과의 대화 #관객을 만나는 새로운 방법들
배서
연극이 변화하기 가장 좋은 장르인 이유도, 이 공간에 지금 함께 있으니까 시차가 있어도 계속 동시대성으로 끌어올 수 있잖아요. 문제의식 없이 소재를 그대로 가져오는 경우는 게으르다고 생각하게 되죠. 그런 후기도 많고요.
하안지
저도 그 동시대성 때문에 변화가 빠르지 않았나 생각하고요. 제가 주로 상업극을 봤을 때는 미투가 터지고 엄청 즉각적으로 대응하지는 못했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비상업극에서 소규모다 보니까 더 빨리 여성 배우들 위주로 간다든지, 여성 서사를 발굴한다든지 하는 게 가능했다고 봐요. 그래서 제 관심도 상업극에서 비상업극으로 넘어오면서 이런 극단이 있구나, 한 번씩 살펴보게 되고요.
배서
제가 연극을 좋아하는 이유는 현실이자 가상이니까 그 사이에서 어떤 것을 재현하고 연극적 상상력을 활용하는지 보는 게 재밌기 때문이에요. 관객으로서 제일 무기력함을 느낄 때는 왜 그 장면이 있는지 모를 때. 내가 관객으로서 능동적으로 의미를 해석하거나 개입할 여지가 없을 때, 제일 무기력한 것 같아요.
하안지
관객이 연극의 3요소 중에 하나잖아요. 연극은 관객 반응을 계속 살피면서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으니까요. 연극 관객이 적은 건 슬픈 일이지만, 판이 좁아서 즉각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연극은 소수라도 뜻을 가진 관객이 모이면 의견 수렴이 되니까요. 그런 지점이 연극계 미투 운동에 중요하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김지호
적극적으로 혹평을 남기는 게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불쾌한 장면이 나왔을 때 웃지 않고. (일동 공감) 배우들도 무대 위에서 바로 느끼잖아요. 뒤에 가서 안 웃더라 얘기하게 되잖아요. 직접적으로 표정으로 관객들도 배우들에게 에너지를 준다고 생각하고 반응을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평가를 남기는 것도 중요하죠. 어떤 부분은 되게 좋고 이런 연극은 못 쓰겠다 이렇게. 연습 참여, 리허설 공개 등등도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아요. 관극회원 맺는 것도 있잖아요. 그분들은 지속적으로 관극하면서 직접적으로 평가를 할 수도 있고요.
하안지
연극 <비평가> 관객 모임에서, 인터넷에 올리는 후기에서는 볼 수 없었던 학회 수준의 논의를 나누었거든요. 좋은 의견 많이 나와서 정기적으로 진행되는 관객 모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공연이 끝난 직후가 아니라 끝나고 며칠 뒤에 한다든가, 매월 몇 편의 연극을 선정해서 같이 보고, 함께 모여 이야기하는 자리를 만든다든지. 서울연극센터에서 지원해주었으면 좋겠어요. 개인이 하기에는 힘들고 품이 많이 들어서요. (웃음) 예전까지 형식적으로 해왔던 관객과의 대화를 벗어나서 장소, 시간, 형식을 새로 시도해보면 좋지 않을까.
제이
관객과의 대화 질문을 사전에 주최측에서 준비하시고 답변을 배우들이 해주시면 관객들의 생각이 그 사이에 정리되는 것도 있거든요. 제작진에서 준비하는 질문이 아니더라도 온라인으로 미리 관객들에게 사전 질문을 받고 현장 질문도 함께 받는 경우도 저는 좋았습니다.
#그럼에도 연극을 보는 이유 #관객인 나를 성찰하다 #미투운동은 역사가 된다
배서
제가 연극 보기 시작한 지 3년 됐어요. 대학 가서 본격적으로 연극 봐야지 했을 때 딱 미투가 터진 거예요. 그래서 부모님이나 친구들이 괜찮냐고 물어보기도 했고요. 저는 관객일 뿐인데 작년 3월 내내 굉장히 무기력했었어요. 그래도 지금 1년을 돌아보면 굉장히 많은 것이 바뀌었다고 생각해요. 1년이 아니라 몇 년 지난 것 같은 느낌이거든요. 1년 전에는 안 괜찮았던 것 같아요. 그때 본 연극에 “극장 안에는 또 다른 밝은 세상이 있다네” 이런 대사가 있었는데 연극이 다 거짓부렁이었구나. 무대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조명으로 다 숨기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어요.
김지호
학교 다녔을 때 문단 성폭력 문제가 터졌고, 연극계도 미투 터지고... 제가 가는 데마다 천장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는데요. (웃음) 그래도 건강한 집단이기 때문에 먼저 터지지 않았나... 실낱같은 희망이 있어요.
하안지
친구가 연극에 관심 가질 찰나에 연극계 미투가 터져서 저한테 연극 보는 게 무섭다고 하는 거예요. 연극계 자체가 일반인들에게는 낯서니까요. 그런데 연극 <비평가>를 같이 봤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소리를 안 해요. 너무 재밌다고. 영화를 보던 친구였는데 거기서 충족되지 않았던 여성 배우의 파워를 느낄 수 있는 게 좋다고 하더라고요. 연극이 무섭다기에 연극으로 보여줬습니다. (웃음)
제이
저는 연극을 보게 되면서 재미없는 삶의 탈출구로 시작해서 시야를 넓게 해주고, 제가 살지 못한 삶이 펼쳐지는 것도 좋았어요. 처음에는 취미지만 무조건적인 애정을 가졌던 것 같아요. 오랫동안 그렇게 봐왔는데 미투 터졌을 때 상실감, 배신감이 엄청 컸어요. 사실 일정표에 수많은 예매내역이 차 있었는데 어느 객석엘 가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곳에의 내 애정이 끝나나보다, 극복하지 못하나 보다, 이렇게 몇 달간 생각했어요. 친구들이 물어봤을 때 “응, 나 이제 여기 ‘탈덕’할 수 있을 것 같아”라는 말도 했었어요. 근데 결론적으로 지금도 보고 있으니까요. 아직 놓지는 않았구나, 여전히 여기에 내가 채우고 싶었던 것들이 남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예전만큼 무조건적으로 많이 보려고 하지는 않아요.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건강하게 발전하고 생각하는 연극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안지
아빠가 386 학생운동 세대에요. (대학로에서 하는 페미니즘 관련 시위나 집회를 나가려고 하면) 아빠가 저에게 뭐 하러 쓸데없는 짓을 하냐, 나도 해봤다, 이런 말씀을 하세요. 386 학생운동은 이제 역사가 됐잖아요. 부당한 것에 저항한다는 점에서 우리가 하고 있는 미투 운동과 본질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나중에 시간이 흐른 후에, 불의에 맞서 싸우면서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했다고 어디 한 줄 적힐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관극 선택 기준이 어떻게 바뀌었다, 이런 것도 통계가 나와서 아카이빙이 됐으면 좋겠어요. 나중에 자료로 볼 수 있게. 우리는 자격이 충분하잖아요. 솔직히 여성서사극 자리싸움 치열한 극에 가서 앉아있으면 서로 모르는 사이인데도 전우애가 들어요. 이 사람들 여성서사극 보려고 치열하게 ‘광클’해서 이 자리에 왔구나. (웃음)
배서
이런 사안에 대해서 발언하고자 하는 관객들이 더 많을 거라 생각해요. 그러니까 관객들을 많이 써먹으셨으면 좋겠어요. 비인격적인 소비가 이루어지는 세상 속에서 이렇게 연대감을 갖고 있는 소비자집단이 없기도 하고요. 그만큼 판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소비자니까요. 남산예술센터에서 지금 배리어 프리 공연 시도를 하고 있잖아요. 비장애인인 관객은 공연을 보는 것에 어려움이 없지만 그런 시도들이 궁금해서 일부러 수어통역 회차를 잡아서 보기도 해요. 연극판의 변화를 목격하고 싶어하는 신기한 집단이에요. 그러니까 적극적으로 고려해주세요.
김지호
한편으로는 이런 자리에 오는 분들은 다 같은 생각이에요. 그래서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남성 관객, 정반대에 있는 사람들의 말도 많이 들어주셨으면 해요. 부딪혀도 이런 기획을 계속했으면 좋겠습니다.
김지수
저희가 또 기회가 된다면 폭넓게 준비해서 서로의 이야기를 더욱 솔직하게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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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보름

강보름 프로젝트 레디메이드 연출가
연출작으로 <레디메이드 인생>, <우리가 고아였을 때>,<모던걸타임즈> 등이 있다.
rkdekdzhd@hanmail.net
제160호   2019-05-30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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